Meet The Artist #4 -
<전통 래이부>의 기획자들과 만나기 전에.
지난 9월 30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실습장에서 전통문화와 레이브 파티 문화를 접목 시킨 파티 <전통 래이부>가 진행되었다. BOKEH의 두 에디터도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았고, 기대처럼 열정적인 파티를 만나 볼 수 있었다. 두 가지 문화를 융합한다는 강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획적 의도가 행사의 크고 작은 곳들에 배치되어 있는 멋진 파티였다. 한껏 즐기고 숙취가 가신 뒤, 두 에디터 모두 이런 매력적인 행사 뒤에는 어떤 매력적인 사람들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번 인터뷰에는 기세와 열정으로 아이디어를 엮어내는 젊은 기획자들의 이야기를 담아 보았다.
글/인터뷰: 슬, 상욱
-BOKEH의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황보민: 안녕하세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미술원 조형예술과 16학번 황보민이고요. 이번 <전통 래이부>를 기획하고 주최하였습니다.
이진우: 안녕하십니까, 전통예술원 연희과 18학번 이진우 입니다. 공연 연출과 기획을 맡았습니다.
황유빈: 저는 미술원 디자인과 23학번 황유빈이고요. 이번 행사에서 행동대장을 맡았습니다(웃음).
이혜린: 안녕하세요, 홍보와 마케팅을 맡은 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전공 21학번 이혜린입니다.
김민정: 저는 영상원 멀티미디어영상과 22학번 김민정이고요. 이것저것 많은 일을 했는데, 대표적으로 이번 행사의 홍보 트레일러를 만들었습니다.
김주연: 전통예술원 한국음악작곡과 19학번 김주연이고요. 이번 행사에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팀 내 소통을 담당하였습니다.
류승주: 안녕하세요, 저는 미술원 조형예술과 20학번 류승주고요. 항상 행사에서는 잡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현장 구조물 설치와 행사 헤나 부스 등을 다양한 일들을 담당했습니다.
-이번에 진행된 <전통 래이부>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 드린다.
황보민: 2023년도 1학기에 미술원 지하에서 처음 클럽과 파티 문화에 기반한 레이브 파티를 개최했다. 이번 2학기에 열린 <전통 래이부>는 공연과 전통예술에 클럽 문화를 접목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통예술원과 협업하여 진행하게 된 된 행사다. 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공연자와 관객의 구분 없이 놀 수 있는 파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혜린: 덧붙이자면, 이 기획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가 한예종 학생들이 함께 단합하고 즐길 수 있는 파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클럽, 파티 등 어떤 문화의 형식을 가져오는지도 중요하지만, 기획의 시발점은 학생들이 함께 뭉쳐 즐길 수 있는 행사를 열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기반을 두고 즐거운 파티 그 이상의 기획들을 고민하다 보니, 연희과 학생들과 합작을 해 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그게 한예종 특유의 독특하고 재미있는 문화가 담긴 파티니까.
이진우: 레이브를 래이부(來怡掊)라고 한자로 음역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그러모을 부'를 사용하였다. 이 행사에도 한자의 뜻처럼 이 자리에 뭉쳐서 즐기면 좋겠다는 의미가 있었다. 공연자로서 이번 <전통 래이부>는 전통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고 어려운 관객들에게 전통음악이 멋있는 음악임을 알려줄 수 있는 기회였고, 또 전통 음악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김주연: 국악 전공자라면 한 번 쯤 국악의 대중화라는 말을 생각해보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국악을 해 온 국악 전공자로서 나 역시 국악의 대중화에 한 몫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그러면서도 스스로 국악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늘 극장 형태의 공연장에서 앉아서 관람을 하고, 그 감상을 곱씹고, 이런 경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를 통해 좀 더 대중 친화적인 국악을 많이 시도하지 않았나 싶다. (래이부에서)판굿을 했었는데, 그걸 옛날 사람들이 앉아서 봤을까? 아니지 않을까.
다 같이 즐기면서 마을에서 뛰어 놀며 보는 공연이 공연장이라는 실내 공간으로 들어오며 결국엔 앉아서 보는 공연이 되었고, 나도 그렇게 관람을 해왔는데 이번에 좀 고정관념을 깨고 진짜 국악을 즐기면서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 전공자로서 좀 뿌듯하다.
류승주: 한예종의 학생들은 아시겠지만, 여기가 캠퍼스 라이프랄 게 별로 없는 곳이다. 그런 점에 신입생 때 충격 받아서 반수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웃음). 그럴 정도로 청춘에 대한 로망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을텐데, (<전통 래이부>가)그런 것들을 많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미술원 지하에서 진행 된 첫 행사 때 부터 조금씩 조금씩 계속 와서 돕게 되는 동력이 있다. 정말 이런 자리가 한예종에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그런 자리가 만들어질 것 같은 태동이 보여서 옳다구나 하고 들어오게 되었다.
김민정: 좀 더 덧붙여 말하자면, 한예종의 이런 자리가 이제야 좀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다른 과의 사람들과 한번 섞여서 놀아보고 싶었다는 갈증도 정말 많이 느껴졌고. 나도 현장에서 딱히 친구를 사귀려는 노력을 한 것도 아닌데 친구가 정말 많이 생겼다(웃음).
협업 같은 공적인 일을 통해 만나면 약간 연락도 점점 안 하게 되고 쉽게 흐지부지해지는 관계가 되는데, 사적으로 한번 ‘놀아 제껴’ 보니 서로 재면서 만나는 게 아니어서 쉽게 가까워 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너 나랑 인스타 친구 할래?” 이러면서 서로 게시물 들어가서 “너 이런 작품 해? 그럼 나 다음에 나랑 이런 방향의 작품 해볼래?” 같은 분위기의 친분을 쌓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앞으로 이렇게 사적으로 놀면서 친해질 수 있는 축제가 필요한데, 매년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전통 래이부>는 전통예술원과의 협업을 통해 디제잉과 공연이 합쳐진 색다른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구성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행사의 큰 축인 공연을 구성하였는지 궁금하다.
황보민: (공연에서)내가 가져온 아이디어는 DJ 외에는 없는 것 같다. DJ가 흐름이 끊기지 않게 노래를 계속해서 채워 주면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템포에 맞춰서 놀면 되지 않나. 공연과 디제잉이 기획적인 면에서 충돌이 있을 수 있지만, 행사에서 좀 자유롭게 노는 분위기를 원하기도 했고, 공연과 행사가 접목 될 때 디제잉이 행사의 흐름을 이어가 주길 바랐다.
그래서 공연에 관해 처음 미팅 했을 때도, 공연 할 때 힘드시지 않느냐, 공연 끝나고 환복도 하시고 좀 쉬시는 시간 동안 디제잉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니 바로 좋다고 말씀하시면서 무대 구성이 짜여지기 시작했다.
이진우: 미술원 지하에서 레이브 파티가 열렸고, 연희과 학생들이 많이 갔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아쉽게도 그 날 일정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다. 그런 행사를 나도 정말 좋아하는데 다 같이 우르르 가서 놀았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에 (황보)민님이 래이부를 함께 기획 할 사람들을 찾는 공고 글을 개인적으로 보내주셨는데, 신입생OT 때 전통예술원의 공연을 보고 반했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 공고 글을 보자마자 ‘이거 진짜 무조건 해야겠다’, 연희과의 뭐라 그래야 되지?
황보민: 사명감(웃음).
이진우: 사명감. 그렇다(웃음). 어떤 사명감으로 연희과가 이런 자리에서 안 노는 거, 이거 말도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 마음과 함께 기획에 참여하다 보니까 내가 공연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섭외하고 자연스럽게 공연의 연출과 기획까지 참여 한 것 같다. 그 공고를 전달 받는 순간부터 하루 종일 머리에 계속 맴돌 정도로 너무 이 행사에서 공연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뒷일은 걱정하지 않고 좋은 공연을 하기 위해 엄청 집중했던 것 같다. 이 순간 내가 꼭 (공연을)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집중해서 공연의 전반을 맡게 되었다.
공연의 흐름은 전통음악에서 사용하는 ‘기경결해’라는 말을 토대로 구성했다. 내고, 달고, 맺고, 푸는 음악의 흐름을 뜻하는 말인데, 기경결해를 토대로 무겁고 아름답게 시작하여 뒤로 갈수록 공연의 분위기가 한껏 오르는 구성을 썼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신나는 분위기로만 흘러가다 보면 분명히 관객들이 중간에 지치고 지루해질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공연을 포함한 행사 전반의 ‘기경결해’와 같은 흐름들은 초기 단계에서부터 구상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행사를 준비하며 차차 방향성이 잡혀 나갔는지 궁금하다.
황보민: 처음에 “만나서 미팅을 하자!” 라고 하고, 교내 매점 앞에서 만나서 서로가 생각하는 행사의 이상적인 분위기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은데, 이렇게 노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하면 (이)진우님도 나도 그런 게 좋은데 거기서 어떤 것들이 더해져 이런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너무 초반부터 신나는 분위기로 달리는 건 길게 이어지기 어렵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진우님이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을 하고 행사의 뒤에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느낌으로 해보면 어떻겠냐는 전체적인 방향을 제안 해 주셨다. 그럼 나는 DJ와 행사의 중간중간 분위기를 어떤 식으로 바꿀 지 상의해보는 방식으로 진행하자고 하여, 처음부터 행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잡아두었다.
근데 그 날 쿵짝이 좀 잘 맞았던 건지, 그 얘기 이후로 행사의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안 했다. 각자 필요한 부분을 딱딱 가져오고, 나도 거기에 이 무대 최대한 멋있게, 지금 갖춰진 여건 안에서 어떻게든 만들어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놀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황유빈: 그냥 음악만 계속 틀다 보면 사람들이 금방 질려서 나가기 쉽다. 클럽 같은 장소도 3시간, 4시간 씩 계속 쭉 있지 않는다. 이번 행사에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던 점이 디제잉만 즐기기에는 좀 늘어질 즈음 공연이 진행되어 새로운 분위기로 계속 볼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이러한 전체적인 기획과 흐름이 실무적인 부분에서 구현되고, 또 마케팅을 거치는 과정도 복잡했을 것 같다.
이혜림: 사실 대면으로 회의한 적이 없다. 그냥 카카오톡을 통해 회의가 진행되었는데, 이게 되게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면, 단체 카톡방에 ‘홍보글 올려주실 분 있으신가요?’ 라고 올라오면 내가 ‘서사창작과인 제가 해보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바로 ‘서창과의 홍보글 믿습니다’ 하고 답장이 온다. 그럼 이제 홍보글을 만들어야 된다는 미션을 받았으니까, 어떤 식으로 내가 이 행사를 홍보를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글쓰기가 무엇이 있고 또 이 행사의 컨셉에 맞춘 글쓰기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몇 가지 구상을 거쳐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렇게 올리면 어떻겠냐고 물어보고 게시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황보민: 포스터도 내가 우리가 포스터는 필요하니까 이건 어떨까, 하고 전에 그렸던 그림을 다시 그려서 포스터로 만들어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이틀 뒤에 영상 하나가 아무런 말 없이 단체 카톡방에 올라왔다(웃음). ‘이거 뭐야?’ 하고 딱 틀었는데, 웬걸, 무슨 내 그림이 막 살아서 움직이고…
(일동 웃음)
황보민: 나중에 알고 보니 (김)민정 님이 만들어서 바로 올리신 거였다.
이혜림: 이 기획을 하나의 ‘팀플 과제’라고 생각을 하는데, 보통 ‘팀플’을 하다 보면 누가 이 부분을 하고, 이 일은 언제까지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일정을 조정하고 팀원들에게 하나하나 공지하며 진행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기획은 다들 자발적으로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헤나도 하고, 공연도 꾸리고, 영상도 찍어보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단체 카톡방의 내용도 길지 않고 간결하게 서로의 결과물에 감탄하는 말이 많았고(웃음).
황유빈: 다른 학생분들도 많이 도와주셨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한예종에 온 미카라는 친구가 흑백 카메라로 사진 다 찍어주기도 했다.
-굉장히 팀워크가 좋았던 것 같다. 이런 합이 잘 맞는 멤버들이 어떤 계기로 모일 수 있었나?
황보민: 사실 나도 좀 궁금하다(웃음). (류)승주 님과 (황)유빈 님은 첫 번째 행사 때 도와주셨던 스태프들이시고, 스태프 모집 비슷한 공고를 내가 속한 단체 카톡방 같은 곳에 올려서 그걸 보고 오신 분들도 계시고, 같이 학교 행사에 다녀 온 분들도 이 팀에 함께하고 계신데 이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함께 해 주셨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웃음).
이혜린: 나는 (황보)민을 마법원에서 처음 만났다. 마법원은 학교 공연 전시 센터에서 주관한 행사인데, 전라남도 구례에 가서 예술-교육 봉사를 하며 학생들의 단합을 위해 진행하는 4박 5일 캠프다. 그 때 민을 처음 만났고, 같이 혼성 농악단의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그걸 보고 민이 너무 멋지다고, 이런 파티를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고 함께 간 다른 학생들도 그 아이디어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또, 민은 학생들이 같이 어울려서 춤추고 노는 그런 자리를 정말 만들고 싶어했다. 나도 이렇게 뚜렷한 목표를 가진 열정이 가득한 사람과 뭔가 일을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후에 스태프 구인 공고가 올라왔을 때 그 열정에 탑승하는 마음으로 이 기획에 함께하기로 했다.
김민정: 내 경우는 별 생각 없이 마법원에 갔다가 우연히 (황보)민 님이랑 같은 조가 되었다. 나는 그 전까지 그냥 꿈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사람이었는데, 딱 꽂혀서 진짜 이 사람 따라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셋째 날 즈음에 아예 선언을 했다. “저 앞으로 민 님 따라다닐 거예요” 하고. 이 이후로 그냥 따라다니고 있다. 앞으로 따라다닐 거고(웃음).
황유빈: 23학번이어서 한예종이 딱 처음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더라. 되게 노는 거 좋아하고, 춤추는 거 좋아하고, 레이브 파티 같은 걸 되게 좋아하는데 미술원 지하에서 레이블을 한다 해서 미술원 지하에 갔는데 단발머리 남자가 열심히 춤을 추고 있더라(웃음). 그걸 보고 ‘저 사람 되게 재밌게 논다’ 싶었는데 주최자인 (황보)민이 였고, 이야기 해 보니 다음에 또 파티를 한다길래 나도 같이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는 누군가한테 민을 소개할 때, 굉장히 열정 넘치고, 하고 싶은 게 많고, 그리고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냥 민의 기획력과 민의 그 실행력을 믿고 많이 따라갔다.
황보민: 서로 심상을 공유한 상태라서 협업이 잘 진행된 것 같다. (이)진우 님이 공연 팀을 하루 아침에 꾸려 오셨을 때 내가 좀 “우리는 우연일까, 운명일까” 하며 좀 낯간지러운 말을 던졌다(웃음). 팀원들끼리 이런 동기화가 되어서 순식간에 천군만마가 된 점이 신기했다.
그래서 애초에 스스로 ‘내가 만든 행사’라는 생각 자체를 없애려고 했다.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단체가 진행하는 행사니까. 혼자서 사람 모아본다고 모아지는 게 절대 아니고,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들 많이 도와주셨다. 심지어 내가 뭔가 놓친 부분이 있으면 지적을 해 주시는데, 이미 먼저 해결을 해 주신 뒤 말씀 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아까 말했던 마법원에서 혼성 농악단의 공연을 볼 때 거기 있던 사람들이 내가 파티를 진행해본걸 아니까, 이런 주제로 네가 파티 한 번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많이들 말씀하셨다. 사실 그때부터 캠프의 남은 기간 동안 그 생각밖에 안 했다.
‘이거 할까? 2학기 때는 졸업 전시 해야 돼서 못할 것 같은데?’ 싶다가도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받은 영감, 그리고 그 것을 또 혼자서는 구현하지 못했을 텐데 다들 도와달라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와 준 덕분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황유빈: 나는 그냥 스태프 한다는 핑계로 좀 놀고 싶었다(웃음).
김주연: (학생들이 많이 호응해 준 이유는) 코로나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19학번인데, 1년 학교 다니고 나머지 기간 동안 줌으로 학교 생활을 했으니 다른 과의 학생들과 교류 할 기회 없이 4학년이 되어버렸다. 마법원에 간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다른 사람들과 좀 친해지고 싶고, 아는 사람도 좀 더 많이 생기고 싶어서.
그 자리에서 풍물놀이에 그렇게 사람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것도 보고, 또 파티를 연다고 하시기에 흔쾌히 졸업 전에 언제 또 이런 일을 하겠냐는 마음으로 열심히 참여하게 되었다. 다들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류승주: 협업을 하다 보면 개개인의 적극성이 팀 분위기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협업 과정 내내 신경도 쓰이고 스트레스도 많이 쌓이는데,
개개인의 적극성을 이끌어내고 기꺼이 행사에 참여 할 수 있게끔 기쁜 마음을 만들어준 근원은 아마 황보민 씨의 열정과 그 이글이글한 눈빛(웃음)이었던 것 같다.
그게 사람 눈에는 결국 보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요소가 한 명 한 명을 움직여서 멋진 팀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정말 한 순간에 일어난 멋진 신데렐라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레이브 파티와 전통음악이라는 두 장르의 이미지가 상반되는 면이 있다. 언뜻 들었을 때는 두 장르가 한 행사 내에서 쉽게 융화 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행사에 참여했던 BOKEH의 두 에디터 모두 생소한 크로스오버 속에서 인상적인 순간들을 많이 경험하고 돌아왔다. 어려운 시도이기도 했을텐데, 기획 과정에서 이 두 장르를 함께 다루게 된 된 계기와, 이런 ‘매쉬업’을 통해 이번 <래이부>의 ‘방점’이 되도록 의도한 특징들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
이진우: 사실 레이브 파티와 전통음악이라는 장르의 분위기가 상반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레이브 파티? 신나는 것. 풍물놀이, 더 신나는 것. 신나는 것 둘이 만나면 그냥 미치는 거다(웃음). 이번 <래이부>에 다양한 층의 관객들이 많이 왔는데, 행사를 통해 사람들이 전통음악에 대해 가진 진입장벽을 깰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또 공연 뒤에 어떤 관객 분이 이 공연을 위해서 얼마나 연습하셨냐고 물어보셨는데, 사실 따로 연습을 하진 않았다. 평소에 연주하던 음악이고, 그냥 만나서 ‘이거 합시다’ 하면 바로 할 수 있었다.
황보민: 먹던 걸로 주세요(웃음).
이진우: 맞다. 단골집 느낌(웃음). 그런 느낌으로 준비를 했다. 세월과 시간에 흐름에 맞춰 전통예술은 변화하고 있고, 이것이 진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했다.
또, <래이부> 홍보 영상에 사용했던 림킴의 <민족요(ENTRANCE)>나, 밴드 씽씽, 이희문의 음악들을 들어보면 전통음악의 요소가 가미된 음악인데 전통 예술은 시대가 흐르면서 계속 변화해가고 흐름이 바뀌어간다고 생각한다.
이번 <래이부>도 서구의 문화와 우리 문화가 합쳐져 만들어진 시너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동해안 별신굿 연주나 사물놀이를 틀고 연주하는 클럽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클럽이나 홍대의 공연장 같은 장소에서 전통음악과 다양한 요소가 융합 된 공연들을 많이 연출하고 기획하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다.
김주연: 나는 (이)진우와 다르게 좀 상반되는 이미지라고 느꼈다. 두 이미지가 잘 어우러질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까 너무 잘 어울리고 사람들도 많이 즐거워하는 분위기라 나 자신이 그동안 국악을 너무 정형화 된 고정관념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는 반성도 좀 했다.
류승주: 미술원 지하에서 열렸던 첫 번째 레이브 파티 때 방울과 꽹과리를 들고 오신 분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그때 연희과와 전통예술원이 연출하는 전통음악이 레이브 파티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서 나는 안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안 해보고 이거는 정말 되는 주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웃음).
황보민: 내가 기획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 부분은 2부 공연 뒤에 디제잉을 하며 관객과 공연자들이 함께 타악 즉흥연주를 했던 시간이다.
2부 공연이 끝난 뒤, DJ를 맡아 준 친구가 지금 틀 노래가 자기 생각에 즉흥적으로 연주를 얹기 굉장히 좋을 것 같은데 아까 공연했던 분들한테 한번 물어봐 줄 수 있냐고 나한테 말했다. 내가 섭외 할 때도 디제잉 중에 즉흥연주가 진행 될 수 있다고 했었고, (이)진우 님이랑 처음 계획할 때도 행사 막바지에는 자유롭게 연주도 하고 노는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 라퍼커션 담당하셨던 분께 가서 디제잉과 함께 즉흥연주를 해보시면 어떻겠냐고 여쭤봤다.
처음엔 좀 걱정하셨다. 이게 음악 소리에 자기 연주가 모니터링이 잘 안 되어서 그 비트를 놓칠 수도 있고…그래도 한 번 해 보시겠다고 해주셨다. 그런데 한 분이 딱 무대에서 호루라기 물고, 다른 분들은 북 들고 와서 탕탕 치기 시작하니까 하니까 갑자기 놀던 사람들도 눈빛이 딱 달라지더라.
자기 악기 가져오고, 다른 악기 빌려가고, 다 장구며 꽹과리며 다시 들고 나오더라. 종종 박자가 나가고 틀려도 그게 너무 좋았다. 모니터링이 안되니까 나중에는 연주를 하시면서 일부러 박자를 잘 들으려고 음향 장비 있는 쪽으로 가시더라(웃음). 그 순간이 이 행사를 기획 하며 만들고 싶은 장면이었다.
일종의 ‘개판’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좀 더 막무가내로 공고를 올리고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던 것 같다. 전통음악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지 않나. 관객이 공연에 직접 참여하는 모습도 이미 우리 전통음악에 있던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이번 행사에서)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었다고 생각한다.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장면들을 이어 붙여 공간을 채웠다.
-<래이부>의 이런 인상 깊은 순간과 특징들이 즉흥적으로 진행 된 부분이 많다 해도,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 방향성을 이해하고 있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멋진 장면 같다. 행사에 참여하는 인원이 많아 이런 기획의 의도와 방향을 공유하고 조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듯 한데, 이를 전달하고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팀 내부의 소통 매커니즘을 어떻게 구성하였는지 궁금하다.
이진우: 공연 연출은 한예종에서 진행하고 그 학생들이 참여해서서 가능한 부분들이 있었다. 연희과에는 풍물, 굿, 전문예인 등 다양한 세부 전공들이 있는데, 각자 익숙한 문화와 공연 양식이 있다보니 최소한의 소통으로 합을 맞추는 것이 가능했다. 행사의 공연 주제에 전공을 맞춰 대표자를 정하고 각자 알아서 한 번 준비해보자고 한 뒤 공연 당일에 동선과 각 공연이 끝나는 부분 정도만 한 번 맞춰 본 정도다.
황보민: 기획에 참여하는 스태프들도 각자의 전문성을 잘 살려냈다. 글을 잘 써야 하는 일에는 서사창작과가, 수익 구조를 짜는 일에는 예술경영 전공자가, 현장에 설치해야 하는 조형물들은 조형미술과 스태프가 각자 나서서 담당하는 식이었다. 굳이 자신의 전공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할 수 있겠다 싶으면 맡아서 하기도 했다. 어떤 일을 한 사람만 하는게 아니라 다 같이 돕는 분위기가 처음부터 있었다.
행사 전반의 분위기도 비슷한 식으로 만들어졌는데, 각자의 전공분야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서로에게 나눠주는 시스템이 잡혀있다 보니 나 혼자 하기는 어려운 일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아 쉽게 해결 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내가 이번 행사의 드레스코드를 정하는 걸 너무 어려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주연 님이 옆에서 오방색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툭 던져주셔서 바로 그 자리에서 오방색을 드레스코드로 결정했다.
김주연: 자기가 뭘 제일 잘할 수 있는지 각자 잘 알고 있어서 가능했다. 홍보용 글이 필요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해치워버리고, 홍보 영상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만들어버리고. 스태프 명찰 같이 작은 소품들도 누가 갑자기 아이디어를 내고 명찰을 만들어서 가지고 왔다(웃음). 각자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툭툭 던져 티키타카가 잘 되었다. 각자의 전공 분야가 아예 달라서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김민정: 이 행사의 기획 기간이 정말 짧았는데, 9월 초에 기획을 시작해 3주 동안 준비하고 9월 말에 행사가 열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행사가 진행 될 수 있던 이유가 다들 할 줄 아는 전문 영역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완전히 0%에서 준비한 것이 아니라 90%정도 재료가 모인 상황에서 기획인 (황보)민 님이 한번에 싹 모아서 잔칫상을 만들었다.
류승주: 나는 막판에 일을 좀 많이 한 케이스다. 다들 이미 자기 역량대로 일을 잘 끌어가고 있어서 내가 전에 이걸 했었니 어쩌니 하며 괜히 끼어들어서 뭔가 망치기보다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색깔로 와서 마블링 되는 그 장면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었고, 행사라는 게 항상 임박할 때 쯤에 빼먹은 것들이 참 많고 백업해줘야 될 것도 많기 때문에 마지막 즈음에 와서 열심히 도와주자고 생각을 했었다.
덧붙여서, 나는 원래 헤나 부스의 멤버도 아니었다(웃음). 전날에 한 분이 손목이 안 좋으시다고 하셔서 그냥 “제가 조형예술 하니까 헤나 할게요” 하고 한 3~4시간 동안 부스에서 헤나를 그렸는데 그 시간도 너무 즐거웠다. 관객도, 이 행사를 이끌어가는 스태프들도 다 너무 자신의 색깔로 이 순간 안에 들어오셔서 정말 멋진 그림이 됐다고 생각한다.
김민정: 헤나 부스가 정말 고생 많았다.
김주연: 진짜 끝도 없이 사람들이 계속 오더라.
류승주: 12시까지 얼마나 놀고 싶었는지(웃음). 진짜 놀고 싶어서 이 팀에 참여한 것도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되게 모범적이고 경직된 학생으로 지난 날들을 많이 살아왔었는데, 막 이렇게 몸으로 하는 그런 거 잘 할 줄 모르고, 첫 레이브 파티와 이번 <래이부> 이후에 내가 얼마나 감각적인 사람인지 깨닫게 됐고, 그 이후로 연극을 할 때도 좀 두려움이 없어져서 퍼포먼스를 많이 시도하기도 한다.
지금 작업을 하는데 (작업에)내 몸짓 같은 게 꽤 많이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되게 고마움도 많고, 재미, 즐거움도 많고, 헤나도 힘들었지만 그 그리는 시간도 너무 즐겁고, 12시부터는 스태프들도 다 같이 막 놀았는데 그것도 정말, 정말 재밌었다(웃음).
황보민: 처음 (류)승주 님이 본인 소개하실 때도 당일의 자잘한 일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번에도 행사 당일에 정말 일이 너무 많았다. 리허설도 해야 되고, 음향 설치를 할 사람이 나밖에 없고, 그리고 천장도 조명 설치를 마저 끝내야 했다. 그리고 입구의 안내데스크가 마련이 안 되어 있고, 흡연 구역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행사 30분 전에 안 한 게 지금 너무 많다 싶어서 급하게 주변을 돌아봤는데, 이미 흡연 구역도 정리 다 되어 있고, 안내데스크도 만들어져 있고, 팁 박스에다가 땅 꺼진 곳에 주의판도 다 붙어 행사 준비가 끝나 있더라. 심지어 신발장과 신발을 정리 해 둘 카트도 가져와서 준비되어 있고.
처음 마무리 안 된 일들이 생각 났을때는 행사 시작 시간을 늦춰야 하나 싶을 만큼 화들짝 놀랐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준비가 끝났다. 입장을 도와준 스태프들도 각자 나름의 안내 메뉴얼을 만들어서 놀이공원 직원들처럼 척척 안내를 하고. 그때 이런 흐름은 내 능력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래이부>가 한예종에서 본래 연희과의 연습실로 이용되고 있는 연희실습장을 재학생이 대관하여 진행된 최초의 기획 행사라고 들었다. 교내에서 행사를 진행하며 여러가지 이점과 어려움이 초반 기획 단계부터 행사 당일까지 다양하게 있었을 것 같은데,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황보민: 사실 연희실습장을 <래이부>를 준비하면서 처음 가봤다. 근데 처음부터 이 공간이 행사에 너무 찰떡이라고 생각해서 좀 조심스럽게 연희과에 계신 (이)진우 님한테 이 공간이 대관이 될지 여쭤봤다. 안될 때를 대비해서 여러가지 대안도 생각했는데, (김)주연 님이 먼저 대관 문의를 해 주시고 절차를 밟아서 행사에 사용 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어려움들이 있긴 있었다. 재학생이 아닌 외부인들이 교내에 들어오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제일 컸다. 대관 문의를 드릴 때 공연자 중 외부인은 DJ밖에 없고, 오시는 관객들은 대부분 한예종 재학생들의 지인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금방 이해 해 주셨다.
운도 좋았던 것이, 연희실습장이 연희과만 사용하는 공간이라서 크게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었다. 보통 교내의 다른 공간들은 시설관리과의 승인도 필요하고, 행정실의 승인도 필요하고, 여러모로 절차가 까다롭다. 별탈 없이 대관 승인을 받아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김주연: 대관 과정에 있어 다행이었던 점이, 대관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교수님께 이 행사에 대해 말씀 드렸을 때 한예종의 방향성과 맞는 행사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셨다.
다른 문제로, 그때 연희실습장 대관 허가를 내려 주셔야 하는 연희과 학과장님께서 남미에서 공연을 하시는 중이라 메일로 기획안을 보내고 시차가 있는 답장을 기다려야 해서 조금 어려웠던 점도 있었다(웃음). 하지만 또 확인해주신 뒤에 바로 승인을 해주셨다. 다들 “이게 뭐야?” 하시면서도 재밌겠다고 좋게 평가 해 주셨다.
이혜린: 사실 교수님들도, 그리고 학교도 이런 행사를 원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들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 주셨던 것 같다. 물론 나는 먼저 말씀하신 두 분처럼 발로 찾아가서 허가를 부탁드리고 그랬던 건 아니라 이런 말이 조금 조심스럽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허가를 받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 10월 예술제에서도 (황보)민 님에게 행사 기획 섭외가 들어온 걸 보면 학교도 이런 행사들이 나타나길 바랐던 것 아닐까.
김주연: 교수님들의 마음이 많이 열려 계시다(웃음).
이혜린: 학교의 반대를 우리가 뚫고 진행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환영받는 느낌이었다.
-색깔이 확실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만큼 준비 과정에서도 다양한 일화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런 준비 과정을 거치고, 이번 <래이부>에서 공연/기획팀이 느낀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하다.
이진우: 공연자로서의 최고의 순간은 관객들이 어느 순간부터 같이 무대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아무리 좋은 공연이라도 관객이 없는 공연은 재미가 없다. 특히나 전통음악의 공연에는 소통성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다뤄질 만큼, 관객과 함께하는 분위기가 아주 중요하다. 또, 기획자로서는 연출한 의도대로 관객들이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 놀았을 때 성공했다는 생각과 함께 나한테는 최고의 순간으로 남는다.
황유빈: 공연 중 판굿을 할 때 분위기가 엄청 좋았다. 음악이 신나기도 했고, 사자탈을 쓴 공연자들이 관객들한테 가서 일부러 더 크게 흔들며 흥을 돋구기도 했고. 그때 관객들이 사자탈도 만져보고 너무 즐거워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되게 감사하고 정말 즐겁다고 느꼈던 순간이다.
또,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잡고 기차놀이처럼 계속 돌거나, 원을 자기들끼리 만들고 안에서 춤을 추는 등 한예종 파티에서 자주 하는 놀이들이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 같이 마구 뛰어 놀며 행복했다. 다들 그렇게 에너지를 뿜어내는 순간이 최고라고 매번 생각하게 된다.
이혜린: 나는 오히려 최고의 순간을 뽑자면 당일의 어떤 순간이 아니라 다 마무리 되고 다음 날 내가 스태프로 함께 했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들이 행사가 너무 재밌었다고 말해줬던 순간들이 최고였던 것 같다.
내 주변에는 파티 같은 데 잘 안 가고, 시끄러운 거 싫어하는 친구들이 되게 많은데 그런 친구들의 칭찬이라서 더 기쁘게 느껴졌다. 파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서 재미를 느꼈다는 것도 좋다.
김민정: 실은 나는 밖에서 도장을 찍느라 공연을 하나도 보진 못했다. 그런데 다음 날 교내 재학생 커뮤니티에 인기 게시글이 다 <래이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 굉장히 기쁘고 좋았다. 그런데 나는 그냥 다 재밌어서(웃음). 철거하는 것도 재밌고, 다 끝나고 물걸레질 하는 것도 재밌고. 아, 내가 재밌게 만든 작업물들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도 좋았다.
김주연: 사실 나는 행사 당일이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날이어서, 일행은 먼저 보내고 나만 막차로 시간을 바꿔서 2부 공연을 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다 끝나고 치울 때 함께하지 못한 것도 너무 아쉽고. 아무튼 내게는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좋았다.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없이 티키타카가 너무 재미있게 잘 되었고 다 긍정적으로 서로의 의견을 받아주는 팀원들이 있어서 최고였다.
황보민: 생각해 보면, 나의 외가 가족들이 일을 벌이는 걸 좋아한다. 추석때 모이면 옆집 사람들까지 모아서 최소한 미니게임이라도 진행해야 하고. 이번 행사를 준비하고 이 결과를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어머니를 초대했었다. 평소에 다른 파티를 기획 할 때도 어머니가 나도 한 번 가서 놀아도 되냐고 종종 물어보시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들러도 되냐고 물어보셔서 오시라고, 꼭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그 뒤 한창 행사 중간에 막 뛰어놀던 중 어머니가 뚝 연희실습장에 나타나셨다. 평소에는 이런 말 안 했을 텐데, 어머니한테 이거 완전 대박 난 것 같지 않냐고 말씀드리니까 어머니도 진짜 너무 대단하다고 말씀 해 주셔서 이게 다 엄마 덕분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어머니를 보니까 벌써 눈물을 글썽거리고 계시고, 나도 약간 글썽거리고 있고, 그 와중에 비트는 계속 나오니까 둘이 몸을 끄덕이면서 글썽거리는데(웃음)...어머니랑 같이 춤도 좀 추다가 어머니도 너무 재밌다고 행사를 끝까지 함께하고 가셨다. 나에게는 그게 가장 좋았던 순간인 것 같다.
류승주: 헤나 부스에서 공연을 보고 있는데, 놀러 온 동기가 이런 얘기를 해주더라. 나 지금 2년치 작업 영감이 생겼다고. 그 친구가 그렇게까지 활짝 웃는 걸 처음 봤다. 이런 예술 공연이 또 다른 예술을 낳고, 그런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순간이 보인 때가 최고의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그 말을 한 동기는 지금도 그때 행사를 남긴 사진이 지금도 몇백 장씩 있다고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100호 넘는 캔버스에 빨간색을 칠해가면서 굿 공연을 모티브로 열심히 드로잉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행사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 그리고 BOKEH의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황보민: 행사 중에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어떤 지원을 받아서 해라, 혹은 인수인계를 나한테 해달라…나야 좋은 일이다. 근데 그런 것보다 다른 학생들이 그냥 이 학교를 더 이용했으면 좋겠다. 그 분들도 자기만의 파티를 더 많이 꾸려 연희실습장이든, 미술원 지하든, 한예종 안의 모든 공간의 대관 일정이 꽉 차 있어서 매일매일 그냥 자기가 원하는 파티 골라갈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로운 공동체 생활을 즐기실 수 있으면 좋겠다.
BOKEH의 독자분들도 저희의 이야기들을 옆 테이블 대화 엿 듣듯이 흥미롭게 읽어주시고, 이런 행사가 또 있을 때 독자 분들이 BOKEH를 보고 왔다 말씀 해 주시면 진짜 반가울 것 것 같다. 우리 얘기를 다 알고 오시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내적 친밀감이 이미 쌓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진우: 공연을 함께 맞춘 수많은 분들과, 이 공연을 끝까지 잘 될 수 있게 도와주신 여러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또, 나를 믿고 좋은 공연을 만들어 준 전통예술원 학우들, 멀리 서초 캠퍼스에서 함께 좋은 공연을 만들어 주신 무용원의 학우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덕분에 즐거운 행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BOKEH의 독자님들에게, 앞으로도 우리는 <래이부>를 꾸준히 이어나갈 생각이니 인스타그램을 팔로우 해 주시면 공연과 파티 정보를 쉽게 받아보고 찾아오실 수 있다(웃음).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올 한 해 즐겁게 마무리 하시기를 바란다.
황유빈: 아까 (이)혜린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래이부>에 함께 한 사람들은 다들 정말 잘 맞아서 정이 오래 가는 느낌이었다. 계속 앞으로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그런 관계가 형성되며 많은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함께 한 사람들의 열정을 느낀다.
그리고 BOKEH의 독자 분들에게는 노래를 한 곡 추천하고 싶다. 이희문과 프렐류드가 같이 작업한 앨범인 <한國男자>에 수록되어 있는 <청춘가>라는 곡이다. 원래 이런 장르의 음악을 잘 안 들었는데, <래이부> 이후로 좋아져서 자주 듣고 있다. 한 번씩 들어주시고, BOKEH의 독자 분들도 연말을 잘 보내셨으면 좋겠다.
이혜린: 나는 한예종을 정말 좋아한다. 대부분 창작을 하는 입장이다 보니 만나면 같은 창작자 동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초면에도 조금만 얘기하다 보면 굉장히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다 같이 모일 일이 그리 많지 않아 늘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 행사에 많은 관객분들이 찾아주셔서 조금 그 갈증이 해소 된 기분이라 너무 즐겁고, BOKEH의 독자분들도 젊은 창작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김민정: 언제까지 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사람인 (황보)민 님을 따라 계속 이상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하려고 한다. 다음에는 좀 더 따숩게 입고 핫팩도 더 챙겨서 입구에서 입장 도장을 찍고 있겠다. BOKEH의 독자님들도 오셔서 입구에 있을 거라고 한 게 너냐고 귀띔 해 주시면 제가 몰래 좀 더 챙겨 드리겠다(웃음).
김주연: 이 행사가 과연 어떻게, 누구한테 이어지게 될 지 모르겠지만 저희보다 더 기발한 아이디어로 더 좋은 공연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고, 나는 이제 졸업을 앞 둔 끝물이라 물러나도록 하겠다(웃음).
예술을 하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게 좀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전공을 존중하고 또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더 좋은 공연을 만들어 나가실 수 있으면 좋겠고, BOKEH의 독자님들도 앞으로 어떻게 <래이부>가 더 멋지게 이뤄질지 기대 해 주셨으면 좋겠다.
류승주: 축제에 대해 여러가지 고민을 오래 해 보았는데, 결국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즐겁게 잘 노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BOKEH의 독자분들께도 놀 수 있는 자리가 깔리는 것 같으면 기꺼이 가서 그곳에 마음껏 몰입을 해도 괜찮으니까 꼭 한 번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보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런 게 예술이 늘 가고자 하는 방향인 거고 또 그런 것들을 위해 젊은 날이 있는 것 같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런 젊은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국내의 수많은 예술가들을 많이 사랑해주시면 좋겠다.
사진 제공:
-전통 래이부 기획팀
-Mika Stoerkel IG: mikastoerkel
-황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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