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EH PLAYLIST #GoingHome
슬
무언가를 듣는 행위는 언제나 피곤하기 마련이다. 길을 걸을 때 들리는 생활 소음과 어딘가로 이동할 때 들리는 지하철 소음 등 우리는 원하지 않을 때 원하는 않은 소리들을 들으며 살아간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항상 불만이 많다. 예컨대 삶 자체만 놓고 봐도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나. 살아가며 어느 곳에 있든지 ‘내가 원하는 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노이즈캔슬링을 켜고 음악을 듣는 일이 잦아졌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이든 ‘집 같은 편안함’을 느끼는 것. 이와 같은 안정감이 점점 소중해진다.
<ココロノセカイ>(kokoro no sekai) 와 <Ekki Múkk>는 이런 안정감을 주는 몇 안되는 기제이다. 묘하게 편안하지만 동시에 처연한 아름다움도 느껴지는, 이슬비가 내린 후의 늦은 오후 같은 음악이다.
늘 어느 정도 축 처지는 감각이 편안하다. ‘집’이라는 공간이 그렇듯이 아름답지만 어딘가 쓸쓸한.
윤
What's this place if you're not here?
(당신이 없다면 여기는 무슨 의미가 있나요?)
Japanese Breakfast의 <The Body Is A Blade>에서 좋아하는 가사다. 나에게 ‘집’이라는 것은 공간 그 자체보다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는 생활의 의미로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그래서 자연스럽게도 집을 떠올리면 실제로 지금 거주하고 있는 서울의 내 작은 방보다 내가 자랐던 본가의 아파트가 그려진다. 지어진 지 20년은 넘었을 낡은 아파트 단지의 풍경. 길을 걸으면서 자주 그런 것을 본다. 낯설고 정겨운 것. 이랑의 <럭키 아파트>를 들으면 내가 꼭 럭키 아파트에 살았던 적이 있는 것처럼. 복도식 아파트의 7층, 밖은 나무가 무성한 유월. 복도 끝에선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우리 집은 1층에다 복도식도 아니지만.
상욱
집이 편한가? 나이를 먹으며 마르지 않을 것 같던 머리의 피가 조금씩 말라붙고 식어갈수록 집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그 날 벌어진 일들의 영수증을 들여다 보는 장소였고, 정산을 마치고 나면 내가 돌봐야 하는 또 다른 일들이 한 가득 쌓여 있는 장소였다. 삶의 방향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변명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장소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떠나고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은 흔치 않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공간도 흔치 않다. 나를 이유 없이 기다려주는 공간은 더더욱 흔치 않다. 그것만으로도, 집에는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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