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책 편지
화창한 날씨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봄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겨울일 수 있기도 한 것 같아요. 밤새 섬칫한 사회 뉴스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산후 도우미가 갓 태어난 신생아를 학대하는 소식이라든지 여전히 이것이 '현재' 의 일인가 싶을 정도의 사건 사고가 사회를 뒤덮고 있는 소식을 듣고 말 때.
그럴 때 마다 괜히 분노하거나 안타까워하다가 결국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 허무함을 느낄 때가 저는 꽤 많습니다. 네. 참 예민한 것 같기도 합니다. 여전히 그런 불편한 소식들을 보면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렇다고도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네요.
그럴 때 혹자들은 제게 말합니다. 귀를 닫고 살라고. 그럼 마음이 좀 편해진다고. 그런데 귀를 닫고 입을 닫고 눈을 멀게 해서 사는 것이 정말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 을 합니다. 사실 스스로 질문을 왕왕 하는 인간이기도 한데요. 그러다보니 제가 조금은 더 예민하고 별 거 아닌 것들에 뾰족한 인간이 되어서 좀 더 피곤하게(?) 사는 것도 같네요.
그런데 그런 제게. 이 책은 정말 큰 위로와 위안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실 얕은 위로를 넘어서 어떤 커다란 '산' 과 마주하는 기분이었는데요.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그런 '질문' 에 관한 책입니다.
질문 빈곤 사회, 강남순, 행성B, 2021, p.356
책의 저자는 교수님이십니다. 미국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시고 지금도 교단에서 활동하시며 칸트, 한나 아렌트, 자크 데리다 등 여러 유명한 철학 사상과 연계하여 인간의 권리, 정의, 환대 등의 문제들에 대해 쓰고, 가르치고, 강연하는 정말 멋진 분이세요. 교수님의 '배움에 관하여' 라는 책을 처음 접하고 저는 교수님 생각이 너무 와 닿아 '독자팬' 이 되어 버리고 말았는데요.
그 중 이 책. 오늘 소개해 드릴 질문 빈곤 사회를 읽으면서 또한 묵직한 질문과 만나버리고 맙니다.
인간으로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사실 생각. 잘 안 하게 되고 못 하게 되는 게 현실이고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네 맞아요. 저 만해도 요즘 코로나 이후로 건강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감사히도 재택근무 할 수 있는 여건이어서 집에서 노트북 앞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있는 중인데요.
진전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은 채 막막하고 불안한 마음을 애써 붙잡아 오늘의 일과 오늘 스스로 목표한 업계 스터디를 하고 혼자 배운 지식들을 정리하는 일. 그 이후 틈틈히 설거지를 하고 가사를 하며 식구들의 오늘 식단을 챙기고 떨어지려는 댁 내 생필품을 마련하는 것. 아이들과 가족들의 안위와 평화를 지키는 것만 해도 꽤 무거워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있다가 급기야 하루는 코피가 멈추지 않고 줄줄 흐르는 것입니다.....(사담 죄송합니다. 편지란 쓰다 보니 자꾸만 제 사적인 고백들을 하게 되네요)
단지 '나' 를 기준으로 내가 사는 세상이나 내 옆 사람의 생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오늘을 사는 것만해도 버거울 수 있지만. 그렇지만. 책은 단호히 말합니다.
내가 사는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교육제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등 일상 세계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무수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대화하고 읽고 쓰기도 한다. 라면서.
그렇기에 질문이 없는 사람 그리고 질문이 부재한 사회는 특정한 정치인 종교인과 같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에 의하여 선동될 뿐이다. 라는 것.
정말 머리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선동'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다 결국 나도 '대중' 에 불과하구나 라는 깨달음(?) 을 얻기도 했었으며. 무수한 여러 질문들만이 꼬리를 물고 제게 다가오게 되는 그런 책이었죠...
책 속으로-
많은 사람이 진실과 사실이 무엇인지 관심을 두지 않으며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소위 '탈진실'의 시대를 사는 것이다. 진실과 사실이 아니라 오직 자기편의 주장만이 중요한 사람들이 다수로 자리 잡게 될 때 한 사회는 포면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지만 내면적으론 전체주의의 덫이 곳곳에 드리우게 된다. 개인은 사라지고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집단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p. 46
우리의 편리함은 바로 이들의 생명과 삶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것이 정상적 일상이 되어 버린 한국 사회가 상실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익숙한 것으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마치 외부인처럼 낯선 것으로 돌리는 의도적인 낯설게 하기가 필요하다 p. 72
출신과 환경이 한 사람의 학력이나 능력과 정말 상관이 없는가. 아니다. 전교 1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교육을 받고 온 가족의 지원 아래 오직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그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경제적 관계적 도덕적 지지 또는 우연한 행운이 없다면 자신의 노력만으로 고학력이나 자격증 등의 능력을 갖추기란 어렵다. p. 161
(사실 필사 한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닐 정도의 책이었네요)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와 마이클샌델 교수님의 생각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저는 그 두 명의 추종자(!) 로서 상당히 반가운 책이기도 했습니다.
비판적 사유의 부재는 '악' 을 낳는다는 것. 그것이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에 깔린 생각이라죠. 마이클 샌델 교수님의 '능력주의의 폐해' 와 '공정하다는 착각' 도 마찬가집니다. 소위 승자라 하는 '능력자들' 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특권 의식을 확산한다죠.
내가 이 정도 '능력' 이 있으니 대우 받아도 좋다는 것. 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능력중심주의 가치를 뚜렷하게 지니는 사람이 만약 자신의 능력이 제대로 '보상'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 그 원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로 돌리게 된다 해요. 그래서 그것이 결국 상대적인 소수자들과 약자에 대한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한다는 것. 뭔가 섬찟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반성해 볼 뿐입니다.
나도 나 잘난 맛에 상대를 공격하거나 비난하거나 함언한 적이 있었나 라는 반성......
특히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사실 대부분 이었습니다만) '혐오의 평범성' 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스스로도 감지하지 못하지만 은밀한 혐오는 노골적인 혐오처럼 강력한 차별과 배제의 기능을 한다. 혐오는 특정한 사람들이 열등하고 비정상적이며 더 나아가서 위험하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기에 악하고 나쁜 사람들만 타자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혐오를 하며 그 혐오를 확산하곤 한다. 혐오의 평범성이다. p. 230
저는 여전히 이 사회에서 혐오와 차별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지만 마음이 갑갑해질 때가 여전히 주위 아주 사소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빈국의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그 초등학교 학부모회에서 반대 시위를 일삼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죠...
만약 그 학부모들이 자신이 한국인으로 타국에서 그저 '상대적 빈국 외국인' 자격이라고 자신의 자녀들 학교를 보내지 못하게 해당 국의 부모들이 똑같이 시위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자라는 걸까. 라는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며 단연코 이 책이 떠올랐던 건 스스로 얼마나 건강한 질문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지를 반추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돈이. 명예가. 권력이. 인정이.
그것들이 정녕 인생의 목표이고 전부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되돌아 멈춰보게 되는 건 한편 맹목적인 추종과 질문 없이 달려가는 인생이 얼마나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질문이 부재한 사회에서, 질문하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나' 는 무언가 소중한 것들을 해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반성을..하게 되는 셈이죠.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선진국을 구성하는 5가지 가치에 대해서 나오는데요.
1. 존중의 가치. 내가 만나는 무수한 타자들을 나와 평등한 동료 인간으로 생각하며 존중하는 것.
2. 인내의 가치. 기다려주는 것. 자신에 대한 실망은 좌절감으로 이어진다. 자신과 타자에게 인내하는 것은 기다려주고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
3. 정직의 가치
4. 친절의 가치
5. 연민의 가치.
존중. 인내. 정직. 친절. 연민.
어쩌면 이 다섯 개의 가치를 향해 스스로 '질문' 하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그만큼 나를 넘어 '너' 를 생각하는 마음의 소유자여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그런 이들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지만 그 고통의 원인에 늘 '왜' 라는 질문을 하면서 결국 연대하게 되겠죠.
아파본 사람이야말로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죠. 사실 제가 좀 아파보니까 알 것 같습니다. 건강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 심신 건강..
오늘 소개해드린 책. '질문 빈곤 사회' 를 통해 한번 쯤 우리는 이런 질문. 해 보는 하루를 맞이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조심스레 책 편지로 권해 드려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고자 하는가.
내가 살고 싶은 세계를 향해서 나는 용기를 가지고 어떠한 일을 하는가.
그리하여 책은 말합니다. 저 위의 질문들이, 저런 고민과 씨름 하는 그 과정 자체가 바로 우리 사회의 희망의 근거라는 것을.
저는 제 아이들의 '내일' 이 보다 희망적이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그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 이다 보니 어쩔 수 없네요. 그리고 그런 희망적인 내일엔 분명 좋은 어른이 필요합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저는 오늘도 읽고 쓰려 애씁니다.
그래도 책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책 이후의 '생각' 하는 시간에 딥 다이브하는 저를 발견해서 참 기쁘고 감사합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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