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일주일간 건강하고 평안하셨나요?
지난 레터에서는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제게 주어진 선택지의 가치와 비용을 탐색적으로 예측하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선택한, 즉 제가 좋아하고 가치있는 일을 더 효과적으로, 더 많이 하는 방법을 정리해보죠.
제가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하려는 이유는, 삶의 밀도를 높이고 삶에서 더 많은 가치가 만들어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내 삶에서 만들어지는 가치’를 수식으로 한번 표현해봤습니다.
이 식의 각 항을 조정한다는 관점으로 총 가치 생산을 늘리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 Total Resources를 늘리기: 가치있는 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해보자.
- Resources를 줄이기: 더 적은 시간과 에너지로 비슷한 가치를 만들어보자.
- Value를 늘리기: 비슷한 시간과 에너지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보자.
분량 관계상 이번 레터에서는 2번까지만 얘기하겠습니다.
가치있는 활동을 할 시간과 에너지 확보
자원을 더 확보하기 위해 비교적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과 머리를 써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쉬운 방법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 비용 대비 가치가 낮아보이는 일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지 않습니다. 앱 신규가입해서 500원 받기, 오랫동안 써먹지 못할 만한 지식이 담긴 글 읽기 같은 것들이죠. 사실 이런 활동은 지난 레터의 ‘평가표’에 넣어보면 당연히 낮은 점수가 나올 거라서, 평가하는 시간도 아깝습니다.
- (진부하지만) 짜투리 시간을 이용합니다. 이동할 때나 집안일을 할 때 팟캐스트를 듣고, 구독해둔 뉴스레터를 읽습니다. 운동량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엘리베이터 대신 걸어서 올라갑니다.
-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한 사소한 습관을 들입니다. 중요한 스케줄을 캘린더에 저장해두어 가족 및 동료에게 알리고, 어딘가 방문할 때는 헛걸음하지 않도록 미리 전화를 걸어봅니다.
- 생산성과 집중도를 높여주고 귀찮은 작업을 편하게 해줄 도구를 삽니다. 요즘 가장 마음에 드는 도구는 AC2에서 소개받은 Elgato Stream Deck입니다. 반복 작업을 단축키로 넣어두거나, 또는 반복 확인이 필요한 URL을 넣어두고 원터치로 사용할 수 있어 작업기억(Working Memory) 용량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어요. 추후 ‘생산성을 높이는 개인 업무 환경’을 주제로 별도의 레터 하나를 써볼 수 있을 듯합니다.
좀 더 머리를 써야 하는 방법은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는 것입니다. 뉴스레터 1호에서 언급했던, 창의적으로 돈을 쓰는 능력을 키우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예를 들어 저는 이런 것들을 해봤습니다.
- 회사 사무실이 멀어서 출퇴근하는 데 1시간씩 걸린다 → 출근할 때는 일정한 시간에 도착하는 게 중요하니 지하철로 움직이되, 퇴근할 때는 주로 택시로 돌아오면서 쉬었습니다. (전문가의 시간을 사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아예 완전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회사로 이직해서 출퇴근 시간 자체가 없어졌군요.
- 운동은 해야 하지만, 옷 입고 운동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시간도 걸릴 뿐 아니라 의지도 많이 소모된다. 운동 효과도 더 높이고 싶다 → 요가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서 매주 요가를 하고 있습니다.
- 인테리어를 바꾸고 싶은데 책상이나 침대를 직접 옮기려니 몸도 힘들고, 실수할까봐 두렵다 → 숨고에서 도와줄 사람을 구해서 옮겼습니다.
- 자본소득을 더 높이고 싶은데 여기에 투자할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 성과가 잘 나올지도 불투명하다 → 자산 운용 전문가를 구하는 여정 끝에 불릴레오와 이루다투자를 알게 됐고, 여기에 일임하는 자본 비율을 높이는 중입니다.
물론 이런 방법들을 선택할 때 오로지 시간과 에너지만 따질 순 없습니다. 가진 돈도 한정적이고, 좋은 전문가를 구하는 데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들 뿐더러,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이죠. 아이와 함께 노는 시간은 체력만 받쳐준다면 마냥 행복합니다. 보드게임이나 즉흥연기처럼 제가 좋아하는 취미를 할 때는 효용을 따지기보다는 그저 재밌게 놀고 싶습니다. 재택근무도 좋지만, 사무실에서 동료들을 대면하며 일할 때의 시너지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앱을 설치하기 싫어도 아내가 앱테크를 한다고 하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설치해야 합니다.
그러니 인간관계, 신뢰관계, 또는 나의 행복을 해치면서까지 자원을 확보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행복하려고 삶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고, 그러려고 자원을 확보하는 것인데, 그러다가 행복이 깨지면 모순이죠. 게다가 신뢰할 만한 전문가를 찾거나 좋은 도구를 찾는 데에 커뮤니티의 도움이 엄청날테니, 커뮤니티 내에서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그래서 커뮤니티 안에서 진솔하게 행동하고, 도움받은 것들을 다시 환원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더 적은 시간과 에너지로 비슷한 가치 만들기
작업을 잘게 쪼개기
작업을 더 빠르고 쉽게 하는 방법은 무척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주 하는 것은 ‘쪼개기’입니다. 작업을 작은 단계로 쪼개면 주변인들이 내 일을 도와주거나 피드백해주기도 쉬워지며, 그 다음 해볼 수 있는 게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 음의 효용이 있는 단계를 발견 → 하지 않습니다.
- 내게는 효용이 낮은 단계를 발견 → 다른 사람에게 위임합니다.
- 이전과 비슷하게 반복하는 단계를 발견 → 자동화합니다. 전체를 한번에 자동화하는 게 어렵다면 여기서도 단계를 쪼개서 접근합니다.
- 불확실성이 높아 쪼개기 어려운 단계를 발견 → 페어 작업으로 불확실성을 빠르게 해소합니다.
- 잘 하고 싶은데 숙달되지 않아 오래 걸리는 단계를 발견 → 관련된 수업을 듣거나 전문가로부터 배웁니다. 배운 기술을 의식적으로 연습합니다.
- 쪼개지 않았으면 인지하지 못했을 단계를 발견 → 작업 시간 추정이 좀 더 정확해집니다. 결과적으로 효용이 낮다는 판단이 들면 작업 전체를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모두 ‘발견 → 행동’이라는 패턴이죠. 쪼갠 단계 안에서 비효율을 인지하고, 그걸 해소하는 행동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쪼개는 것 자체로도 비효율을 인지하기 더 쉬운 환경이 만들어지지만, 더 의식적으로 해볼 수 있는 것은 시뮬레이션과 회고입니다.
- 시뮬레이션: 핵심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 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상상합니다. 프리모르템으로, '만약 이 작업이 실패한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를 상상해보는 것도 유용합니다. 작업에서 내가 기대하는 바가 무엇이고, 실패한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 회고: 단계 사이사이에 잠시 멈춰서 내가 예상했던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돌이켜봅니다. 예상이 크게 어긋난 부분이 중요한 학습 지점이 됩니다. 회고 후 앞으로의 단계를 재설계합니다.
작업을 함께 쪼개기
이렇게 쪼개고, 시뮬레이션하고, 회고하는 것은 이전 레터의 ‘핵심 활동을 파악하고 작게 실험해보기’와 아주 비슷합니다. 지금은 개인에 초점을 맞췄지만 조직 안에서도 쪼개고 실험하기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단, 일을 혼자 쪼개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쪼개야 좋습니다.
이전 직장이었던 한국신용데이터에서도 아주 복잡한 제품(e.g., 사업자 부가가치세 자가신고 도우미)을 만들면서 일정이 크게 어긋났던 사례가 꽤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법무/보안/프라이버시/컴플라이언스처럼 스타트업에서 제품 만드는 실무자들이 신경을 상대적으로 덜 쓰는(그러나 중요한) 분야의 검토가 나중에 일어날수록 스펙이 갑자기 바뀌고 이미 구현한 것을 갈아엎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지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관련자들이 함께 모여 작업을 쪼개서 설계하면 불확실성을 이른 시기에 줄이고 작업자들끼리의 협력을 이끌어낼 확률이 높아집니다. 예측과 실제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협력자들 사이에 일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어떻게 다른지 인지하고 조정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국신용데이터에서도 완전히 ‘함께 쪼개고 설계하기’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이런 검토를 더 일찍부터 하려고 노력하여 상황이 조금 더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비효율 해소를 행동으로 옮기기
인지한 비효율을 실제로 해결하려다 보면 동료 또는 전문가와의 협력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좋은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커뮤니티 구성원과의 신뢰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다면, 또는 신뢰관계를 빠르게 구축할 줄 안다면 협력을 통한 할 때 큰 도움이 되겠죠.
이런 부분 때문에 저는 ‘일은 잘 하는데 협업 능력은 떨어지는 전문가'라는 존재는 허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협력을 하기 어려워한다면 애초에 전문성을 기르기도 어렵고, 전문성을 발휘하여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어려우니까요.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라포 형성을 위한 대화법, 정보 습득을 잘 하기 위한 대화법, 코칭 기법 등을 배우는 게 유효하다고 봅니다.
때로는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거나 환경을 바꿔서 특정 단계, 또는 작업 전체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여 효율을 높이는 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융합학문의 가치가 이런 데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기술/도구에도 마음을 열어두면 좋습니다. 그 새 기술은 어떤 문제를 왜 풀려고 하는지, 해결하는 방식이 기존과는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지 살펴봄으로써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뉴스레터도 어떤 맥락에서는 비효율 해소를 위해 다른 도구를 선택한 예시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제 삶의 목표는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고, 그 주요한 수단은 글이었습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려면 일단 제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해야 할텐데 현재 사용하는 블로그 도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검색엔진에서 잘 노출이 안 되더군요. 그래서 이 도구를 좀 더 파헤치거나, 블로그를 새로 만들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뉴스레터에 생각이 미쳤어요. 뉴스레터 플랫폼들은 검색엔진 노출도 잘 될 뿐더러, 제 글이 좀 더 확실하게 사람들에게 도달하고 저도 더 확실하게 응답을 받을 수 있을만한 수단이더군요. 검색엔진 미노출이라는 비효율을 뉴스레터로 풀어본 것이죠.
요약
‘내 삶에서 만들어지는 가치’에 영향을 주는 3가지 요소를 조정함으로써 총 가치 생산을 늘릴 수 있습니다.
- 가치있는 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한다.
- 더 적은 시간과 에너지로 비슷한 가치를 만들어낸다.
- 비슷한 시간과 에너지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낸다.
가치있는 활동을 할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좋은 도구와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시간을 삽니다. 커뮤니티가 도구 선택과 전문가 선택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더 적은 시간과 에너지로 비슷한 가치를 만들기 위해 작업을 쪼개고, 시뮬레이션하고, 회고하여 비효율을 인지하고 해소합니다. 작업을 쪼갤 때도, 비효율을 해소할 때도 동료나 전문가와의 협력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협력을 잘 하기 위한 기법들을 배우고,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도구와 기술에도 마음을 열어둡니다.
다음 레터에서는 ‘비슷한 시간과 에너지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공유하면서 이 뉴스레터의 첫번째 시리즈를 마무리해보겠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지난 레터에서는 구독자님이 가치있는 선택지의 핵심과 우선순위를 어떻게 판단하시는지 여쭤봤습니다. 이번에는 구독자님의 일상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더 확보하고, 더 효율적으로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질문을 던져볼게요.
Q. 지난 2주동안 구독자님의 시간과 에너지를 (단/장기적 관점에서) 아끼기 위해 돈을 쓰거나, 노력을 기울였던 행동은 무엇이 있었나요? 반대로, 돈이 아까워서 직접 했지만 이럴바에는 맡기는 게 나았겠다 싶은 경험은 무엇이 있었나요?
Q. 지난 2주동안 구독자님이 2번 이상 했던 작업 중, 일부를 위임하거나 자동화해서 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해볼 수 있겠다 싶은 작업은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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