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의 손톱은 지금?_김이설

고민실의 「멍게 부케 폴리시」를 읽고

2026.05.15 | 조회 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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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당신의 해변에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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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껏 네일숍에 딱 일곱 번 가보았다. 일곱 번 내내 단색의 젤 네일만 했는데, 지금 내 손톱에 올린 건 연한 핑크색. 지금 이 젤을 제거하면 최소한 한 달은 아무것도 못 바를 것이다. 젤 네일을 연이어 세 번쯤 하고 나면 손톱이 세로 결을 따라 갈라지거나 쉽게 부서지기 때문이다. 단단함을 잃은 듯 물러져 패이고 흠집도 수월하게 생겨버린다. 이럴 때 손톱 영양제를 발라주거나, 네일 스티커를 이용하면 딱.

다소 장황하게 손톱과 네일숍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바로 고민실의 멍게 부케 폴리시에 대해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2024년에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한국 문학 소설선 홈 가드닝 블루에 수록된 단편이다. 멍게 부케 폴리시라는 제목도 제목이지만 손톱이 하나 비었다. 혀를 움직여 입안을 훑었다로 시작하는 소설 도입부의 재기발랄섬뜩오묘한 첫인상이 사뭇 강렬하다. 소설 속 주인공은 네일 스티커를 붙이는 인물이고, 요즘은 선호하지 않는 매니큐어를 바르는 네일 폴리시를 하는 네일숍을 굳이 찾아가는 인물이라는 것도 눈길을 끈다.

손톱, 네일숍하면 우리에게는 그 유명한 김애란의 큐티클(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이라는 단편이 있다. 여성의 외모, 미용, 꾸밈이 노동의 영역이 되었을 때는 정작 휴식과 아름다움과는 멀어지고 감정 노동으로 마음까지 건조해진다. 그런가 하면 이주혜의 할리와 로사(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다람, 2025)에서 중심 이야기 축인 전주 여행을 가자고 먼저 제의한 인물인 로사도 로사네일살롱을 운영하고 있다. 할리는 미용실을 운영하는데, 이는 여성들의 직종과 우정의 관계를 보여주는 독특한 지점이다.

멍게 부케 폴리시에는 친구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짜인 네일 스티커가 아니라 진짜인 네일 폴리시를 받아야 하는 ’, ‘가 쓰다 남은 네일 스티커를 공짜로 얻으려는 창원 할머니’, 그리고 어렵게 찾아간 네일숍에서 만난 매주 매니큐어를 바르는 중년의 남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여자들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곳이 목과 손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에야 많은 미용 시술이 있으니 해결이 되는지 모르겠으나, 목주름과 손주름이 그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고단한지, 얼마나 여유 있게 관리를 하며 사는지를 바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소설 속의 가 애써 스티커가 아니라 진짜 매니큐어를 바르는 이유도 마흔이 다 되어 부케를 받는 신부 친구인 까닭이다. 그러니까 는 괜찮으나 신부 친구의 대표이기도 하니 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창원 할머니는 데이트하는 키가 큰 할아버지를 만날 때 네일 스티커를 붙였다. ‘는 너무 튀어서 잘 안 붙였던 민트색!으로. 씻어도 안 없어지는 손톱 밑의 흙먼지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네일숍에서 만난 중년 남자는 매주 토요일에 네일숍에 와서 매니큐어를 바르고 가고, 일요일에 지운다고 한다. 그러니까 단 하루 자기의 열 개의 아름다운 손톱을 보기 위해서.

제각각 자기 손톱을 꾸미는 이유는 다른 것이다. 누군가는 나의 진짜를 만나기 위해 하루의 수고를 감수하고, 누군가는 척박한 노동의 흔적을 숨기기 위해, 누군가는 자기가 짝퉁이 아니라는 걸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이유로 네일숍에 갔었다. 네일숍에 가 열 손가락을 내미는 사람들이 다 제각각의 이유로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거기엔 정당한 이유도, 바람직하지 못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다 다른 인간이듯, 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중년의 남자의 손톱에 매니큐어가 올려질 때 중년의 남자가 혼잣말처럼 떠들어댄다. “멍게는 유생일 때 안전하고 먹이가 풍부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정착하는 순간 자기 뇌를 먹어 버린다며 한번 정착하면 평생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 열량 소모가 심한 뇌를 제거해 낭비를 줄인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인간의 뇌에 대해서 말하며 종국에는 이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어떤 생물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건 불가능합니다. 저마다 생존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세상을 인지하죠.”

끝물 봄동을 무쳐 먹는 꽃샘추위의 초봄에서부터 시작된 소설은 순서 없이 꽃이 피고 갑자기 더워진 한복판의 봄날에서 끝이 난다. 딱 이맘때. 지금 이 계절에 딱 알맞은 소설인 셈. 그러니 이 책을 읽고 미용실이든 네일숍이든 새단장을 하러 가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라는 생각. 다 읽고 일상에 변화까지 줄 수 있다면 그 소설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소설일 테고. 그러므로 멍게 부케 폴리시라는 멋진 제목을 지은 이 작가의 이름이 고민실이라고 한 번 더 발음해본다. 팬심을 담아.

 


  고민실의『홈 가드닝 블루』  
  고민실의『홈 가드닝 블루』  

 

from 김이설

 

김이설

2006년 서울신문 신문춘예 단편소설 부문으로 등단.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오늘처럼 고요히누구도 울지 않는 밤』, 경장편 나쁜 피환영선화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연작소설집 잃어버린 이름에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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