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리병이에요.
당신의 해변에 편지가 도착했답니다.
이번엔 어떤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을까요?
같이 한번 읽어 봐요..!

작년 겨울부터 쓰다가 쓰다가 계속 망하는 소설 원고가 있다. 개에 대한 소설이다. 시작할 때는 자신만만했는데 에이포 용지 한 장을 넘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사람이 개에 대해 쓴다는 건, 사람이 사람에 대해 쓴다는 거랑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올해 초에 고속도로에 대해 쓴 소설을 만났다. 그리고 이 소설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리울 것 같다.)
여하튼 나는 이오칠이라는 (아직 첫 책이 발간되지 않았고, 등단 후 삼 년 동안 청탁이 없었던 불운한 무명) 작가의 팬이다. 등단작인 「영원한 세계」에서 말락볼락을 먹어 치우는 장면을 좋아하고, 또 다른 발표작인 「토끼를 사랑해」의 기발한 상상력을 사랑한다. 책이 책과 교미해 책을 낳는 이야기라니! 소설을 읽은 날 밤 나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작가에게 카톡을 보냈었다.
「고속도로 모놀로그」는 말 그대로 고속도로에 대한 소설이다. 우리가 매일 보고 다니는 길이 도로지만, 도로에 대해서 쓴다는 건 책을 열 권이나 출간한 십 년 차 작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사람을 사랑하거나 미워하고 사람과 헤어졌다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는, 사람에 관한 소설들만 주구장창 쓰고 읽어왔기 때문이다. 개에 대한 소설을 내가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이유가 그거다. 우리가 그냥, 소설이 그냥, 이제까지 쭉 그래왔기 때문에.
물론 「고속도로 모놀로그」는 바캉스의 휴양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권태로워하며 뜨겁게 달구어진 고속도로 위에서 대기 중인 인간들의 이야기기도 하다. 하지만 이 인간들의 이야기는 소설이 기존에 써오던 방식으로 쓰이지 않았다. 나는 소설 속에 나오는 인간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상상할 수가 없다. 인물들에게서 아무 개성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름이 없고, 눈, 코, 입이 지워져 있다. 우리가 고속도로 위에서 앞차에 탄 사람들의 얼굴을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것처럼, 이 소설도 그렇다. 등장인물들은 그냥 핸드폰을 보고, 에어컨을 켜놓고 잠들고, 다른 운전자들과 싸우고, 실수로 고라니를 치어 죽인다.
등장인물들에게 제대로 된 얼굴을 만들어주지 않은 이 작가는, 대신에 인간이 보지 못한 밤의 고속도로에 대해서, 로드킬당한 고라니가 부활하는 환상에 대해서 쓴다. 현실에서도, 지면에서도 쫓겨난 이들의 시간을 조망한다. 따뜻한 아스팔트 위를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들의 뒤를 쫒는다.
이 소설은 소설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소설이 이야기하지 않는 층위에서 동물과 식물들, 사물들이 죽어간다는 이야기. 바캉스를 떠나는 인간과 자동차, 이 이동으로 인해 죽음을 맞는 개와 고라니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인류세의 진실에 대해 기만적이지 않다.
조각조각 나누어진 여러 개의 이야기를 무작위로 나열하는 방식은 또 어떤가. 어쩌면 이 조각난 모자이크 소설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계를 닮아있는 것 같다. 차곡차곡 상승하다 절정에 이르고 마침내 하강하는 곡선의 그래프가 이 세계를 담기에 너무 단순하고 지겹고 오래되었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소설이 우리를 뭔가 속이고 있는 것 같다고 의심하는 독자라면 이오칠의 「고속도로 모놀로그」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언뜻 하나의 세계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세계가 어떻게 동시에 공존하는가? 세계와 세계는 서로 어떻게 겹치고, 서로에게서 벗어나는가? 어떻게 만났다가 엇갈리는가?
모든 소설은 그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왜곡하고 있다. 어떤 것은 보여주지만 어떤 것은 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나는 이오칠이 왜곡한 이 세계가 몹시 마음에 든다. 소설 속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어린이들의 이야기가 반갑고, 로드킬당한 고라니가 부활하는 환상이 가슴 아프다. 이오칠은 진작 소설에 등장 했어야 했는데 소설가들이 미루면서 용기를 내지 못했던 여러 존재들을 무대 위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 모놀로그」수록지면: 《Axt 64》2026. 01.
from 최정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