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래서, 왜 쓰냐고요._임수정

김경욱의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를 읽고

2026.09.11 | 조회 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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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리병이에요.

당신의 해변에 편지가 도착했답니다.

  이번엔 어떤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을까요?

  같이 한번 읽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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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작가가 되셨어요?”

 

작가들은 이상하게 이 질문을 좋아한다. 인터뷰를 해도, 북토크를 해도, 술자리에서도 결국은 이 질문은 빠지지 않는다.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어떤 책을 읽고 마음을 먹었는지, 무엇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었는지. 사람들은 작품만큼이나 그 작품이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해한다. 마치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든 결정적인 순간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처럼.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그는 코웃음을 쳤다. 참고로 그는 꽤 시니컬한 사람이다.

너는 맨날천날 그런 걸 좋아하더라.”

맞는 말이다. 그는 내가 깨달음이나 각성같은 표현을 쓸 때마다 면박을 준다.

너는 왜 자꾸 사람이 한순간에 달라진다고 생각하냐?”

할 말이 없다. 나는 플롯을 짤 때도 주인공은 이 시점에 깨닫는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야구 만화라면 마지막 공 하나가 날아오는 순간,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과거와 함께 주인공이 결국 홈런을 날려버리는 장면 같은 것. 나는 이야기에는 그런 순간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친구는 웃기지 말란다.

너는 뭐, ‘! 오늘부터 달라져야겠다!’ 하면 달라지냐?”

언제든 듣고 보면 틀린 말은 안 하는 친구다. 그래서 더 재수 없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김경욱의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를 읽으며 나는 자꾸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사람은 어떤 순간으로 작가가 되는 걸까.

주인공은 시골 집안의 막내아들이다. 손위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자랐고, 누나들은 심심하면 그의 속눈썹 위에 성냥개비를 하나씩 올렸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숨을 참으며 버텼다. 그 장면은 이후의 삶과도 닮아 있다. 그는 늘 자신의 욕망보다 남이 올려놓은 것을 견디는 사람이다.

재수 끝에 서울 명문대에 들어가 압구정동 부잣집 아들 강선재의 과외를 맡게 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강선재가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순간에는 끝내 대답을 삼킨다.

오히려 강선재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아무도 웃지 못할 때 대신 웃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는 시종일관 주인공에게 몰입하며 소설을 읽었다. 주인공은 썸을 타던 여학생의 아버지에게 엉겁결에 꿈이 작가라고 말한 뒤에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 확신이란 강선재 같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은 뒤에도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할 수 없다.

소설에서 가장 큰 사건은 강선재의 가출이다. 주인공은 가출한 선재를 만나 밥을 사주고 기형도의 시집을 건넨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 이후의 시간은 생략되고 작가는 주인공이 가출한 학생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짧게 덧붙인다. 한 사람과의 만남이 어떻게 한 편의 소설이 되는지, 작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그 생략이 좋았다. 작가가 되는 이유는 대개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내게 왜 작가가 되었냐고 물으면 늘 얼버무렸다. “그냥 그렇게 됐어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그 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실도 아니었다. 작가가 된 이유를 말하는 순간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이야기까지 함께 꺼내놓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회피한 것에 가깝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래도록 그 일을 미뤄왔다. 내가 자라온 이야기, 오래 붙잡고 있었던 감정, 굳이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시간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쉬웠지만, 내 이야기를 쓰는 일은 어려웠다. 어쩌면 나는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듣는 일을 미루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말대로 사람은 한순간에 달라지지 않는다. 어느 날 계시를 받는 것처럼 그렇게 작가가 되고 싶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국 이것 아닐까. 버티기만 했던 삶을 이야기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

 

나는 왜 작가가 되었나.

 

아직도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예전처럼 얼버무리지만은 않을 것 같다. 언젠가는 그 이유를 소설로 쓰게 될지도 모르니까.

 

 

김경욱,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문학동네, 2026  
김경욱,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문학동네, 2026  

from 임수정

임수정

전 미디어오늘 기자. 202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밤의 도서관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붙여넣기2023년 노근리 문학상 중단편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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