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메일이 도착했을 때, 회사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PMM이 또 한 장의 배틀카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료의 78%는 영업 담당자에게 30일 안에 닿지 않을 겁니다.
이건 추정이 아니라 2026년 1분기 실제 측정값입니다. PMM이 만든 세일즈 자료 중 30일 안에 영업한테 도달하는 비율의 중앙값은 22%. 런치 덱은 28%, 고객 사례는 41%, 윈-로스 분석은 24%, 원페이저는 18%만 닿습니다. 4장 중 3장이 회사 위키 어딘가에서 그냥 잠듭니다.
여기서 더 잔인한 통계 하나. 배틀카드를 쓰는 기업의 71%가 승률이 올랐다고 답했고, 그 중 93%는 향상폭이 20%를 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영업 담당자의 26%만 배틀카드를 봅니다. 자료가 도달만 하면 효과는 분명한데, 도달이 안 되는 거죠.
오늘 뉴스레터에서 저는 이 데이터를 다른 각도로 보고 싶습니다. 문제는 PMM이 자료를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드는 일에서 멈춘다는 점이라고요.
영업이 PMM 자료를 안 쓰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에요. 영업이 미팅 30분 앞두고 검색하는 건 "이 경쟁사 대비 우리 강점이 뭔가"가 아니라 "이 고객사가 지금 쓰는 솔루션의 약점이 뭔가"입니다. 그런데 PMM이 만드는 배틀카드 90%는 우리 제품 강점 나열로 시작하죠. 자기 입에서 나오면 자랑이지만, 고객 입에서 나오면 신뢰가 되는데, 자료는 늘 전자에 머뭅니다.
런치 덱이 28%밖에 도달 안 되는 이유도 같습니다. 출시 한 달 전 만들어진 90페이지 덱은, 한 달 뒤 영업 미팅에서 쓰이는 5장의 슬라이드와 너무 멉니다. PMM은 "이게 우리가 출시한 이유야"를 설명하고 싶고, 영업은 "이게 너희 회사가 다음 분기에 돈 벌어야 하는 이유야"를 설명하고 싶죠. 출발점이 다른 겁니다.
제가 PMM 인터뷰를 할 때 자주 묻는 질문이 있어요. "당신이 만든 자료 중 영업이 가장 많이 쓴 게 뭐였나요? 그걸 어떻게 측정했나요?" 이 질문에 데이터로 답하는 PMM은 다섯 명 중 한 명도 안 됩니다. 대부분 "음, 슬랙에서 좋아요가 많이 달렸어요" 수준이에요. 측정 안 되는 일은 개선도 안 됩니다.
도달률 60%를 넘기는 PMM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자료를 만들기 전에 "사용 시나리오"를 먼저 적어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이 배틀카드는 "분기 매출 100억 이상, 데이터 팀 5명 이상인 회사의 데이터 리더가 경쟁사 X와 막판 비교 단계에서, 우리 영업 담당이 30분 영상 미팅 중간에 화면 공유로 띄울 1장짜리 자료다." 이 한 줄이 있는 자료와 없는 자료의 도달률 차이가 3배 이상 납니다.
제가 본 한 PMM은 매주 영업 통화 녹취 10건을 듣는 일을 자기 일정에 고정으로 박아뒀어요. Gong이나 Chorus 같은 툴에서 영업 미팅의 어느 구간에서 어떤 키워드가 막히는지 봅니다. 그 사람이 만드는 자료는 거의 100% 영업이 써요. 왜냐면 영업이 어제 미팅에서 답을 못한 그 질문, 정확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고 가기 때문이죠. 자료가 "필요해진 뒤"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필요해지기 전"에 도착하는 겁니다.
여기에 AI가 들어왔습니다. 2026년 1분기 기준 출시 카피 첫 드래프트의 73%가 AI 도구로 생성됩니다. 배틀카드 갱신도 38%가 AI 기반이고요. PMM이 일주일 걸려 쓰던 첫 드래프트가 두 시간으로 줄었습니다. Tier-1 출시 빈도가 2023년 대비 30% 늘어난 게 우연이 아니죠.
문제는 이 압축된 시간을 PMM이 어디다 쓰느냐입니다. 두 가지 길이 있어요.
첫 번째 길은 "AI로 더 많이 만든다"는 PMM. 일주일에 배틀카드 1개 쓰던 사람이 5개를 씁니다. 결과는 비참합니다. 영업이 안 보는 자료가 5배가 됐을 뿐, 도달률 22%는 그대로니까요.
두 번째 길은 "AI로 줄어든 시간을 영업이랑 같이 쓰는 데 쓴다"는 PMM. 이 사람들은 영업이 실제 미팅에서 뭘 쓰는지, 어떤 카드가 어떤 단계에서 클로징을 만드는지 데이터로 봅니다. 같은 회사 안에서 이 그룹 PMM의 자료 도달률은 60%를 넘습니다.
저는 AI가 PMM 직무를 두 갈래로 쪼개고 있다고 봅니다. 콘텐츠 생산 노동자로 남는 PMM과, 영업 전략에 직접 개입하는 PMM. 첫 번째 그룹의 일자리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요.
여기서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한국 PMM 시장의 특수한 함정입니다. 한국 회사에서 PMM이라는 직무는 대부분 "마케팅 콘텐츠 외주를 내부에서 처리하는 사람"으로 정의돼요. 외부 에이전시한테 맡기면 비싸니까 사내에 데려다 놓는 일자리. 이 정의로 채용되면 PMM은 절대 GTM 전략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직무 정의 자체가 "콘텐츠 생산자"이기 때문이죠.
이 함정을 벗어나려면 PMM 자신이 첫 6개월 안에 ICP 정의권을 요구하거나, 영업 회의 정기 참석권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걸 안 주는 회사는 PMM이 성장할 수 없는 회사고요.
한국 B2B SaaS 시장은 아직 이 전환의 초기 단계에 있어요. 글로벌에서는 PMM이라는 직함이 줄고 "솔루션 마케터(Solutions Marketing)"로 바뀌고 있는데, 이건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닙니다. 제품 중심에서 고객 문제 중심으로 사고 단위가 바뀌는 일이에요. 옛날 PMM은 "우리 제품의 새 기능 5개를 어떻게 알릴까"를 고민했다면, 솔루션 마케터는 "이 고객 페르소나가 분기 안에 풀어야 하는 문제 3개에, 우리 제품 기능의 어떤 조합을 매칭할까"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후자의 자료가 영업한테 닿는 비율이 훨씬 높아요.
여기서 또 하나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는데, 전통 PMM(SaaS 애플리케이션, 일반 사용자 대상)과 기술 PMM(인프라, 개발자 도구, 보안 플랫폼) 사이의 보상 격차가 30~45%까지 벌어졌습니다. 이유는 명확해요. 기술 PMM은 제품을 직접 데모할 수 있고, 아키텍처를 설명할 수 있고, 엔지니어링 구매자와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있거든요. AI가 일반 카피 73%를 자동화한 시대에 "기술적 깊이"는 자동화하기 가장 어려운 자산이고, 회사들은 그걸 비싸게 삽니다.
채용 시장의 신호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2026년 PMM 채용 공고에서 사라지는 키워드는 "콘텐츠 캘린더 운영", "블로그 글쓰기 능력", "런치 캠페인 실행". 늘어나는 키워드는 "윈-로스 분석 경험", "ICP 정의 및 검증 경험", "영업팀과의 협업으로 파이프라인 영향력 입증"입니다.
면접 질문도 변했어요.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 봤나"가 아니라 "어떤 ICP 결정을 바꿔봤나, 그 결정이 회사 매출에 어떤 영향을 줬나"를 묻습니다. 가장 강한 시그널은 "전 직장에서 영업팀의 누구와 가장 자주 만났나"라는 질문이에요. 답이 "영업 VP"인 PMM은 합격하고, "콘텐츠 매니저"인 PMM은 떨어집니다.
제가 한국 PMM이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가는 가장 빠른 길로 생각하는 건, 글로벌 회사의 PMM 채용 공고를 정기적으로 읽는 거예요. JD에 적힌 책임 범위, KPI, 평가 기준이 한국 회사 PMM 공고와 어떻게 다른지 보면 직무 정의 자체의 격차가 눈에 보입니다. 그 격차를 본인의 다음 협상 카드로 써야 해요. "글로벌 회사 PMM은 ICP를 정의하는 권한이 있는데 우리 회사는 왜 없냐"고 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질문을 못하는 PMM은 평생 콘텐츠 외주 처리자로 남게 됩니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게 영업 현장 데이터 접근권이에요. PMM이 영업 통화 녹취, 윈-로스 인터뷰, CRM 파이프라인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보지 못한다면, 만드는 자료는 추측에 기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추측에 기반한 자료가 도달률 22%의 운명을 만드는 거고요. 제 경험으로는 PMM의 첫 분기 가장 중요한 협상은 "콘텐츠 예산 얼마"가 아니라 "이 데이터에 접근할 권한"입니다. 이게 안 되면 PMM이 뭘 만들어도 잠수함이에요.
PMM은 회사 안에서 가장 외로운 직무라고 생각합니다. 영업은 매출 숫자로 평가받고, 제품팀은 기능 출시로 평가받고, 마케팅은 리드 수로 평가받죠. PMM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평가받지만, 자기만의 명확한 KPI를 가진 회사는 드뭅니다. 그래서 많은 PMM이 "콘텐츠 생산량"을 자기 성과로 포장하게 돼요. 안 본 자료 5개 만들었다는 보고가 1개 본 자료 만들었다는 보고보다 회사에서 더 잘 먹히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의 룰을 PMM이 직접 바꿔야 합니다. "내 자료가 첨부된 영업 이메일 비율", "내 메시지가 영업 통화에서 언급된 빈도", "내가 정의한 ICP의 분기 파이프라인 기여도". 이런 숫자를 자기가 먼저 정의하고, 분기마다 회사에 보고하는 PMM만이 "콘텐츠 생산자"라는 함정을 벗어납니다.
덧붙여서, 저는 PMM이 자기 시간의 최소 30%를 영업 현장에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기에 10건 이상의 실제 고객 미팅에 참관하거나, 영업 통화 녹취를 듣거나, 영업 1:1 미팅에 들어가는 시간. 이 시간이 없는 PMM은 책상에서 추측으로 자료를 만들고, 그 자료는 회사 위키에 묻힙니다. 영업이 자료를 안 보는 게 아니라, PMM이 영업이 뭘 필요로 하는지 모르는 거예요.
신제품의 70~90%가 실패합니다. 그 중 마케팅 관련 실패가 69%, ICP 잘못 잡아 실패가 42%, 마케팅 전략 부재 22%, 실행 부실 14%. 이게 다 PMM의 일이에요. 그런데 한국 대부분의 회사는 PMM에게 이 결정권을 안 줍니다. 권한 없이 책임만 지는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자료가 영업한테 닿을 리 없죠. 이 구조를 PMM이 협상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도달률 22%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AI가 첫 드래프트 73%를 대신 써주는 지금이, PMM이 콘텐츠 생산자에서 전략가로 옮겨갈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제가 가장 강하게 주장한 부분, 한국 PMM이 글로벌 수준으로 가는 유일한 길과, 기술 PMM이 왜 30~45% 더 받는지에 대한 분석, 그리고 도달률 60% 넘기는 PMM들의 구체적 일하는 방식은 원문에 더 자세히 풀어뒀습니다. 자료가 영업한테 안 닿는 진짜 이유를 한 단계 더 파고 싶다면, 원문에서 확인하세요. 결론에서 게임의 규칙이 한 번 더 뒤집힙니다.
원문 보기: https://medium.com/p/a26da548b9ec?postPublishedType=init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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