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 런칭 카피 초안을 AI로 쓰는 제품 마케터는 22%였습니다. 2026년 1분기엔 73%가 됐죠. 1년 사이 51포인트가 뛰었습니다.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거의 붕괴에 가까운 속도입니다.
상식대로라면 이쯤에서 PMM이라는 직무는 위기를 맞아야 정상입니다. 핵심 업무를 기계가 통째로 가져갔으니까요. 보통 어떤 직무의 주요 산출물이 자동화되면, 그 직무의 인원과 예산이 먼저 깎이는 게 시장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데이터는 정반대를 말합니다. PMM의 보고 라인은 더 높아졌고, 경영진이 보는 지표는 '콘텐츠 양'에서 '매출 기여'로 옮겨갔습니다.
저는 이게 모순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AI가 삼킨 건 '생산'이지 '판단'이 아니거든요. 카피를 누가 쓰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카테고리에서 싸울지를 정하는 사람, 그리고 만든 자료를 영업이 실제로 쓰게 만드는 사람만 살아남는 구조로 바뀐 겁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볼게요. 저는 PMM이라는 직무를 꽤 오래 지켜봤는데, 이 자리는 늘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에 시달렸습니다. 영업도 아니고, 콘텐츠 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프로덕트 매니저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이었죠. 그런데 2026년 들어 이 애매함이 갑자기 무기가 됐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AI가 '명확한 일'들을 다 가져가 버렸거든요. 초안을 잡고, FAQ를 뽑고, 경쟁사 동향을 정리하는 일. 누가 봐도 결과물이 분명한 작업들이 먼저 자동화됐습니다. 그러자 남은 건 결과물이 모호하고, 책임은 무겁고, 잘하면 회사를 살리는 일뿐이었습니다. 바로 PMM이 원래 잘하던, 그러나 그동안 증명하기 어려웠던 영역이죠.
가장 선명한 증거는 포지셔닝 A/B 테스트 결과입니다.
랜딩 페이지 맨 위 한 줄, 그러니까 히어로 카피를 바꾸는 일. AI가 제일 잘하는 영역이죠. 그런데 이 테스트의 승률은 31%, 전환율 리프트는 +5pp에 그칩니다. 반면 "우리 제품을 어떤 카테고리에 놓을 것인가"를 바꾸는 카테고리 프레이밍 테스트는 승률 54%, 리프트가 +19pp입니다. 거의 네 배 차이죠.
테스트 항목을 위에서 아래로 읽어보면 패턴이 또렷합니다. 위로 갈수록 '전략'이고 아래로 갈수록 '표현'입니다. 그리고 위로 갈수록 효과가 큽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구조예요. AI는 주어진 카테고리 안에서 가장 매끄러운 문장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우리가 CRM이 아니라 고객 데이터 플랫폼이라고 말해야 하나"라는 질문엔 답하지 못합니다. 이건 시장 구조와 경쟁 지형, 고객의 머릿속 분류 체계를 읽어야 나오는 판단이니까요.
제가 본 사례 하나를 들려드릴게요. 한 B2B SaaS 팀은 자사 제품을 오래도록 '프로젝트 관리 도구'라고 불렀습니다. 시장은 포화였고 거대 경쟁사 셋이 그 단어를 점령하고 있었죠. 카피를 아무리 다듬어도 전환은 제자리였습니다. 그러다 이 팀은 카테고리 자체를 바꿨습니다. '프로젝트 관리'가 아니라 '실행 운영체제'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죠. 제품은 한 줄도 안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고객의 비교 대상이 바뀌었고, 영업 대화의 출발점이 바뀌었습니다.
이건 어떤 LLM도 알아서 해주지 못합니다. 시장을 읽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단어 하나에 회사의 운명을 거는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걸 '값비싼 판단'이라고 부릅니다. 틀리면 분기 하나를 날리고, 맞으면 시장을 다시 그립니다. AI는 값싼 판단, "이 문장을 더 짧게 쓸까"는 무한히 잘하지만, 값비싼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책임과 직관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시장은 늘 값비싼 판단에 더 큰 보상을 줍니다. 위의 +19pp와 +5pp의 차이가 정확히 그 보상의 크기예요.
그런데 판단의 무대는 카테고리만이 아닙니다. PMM 업계에서 가장 불편한 숫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런칭 후 30일 안에 영업 담당자에게 실제로 도달하는 콘텐츠는 중앙값 기준 22%입니다. 만든 자료 다섯 개 중 네 개는 영업의 화면에 뜨지도 않는다는 뜻이죠. 배틀카드는 67%가 쓰이는데, 공들여 만든 세일즈 시트는 18%만 쓰입니다. 이 차이의 본질은 품질이 아니라 '맥락'입니다. 배틀카드는 영업의 실제 상황에 딱 꽂히고, 원페이저는 "언젠가 쓸 수도 있는" 자료라서 외면받습니다.
저는 이 22%라는 벽이 AI 시대 PMM의 진짜 기회라고 봅니다. AI는 자료를 무한히 찍어낼 수 있습니다. 런칭 덱, FAQ, 원페이저를 하루에 스무 개씩 만들 수 있죠. 그런데 만드는 양이 늘수록 영업 사용률은 오히려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쓸모없는 자료가 쌓이면 영업은 자료 더미 전체를 불신하기 시작하니까요.
그러니까 생산이 공짜가 된 세계에서 진짜 희소해지는 건 '편집'과 '도달'입니다. 무엇을 안 만들지 정하고, 만든 걸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영업의 손에 쥐여주는 일이죠. 이건 프롬프트 몇 줄로는 안 됩니다. 영업 조직의 워크플로를 알아야 하고, 누가 어떤 딜에서 무엇 때문에 막혀 있는지를 알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철저히 사람의 영역이고, 발로 뛰어야 하는 일입니다.
한 가지 실천적인 제안을 드리자면, 이번 분기엔 자료를 하나 더 만들기 전에 지난 분기에 만든 자료의 '열람률'부터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영업이 그 자료를 실제로 열었는지, 딜에 첨부했는지, 고객 미팅에서 띄웠는지. 이 숫자를 추적하지 않는 팀은 어둠 속으로 자료를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AI 시대엔 그 어둠이 점점 더 깊어집니다. 던질 수 있는 자료의 양이 폭증하니까요. 채택률이라는 손전등 하나가, 470종을 찍어내는 능력보다 훨씬 값집니다.
그래서 저는 PMM의 핵심 지표가 '제작량'에서 '채택률'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분기 말 보고서에 "자료 47종 제작"이라고 적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AI가 있으면 470종도 만들거든요.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내가 만든 것 중 영업이 실제로 들고 나간 게 몇 개냐"입니다. 22%라는 벽 안에 들어간 자료만이 매출에 닿고, 나머지는 만드는 데 든 시간만큼 회사의 손실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그래도 AI가 빠르게 많이 만들어주면 좋은 거 아니냐"고 물으실 겁니다. 맞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그 속도로 아낀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가 전부예요. 초안 쓰는 시간이 사라진 만큼, PMM은 "이 메시지의 진짜 타깃이 누구인가"를 고민할 여유를 얻습니다. 문제는 그 여유를 다시 자료 470종 찍어내는 데 쓰느냐, 아니면 카테고리와 타깃을 다듬는 데 쓰느냐죠. 저는 바로 이 선택이 2026년 PMM의 등급을 가른다고 봅니다. 같은 도구를 쥐고도 누구는 생산량만 늘리고, 누구는 판단의 밀도를 높입니다. 1년 뒤 두 사람의 몸값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겁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AI는 PMM에게서 카피와 FAQ, 초안 같은 '생산'을 가져갔습니다. 그 대가로 카테고리 판단과 영업 도달, 런칭 리듬이라는 '판단'의 가치를 드러냈죠. 저는 이 교환이 PMM에게 손해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이 직무가 늘 주장해온 "우리는 전략가다"라는 말을, 데이터가 처음으로 증명해준 사건입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난 분기에 카피 문구를 다듬는 데 시간을 더 썼나요, 아니면 "우리가 어떤 카테고리에서 싸워야 하는가"를 정하는 데 더 썼나요. 만든 자료가 영업의 22% 안에 들었는지 한 번이라도 확인해봤나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AI는 당신의 경쟁자가 아니라 가장 빠른 어시스턴트입니다. 답하지 못한다면, 73%라는 숫자는 곧 당신을 향한 경고가 됩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그러니까 런칭 빈도가 두 배로 뛰는데 작문 팀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과, PMM이 '이벤트 기획자'에서 '리듬 설계자'로 바뀌는 진짜 이유는 원문 마지막 장에서 뒤집힙니다. 어느 쪽 미래에 설지는, 지금 당신이 무엇에 시간을 쓰는지가 결정합니다.
원문 보기: https://medium.com/p/3b417be8d176?postPublishedType=initial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