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51. 인생을 담은 요리🥘

가스트로노미 필름

구독자님은 혹시 가스트로노미 필름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레터를 준비하며 알게 된 분야인데 요리 영화 중에서도 ‘미식의 관능과 아름다움을 세련된 스타일로 연출한 영화’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유행하던 스타일로 보기만 해도 도파민이 솟아나는 영화와는 정반대의 결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슴슴하지만 먹다 보면 그 슴슴함에 스며들게 만드는 평양냉면 같은 영화랄까요.🤔 가스트로노미 필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바베트의 만찬>과 최근 개봉작이기도 했던 <프렌치 수프> 2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 가브리엘 악셀, 1987년 개봉 (국내개봉 1996년)

<바베트의 만찬>은 프랑스혁명을 피해 덴마크로 건너온 바베트가 자신을 거두어 준 자매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복권에 당첨된 금액으로 만찬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마을의 중심을 잡아주던 목사의 죽음 이후 서로 날 선 태도로 대하던 사람들이 ‘바베트의 만찬’을 통해 잊고 있던 유대감을 되찾는 과정을 따뜻하게 묘사했는데요. 오래전 영화이기도 하고 장르 특성상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요리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꼭 언급하는 작품으로 요리가 가진 힘과 울림을 설득력 있게 그렸습니다.

영화에는 서양 3대 진미로 불리는 캐비어, 푸아그라, 트러플을 비롯해 거북이, 메추리 등 최고급으로 분류되는 재료들이 모두 등장하는데요. 당시에는 최고급 식재료로 어떤 요리를 만드는지는 물론 지금은 많이 간소화된 ‘전통 프랑스 정찬 코스’ 역시 엿볼 수 있습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정제되어 있어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작품으로 기대이상으로 훨씬 즐겁게 감상하실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덴마크의 바닷가 작은 마을에는 신앙과 봉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두 자매 마티나와 필리파가 있었는데요. 젊은 날의 추억은 마음에 간직한 채 세월이 흘러 노년에 접어든 어느 날 바베트라는 여인이 필리파의 연인이었던 파판의 편지를 들고 마을에 찾아옵니다. 그리고 바베트는 마티나와 필리파 자매의 새로운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가게 되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바베트는 자신이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는 그동안 자신에게 온정을 베푼 자매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최고의 만찬을 준비해 대접하기로 합니다.

영화에서 12명의 만찬의 준비하는데 쓰인 금액은 바베트가 당첨된 복권 전액인 1만 프랑이었습니다. 바베트가 복권에 당첨되어 마을이 떠날 것이라 생각했던 자매는 바베트가 만찬을 준비하는데 전 재산을 사용했다는 것을 듣고 걱정하는데요. 이에 바베트는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금전적 탐욕보다 자신이 가진 재능(요리)으로 타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모든 재산과 열정을 바친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이를 보며 저는 ‘요리’도 혼을 담아낼 수 있는 하나의 예술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불어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분야만이 아닌 ‘요리’에도 장인정신이 깃든 예술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타적인 삶’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합니다.

프렌치 수프(The Taste of Things), 트란 안 홍, 2023년 개봉

<프렌치 수프>는 마르쉘 뤼프의 1924년 소설 『도댕 부팽의 삶과 열정』에서 모티브를 얻어 원작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서사를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요리에 자신의 열정, 삶, 그리고 사랑을 담아낸 도댕 부팽과 그의 동반자 외제니의 이야기를 그렸는데요. 영화는 제7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도댕 부팽’은 미식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인물로 원작가인 마르셀 뤼프는 캐릭터를 만들 때 프랑스의 저명한 미식저술가 브리야 사바랭(Brillat-Savarin)을 참조했다고 하는데요.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Dis-moi ce que tu manges, je te dirai ce que tu es)”라는 명언(?)을 남긴 인물로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거예요.🧐 영화에서 도댕 역은 브누아 마지멜이 그의 동반자 외제니 역은 줄리엣 비노쉬가 맡았는데요. 두 사람은 실제로 극 중 주인공들처럼 20년 넘게 동거하다 헤어졌는데 이 작품으로 20년 만에 재회했다고 합니다.

영화는 요리 장면이 모든 분량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요리 신들이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식욕을 자극하는데요. 등장하는 모든 요리는 요리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피에르 가니에르’가 감수를 맡았는데 감독이 그의 식당을 방문했다 음식 맛에 반해 영화의 참여를 부탁했다고 해요. 이외에도 미식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담겨있는 만큼 단순히 요리를 넘어 미식 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20년간 함께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온 외제니와 도댕. 두 사람의 요리에는 서로에 대한 배려, 존경,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인생의 사계절 중 가장 풍성하게 무르익은 가을에 접어든 때에 도댕은 진심을 담아 외제니에게 청혼하지만 한여름의 자유를 사랑하는 외제는 도댕의 청혼을 거절하고, 도댕은 다시 한번 온 마음을 다해 외제니 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프렌치 수프>였지만 프랑스어 제목은 ‘도댕 부팽의 열정(La Passion de Dodin Bouffant)’인데요. 영화를 보고 나면 프랑스어 제목의 의미를 2만 프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요리의 본질을 넘어 한 사람의 삶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원작 소설의 작가가 캐릭터 구성에 참고한 브리야 사바랭이 한 말(“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처럼 도댕이 요리하고 먹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도댕 부팽이 누구인지 이보다 더 명확히 알려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요.😆

밭에서 자란 신선한 채소부터 물 좋은 생선, 선홍빛 육류까지 각종 식재료들이 그와 외제니의 손길을 거쳐 어떻게 하나의 요리로 다시 태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는 단순히 위장에 음식물을 밀어 넣는 것에 불과한 먹방과 격이 다른 먹방을 만들어 내는데요. 여기에 유려한 카메라 워킹, 눈과 귀를 사로잡는 쿠킹 사운드는 마치 관객들이 함께 요리를 하며 맛과 향을 음미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도댕과 외제니는 “하나의 맛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문화와 기억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데요. 영화 <프렌치 수프>는 도댕과 외제니 두 사람의 삶과 관계를 통해 열정을 다해 요리하고 사람들과 나누어 추억을 만듦으로써 맛을 완성하는 것이 요리의 본질이라 말합니다.

Epilogue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Delicieux)>, 에릭 베스나드, 2021년 개봉>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사작>은 요리가 귀족들의 위엄을 뽐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18세기 프랑스, 귀족들이 정한 메뉴만을 제공하는 데 염증을 느낀 요리사가 시골로 내려가 자신을 찾아온 견습생과 함께 주막을 열고 잊고 있던 요리에 대한 열정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요리사는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요리하고, 누구나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식사의 방’은 지금의 레스토랑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테이블마다 각자의 속도대로 음식을 음미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서 영화를 통해 지금의 미식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요리를 매개로 백성들의 생활상과 귀족들의 허영을 대비시켜 보여주며 이야기 속에 프랑스 시민혁명의 흐름도 함께 담아냈는데요. 예쁜 요리책을 보는 것 같은 영상미와 식욕을 자극하는 18세기 프랑스 요리 역시 돋보이는 작품으로, 함께 보기 좋은 콘텐츠로 추천합니다!

🔖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자료 출처 표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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