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27. 짧아서 더 인상적인 픽사의 단편 영화들

짧아서 더 인상적인 픽사의 단편 영화들

작년  이맘때도 픽사 장편 영화를 소개 했었는데요. 그때도 언급했지만, 디즈니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잘 만든다면 픽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받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 아이들만 보는 장르라는 편견을 부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픽사가 선보이는 기발한 캐릭터와 사회적 통념을 깨부수는 주제와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신선함과 함께 때로는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픽사 영화 팬이라면 픽사의 시작이 제작사가 아니라는 점도 이미 알고 계실 텐데요. 원래는 그래픽 작업이 가능한 컴퓨터를 개발하는 독자적인 기업에서 출발했고, 본인들이 개발한 그래픽 기술을 선보이고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픽사의 마스코트로 불리는 ‘룩소’를 주인공으로 한 <룩소 주니어>가 아카데미에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꾸준히 인상 깊은 단편 영화들을 제작하면서 지금의 픽사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픽사의 근간이 단편 영화인 만큼, 극장에서 개봉되는 작품인 ‘Theatrical Shorts’를 비롯하여 Home Entertainment 용으로 제작되는 단편과 장편 영화의 캐릭터를 활용한 프리퀄이나 시퀄 형태의 단편 (‘Cars Toons’, ‘Toy Story Toons’)을 제작하는 등 단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재능 있는 애니메이터를 발굴하고, 기존의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접근법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인 ‘The Spark Shorts’도 운영하고 있어요. 픽사가 단편 영화를 개봉하는 방식도 굉장히 독특한데요. 개봉하는 장편 영화가 상영되기 전 오프닝으로 단편 영화를 선보이고 있으며 이렇게 개봉된 영화들이 모두 ‘Theatrical Shorts’로 분류되는 작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개봉 방식은 두 번째 장편이었던 <벅스 라이프>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어요.

룩소 주니어 (Luxo Jr.), 존 라세터, 1986년 개봉

<룩소 주니어>는 픽사의 마스코트인 룩소에 관한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는데요. 이는 아카데미에 처음으로 지명된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요. 파파 룩소가 룩소 주니어가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보여주는 것이 전부지만, 짧은 시간 동안 아이와 놀아주는 부모님의 모습부터 가지고 놀던 공이 터져 좌절했다 더 큰 공을 발견하고 신이 난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까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사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데요. 픽사가 가장 잘하는 의인화한 사물에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더하는 방식을 짧은 시간 동안 인상적으로 보여준 작품입니다. 존 라세터 감독은 주인공 캐릭터를 고민하던 중 책상 가장 가까이에 있던 램프를 보고 의인화하여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 이후로 사물의 의인화는 픽사의 가장 큰 장기가 되었다는 썰이…

틴 토이 (Tin Toy), 존 라세터, 1988년 개봉

<틴 토이>는 픽사의 역작으로 꼽히는 <토이 스토리>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해당 단편의 속편을 만들려던 계획이 장편 제작으로 바뀌면서 탄생한 영화가 <토이 스토리> 거든요. 전작인 <룩소 주니어>에 이어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수상까지 하면서 <틴 토이>는 아카데미 사상 첫 CG 애니메이션 수상작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역시나 ‘픽사가 픽사했다’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의인화된 사물에서 설렘, 두려움, 놀라움, 당황, 망설임, 결단력, 토라짐 등의 다양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다채로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의인화된 장난감이라는 것에 한 번, 이를 ‘아이와 장난감’이라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픽사의 능력에 또 한 번 놀라게 되는데요. 문득, 어린 날 나의 장난감들도 <틴 토이> 속 장난감 병정과 같은 감정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게리의 게임 (Geri's Game), 잰 핑카바, 1997년 개봉

<게리의 게임>은 혼자서 체스하는 노인의 이야기를 묘사한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아카데미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22회 프랑스 안시 페스티벌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했는데요. 주인공인 게리는 <토이 스토리 2>에서 우디의 신발에 쓰인 ‘앤디’라는 글자를 지워준 할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픽사 단편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주인공인 작품으로 할아버지 혼자서 체스를 잘하는 쪽과 못하는 쪽을 모두 연기하며 즐거움, 난처함, 조롱, 통쾌함 등의 감정을 대사 한 마디 없이 표정과 몸짓으로 모두 전달하는데요. 인물과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기술력까지 고루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여기에 위트와 유머까지 담겨있어 발행인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픽사의 단편이기도 합니다.😉

낮과 밤 (Day & Night), 테디 뉴턴, 2010년 개봉

<낮과 밤>은 픽사의 단편 중 가장 철학적인 영화로 주저 없이 선택할 작품으로 낮과 밤을 대표하는 두 캐릭터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습니다. 픽사의 10번째 단편으로 <토이 스토리 3>의 오프닝으로 공개되었고,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도 노미네이트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낮과 밤>을 보면서 ‘과연 픽사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을까’ 생각하게 됐는데요. 영화는 낮과 밤이 서로에게 품은 경계심이 조금씩 호기심으로 바뀌고 끝내 화합을 이루는 과정을 단편적인 상징을 통해 매끄럽게 풀어냈습니다. 특히 화합의 순간을 어깨동무하고 서로의 옆구리를 맞댄 낮과 밤이 일출과 일몰을 맞이하는 것으로 묘사한 장면에서는 탄성을 내지르게 되더라고요. (감히 이야기하자면 픽사에 결코 한계란 없는 걸로…) 감독은 미국의 자기계발 작가로 유명한 웨인 다이어의 라디오를 듣고 모티브를 얻었다고 합니다.

파이퍼 (Piper), 앨런 발리라로, 2016년 개봉

<파이퍼>는 아기 도요새가 엄마의 도움 없이 먹이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린 작품으로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지금까지의 픽사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실사 느낌이 많이 나는데요. 그 때문인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도요새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해요. 작디작은 아기 도요새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어엿한 하나의 개체로 성장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담았습니다. 감독은 실제로 해변에서 도요새가 파도를 보고 반응하는 모습을 보고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바오(BAO), 도미 시, 2018년 개봉

마지막 추천작은 <바오> 입니다. <인크레더블 2> 오프닝에 공개된 작품으로 역시나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는데요. 감독이 중국계 캐나다 여성으로 픽사 최초로 여성 감독이 만든 오리지널 단편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자녀가 독립한 후 부모가 겪게 되는 슬픔, 외로움, 상실감을 나타내는 ‘빈 둥지 증후군’을 다루고 있는데요. 애지중지 키우던 아들이 자라 집을 떠나자,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상실감을 겪는 중년 여성이 식사 중에 먹던 만두에 갑자기 눈,코,입이 생기면서 어린아이처럼 움직이는 바오로 변하자 자식처럼 생각하고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크게는 부모 자식 간의 유대감을 다루고 있지만, 작품 전반에 아시아계 문화와 정서가 짙게 깔려 있어 작품의 호불호가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었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서구 사회가 아시아보다 자녀들을 좀 더 독립적인 개체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인상 깊게 봤는데요. 특히 아시아 문화와 정서를 픽사만의 창의력으로 풀어내는 방식에 감탄하게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Epilogue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은5-8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데요. 오직 픽사 만이 할 수 있는, 픽사의 장기인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픽사의 단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픽사를 있게 한 근간이 단편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고 있기에 팬으로서 픽사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이 한층 더 깊어질 수밖에 없네요.😆

소개한 6편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게리의 게임>을 골랐는데요. 발행인이 처음으로 본 픽사의 단편이자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작품입니다. 게리 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진정한 혼자 놀기의 달인으로 보이는데요. 그 모습이 애처롭기보다 오히려 나도 게리 할아버지 즈음의 나이가 되었을 때 저렇게 유쾌하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고 난 뒤로 해외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공원을 산책하는 작은 습관도 생겼는데요. 게리 할아버지처럼 체스나 카드 게임을 하는 할머님, 할아버님을 보면 자연스레 <게리의 게임>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져 영화도 여행도 조금 더 특별해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칼의 데이트>, 밥 피터슨, 2023년 개봉

<칼의 데이트>는 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엘리멘탈>의 오프닝으로 공개되었는데요. 픽사의 장편 중 많은 이가 인생작으로 꼽는 <업>의 칼 할아버지와 그의 반려견이 된 더그가 주인공입니다. 엘리와의 사별 후 마지못해 여사친과의 데이트에 동의한 칼이 요즘에는 어떻게 데이트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그의 도움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더욱 반가울 작품일 것 같은데요. 가장 최근에 개봉한 단편으로 앞서 소개한 다른 작품들과 함께 보기 좋은 작품으로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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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 자료 출처 표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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