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54. 픽사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Part. 2)

(메일함에서 1편을 놓친 분들은 아카이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픽사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씨네아카이브를 초창기부터 구독하셨다면 픽사를 향한 발행인의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짐작하셨을 것 같은데요.😅 픽사 작품에 애정을 쏟는 이유는 동심을 간직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픽사의 이야기 속에는 어릴 적 한 번쯤 해봤을 상상력이 깃들어 있고, 아이들의 언어로 어른들의 동화를 그리며 건네는 메시지 속에는 위로와 응원이 담겨있는 느낌이거든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전문 집단답게 픽사가 선보인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아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소개했던 영화가 ‘위로와 응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상상력’에 초점을 맞춰 봤습니다. “맞아! 나도 어릴 때 저런 상상해 봤는데!” 싶은 작품들로요. (물론, 위로와 응원 역시 담겨 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피트 닥터, 2014년 개봉

<인사이드 아웃>은 이전 레터에서 소개했던 <업>과 <소울>을 연출한 피트 닥터 감독의 작품입니다. 11살 소녀 라일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주제로 추상적인 개념인 기쁨, 슬픔, 분노, 혐오,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의 모험담을 그렸는데요. 물고기, 장난감, 곤충의 세계를 상상에서 현실로 구현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인 추상적인 영역을 이미지화했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던 작품입니다.

영화는 감독이 어느 날 자신의 딸을 보며 “이 아이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한 번쯤은 해보는 생각이지만, 생각을 구체화하고 이미지로 구현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이 놀라운데요. 어떤 장르이던 예술은 나의 생각을 구체화시켜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가에 따라 예술가 혹은 예술을 음미하는 독자와 관객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에는 5가지의 감정이 등장하지만 감독이 처음에 구현하고 싶었던 감정은 26가지였다고 해요. 심리학자와 교수들을 만나 의논을 거치면서 26가지에서 10가지,  다시 5가지로 간추려 기쁨이, 슬픔이, 까칠이, 소심이, 버럭이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각 감정들은 특성에 따라 벽돌, 신경뉴런, 별, 브로콜리, 물방울 등을 본떠 이미지를 완성시켰다고 해요. 이미지로 구현된 감정도 놀랍지만 기억이 하나의 구슬로 탄생해 차곡차곡 모여 인격체를 형성하는 섬을 이루는 모습도 인상적인데요. ‘기억저장소’로 불리는 인격섬은 사람의 뇌와 닮은 형태로 구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 미네소타 주의 하키 소녀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 본부에는 기쁨이, 슬픔이, 까칠이, 소심이, 버럭이 다섯 감정들이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일리네 가족은 미네소타를 떠나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고, 다섯 가지 감정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라일리를 위해 어느 때보다 바쁘게 감정 신호를 보내며 라일리의 마음을 살핍니다. 그러나 우연한 실수로 기쁨이와 슬픔이가 감정 컨트롤 본부를 이탈하게 되면서 라일리의 마음속에도 큰 변화가 찾아오는데요. 기쁨이와 슬픔이 앞에 펼쳐진 머릿속 세계는 감정 컨트롤 본부로 돌아가는 길을 험난하게 만듭니다. 과연 기쁨이와 슬픔이는 무사히 본부로 돌아가 라일리의 행복을 되찾아 줄 수 있을까요?

영화는 마음속 감정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이를 다루는 사건은 단순합니다. ‘미네소타에 살던 11살 소녀 라일리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겪는 마음속 갈등’이 큰 줄기입니다.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과 기억’이라는 매개체를 라일리의 엄마와 아빠 심지어 반려동물에도 적용하며 생명체는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감정을 느끼고 기억을 저장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감정과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요소를 다루며 인간의 내면은 하나의 사건에 하나의 감정이 새겨지는 것이 아닌 때로는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감정의 이면’이라는 심리학의 관점에서 메시지를 전합니다.

최근 큰 일을 겪으며 심리상담을 받았는데요. 기쁨과 슬픔만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분노 공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슬픔과 분노는 동전의 양면 같아서 불같은 분노 이면에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슬픔이 내재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분노를 잘 흘려 보내야 오롯이 슬픔을 마주하고 나의 상태를 되돌아 볼 수 있고 슬픔 역시 흘려 보낼 수 있다고요. 저는 이 말을 들으며 <인사이드 아웃>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기쁨’을 제외한 감정은 잘못 되었다는 압박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명체는 여러 감정을 지녔고, 감정에도 이면이 있을 수 있으며, 오로지 기쁨으로만 채워지는 순간은 없다는 것을 간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슬픔’, ‘분노’, ‘혐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도 각자의 역할이 있고 우리의 기억은 감정이 뒤섞여 채워진다는 것을 단순한 이야기로 명쾌하게 전하며 울림을 전하는 감독의 방식이 놀랍기도 했고요.

<인사이드 아웃>의 OST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으로 골라봤습니다. ‘Bundle of Joy’는 사운드트랙의 타이틀로 라일리가 태초에 기쁨이라는 감정을 시작으로 여러 기억 사이에서 다른 감정들이 싹을 띄우는 오프닝에 흘러나오는데요. 감정을 잘 마주할 수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 역시 제목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선택했습니다. (사실 ‘Bundle of Joy’ 말고 떠오르는 곡이 없기도 했어요😭)

코코 (Coco), 리 언크리치, 2017년 개봉

<코코>는 멕시코 시골에 사는 12살 소년 미구엘이 뜻밖의 사건으로 ‘죽은 자들의 세상’에 떨어져 고대의 신비한 존재들을 만나며 운명을 바꾸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속에 가족애를 담아 담백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하는 작품으로 호평받았는데요. 영화는 제90회 아카데미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했습니다.

<코코>는 이례적으로 백인 주인공과 미국이 아닌 곳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요. 이는 ‘멕시코 특유의 밝은 사후세계관을 통해 죽음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내고 음악과 함께 가족애와 꿈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그릴 수 있는 조합이었기에 나온 선택’이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제작진은 <코코>의 배경인 멕시코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3년간 멕시코 전역의 박물관, 시장, 광장, 교회, 묘지 등을 방문하고, 지역 주민들을 만나 좋아하는 음식, 즐겨 듣는 음악, 일상생활과 전통에 대해 인터뷰 했다고 해요. 이 과정에서 멕시코 사람들이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인지하고 <코코>의 이야기를 완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뮤지션을 꿈꾸는 멕시코 소년 미구엘. 그러나 미구엘의 집안은 과거 고조할아버지가 음악을 위해 아내와 딸을 두고 가족들의 곁을 떠난 후 대대로 음악을 금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전설적인 가수 델라크루즈를 보며 꿈을 포기하지 않던 미구엘은 우연히 자신과 델라크루즈 사이의 숨겨진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망자의 날’ 그의 기타에 손을 댔다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선조들을 만난 미구엘은 다시 현실로 돌아갈 방법이 가족들로부터 축복을 받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델라크루즈에게 축복을 받고 현실로 돌아가려는 미구엘의 모험에 의문의 사나이 헥터가 동행하면서 델라크루즈와 헥터 그리고 미구엘 사이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과연 세 사람의 숨겨진 비밀과 연결고리는 무엇일까요? 미구엘은 무사히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영화는 ‘사후 사계’를 표현한 경이로운 비주얼이 인상적인데요. 이는 멕시코 전통 명절(죽은 자의 날) 뿐만 아니라 멕시코 전통 악사(마리아치), 털이 없는 멕시코 토종 견종(숄로), 멕시코 전통 공예(알레브리헤) 등 다양한 문화 요소를 활용해 상상력을 고증과 조화시켜 완벽한 이미지로 구현한 결과입니다. 여기에 가족이라는 모두가 공감할 스토리와 음악이 더해져 픽사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코코>의 음악 하면 모두가 ‘Remember Me’를 떠올릴 것 같은데요. 참고로 해당 곡은 ‘Let It Go’를 작곡한 로버트 로페즈 & 크리스틴 앤더슨-로페즈 부부가 만들었는데요. “음악의 템포와 톤에 따라 가사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곡”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엔딩 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듀오 버전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억되고 싶은 마음을 마냥 슬프지 않게 그린 멜로디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엘리멘탈 (Elemental), 피터 손, 2023년 개봉

<엘리멘탈>은 물, 불, 공기, 흙 4 원소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불의 원소 앰버와 물의 원소 웨이드가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와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작년 국내에서 누적 관객 700만을 넘기며 화제를 불러 모았는데요. 영화를 보면 이민자 1세대들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데 감독이 한국계 미국인라 국내에서는 더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영화는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비경쟁 부문 초청작이자 폐막작으로 선정되었고, 제96회 아카데미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4 가지 원소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감독은 ‘이민자의 삶’보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인물 간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했다고 밝혔는데요. 주인공인 불과 물의 캐릭터는 ‘이민자 1세대 가정의 자녀로서 다른 문화권의 아내를 만나게 되면서 겪은 문화적 충돌 경험’이 영화의 토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인공을 물과 불로 정한 이유는 ‘물과 불이라는 상반된 요소가 서로를 끌어당기고 반응한다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원소가 주인공인 만큼 <인사이드 아웃>과 마찬가지로 캐릭터의 작화가 돋보이는데요. 물의 원소 웨이드는 머리카락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면, 불의 원소 앰버는 가스와 불로 신체를 구성하며 상황에 따라 불꽃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이미지를 구현했습니다.

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 불의 고향을 떠나 엘리멘트 시티에 정착한 앰버의 가족들은 불 원소들을 위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곧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게 될 앰버는 우연히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물 흐르듯 사는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게 되고, 웨이드와 함께 할수록 지금껏 자신의 꿈이라고 생각해 온 삶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과연 앰버는 내면의 소리를 따라 변화하게 될까요? 결코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과 물, 앰버와 웨이드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엘리멘탈>은 상극일 것 같은 불과 물의 만남을 통해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배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본질과 근원을 이해하는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감독은 “불, 물, 땅, 공기 등 일반적으로 섞이지 않는 요소들이 함께 살아가며 상호작용하는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개성이 뚜렷한 원소가 어울려 살아가는 세계를 그리고 있기에 엘리멘트 시티는 다인종 이민자들이 모여 국가를 이룬 미국 사회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인종 갈등 부각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감독이 말하는 ‘배경이 아닌 본질과 근원을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엘리멘탈>의 사운드 트랙은 라우브의 ‘Steal The Show’를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며 몽글몽글 피어나는 로맨스의 설렘을 느껴본 것은 오래만이었거든요.☺️ 가사도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했는데요. 꼭 뮤직비디오로 감상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Epilogue

픽사의 번뜩이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들은 픽사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넘어 ‘픽사 만의 독창성을 보유한 이야기 집단’이라는 것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소개한 작품들은 어릴 적 상상으로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이야기들이 물성을 지닌 하나의 작품으로서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에 더 기억에 남는데요. 누군가는 ‘동심’을 어른이 되면 흘려보내야 하는 것으로 치부하지만, 저는 ‘동심’이야말로 어른이 되어도 인간으로서 간직해야 할 최소한의 순수함이라고 생각해요. 순수함을 잃지 않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면서 때때로 마주하게 될 절망과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와 희망으로 바꿔주는 것 같거든요. 그렇기에 어른들에게 ‘동심’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픽사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됩니다!

🔖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자료 출처 표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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