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노벨상과 네번의 퓰리처상을 받은 위대한 극작가 / 작가 및 작품 소개

2021.10.04 | 조회 1.2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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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의 고전 읽기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고전 문학 이야기

1. 유진 오닐 (Eugene Gladstone O'Neill 1888.10.16 ~ 1953.11.27), 어떤 작가인가요?

 쓸쓸하고 외로운 정서를 잘 표현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잘 어울리네요. / '밤의 창문들' (1928) 
 쓸쓸하고 외로운 정서를 잘 표현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잘 어울리네요. / '밤의 창문들' (1928) 

 

 

"미국 극작가 중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받은 위대한 희곡 작가"

 

사람의 심연에 있는 깊은 감정들을 사실적으로 다루는 작품들을 통해 그 당시 얄팍했던 촌극이나 멜로드라마 등에만 한정되었던 미국 연극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으며, 셰익스피어와 조지 버나드 쇼 다음으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많이 번역된 작품을 남긴 극작가입니다.

이번에 그의 작품을 처음 보았고, 내용 자체가 너무 우울하고 현실적이어서 책을 읽은 뒤 한동안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어요. 작가의 일생에 대해 찾아보니 가정환경이 평범치 않았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없었던 상황이라 가족에게 애증의 양가적 감정을 늘 지니고 있었고 이런 작가의 심경이 작품에 반영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수년 동안 떠돌아다니며 선원으로 또 다양한 일을 하며 방황했고, 알코올 중독에 자살시도까지 할 만큼 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했어요. 20대 후반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30대 초반에 알려진 극작가로 자리를 잡습니다. 32살 경인 1920년에 ‘지평선 넘어 Beyond the horizon’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이를 포함해 생전에 3번 그리고 사후에 1번, 총 4번의 퓰리처상을 수상했어요.

방황하다 글을 쓰고는 얼마 되지 않아 비교적 수월하게 극작가로 자리 잡고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을 정도가 되다니 핏속에 ‘드라마’가 담겨있는 타고난 재능을 지닌 사람으로 그저 글 쓰는 게 가장 수월했던 천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51편의 작품을 남길 정도의 엄청난 집중력과 성실함,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과 소재를 다루는 것에 주저함이 없던 작가정신, 그리고 원고를 예닐곱 번씩 수정하는 집요함이 있던, 창작 과정에 있어서만큼은 역시나 예외 없이 노력하는 작가였습니다.

 


 

아버지 제임스 오닐은 당시 인기였던 공연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백작 역을 맡아 유명했던 배우로 늘 투어를 다녔으며 그 때문에 유진 오닐은 1888년 어느 호텔방에서 태어나 유년 시기 내내 호텔 방을 전전하며 보냈어요. 어머니 역시 남편의 투어를 따라다니느라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호텔에서 지내는 생활을 지속해야 했고 유진 오닐을 출산한 뒤 산후통을 치료하기 위해 처방받은 모르핀에 중독되고 맙니다. 형에게도 역시 복합적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어린 시절 형에게 많이 의지했고 무한한 신뢰와 동경을 품고 있었지만 나쁜 영향을 많이 받게 되고 형은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중년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났어요.  

배우였던 아버지와 피아노에 재능이 있던 어머니의 예술적인 감성에 더해 평화롭지 못했던 가정, 그 때문에 느낀 내면적 갈등, 가족에 대한 사랑과 분노, 거기에 종교적으로 독실했던 부모님의 신에 대한 믿음 등은 유진 오닐이 인간 내면의 갈등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풀어내는 비극적인 작품들을 창작하게 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청년기에 접어든 작가는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했지만 1년 만에 그만두고 1906년 상선에 선원으로 올라 여기저기를 떠돌게 됩니다. 이 시기 부에노스아이레스, 리버풀, 뉴욕 등을 다니며 선원이자 부두 노동자로 지냈어요. 결혼하여 아이도 생겼으나 그의 방황은 그칠 줄을 몰랐고 결국 알코올 중독에 자살을 시도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힘든 시기였지만 훗날 그는 이때가 자기 삶의 진정한 교육이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했으며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낸 2년간에 대해서는 평생 각별하게 생각했다고 하네요. 주머니에 달랑 10달러만 지닌 채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바닷가 벤치에서 지내기도 했고, 전기 회사, 양모 창고, 재봉틀 회사 등을 거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합니다. 결국 그때의 경험과 그들의 이야기가 그의 극 창작에 많은 영감이 되었어요.

1912년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첫 번째 부인과 결국 이혼했으며 아버지가 출연하는 극에 단역을 맡아 무대에 서기도 했고, 뉴런던 텔레그라프지에 기자 겸 시 기고가로 입사해 잠시 자리를 잡는 것 같았지만 결핵에 걸려 요양소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가 그의 인생의 큰 분기점이 되었어요. 6개월의 요양 기간 동안 비로소 자기 자신을 직시하게 되었고 자신이 새롭게 태어날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합니다. 요양소에서 지내는 동안 스웨덴 극작가 스트린드베리의 작품을 읽었고 희곡 창작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배우였던 아버지 때문에 어려서부터 무대와 극이 익숙했던 그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정이었겠죠.

그가 처음으로 쓴 작품은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띠긴 했지만 기존 미국식 희곡과는 달리 매춘부, 외로운 선원 등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신의 불공평함을 다룬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진지한 소설에서나 다룰법한, 재미를 위해 만들어지는 연극 무대에 올리기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는 소재였고 극비평가들이 그의 아버지를 설득해 하버드 대에서 조지 피어스 베이커 교수가 강의하는 유명한 희곡 작법 강좌를 듣게 했어요. 1914~1915년, 강좌를 듣던 시기 쓴 작품들이 그렇다고 딱히 베이커 교수의 교습에 많이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덕분에 꾸준히 글을 쓰고 창작을 하는 시간을 거치면서 그가 결심한 바대로 희곡 작가가 될 수 있는 기본을 닦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이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간 건 1916이었어요. 당시 매사추세츠의 프로빈스 타운 내 작고 조용한 어촌마을에서 젊은 작가와 화가들이 모여 실험극단을 시작했고 부둣가의 작고 열악한 소극장에서 유진 오닐의 단막 해양극(sea play) ‘카디프를 향하여 동쪽으로 Bound East for Cardiff)’를 공연했어요. 이 작품은 이미 그의 극작가로서의 재능을 충분히 보여줄만했고 당시 그룹과 함께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극작가들의 극단’을 결성, 같은 해 11월 뉴욕에서 데뷔하게 됩니다. 당시 극단 소속 극작가는 여럿 있었지만 몇 년간 지속된 극단의 명성에는 유진 오닐이 단연 큰 역할을 했으며 극단이 결성된 1916년부터 1920년까지 오닐의 모든 해양 단막극 전부를 무대에 올렸어요.

그때까지 그가 쓴 장막극으로는 ‘지평선 너머 Beyond the Horizon’ 가 유일했고 이 작품으로 1920년 2월, 브로드웨이에 데뷔하게 됩니다. 극도로 현실적이었던 이 작품의 리얼리즘은 비평가들의 호평을 이끌어 냈고 결국 퓰리처상을 수상하기까지 했어요. 이 뒤로 작가로서 그의 행보는 거침없이 이어집니다. 이듬해 1921년 무대에 올린 '안나 크리스티로 Anna Christie'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1926년에는 예일 대학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28년 ‘기묘한 막간극 Strange Interlude’로 세 번째 퓰리처상을, 그리고 1936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됩니다.

그의 창작력은 어마어마해서 1920년부터 1946년까지 장막극만 총 20여 편을 발표했는데 이 중에는 보통 희곡에 비해 길이가 두세배 긴 작품들도 있었어요. 책장에는 집필을 위한 조사 내용들과 초안, 아이디어 등을 적은 메모장이 빽빽하게 채워졌습니다. 그의 작가로서의 집요함 역시 대단해 보통 원고를 6~7번은 고쳐 썼다고 하네요.

자신의 극에 출연했던 배우 칼로타 몬트레이와 1929년 세 번째 결혼을 했고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집필에 전념했지만 1939년, 작가가 51세의 나이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아 마비 증세와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여전히 창작을 놓지 않았고 이 시기 그의 마지막 작품 ‘밤으로의 긴 여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를 완성합니다.

커리어는 순항했지만 개인 생활은 늘 순탄치 않았어요. 2남 1녀를 두었으나, 아들 둘은 각각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과 신경증 증세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고, 막내딸 우나 오닐은 18세가 되자 유진 오닐의 극한 반대에도 36살 차이가 나는, 자기 또래인 찰리 채플린과 결혼을 강행, 이를 계기로 딸과는 영원히 의절한 채 지냈다고 해요.

어떤 분야던지 크게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을 보면 개인사가 평범치 않은 경우가 많은데, 사실 아픔이나 고난이 성공의 필수 조건도 아니며 힘든 시절을 보낸 모두가 다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죠. 다만, 자신의 아픔을 발전의 동력으로 삼거나 예술로 승화시킨 위대한 사람들이 드물게 나타나는 것일 테고, 유진 오닐 또한 그런 특별한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호텔에서 태어난 작가는 1953년 65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보스턴의 한 호텔 방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2. 어떤 책인가요?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작가 오닐의 대표작"  – 뉴욕 타임스

"오닐의 마지막 희곡이자 리얼리즘이 가장 뚜렷하게 구현된 작품으로, 가족과 자신의 삶에 대한 위대한 용서를 담고 있다." – 아서 밀러

과거 오랜 시간 배우라는 직업 탓에 투어를 다니며 가족에게 정착하는 삶을 제공해 주지 못한 구두쇠 아버지 티론, 이렇다 할 직업을 얻지 못한 채 현재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며 지내는 첫째 아들 제이미,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다 마음 붙일 곳이 없어 결국 약물 중독에 이른 어머니 메리, 그리고 아마도 작가 자신을 표방하는 폐렴에 걸린 막내 에드몬드, 네 가족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하루를 그려냅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아침은 한동안 약물 중독에 시달렸던 어머니의 동태를 서로 살피며 시작됩니다. 오전만 해도 괜찮아 보이던 어머니는 결국 다시 약에 손을 대게 되고, 자신의 하소연을 풀어놓기 시작하죠. 그런 어머니를 보며 실망하고 속상해하면서 동시에 살얼음 걷듯 살피는 불안하고 압박감 느껴지는 분위기가 현실적으로 묘사됩니다. 너 나 할 것 없는 상대방에 대한 원망, 자기 하소연이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지만 결국 긴 대화 끝에 막내 에드몬드는 아버지 티론과 다른 가족에 대한 이해와 용서를 보여줍니다.

작가가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50대에 집필한 작품으로 가장 마지막으로 남긴 희곡이에요. 아주 직접적으로 자신의 아픈 가정사를 거의 그대로 재현하다시피 담아냈으며 현실적인 묘사가 가득합니다. 자기 생전에는 절대 무대에 올리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했기에 결국 작가가 사망한 3년 뒤 1956년에야 스톡홀름 왕립극장에서 초연을 했고 이 작품으로 네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작가와 작품 소개는 책 뒤편에 수록된 해설 및 연보와 아래 링크들을 참고했습니다.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Eugene-ONeill

http://www.eugeneoneill.org/eugene-gladstone-oneill/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27863&cid=40942&categoryId=40513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13666&cid=43938&categoryId=43944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847020&cid=43981&categoryId=43984

https://m.blog.naver.com/cubeedu/220286054590

 

 

3. 이 책의 매력 포인트

문제가 가득한 한 가정의 숨 막히듯 답답한 지옥 같은 하루가 너무도 사실적으로 드러나있습니다. 형식은 희곡이지만 아주 세세한 지문과 현실적인 대사들 덕분에 한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작품 자체의 밀도와 짜임새도 훌륭하지만 작가의 자서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사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은 그 세월, 가장 큰 상처에 대해 어쩌면 일기조차 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외면하고 싶었을 텐데 결국 이걸 글로 써냈다는 용기가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가장 사랑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잖아요. 마음속에 그런 상처가 있는 사람들,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에게 그 가까운 사람들을 결국 품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읽는 내내 슬프고 우울하며 답답하지만, 읽고 나면 유진 오닐의 용서에 감탄과 경의를 표하고 싶어지는 위대한 작품이에요.

 

 

4. 분량과 난이도는 어떤가요?

총 4막으로 구성된 장막극이며 제가 읽은 민음사 판본으로는 약 220여 페이지로 길지 않은 분량입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몇몇 공연 영상도 2시간이 조금 넘는 길이네요.

지문이 아주 상세하고 대사들 역시 사실적이라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수월한 편이에요. 하지만 가족들 간의 아픔, 무거운 분위기가 너무 현실적으로 또 밀도 높게 와닿기 때문에 독자에 따라 정서적인 타격이 꽤 있어서 단숨에 읽기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5. 그 외

책 앞머리에 유진 오닐이 아내에게 남긴 헌사가 있어요. 이 아픈 작품을 쓴 작가의 심정과 아내에 대한 사랑이 잘 드러나 있는 감동적인 글이라 옮겨둡니다.

 
 

 

 

 

안개와 바다가 마치 하나인 것 같았죠. 그래서 바다 밑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오래전에 익사한 것처럼. 전 안개의 일부가 된 유령이고 안개는 바다의 유령인 것처럼. 유령 속의 유령이 되어 있으니 끝내주게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p.16)

 

 

 


* 좀 더 긴 감상문은 며칠 내 발송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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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한결같은 빛을 발하는 고전 문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어요.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작가의 작품, 너무 유명해서  마치 읽은 것 같지만 사실 들춰본 적도 없는 책, 어릴 때 아동용 요약본만 읽었던 책들, 그런 고전들 위주로 읽고 소개합니다.  

 

한달에 두세편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 작품당 두편의 뉴스레터가 발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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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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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니

    0
    over 2 years 전

    내용도 참 어둡고 슬프지만 죽음 이후 작가가 바랬던 유언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 삶의 비극을 더 극대화 시켜 인상적으로 남았던 작품이네요 ,, 소개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봐야겠어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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