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당신의 이름을 길게 발음하면

🎼  Astral Swans 「Flood」, 2021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벌써 8월의 끝을 향해가고 있어요. 두 번째 시즌이 끝나고 다시 한 달간의 휴식이 오네요.

휴식을 앞두고는 최근에 구독을 시작한 분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기껏 신청했더니 한 달 동안 조용하다가 불쑥 등장할 제 편지가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쉼을 앞두고 쓰는 마지막 편지, 열심히 적어볼게요!

🏖 8월 넷째 주의 일 : 뜨거운 커피

주말에는 재미있는 행사에 참여했어요. 언젠가 책방 한탸에 들렀을 때, 『안으며 업힌』이라는 책을 샀거든요. 부산 초량을 배경으로 이정임, 박솔뫼, 김비, 박서련, 한정현 다섯 명의 소설가가 쓴 단편 소설이 담긴 책인데요. 지난 주말에 이 책에 관한 행사가 열렸어요.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책도 읽고, 창비 부산에도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에 비가 무섭게 내렸어요. 백팩을 아기 안듯, 등 대신 배 쪽으로 끌어안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는데요. 그사이 홀딱 젖을 정도로 세찬 비가 내려서, 무려 세 시간이 되는 행사 시간 내내 어찌나 추웠는지요. 오랜만에 더위가 아닌 추위를 겪는 일이 새롭고도 힘들었습니다.

책도 잘 읽었고, 행사에서도 마음에 담아온 여러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그보다도 다시 백팩을 끌어안고 집 근처의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신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언제나 얼음이 가득한 음료만 주문하는 극강의 아이스 파인데다가. 카페에서도 음료는 수다나, 독서나, 작업을 거들 뿐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데요.

겨울에도 거의 주문하지 않는 뜨거운 커피에, 몹시, 집중했어요. 딴짓은 하지 않고 마시는 데에만 온 신경을 썼어요. 이날부터 제 티타임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잔뜩 쌓인 티백도 정리하고, 커피도 천천히 마셔요. 가끔은 얼음을 채우는 대신, 주전자에 물을 담고 한참 끓입니다. 여름을 보낼 준비를 하는 것도 같아요.

🏡 8월 넷째 주의 장소 : 시민도서관

제가 부산에 내려와 가장 자주 찾는 두 곳의 도서관은 해맞이작은도서관과 부전도서관이었어요. 해맞이작은도서관은 찾는 책이 많지 않지만 도보로 오갈 수 있는 위치에 있고요. 부전도서관은 버스를 한 번 타고 조금 걸어야 하지만, 대체로 찾는 책이 있었고, 또 답답할 때면 근처 곳곳의 카페에서도 시간을 죽일 수 있어서 편했거든요.

거의 언제나 도서 대출 상태*인데요.  부전도서관의 책들을 침대 곁에 쌓아놓고 지내는 중에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안전진단과 내진성능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즉시 시설 사용을 금지해야 하는 등급을 받아 긴급하게 휴관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어요. 순간 저도 모르게 상상해보았죠. 책을 읽다가, 혹은 책을 고르다가 천장이 무너지고 서가가 넘어지면서 책 속에 매장당하는 장면이 선하게 그려졌습니다. 살 수 있을까? 아마 죽을 뻔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빌렸던 책을 챙겨서 반납함에 넣고 왔습니다.

한동안 도서관에 다니지 못하다가, 이번 주에 드디어 새로운 도서관에 가보기로 했어요. 시민도서관인데요. 시민도서관은 제가 작년 이맘때, 아주 더워서 견디기 어려웠던 어느 날 들렀다가 문이 닫혀있어서 터덜터덜 돌아왔던 슬픈 기억이 있는 곳이에요. 그 후로 좀처럼 다시 갈 생각을 품지 못했어요. 그런데 장서나 위치를 고려했을 때 시민도서관이 괜찮은 대체재인것 같아, 재도전했습니다! 물론, 휴관일과 운영 시간을 잘 확인하고 다녀왔어요.

하루의 일을 거의 마무리한 후 방문해서, 문을 닫기 전까지 머무르다 나왔는데요. 무척 크고, 쾌적한 데다, 이용객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다 왔어요. 창밖이 캄캄해질 때까지 넓고 조용한 곳에 있는 건 꽤 오랜만의 일이더라고요.

무거운 백팩에게도 한 자리를 내줄 만큼 여유롭던 열람실에서, 궁금했던 신간을 잔뜩 쌓아놓고 킥킥대며 웃기도 하고, 필사도 하고, 몇 권은 참지 못해서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마음에 드는 방앗간을 발견한 기쁨을, 편지에 담아봅니다. 기쁨이 다 전해졌으려나요?

* 들어가면 빈손으로 나오질 못하겠어요... 집에 있는 책도 안 읽으면서 대체 왜!

📚 8월 넷째 주의 책 : 이현호 『방밖에 없는 사람, 방 밖에 없는 사람』 시간의흐름,  2021

그렇게 시민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가운데 한 권이 이 책입니다. "네 개의 벽, 바닥과 천장, 창과 문으로 된 작은 우주. 나의 하루가 시작되고 끝나는 곳."이라는 두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현호 시인의 에세이인데요. 저 또한 '집'이 아닌 '방'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침실에서 나와 서재로 가면, 거의 모든 시간을 서재에서 보내거든요. 방밖에 없는 사람은 저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홀린 듯이 뽑아 든 책이었어요.

혼자 지내다 보면 생각보다 방을 채우는 소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에어컨 소리. 에어컨에 딸린 호스를 따라 물받이에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 자꾸 듣고 싶어서 뭐라도 쓰게 되는 키보드 타이핑 소리. 습관처럼 켜놓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따라 무한 재생되는, 제목을 알지 못하는 음악들. 창밖으로 차가 지나가는 소리. 앞집의 개가 치열하게 제 주인을 지키는 소리. 초인종 소리. 반응하지 않으니 문까지 두드리는 소리. 각종 휴대폰 알림 소리...

방의 주인은 음악이라는 말이나, 음악과 동거하는 건 외로운 습관이라는 말 같은 것이 재미있게 와 닿았어요. 이 책에는 음악 말고 소리에 관한 글도 한 편 있는데요.

공간이 조용함을 견디지 못한다는 생각도 재미있지요. 이 집은 시끌벅적한 다른 집보다 허약할 거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처음 대문을 열었던 날을 떠올려 봅니다. 버려진 것이 분명했던 방에 비장한 마음으로 들어갔던 날. 쓸 수 있는 방으로 만들기 위해 수도 없이 허리를 굽혔다 펴며, 이전 주인들의 손이 닿지 않았을 곳곳을 쓸고 닦던 날이요.

직전의 주인에 비하면 저는 각각의 방에 소리를 많이 준 주인일 텐데요. 그렇다고 해서 무심했던 날이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요. 

제게는 조금 혹독했던(?) 여름도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다음 시즌은 10월 첫째주에 다시 시작합니다.

혹시 그 사이에 심심하거나, 알리고 싶은 소식이 생기거나, 한다면 뭔가를 써서 보낼지도 모르겠어요!

구독자 님의 여름은 어떠셨을지 모르겠네요.
무사히 마무리하시고, 건강한 가을 시작하시기를 바라면서. ☺️

2022.08.24.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