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더 정리된 문장, 질서 있는 표현

🎼  Mitsume 「number」, 2022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지난주 편지를 무척 급하게 썼는데, 티 나는 오타가 많아서 다시 읽어보며 민망했습니다. (죄송해요!)

오늘의 편지는 반성하는 의미로 여유를 갖고 써 보았답니다. 마침 동거인은 주말 내 서울에 일정이 있어서 홀로 여유로운 이틀을 보냈거든요.

그럼 새로운 한 주 이야기 나눠볼게요!

🚙 7월 둘째 주의 일 : (어쩌면 마지막) 비대면 강의

코로나가 다시 확산세라고는 하지만, 이제 주변의 감흥도 크게 없는 것 같고요. 어쩌면, 아마도, 코로나 공포는 끝난 게 아닐까 싶어요. (확산세가 무섭다고는 하는데 너무 조용하지요?) 연초에 한 도서관으로부터 여름 내내 글쓰기 강의 진행을 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는데요. 수락하면서 한 생각은,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비대면 강의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020년 여름부터 책방에서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각종 일을 맡아 해왔는데요. 이제는 대면으로 하는 자리가 예전 못지않게 늘어난 것 같고요. 길을 걷다 만나는 사람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제가 할 수 있는 비대면 노동은 거의 끝이 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초유의 바이러스 사태가 끝을 향해간다는 것은 두 손 들고 반길 일이지만, 부산에 내려와서 수입의 상당 부분을 대면하지 않는 방식에 의지해온 저는 이 점이 조금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프리랜서의 삶이란, 아무래도 자유나 해방이라는 단어보다 초조나 불안 쪽에 더 가까운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번 강의는 진짜, 진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여러 번 강의했던 곳인데요. 어느 도서관이든 비슷한 시간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지만, 이번 강의는 '피날레' 답게(?) 뉴페이스가 많아서 긴장되면서도 새로운 마음입니다.

강의 주제는 '여행 에세이 쓰기'인데요. 대단한 여행 경험이 없어도 좋으니, 당장 하루하루를 여행으로 만들고 글로 옮겨보자는 마음이에요. 자신에게도 물음을 던져보아요. 나는 어떤 여행 에세이를 쓰고 싶지? 그럼 역시 부산에서 움직인 몸과 마음을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전부.

날이 뜨거워지고 비가 많이 내리면서, 다시 대부분의 일상이 서재 안에 갇혀 지내는 쪽으로 바뀌었는데요. 이 때문에 최근에는 좀 울적했습니다. 이 편지는 지금 흐린 송정 바다를 바라보며 적고 있어요. 바다 이야기는 아래 이어서 써 볼게요.

📍 7월 둘째 주의 장소 : 송정 바다

송정 해수욕장에 마지막으로 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달력을 보니 6월 초에 왔네요. 그때는 가족들과 함께였고 창문을 깨끗하게 닦지 않은 스타벅스에서 흐릿한 바다를 바라보며 목만 축인 뒤 돌아왔어요. 해운대나 광안리만큼 화려하지는 않은 모양이 싫지 않아서 다시 오고 싶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오늘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마침 이번 주에 있었습니다. 날씨를 검색해보니 절절 끓는 해도 없고, 쏟아지는 비도 없는 날. 특별한 약속도, 할 일도 없는 날. 

지금이 아니면 또 한여름에 굴복해 방에서만 하루를 보낼 것 같아서 서둘러 짐을 싸고 동해선 열차를 탔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아요. 송정역에서 내려서 바다까지 천천히 걸었지요. 해가 강하지 않은 날이라 모래사장에는 편안하게 낮잠을 자거나, 간식을 먹거나, '바다 멍'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이런 풍경과 가까이 있고 싶어서,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랫길을 걸었습니다. 스산하고 썰렁한 날씨 때문인지, 평일의 한낮이라서 그런지, 사람도 적고 바다는 '적당히' 예뻤는데요. 이젠 바다를 보고도 감탄하지 않게 된 것이 왠지 좋았습니다. 30분을 달리면 언제든 닿는 바다. 심심해진 바다, 마냥 화려하기만 한 바다가 아니라서 드디어 바다와 가까워진 기분이었어요.

바다 곁에는 언제나 바다가 보인다는 것을 무기로 내세운 각종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한데요. 오랜만에 송정까지 와서 프랜차이즈 카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시원하고 조용하고 넓은 데다, 화장실이 쾌적해서 아주 편안했습니다. 이곳에서 못다 쓴 글방 원고도 쓰고, 비슷하게 사는 친구와 푸념을 나누는 통화도 하고, 꽉 막혀있는 단행본에 대해 고민하며 시간을 죽였습니다.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습니다.

📚 7월 둘째 주의 영화 : 박찬욱 ⟨헤어질 결심⟩  2022

주말에는 오랜만에 혼자 영화를 보고 왔어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저 빼고 이미 모두 본 것 같아서 다소 조급한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멋진 리뷰는 이미 쏟아지는 중이고,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 않으니. 영화 속에 숨겨진 의미나,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 대신 조금 다른 감상을 남겨보려고 해요.

주인공인 서래(탕웨이 배우)는 중국어가 모국어라서, 해준(박해일 배우)과의 대화를 위해 통역 애플리케이션을 쓰거나, 사극과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익히거나, 어쩔 수 없이 특이한 어휘로 말하는데요. 가령 남편의 죽음과 관련한 수사를 받으며 '마침내' 죽었다는 대사를 하고요.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면 좋아하는 일을 '중단'하느냐는 물음을 하기도 하고, 해준이 '붕괴되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붕괴'의 뜻이 '무너지고 깨어짐'이라는 것을 국어사전을 통해 찾아보기도 하죠.

외국인이기 때문에 조금 더 또렷하고 명쾌한 한국어를 쓴다는 점이 재미있었지요. 닳고 닳은 말만 쓰는 네이티브 코리안인 저도 서래처럼 외국어 학습자의 마음으로 말과 글을 대해보기로 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쓰던 단어장에 매일 읽는 책과 시집 속 단어들을 옮겨보곤 해요. 예전에는 부지런히 하던 일이었는데, 내팽개친 지 한참이 되었더라고요. 

- "배릭은 적당하게 녹은 카망베르 한 조각을 엄정하게 맛보고 있었는데" : 음식 맛을 보는 장면을 '엄정하다'고 쓴 부분이 재미있었음.

- "묘한 동통이 찾아왔다" : 몸이 쑤시고 아픈 것이 '동통(疼痛)'. 거의 써 본 일이 없는 단어...

- "잠시 능갈친 미소를 띠며" : 교묘하고 능청스러운 느낌의 미소라고 함.

이렇게 단어들을 모으다 보니 마침내 오후가 중단되고, 하루가 붕괴되었습니다. 

편지를 보내는 오늘도 하늘이 흐려요.

어딘가에는 비도 왔다고 하는 것 같던데. 무사히 하루의 일을 마치고 편지 읽는 시간을 보내시기를 빌어요.

다가오는 주말에는 재미있는 만남이 있을 예정이에요. 다음 편지에 담을 거리(?)가 정해져 있어서 마음이 놓이는 편지 마감er...☺️

구독자 님, 한 주 건강하게 보내세요!

2022.07.13.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