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매일 보면 아름다움도 평이해진다는 그런 것

🎼 안다영 「걸작」, 2022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이제 부산에도 추적추적 비가 옵니다. 새로 산 우산 겸 양산을 부지런히 챙겨 다닌 한 주였어요. 가볍고 작은 것을 사길 잘했다, 생각하다가. 얼마 전에는 저 위에서 튼튼한 우산들이 맥을 못 추고 구겨졌었지, 생각했어요.

이번 주는 무사히 잘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말 사이에 부지런히 다녀온 산책의 일부와, 다 읽은 책 한 권을 나눠볼게요.

🏖 8월 셋째 주의 일, 그리고 장소들 : 청도 나들이

얼마 전 외주 작업으로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좋은 공간들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마침 부산과 청도의 거리는 2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청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가 이번 주말에 드디어 다녀올 수 있었어요. 글 쓰면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카페와 책방에 가기로 하고 분주하게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집을 나섰습니다.

작업 전 제가 청도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부끄럽게도 '감' 정도가 전부였는데요. 청도에는 의외로(?) 정말 많은 대형 카페가 있답니다. 가기 전까지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취소할까말까 고민했지만, 집에 있으면 시시한 하루가 될 것이 뻔하니까요. 부산 근처의 크고 작은 동네를 훌쩍 오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급하기도 했고요.

가장 먼저 간 곳은 오마이북이었어요. 이곳은 서점이면서 동시에 카페이기도 하고, 또 독채와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숙소이기도 해요. 여러 역할을 하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가장 눈길이 갔던 건 사람이 무척 많았다는 건데요. 1층은 물론, 2층에도 자리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책방에 머무는 시간 동안 오가는 이들이 계속 달라졌어요. 청도 나들이에 동행한 동거인도, 저와 그동안 함께 다닌 크고 작은 책방들 가운데 가장 사람이 활기차게 오가는 공간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대도시도 아닌 마을의, 차 없이는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외진 책방을 여러 사람이 분주하게 채워주는 걸 보면서 (무슨 오지랖인지) 내 공간이 아닌데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오마이북 방문을 마치고 향했던 곳은 덕남이라는 카페였어요. 무화과가 반듯하게 올라간 제철 케이크가 먹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겨우 주차하고 들어가니 자리가 거의 다 차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소음을 견딜 자신이 없더라고요. 주말의 청도는 어쩜 이리 복작복작한가요? 짧은 사이에 뜨겁게 달아오른 자동차에 다시 올라타면서 '청도는... 뭘까?'라고 중얼거렸고, 동거인은 남양주 같은 서울 근교의 카페에 주말마다 웨이팅하는 인파가 가득한 것과 비슷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대구나 부산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느낌이라고요.

시끄럽던 카페에서 나왔지만 갈 곳은 많았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고르기만 하면 될 정도로 맵에 찍힌 카페의 수는 충분했어요. 덕남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브제토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상대적으로 사람이 좀 덜하고, 차분한 시골 풍경이 좋아서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차 마시고 떠들다 보면 하루가 금방 흐르지요. 더 들러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부산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해서 짧은 소풍을 마무리했어요. 가보고 싶었던 곳을 몇 군데 더 남겨봅니다. 혹시 구독자 님도 청도 나들이 계획이 있으시다면 살펴보세요!

차상자티하우스 : 다식과 차 테이스팅 코스를 예약제로 운영 중입니다.
아미꼬뜨 : 산 중턱에 위치한 곳이라 푸른 숲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답니다.
하우리오 :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는 카페.

부산에도 아직 가보지 못한 좋은 공간이 많은데요. 평일에 홀로 부지런히 다녀볼 생각입니다. 추천할 만한 곳이 있다면 댓글이나 답장에 남겨주세요! ☺️

📚 8월 셋째 주의 책 :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위고, 2021

지난주 편지를 통해 북토크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공유했었는데요. 8월 5일 자 북토크에 맞춘 책을 선물 받았어요. 책을 포장한 봉투에는 '생일 책'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생일'은 작가의 생일을 의미하는 걸까? 잠깐 생각했지만, 판권면을 보니 8월 5일 1쇄로 세상에 나온 책이더라고요. 2021년 8월 5일에 태어나서 제 품에 온 책은, 정혜윤 작가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이었어요. 재미있는 건, 이 책을 선물해준 분이자 책방의 열혈 단골인 J님이 정혜윤 작가를 무척 좋아한다는 거예요. 블라인드 북의 묘미는 이런 게 아닐까요? 은근히 통했다는 느낌 같은 거요.

아무튼, 이 책은 바로 읽고 싶었어요. 빼곡하게 적어놓은 'to read list'는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고. 이렇게 예상치 못한 책이 끼어들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까짓 거 리스트에 한 줄 더하면 되는 거죠.

어김없이 이번 주 편지에도 글방 이야기를 적게 되는데요. 어제 다녀온 글방에서 한 선생님이 글의 마지막에 '충분히 행복하다'는 표현을 썼어요. 다른 분이 이 대목을 보고 놀랍다고 했어요. 주변에 그냥 행복한 것도 아니고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최근에 만난 적이 없다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아요. 슬픔 안에서도 끈질기게 행복과 희망을 찾는 이들이 책 속에 가득했어요.

“5년 전에 여기 왔는데 그날 처음으로 반딧불이를 봤어요. 너무 아름다웠어요. 여기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다음 날부터 바로 일했어요.”
“그때부터 줄곧?”
“네, 매일매일.”
나는 5년간 매일매일 반딧불이를 보는 느낌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때 나는 무슨 대답을 기대했던가? 매일 보면 아름다움도 평이해진다는 그런 것이었을까. 나는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그의 입에서 나올 말 한마디를 기다렸다. 그는 반딧불이 한 마리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 놓았다. 작고 완벽한 빛 하나가 그의 손을 그 누구의 손과도 같지 않은 특별한 손으로 만들어줬다. 그의 손바닥에 영혼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등 뒤로 검은 강물 소리가 애잔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나지막하게, 느리게, 또박또박, 마치 나에게가 아니라 반딧불이에게 대답하듯, 가난과 어둠과 별과 빛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의 우아함을 담아 이렇게 대답했다.
“Still beautiful.”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것이 행복의 언어인 것을 알았다. 슬픔에 짓눌려 있던 나의 어두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가 얼핏 보였다. 아름다움은 슬픔조차도 꿰뚫고 지나는 강력한 힘을 가진 단어고 우리가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돕는다. 그가 말을 마치자 반딧불이는 무리로 날아올랐다. 마치 피터팬의 검은 그림자를 들고 날아가는 팅커벨처럼.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p.253

이 책의 구석구석에는 삶과 죽음과 지금과 미래를 생각하게 만드는 많은 질문들이 들어있어요. 작가가 문득 던지는 질문을 적으며 책을 읽었어요. 질문을 전부 다 모으니 크고 무겁게만 느껴져요. 하지만 그 모든 질문들은 언젠가 밤이 깊은 날 곰곰이 생각해보고 싶은 것들이고. 만약 그런 캄캄한 밤을 함께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의 답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참을 수 없을 만한 것들이에요.

구독자 님께도 보내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