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더위가 끝나갑니다. 해는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활자들이 글의 퇴고를 위해 앉아있는 카페의 창문에는 빗방울이 맺혀 있습니다. 마치 여름이 보내는 작별인사처럼 느껴집니다.
이번 8월 호에서는 지난 여름을 되짚어보려 합니다. 우리가 이제는 떠나보내야 하는 여름을 그저 흘려보내기가 아쉬워서, 조금이라도 더 여름 속에 있어보고자 이면지에 기록해보았습니다.
잉크가 책갈피를 꽂고 싶은 지난 여름의 장면은 언제인가요?
1.
주황색이고 물빛을 띄던 여름을 회고하며
이번 여름의 초입에는 손톱에 능소화를 심었습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알게 된 친구가 손톱 타투라는 것을 알려주었거든요. 그때부터 이번 여름에는 주황색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손톱 타투를 마치고 친구의 방명록에는 ‘능소화를 잘 키워서 다시 돌아오겠다’라고 적었어요. 그리고 지금, 제 손톱에는 아주 희미한 능소화의 꽃잎 반 개와 옅은 줄기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 능소화가 다 지고 나면, 손톱을 깎아버리면 정말 여름을 보내버릴까 봐 두렵습니다.
또, 이번 여름에는 물빛이라는 단어에 저도 모르게 꽂혀버렸어요. 아마 처음 사본 옥반지의 녹색 빛깔 때문인지, 동대문에 가서 사 온 비즈들로 만든 푸른 원석 목걸이 때문인지, 아니면 민트코어의 유행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몸에 지닌 물빛의 악세사리들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빛이라는 건 애매한 색깔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빛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색깔은 분명히 각자에게 다른 색일 테니까요. 물조차 자신의 색을 모를 텐데 어떻게 우리가 물빛을 알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불확실함, 모호함, 애매함, 잠잠해지지 않는 물빛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진부한 말을 담아낼 수 있는 단어이자 색채라서요.
물 위에는 능소화 꽃잎이 떨어집니다. 잔잔하던 표면은 일렁이며 노을빛을 반사합니다. 주황색 물빛이 가득한 파도가 땅 위에 적힌 여름을 흐릿하게 지워냅니다. 마침내 이 여름의 종장입니다. 영원한 사랑의 계절인 여름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그렇게 사랑했었다고, 너는 나에게 있어서 물빛이자 능소화 꽃잎이었다고.
나는 이제 가을을 펼쳐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2.
生氣(생기)
너를 아끼는 건 어찌 보면 통계에서 비롯된 자각이었다. 학기 중에는 할 수 없는 여러 활동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살 부대끼며 했던 기억, 그때 우리의 열정과 활기를 떠올릴 때면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시간에 ‘방학’이라는 흔해 빠진 말보다 ‘생기’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싶었다. 제대로 지금을 살고 있다는, 내 모든 신경이 반응해 하나로 다 쏠려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으니까. 반짝반짝 소중하게 닦아 오래도록 보관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알까. 이게 참 낯선 감정이라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음을.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듯 떠들어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너를 좋아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최근에는 너의 품속에서 앞으로의 일상을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매일을 너와 함께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렇듯 소중한 너라 지금보다 더 아껴 주고 싶었다. 너의 곁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오래도록 나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올해부터 이것저것 해봤다. 네가 생각나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식을 먹었다.
Mrs. GREEN APPLE 밴드의 <青と夏(아오토 나츠)>를 들으면 네가 생각날 거고,
서한나 작가의 <여름에 내가 원한 것> 표지를 보면 책을 읽던 순간의 분위기가 떠오를 거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귀를 기울이면>을 보면 그날의 추억이 넘실거릴 거고,
수박을 먹으면 정성스레 씨를 빼주던 따스한 애정을 느낄 거다.
그래, 나는 더욱이 너로부터 헤어 나오기 어려워졌다. 다시 너를 만날 때까지 올해 만든 여러 추억을 곱씹으며 살아야겠다. 그때는 너를 얼마나 더 사랑하고 있을지 벌써 기대된다. 너를 떠올리는 한 언제나 함께하는 우리겠지만.
3.
반디길*
(*강아지 삼도, 한라와 산책하던 길 이름이다.)
연락을 늦게 봐서 예약해 둔 하동의 게스트하우스가 취소되면서 제주에 가게 되었다. 시간대를 잘 맞추니 괜찮은 가격에 비행기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다시 예약한 숙소는 네이버 예약이나 사이트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다방지기의 연락처로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돈은 와서 내도 괜찮다는 신기한 곳이었다. 이전에 그곳을 다녀온 친구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자기는 돌아와서 냈다고 이야기해 줬다. 나도 그렇게 될 거라는 건 꿈에도 모른 채 궁금증을 가지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정류장에서 다방지기를 만났다. 어떠한 연락도 없이, 내린 버스 뒤에 그의 차가 있었다. 말로만 듣던 무심이었다. 차를 타고 고요한 시골길을 달리니 무지개칠을 한 건물이 나타났다.
나는 쉼이 필요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쉬는 게 아닌 잠시 멈추어 내가 숨 쉬던 법을 혹은 또 다른 법을 찾고 싶었다. 감정이 밖으로 뻗어나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서 순환하는 시간이었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또 밥을 먹고 자는 걸 반복했다.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일상이 오랜만이었다.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달랐고, 하늘이 달랐고, 바람의 방향과 오가는 이야기들이 달랐다. 무심은 자연이 비슷한 것 같지만 매번 달라져서 자연의 변화를 보는 게 재밌다고 했다. 그가 흥미로워졌다. 그와의 산책길에서는 계속 내린 폭우로 물웅덩이가 가득 생긴 밭이 무밭이라는 것과 대나무가 빽빽한 그곳이 4.3 때 허물어진 집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루는 둘이서 아침으로 커피와 시리얼을 먹으며 살아온 몇십 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어른이 있어 다행이라는 감정도 오랜만에 느꼈다. 타인의 세계를 이렇게 편안하게 엿볼 수 있다니. 서울로 돌아오는 날 무심은 나를 정류장에 데려다주며 인생에 정답은 없으니 나의 길을 잘 찾아가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다 불쑥 또 놀러 오라고 했다.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그저 궁금해하는 마음. 타인과 나를 이루는 것들에 귀를 여는 것. 그게 나를, 결국은 곁을 돌보는 법이지 않을까. 정답은 아니겠지만 일단은 그래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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