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써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나의 장례식엔 꼭 이 음악을 틀어줘

2025.11.16 | 조회 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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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

패션·음악 관련 최신 이슈, 그리고 쓰고 싶은 걸 씁니다.

'일단써'는 글감이 떠오르는 대로 고민 없이 써내리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조용히 혼자서 가버릴래. 해 따라 길을 따라 나 갈래.

 

산울림의 10집, 두 번째 트랙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는 몇 번이고 ‘아아’거리며 홀로 진저리친다. 싫어, 너무 지쳤어, 안녕, 안녕. 이렇게나 내 죽음관을 투영하는 가사가 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생각한다. 한 달만이라도, 일말의 접점도 없는 곳에서 홀로 살고 싶다고. 그 욕구를 거침없이 충족하는 죽음이라는 이벤트. 경험 뒤 아쉬울 일도, 후회할 새도 없이 담백하다.

 

지난 달 목포에 내려갔을 때, 아빠는 조수석에 앉은 내게 요즘 죽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불평했다. 어쩜 다들 몰아서 죽나. 아빠 나이 쯤 되면 이런 일 많아? 부모님들이 많이 가시고, 가끔 본인상, 빙부상도. 많네. 너 미용실 데려다주고 해남 다녀와야 해, 장례식장. 눈물 안 나? 갈 사람은 가는 거지. 죽음은 생각보다 가깝고 잦은 일이구나.

 

그때 생각했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나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죽음 또한 누구나 경험하게 될 과정이니까. 늘 떠나고 싶던 나였고. 그러니 그저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줬으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향인으로서 지나친 관심을 원치 않는다. 장례식장에서도 사람들이 내 얘기 말고 다른 대화를 나누게 하고 싶다.

 

이 방법은 어떨까. 조문객의 콧구멍이 바짝 커질 정도로 감칠맛 나는 홍어회를 대접해 줬으면 한다. 장례식장이라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눈가 근육을 미친듯이 씰룩거리며 앞 사람에게 ‘여기 회 뭐야?’라는 시그널을 보낼 정도로. 육개장도, 수육도, 몇 그릇이고 공기밥을 비울만큼 뜨끈하고 맛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노포에서의 저녁처럼 맛있는 음식에 술잔 기울이다, 검은 양복이 흐트러진 채로 2차에 가길 바란다.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어떤 만화의 엔딩 같다. 끝없이 작별을 되뇌는 가사와 거침없는 일렉 기타 소리는 단호하게 마무리를 향한다. 커다란 노을빛을 등지며 하염없이 뛰어가는 주인공의 모습도 함께 그려진다. 드디어 인생의 막바지에 왔고 떠날 거야. 예쁘게 웃으며 보내줘. 장례식장에서 노래가 나올 , 친구들은 이런 마음을 헤아려 줬으면. 그래, 지희답다. 하고 살풋 웃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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