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지애
지금까지 세 멤버들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받아 보셨는데요, 어느새 제 차례가 되었네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아래의 플레이리스트를 함께 들으며 읽으시면 더욱 재미있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저는 원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한약 봉다리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색칠 공부 시간에 크레파스를 박박 문질러 빼곡하게 채우기를 좋아했고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부터는 다른 친구들보다 내가 동그라미를 좀 더 동그라미처럼 그린다는 이유로 저는 스스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고 믿게 됩니다. 다른 수업 시간에 교과서에 몰래 그린 낙서를 보고 친구들이 칭찬할 때면 괜히 우쭐해지기도 하고, 미술 시간에 사람들 얼굴을 관찰하며 눈, 코, 입의 위치와 형태를 나름대로 잡아보았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는 어려서부터 음악보단 그림에 더 가까운 삶을 살았어요. 소극적인 성격에 주변에 특별히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도 없어서 음악을 접할 일이 별로 없었죠. 그러다 음악을 직접 몸으로 체험할 기회가 옵니다.
바로 힙합 댄스학원이죠.
힙합댄스
어렸을 때 그런 기억 있지 않으신가요? 우리 엄마와 친한 친구 엄마의 부탁으로 친구와 함께 어느 날은 피아노 학원을 갔다가 어느 날은 미술학원에 가는 뭐 그런 일이요. 따지고 보면 가장 처음 음악을 접한 곳은 제 기억에 피아노 학원이었던 것 같은데, 그곳이 수학을 겸하는 학원이었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도 제가 곱셈을 떼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신 피아노 선생님께서 충격을 받으시곤 피아노가 아닌 수학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저는 피아노 보단 수학을 배웠던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아요. 그리고 바로 그 피아노 학원을 추천해주셨던 친구의 어머니께서 이번에는 힙합댄스 학원에 보내기로 합니다. 그렇게 저와 제 친구는 통이 큰 청바지와 박스 티셔츠를 걸쳐 입고 힙합댄스 학원에서 스텝을 밟고 몸을 순서대로 꺾어가며 웨이브를 배웠어요. 저는 부끄러움이 너무 많아서 남들 앞에 서는 걸 굉장히 두려워했기 때문에 삼면이 통유리로 되어있는 공간 속 수많은 사람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 참 고역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만큼 관심과 칭찬은 받고싶어하는, 요즘 말로 조용한 관종의 기질이 다분했습니다. 아마도 저의 흥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댄스학원 선생님께서 제게 웨이브를 잘 춘다 하시니 또 신이 나서 마치 댄서가 된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리듬에 몸을 맡기던 어느 날.
SBS 인기가요에 대한민국을 뒤흔들 열세 살의 소녀가 나타납니다.
ID; Peace B
열세 살의 보아는 반짝거리는 점프 수트를 입고 긴 머리를 찰랑이며 무대 위에서 어른 못지않게 춤을 췄어요. 요즘에야 각종 예능과 온라인에서 하늘이 내려준 재능으로 춤을 추는 어린 친구들이 많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열세 살의 소녀가 무대를 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파격적이었죠. 저는 순식간에 반해버렸고 그때부터 음악을 열심히 듣기 시작했는데요, 잠자리에 들기 전 미리 컴퓨터에 만들어 둔 플레이리스트를 켜두고 잠이 들면 내가 자는 사이에 머리 속에 이 음악들이 입력되어서 음악을 더 잘하는 사람이 되어있겠지? 같은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무슨 야매 최면 치료요법 같네요. 지금 생각하면 음악을 하고 싶어 하기도 전에 음악을 '잘'하고 싶어 했다는 것도 순서가 좀 이상하지만, 하여간에 당시에 키우던 토끼를 품에 안고 보아의 '비밀일기'를 수도 없이 불렀던 것이 제가 노래에 욕심을 냈던 첫 번째 기억입니다.
자우림과 에이브릴라빈
초,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술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도 저는 여전히 음악을 가까이하지 못해요. 중학교 때 보컬 학원에 보내달라고도 해봤지만 결국 용기가 나지 않아서 포기했었고, 엄마를 졸라 신림역 출구 앞 레코드 샵에서 팔던 8만 원짜리 저가형 일렉기타를 사놓고 한 번도 제대로 치지 못한 채 구석에 처박아두기도 하고요. 음악에 대한 막연한 동경뿐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게 더 좋았으면서도 저는 왜 몰래 에어기타를 치곤 했을까요? 기타를 어떻게 잡는지도 몰랐으면서 말이에요. 나중에 밴드를 하면서 만난 친구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들 어렸을 때 신기하게 좋은 음악을 잘 찾아서 많이 들었던데, 정보력이 없는 저는 겨우겨우 레코드 샵을 뒤져서 찾아낸 밴드 음악이 자우림과 에이브릴라빈 뿐이었거든요. 물론 너무나 멋진 팀들이지만, 그때 더 많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밴드 동아리 - 드디어 시작된 밴드 생활, 그런데..
노래방에서 자우림과 시이나 링고의 노래를 불러제끼고 일본의 얼터너티브 힙합 그룹 m-flo를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낸 저는 미술 대학에 진학합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친해진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밴드 이야기가 나왔고 친구는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 보자고 제안했어요. 당시에 제가 다니던 학교의 음악 동아리실은 고라니가 출몰하는 산 아래 컨테이너 건물에 세 개의 밴드부가 'ㄷ'자 모양으로 모여있는 형태였는데요, 가장 먼저 초입에 가까운 동아리부터 들어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누군가 어지럽게 쌓인 물건을 정리하면서 자기들 동아리는 망했다며 마침 문이 열려있는 건너편 동아리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그쪽이 제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면서요. 그렇게 저희는 펑크 동아리와 메탈 동아리 중 메탈 동아리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 떠올려 보면, 맞은편의 펑크 동아리는 뭔가 알록달록했고, 저희가 들어갔던 메탈 동아리는 온통 검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어요. 딱 봐도 검은 쪽이 더 박력 있어 보이지 않나요? 만약 제가 그때 알록달록한 펑크 동아리의 문을 열었더라면 과연 지금쯤 피크를 집어던지며 펑크의 정신을 외치고 있었을지 궁금해지네요.
저는 그때까지도 메탈이라는 장르의 존재를 몰랐어요. 오디션을 마친 후 신입생들로 팀이 꾸려졌고, 전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어서 보컬 파트로 들어갔는데, 동아리 선배들이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을 과제로 내어줍니다. 저는 혼란스러웠어요. 하지만 예쁜 노래를 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건 확실했고, 명색이 메탈 동아리인데 모던록을 부를 수는 없잖아요? 열심히 성대를 긁어보려 했지만 결국 성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패닉에 빠집니다.. 그때부터 저는 궁금했어요. 왜 한국에는 유명한 하드코어 여자 밴드가 없지? 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선배들에게 물어물어 여자 멤버가 보컬로 있는 하드코어, 이모코어 밴드를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음악이 정말로 많았는데 지금 기억에 남는 팀은 Otep과 Paramore 정도네요. Otep은 여자도 남자만큼 힘이 있는 음악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충격을 제게 안겨줬고, Paramore는 파워풀한 장르의 음악을 하면서 노래다운 노래도 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 같은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저는 남자의 중저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Otep처럼 그로울링을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정말 부끄럽고 웃긴 이야기인데요, 저희 동아리의 보컬 파트들은 뒷산에 올라 연습하는 전통 같은 게 있었어요. 상상이 되시나요? 산 중턱에 올라 음악 대학 건물을 마주 보며 그로울링을 울부짖는 저의 모습이..? 건너편 건물에선 성악 연습을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고요. 기괴하네요.
2학년이 되었을 때 저는 밴드에 완전히 빠져 있어서 전공 수업에 빠지는 날이 점점 잦아졌고, 전임 교수님께서는 참다못해 동아리 방을 폭파해야 한다는 말까지 하세요. 그즈음 저는 외국인들이 자주 모이는 펍에서 이모코어 커버 곡들로 공연을 자주 했는데 꽤 반응이 좋아서 관객들도 함께 미쳐 날뛰며 물을 뿌리고 기본 안주로 나온 팝콘과 뻥튀기를 집어 던지며 환호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친구들이 그 시절에 대해 물으면 왠지 부끄러워져서 말을 돌리지만, 사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사는 게 행복했어요. 고향 친구들에게도 나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스스로를 많이 억누르며 살아왔는데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니 얼마나 해방감이 컸겠어요. 이게 구름을 타는 느낌인가 싶더라고요. 음악에 진심이 되어가던 저에게 두 선배가 각각 제안해옵니다. 선배 한 명은 홍대에서 활동하는 메탈 팀에서 여자 보컬을 구하고 있는데 네가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했고 다른 한 선배는 '나랑 서울 가서 음악 할래?' 라고 물었고요.
네, 바로 '나랑 서울 가서 음악 할래?'라고 했던 선배가 바로 지금의 이승현 씨입니다.
그때 저는 자주 공연하던 펍 사장님께 노래를 배우면서 Damien Rice와 The Swell Season 같은 브리티시 음악 쪽으로 취향이 급격히 기울고 있었기 때문에 메탈 팀은 들어가지 않았고요, 무슨 용기가 났는지 냅다 휴학 신청서를 내고 당시 기타 멤버와 저, 그리고 이승현 씨 이렇게 셋이 함께 다브다를 결성해 고향인 서울로 다시 돌아왔어요. 그렇게 우당탕탕 좌충우돌 다브다 생존기가 시작되었답니다. 여담이지만 저 사람이랑은 절대 친해지지 말아야지 했던 선배와 10년이 넘게 밴드를 하게 될 줄도..
쓰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빠트린 이야기도 많지만 즐겁게 보셨길 바래요! 저는 여전히 춤추는 걸 좋아하고요. 아주 슬프고 조용한 노래를 부르다가도 기타를 잡고 머리를 흔들어 제끼며 살고 있네요. 때로는 무언가 완성되지 못한 초조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토끼를 품에 안은 채 몰래 노래를 부르고, 힙합댄스를 추면서, 펍에 모인 사람들에게 누군가를 모방한 어설픈 퍼포먼스를 보이려 했던 어린 시절의 제가 지금의 저를 본다면 저 사람 참 재미있게 살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는 요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열심히 새 앨범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부지런히 하면 빠른 시일 내에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날이 오면, 우리 다 같이 정말 신나게 놀아요!
지금까지 다브다들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길고 긴 이야기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설 보내시고요.😊 곧 만나요-!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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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록 달로록
지애님의 언클린은 어떤 소리가 날지 너무 궁금해지는 글이네요 ㅋㅋㅋ
다브다방 (270)
이제는 세상에 없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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