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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쿨 대신 레스토랑 창업을 선택한 남자의 이야기

쉐이크쉑 창업자 대니 마이어의 Day 0

2024.05.23 | 조회 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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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며낸 성공 포르노가 아닌, 창업자의 좌절, 극복, 성공 순간의 솔직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던 한 대학생이 가족에게 돌발 선언을 합니다. 식당의 보조 매니저로 취직하겠다고 말이죠. 아버지와 어머니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납니다. 파리, 밀라노, 로마를 돌아다니며 식당에서 일을 배우고 돌아왔죠. 그리고 정통 프렌치 일색이던 뉴욕에 새로운 식당을 창업하며, 화려하게 뉴욕의 다이닝 씬에 데뷔합니다. 그리고 큰 성공을 거두죠.

창업을 한 지 15년 뒤, 갑자기 뉴욕 매디슨 공원에 핫도그 가판대를 냅니다. 이벤트 성으로 만든 이 가판대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햄버거, 감자튀김, 밀크쉐이크를 팔았는데 그야말로 대박을 칩니다. 뉴욕에 여행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는 관광 명소를 만든 것이죠. 오늘은 햄버거로 유니콘 기업을 만든 쉐이크쉑 버거의 창업자 대니마이어의 Day 0, 1985년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언제까지 살 줄 알고? 한 마디에 인생이 바뀌다.
2. 5억원의 빚과 14년 임대. 용기와 결단력.
3. 고객과 공원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쉐이크쉑 버거.
4. 식당 체인과 햄버거로 유니콘을 만들다.

 

1. 언제까지 살 줄 알고? 한 마디에 인생이 바뀌다.

대니 마이어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습니다. 딱히 뭘 하고 싶은 것은 없었고, 그랬기에 자신의 주변 친구들이 그랬듯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 하는 지도 모르는 공부였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시험 전 날 그의 인생을 바꾼 순간이 등장합니다.

그는 L-SAT(미국의 로스쿨 입학 시험) 전날 가족들과 식사를 하러 나갔습니다. 삼촌은 표정이 좋지 않은 그를 보며 물었습니다. “변호사 되고 싶은거 아니었어?”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는 확신이 없다고 말했죠.

삼촌은 그 말에 매우 크게 화를 냈습니다. “언제까지 살 줄 알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느냐”고 되물었습니다. 하지만 마이어는 “다른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한다”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삼촌은 말했습니다. “맨날 식당이랑 음식 이야기만 하면서 왜 하고 싶은게 없다는 거냐”라고 말이죠.

 

그는 그 다음 주에 바로 식당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뉴욕의 레스토랑 경영 과정에 등록을 했죠. 그리고 나서는 뉴욕의 한 식당에 보조 매니저로 취직합니다. 아침마다 웨이터를 체크하고, 메뉴를 정리하는 업무를 맡은 것이었죠. 그는 요식업을 전략적으로 배운 뒤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부모님에게 외식 사업을 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반대를 하셨지만 끝내 설득했죠. 그리고 프랑스로 요리를 배우러 유학을 떠납니다. 당시만 해도 뉴욕에서 괜찮은 식당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프렌치를 배워야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스쿨을 준비하던 모범생 마이어는 하루아침에 식당 창업가의 길을 나섰습니다. 로스쿨 입학 시험 전 날 불행했던 그와는 완전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이죠. 파리, 밀라노, 로마 등 미식이 발달한 도시를 다니며 여러 쉐프 밑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그는 이제 식당을 창업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출처: stljewishlight.org
출처: stljewishlight.org
📒memo: 그의 집안은 유대계 가풍을 갖춘 집안으로 할아버지, 아버지는 대대로 큰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던 그였지만, 스스로 뭘 해야할 지는 잘 모르는 철없는 모범생이었죠. 하지만 그는 삼촌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났고, 그 결과 요식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2. 5억원의 빚과 14년 임대. 용기와 결단력.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만든 첫 식당부터 성공을 만들어 냅니다. 그가 내린 큰 결단과 몇 가지 행운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였습니다. 물론, 그가 전략적으로 배우고 준비한 시간도 큰 역할을 했죠.

그가 얻은 첫 번째 행운은 입지가 좋은 가게를 훨씬 저렴한 임대료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었습니다. 운좋게도 자신이 눈여겨 보던 가게의 주인이 은퇴를 앞두고 있었고, 그 공간을 14년 동안 임차할 수 있는 권리를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27살이었던 그에게 첫 시작으로 14년이라는 긴 부동산 기간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그는 과감하게 베팅했습니다. 스스로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가게를 계약하고, 이모, 삼촌, 엄마에게 50만 달러의 돈을 빌려 식당을 개업합니다. 이 때 아버지는 반대를 하셨고, 부자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창업에 용기있게 나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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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행운은 그가 유학 가기 전에 맺은 인연에서부터 왔습니다. 뉴욕에서 와인 수업을 들으며 친해진 친구인 브라인언 밀러가 그 행운이었습니다. 둘이 만날 당시만 해도 밀러는 그저 퇴사한 기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식당을 열게 될 즈음 타임즈 지의 ‘다이너스 저널’의 칼럼의 기자로 채용되었던 것이죠. 밀러는 뉴욕 다이닝 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소개해줬습니다. 그의 도움 덕분에 마이어는 처음 오픈한 식당을 빠르게 성공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의 첫 레스토랑의 이름은 Union Sqaure Cafe 였습니다. 뉴욕의 유니온 스퀘어 그린마켓에서 반 블록 정도 떨어진 거리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었죠. 당시에 뉴욕의 다이닝은 정통 프렌치 일변도였지만, 그는 퓨전 고급 음식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약간의 토스카나와 약간의 보르도 그리고 약간의 샌프란시스코”가 섞인 식당을 만들기로 한거죠. 그는 1985년에 이 식당을 창업했고, 이 식당은 여전히 영업 중입니다. 그리고 그가 세운 회사의 이름도 이 식당의 이름을 따 “Union Sqaure Hospitality Group”이 되었죠.

출처: facebook.com/dannyhmeyer
출처: facebook.com/dannyhmeyer
📒memo: 1980년 대의 50만 달러는 지금의 15억 이상의 가치가 있는 큰 돈이었습니다. 27살에 불과한 그가 그만큼 큰 돈을 베팅한 것이었죠. 그는 스스로 돌아보기에도 지금이라면 못할 것 같은 의사결정이라고 말합니다. 다소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그는 실행했고, 그것을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물론, 그 베팅에는 그가 그 동안 준비했던 과정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3. 공원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쉐이크쉑 버거.

그는 첫 식당 창업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뉴욕에 식당을 열었고, 여는 족족 모두 성공시킵니다. 다양한 장르의 다이닝을 열었고, 모두 사람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죠.

사업을 계속 확장하던 와중에 매디슨 스퀘어 공원을 위한 캠페인에 참여합니다. 사실 사업으로서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원을 복원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 참여한 것이었죠.

 

그리고 태국에서 온 예술가와 함께 핫도그 카트를 설치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공원 복원 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한 태국 예술가는 핫도그 카트를 설치하고 싶어했고, 운영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마이어는 흔쾌히 도와준다고 했죠.

요식업계 종사자들은 마이어를 미친 사람처럼 쳐다봤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11 매디슨 파크 앤 테이블의 동료들이 모두 인디안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8가지의 토핑을 넣을 수 있는 시카고식 핫도그 컨셉을 도입했고, 이것이 소위 말해 대박을 터뜨립니다. 9/11으로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지만, 사람들이 계속 요청해 다시 키오스크를 만들었죠.

그는 이것으로 수익을 거둘 생각이 없었기에, 모든 수익금과 키오스크 자체를 공원에 기부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공원이 복원되고, 사람들이 공원을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핫도그 가판대를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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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핫도그 가판대는 쉐이크쉑 버거의 전신이 됩니다. 그는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보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만들고 싶었기에, 자신이 세인트루이스에서 자라면서 좋아했던 모든 것들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메뉴에 햄버거를 추가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쉐이크와 감자튀김도 좋아했기에 메뉴에 추가했죠. 그냥 앉아서 종이에 메뉴를 낙서했고, 그날 낙서한 메뉴는 오늘날까지 쉐이크쉑에서 제공하는 메뉴의 95% 정도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큰 돈을 벌 생각이 없었기에,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넣었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던 고급 레스토랑과 같은 고기, 같은 치즈를 사용한 버거를 만들었죠. 많은 사람을 쓸 수도 없었기에 햄버거였지만 슬로푸드처럼 조리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쉐이크쉑 버거를 찾게 되었습니다. 맛도 좋았고, 이 매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쉐이크쉑 버거가 온라인으로 바이럴을 탄 계기가 생겨납니다. 눈보라가 쳤고, 누군가가 트위터를 통해 눈싸움을 알리는 바람에 공원에서 눈싸움 대회가 열렸죠. 쉐이크쉑 버거는 모두에게 핫초코를 무료로 나눠줬습니다.

그 순간 기술 대중은 쉐이크쉑을 햄버거 가게 이상의 무언가로 받아들였죠. 그 이후로 뉴욕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꼭 들르는 명소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스스로도 사회 공헌 활동 정도로 시작한 쉐이크쉑 버거가 이렇게 잘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출처: en.wikipedia.org
출처: en.wikipedia.org
📒memo: 가판대가 있던 자리는 쉐이크쉑 버거의 매장이 들어섰습니다. 그는 이 매장을 지어 메디슨 스퀘어 공원에 영구적으로 기부를 했죠. 그는 요식업으로 이미 성공한 사업가였고, 그가 지역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시작한 활동을 통해 더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가 즐기는 메뉴들로 채운 식당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된 것이죠.

 

 

4. 식당 체인과 햄버거로 유니콘을 만들다

그는 Union Sqare Hospitality Group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 그룹은 21개가 넘는 레스토랑 브랜드와 쉐이크쉑 버거, 그외에도 다양한 회사들로 구성되어있죠. 쉐이크쉑 버거는 2015년 상장했고, 한 때 시가 총액이 2조 원 가까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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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햄버거 체인 중 가장 큰 곳은 맥도날드입니다. 맥도날드는 전 세계에 4만 개가 넘는 매장이 있습니다. 시가 총액만 해도 2,000억 달러에 육박하죠. 그리고 쉐이크쉑 버거 이외에도 유명한 햄버거 브랜드로는 인앤아웃, 파이브가이즈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쉐이크쉑 버거는 다양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프리미엄 수제 버거 브랜드라는 새로운 형태의 식문화를 전세계에 퍼뜨렸습니다. 이 문화를 만든 것은 쉐이크쉑 버거가 다른 브랜드에 비해 더 큰 역할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출처: burgerbeast.com/shake-shack/
출처: burgerbeast.com/shake-shack/
📒memo: 쉐이크쉑 버거의 연 매출은 1조 원이 넘습니다. 그것도 전세계의 약 200개의 매장만을 가지고서 말이죠. 지금도 쉐이크쉑 버거 매장 1개는 평균 60억 원의 연 매출을 만들고 있습니다. 단위 면적 매출로만 봤을 때는 이보다 알짜 사업은 없는 것이죠.


💬 “가게의 매출이 하루 아침에 세배가 되었어요.” - 대니 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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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까지 살 줄 알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느냐”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떤 일을 떠올렸나요?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나요?

❓ “사업을 잘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적은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잘 해결하고 좋은 사람들과 재미있게 일하는 사람들” 이라는 말에 공감하시나요? 나는 지금 전자일까요 후자일까요?

❓ 트위터 사례처럼, 내 가게 앞에서 눈싸움을 한다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 것 같나요? 불평하며 말렸을까요? 아니면 대니 마이어처럼 핫초코를 건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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