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다른 게임과 다릅니다.” 테트리스가 전 세계인의 게임이 되기까지

어린 시절 한 번쯤 플레이해 본 게임, ‘테트리스’를 기억하시나요? 단순한 퍼즐 맞추기 게임이지만, 한 번 시작하면 쉽게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남녀노소를 사로잡은 중독성 강한 게임이죠. 하지만 테트리스가 어떻게 탄생했고, 우리의 삶에 스며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테트리스는 1984년 소련의 모스크바 과학 아카데미에서 한 젊은 연구원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놀라울 정도로 인기를 끌어 “서구권에서 소련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만든 함정”이라는 음모론까지 등장할 정도였는데요.

이처럼 전 세계를 사로잡은 단순한 게임인 테트리스는 애플TV에서 영화로 제작될 만큼 흥미로운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테트리스의 저작권을 둘러싼 정치적·역사적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요. 오늘의 주인공인 행크 로저스(Henk Rogers)는 테트리스의 저작권을 확보하고 세계적으로 보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확신과 신념, 그리고 대담한 성격이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죠.

오늘은 더 테트리스 컴퍼니(The Tetris Company)의 창업자 행크 로저스의 Day 0,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 안 되면 되게 만들자. 첫 사업의 시작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행크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보석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가족들은 다시 일본으로 이사했지만, 행크는 홀로 하와이에 남아 대학을 다녔습니다.

대학 시절 행크는 자신을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고, 던전 앤 드래곤을 부전공한 사람”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컴퓨터와 게임에 빠져 있었습니다. 당시 게임 동아리에 가입했던 행크는, 던전 앤 드래곤의 게임 마스터를 돕는 작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몰두하느라 학교 과제는 뒷전이었다고 하네요.

이후 행크는 현재의 아내가 된 일본인 여자친구를 따라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6년 동안 아버지의 보석 무역 사업을 도우며 새로운 보석 재료를 가공하는 기술을 연구했는데요. 하지만 그는 당시 아버지의 사업에 대해 “잘하시긴 했지만 체계적이지 않았다”고 회상합니다. 모든 업무를 즉흥적으로 처리하다 보니, 사업이 시스템화되지 않아 아버지가 없으면 운영이 어려운 구조였다고 말합니다.

1982년, 행크는 6년간 함께했던 아버지 곁을 떠나 독립을 결심합니다. 당시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개인용 컴퓨터 붐이 일고 있었고, 그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해 PC용 롤플레잉 게임을 개발하기로 합니다.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덕분에 게임 개발은 가능했지만, 게임 배급이나 퍼블리싱, 경영에는 문외한이었던 행크. 일본에서 사업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던 그는 무작정 소프트뱅크를 찾아갑니다. 현재는 거대 기업이지만, 당시 소프트뱅크는 단순히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상점에 유통하는 작은 회사였죠.

그곳에서 그는 배급사를 소개받으려 했지만, 오히려 “전화를 받을 사람만 있으면 개인도 게임을 배급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소프트뱅크는 그에게 디스크를 복제해줄 회사를 연결해 주겠다며, 소프트뱅크가 대금을 지급하면 비용만 처리하면 된다고 간단한 방식을 설명했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말로 들었을 때는 간단해 보였지만, 실제 배급 과정은 훨씬 복잡했고, 일본어를 할 줄 몰랐던 행크에게는 몇 배는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모든 과정이 흥미로운 경험이었다고 회상합니다.

1984년, 행크는 당시 마우스가 없던 컴퓨터 환경에서 키보드의 숫자 키(텐키)만으로 조작하는 일본 최초의 롤플레잉 게임, ‘블랙 오닉스(The Black Onyx)’를 개발해 출시합니다. 이 게임은 그해 일본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요.

사실 이 성공 뒤에는 행크만의 전략적인 마케팅이 있었습니다. 출시 당시 소프트뱅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3,000개를 주문할 계획이었지만, 일본에서는 롤플레잉 게임이 생소했기 때문에 결국 주문량을 600개로 대폭 줄였습니다. 이를 본 행크는 “아, 이제 망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게임을 성공시키기 위해 고민하던 그는 직원들을 모아 일본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을 어떻게 접하는지 질문을 던졌고, 잡지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에 그는 팀원 중 한 명을 시켜 잡지사와 미팅을 잡고, 직접 방문해 블랙 오닉스 플레이 방법을 시연한 뒤, 기자들이 직접 해볼 수 있도록 게임을 남겨두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그가 방문했던 모든 잡지에서 블랙 오닉스를 극찬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결국 소프트뱅크는 다시 행크에게 연락해 4월과 5월에 1만 개의 추가 주문을 넣었고, 덕분에 블랙 오닉스는 그해 일본에서 1위 게임이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2. “이건 다른 게임과 다릅니다.” 성공에 대한 확신

2년 동안 게임 개발과 출시에만 몰두하며 번아웃이 온 행크는, 첫 게임 블랙 오닉스가 성공한 후 두 번째 게임을 개발할지, 아니면 회사 운영에 집중할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결국 그는 밤낮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이 평생 지속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일본에 들여올 게임을 찾는 동시에 회사 운영에 집중하기로 결정합니다.

1980년대 일본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영화나 음악을 수입하는 흐름이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행크는 게임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죠. 그러던 중 행크의 아내는 닌텐도의 야마우치 사장이 바둑을 즐긴다는 기사를 읽었고, 이를 전해 들은 행크는 그를 공략하면 닌텐도를 통해 바둑 게임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행크는 닌텐도의 사장인 야마우치에게 팩스로 비즈니스 미팅을 요청합니다. 그는 미팅에서 “30만 달러를 투자해주시면, 닌텐도가 출시할 수 있도록 바둑 게임을 개발해드리겠습니다”라는 제안을 했고, 놀랍게도 야마우치는 단번에 “좋습니다”라며 제안을 수락했죠.

행크는 즉시 영국에 있는 프로그래머와 계약을 체결한 뒤, 9개월 동안 함께 게임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게임을 들고 야마우치를 다시 찾아갔지만, 돌아온 피드백은 단호했습니다. “이 게임은 닌텐도에는 너무 약합니다.” 행크는 닌텐도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더 나은 바둑 알고리즘은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결국 거절당하고 말았는데요.

그러나 바둑 게임의 성공을 확신했던 행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닌텐도에서 직접 출시하지 않더라도 바둑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자신이 직접 출시와 판매를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30만 달러의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때까지, 한 개가 팔릴 때마다 1달러의 수익을 닌텐도에 지급하겠다고 제안하죠.

야마우치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결국 게임은 출시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5만 장이 판매되는 나름의 성과를 이뤘지만, 투자금을 전액 회수하지는 못한 셈이었는데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닌텐도와의 관계를 구축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업무적 관계를 넘어, 게임 업계의 거물인 닌텐도 대표와 개인적으로 바둑을 둘 정도의 친분을 쌓게 된 것이죠. 이는 30대의 무명 회사 대표였던 행크에게 이후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후 행크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게임의 라이선스를 확보해, 일본에서 퍼블리싱하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1988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 전자제품 박람회(CES)에서 테트리스라는 게임을 처음 접하게 되는데요.

당시 대부분의 게임은 캐릭터가 등장하거나 총알이 날아다니는 화려한 그래픽이 특징이었지만, 테트리스는 기하학적 도형으로만 구성된 단순한 퍼즐 게임이었습니다. 이 낯선 게임은 다소 뜬금없어 보였지만, 행크는 본능적으로 강한 흥미를 느꼈죠.

테트리스는 당시 소련 과학 아카데미의 컴퓨터 과학자였던 알렉세이 파지트노프(Alexey Pajitnov)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그는 원래 음성 인식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으나, 새로운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우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연습하면서 펜타미노라는 퍼즐 게임을 만들게 되죠. 이 게임은 다섯 개의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블록을 조합해 직사각형을 만드는 방식이었는데, 알렉세이는 이 게임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느꼈습니다.

게임을 더 빠르게 만들기 위해 도형 조각을 회전시키는 기능을 추가했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서 실시간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으로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존 펜타미노에서 한 블록을 빼고 네 개의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테트라미노라는 블록을 만들었고,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테트리스였습니다.

이 게임은 빠르게 소련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사람들이 플로피 디스크를 통해 복사하면서, 소련의 사무실에서는 거의 모든 직원이 테트리스를 즐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심지어 이 게임이 “서구권에서 소련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만든 함정이다”라는 음모론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행크 또한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중독성을 지닌 테트리스에 매료되었고, “와, 이거 대단한데?”라며 감탄했습니다. 그는 테트리스 샘플을 챙겨 일본으로 돌아왔고, 회사 직원들도 이 게임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에 확신을 가진 행크는 일본에서 테트리스를 출시하기 위해 200만 달러의 대출을 받아 생산 자금을 마련합니다.

테트리스를 출시하기 위해 대출까지 받은 행크는, 테트리스의 라이선스가 영국의 미러소프트(Mirrorsoft)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행크는 일본 내 모든 플랫폼(PC, 콘솔, 아케이드)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을 제안했지만, 이미 미러소프트가 일본의 아타리(Atari)에 모든 권리를 넘긴 상태였고, 결국 행크는 PC에 대한 라이선스만 확보할 수 있었죠.

하지만 행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PC용 라이선스가 아닌, 닌텐도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콘솔용 라이선스였습니다. PC 게임은 복제가 쉬워 판매량에 한계가 있었지만, 닌텐도는 게임을 반드시 구매해야만 플레이할 수 있어 사업성이 훨씬 뛰어난 플랫폼이었죠.

이에 행크는 아타리와 직접 협상하기로 결심하고, 대표인 나카지마와 미팅을 잡았습니다. 그는 왜 자신이 일본에서 테트리스를 배급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설명했고, 두 번째 미팅에서 마침내 닌텐도용 테트리스의 콘솔 라이선스를 30만 달러에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행크는 테트리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것을 확신했습니다. 게임이 출시되면 주문이 몰릴 것을 대비해, 최소 20만 개의 물량을 확보하고 싶었죠. 하지만 영업팀이 선주문을 받은 물량은 고작 4만 개뿐이었습니다.

이에 행크는 전에 친분을 쌓았던 닌텐도의 야마우치 사장을 직접 찾아가 말했습니다. “제 판매나 마케팅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게임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컴퓨터 게임 중 하나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영업팀은 4만 개밖에 팔지 못했어요.”

행크의 이야기를 들은 야마우치는 마리오 시리즈의 개발자인 미야모토 시게루를 불러 테트리스가 좋은 게임인지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미야모토는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네, 좋은 게임입니다.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도 테트리스를 즐기고 있습니다. 꼭 게임을 해야 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말이에요.”

이 말을 들은 야마우치는 유통망을 모아 더 많은 주문을 확보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당초 4만 개였던 초기 물량에 3만 개를 추가해, 총 7만 개의 닌텐도용 테트리스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마주한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테트리스는 직접 플레이해봐야 그 재미를 알 수 있는 게임이었지만, 광고나 매장에 진열된 박스만으로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죠. 1월이 되자 대량의 재고가 쌓였고, 유통업체들은 이를 처리하기 위해 가격을 대폭 낮춰 판매하려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행크는 유통업체들에게 재고를 유지할 것을 당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크의 예측은 정확했습니다. 실제로 테트리스를 직접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고, 1월 말에는 모든 매장에서 테트리스가 매진되었습니다. 유통업체들은 추가 주문을 요청했고, 행크는 더 많은 생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가족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는 설득 끝에 처가의 부동산을 담보로 200만 달러의 대출을 받아, 20만 개의 추가 물량을 생산했습니다. 이는 엄청난 도박이었지만, 행크는 테트리스의 성공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확신대로, 닌텐도용 테트리스는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3. 결단력과 대담함으로 원하는 것을 얻다.

닌텐도용 테트리스가 성공적으로 출시된 후, 행크는 닌텐도가 새로운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를 개발 중이라는 소식을 접합니다. 닌텐도는 새로운 하드웨어를 출시할 때 번들 게임을 포함하는 정책을 갖고 있었고, 행크는 테트리스가 게임보이에 최적화된 게임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게임보이는 흑백의 작은 화면을 가진 기기였기에, 화려한 그래픽이 중요한 일반적인 콘솔 게임보다는 단순한 퍼즐 게임인 테트리스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는 곧바로 닌텐도 미국 지사를 찾아가 테트리스를 게임보이에 번들로 포함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닌텐도 미국 법인 사장 아라카와 미노루는 “우리에겐 마리오가 있다”며 거절했는데요. 이에 행크는 강력히 설득하며 말했습니다.

이에 아라카와는 내부 전문가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고, 그들은 테트리스가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테트리스는 당시 여성들의 유입을 이끌어낸 최초의 게임 중 하나로 평가받았는데, 이는 곧 닌텐도의 게임보이 판매량을 두 배로 늘릴 기회이기도 했죠.

그러나 행크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테트리스의 휴대용 기기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라이선스를 확보해 오겠다고 자신있게 말했고, 결국 닌텐도와 선불 100만 달러짜리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행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테트리스의 휴대용 기기 라이선스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이전에 소련과의 테트리스 라이선스를 협상을 도왔던 로버트 스타인이라는 사람을 대리인으로 고용했죠. 하지만 로버트로부터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받지 못하자, 1989년 2월 행크는 직접 관광 비자를 받아 모스크바로 떠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테트리스의 원 개발자는 소련 과학자 알렉세이 파지노프였지만, 게임의 라이선스는 엘로그(Elorg)*라는 국영 기관이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행크는 엘로그를 무작정 찾아가 자신을 테트리스 배급사 대표라고 소개하며, 라이선스 담당자와의 미팅을 요청했습니다.

*Elorg(Elektronorgtechnica): 컴퓨터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수출입을 독점적으로 담당했던 소련의 국영 조직.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소련 대외무역부에 의해 통제되었다.

결국 그는 엘로그 국장 니콜라이 벨리코프의 주선으로 테트리스 라이선스 담당자들과의 회의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회의에는 총 여덟 명이 참석했고, 그중 한 명은 테트리스의 개발자 알렉세이였죠.

당시 회의 분위기는 마치 심문과도 같았습니다. 소련 측 인사들은 게임 산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으며, 행크는 콘솔, PC, 아케이드 게임의 차이점과 수익 구조까지 상세히 설명해야 했습니다. 설명을 들은 그들은 중간 중간 러시아어로 논의를 이어갔고, 행크는 그 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 방식을 유심히 지켜보던 행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도 다소 적대적이며 강한 태도로 논의에 임했고, 행크는 이러한 스타일에 맞춰 본인 또한 강하게 밀어붙이기로 합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소련 측은 결정에 시간이 필요하기에 “언제 다시 모스크바에 올 계획이냐”고 물었지만, 행크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행크의 발언은 엄청난 도박이었지만, 그의 강경한 태도는 결국 통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협상은 마무리되었고, 행크는 게임보이용 테트리스가 판매될 때마다 25센트의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합니다.

심지어 이 미팅을 주선해 준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행크에게 닌텐도용 콘솔 테트리스 라이선스 계약까지 제안합니다. 결국 무작정 모스크바로 떠났던 행크는 게임보이 라이선스뿐만 아니라, 당시 전 세계 그 누구도 소유하지 못한 일본 닌텐도용 테트리스 라이선스까지 확보하고 돌아왔죠. 그리고 게임보이와 함께 테트리스가 출시되자 번들로만 3천만 대, 그리고 별도로 추가 500만 대가 팔리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이 해체되면서 엘로그를 포함한 많은 정부 조직이 민영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엘로그는 니콜라이의 소유가 되었죠. 이후 1993년, 테트리스의 개발자 알렉세이는 행크에게 테트리스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동안 테트리스의 수익은 전부 소련 정부에서 가져갔기에, 알렉세이는 단 한 푼도 벌지 못한 상태였죠.

행크는 알렉세이의 저작권 문제뿐만 아니라 미국 이민까지 지원하며, 1996년 테트리스의 판권을 소유한 더 테트리스 컴퍼니(The Tetris Company, TTC)를 함께 설립했습니다. 이후 엘로그와 TTC는 지분을 50:50으로 나누고 수익을 공유하기로 합의합니다.

그러나 공동 소유 구조로 인해 의사 결정은 매우 비효율적으로 진행되었고, 심지어 3년간 새로운 비즈니스 계약을 체결하지 못할 정도로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결국 행크는 이 상황이 지속 불가능함을 깨닫고, 니콜라이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결심하죠.

행크는 TTC를 운영하며 테트리스의 모바일 폰 라이선스를 확보해 큰 수익을 올렸고, 이후 Blue Lava Wireless라는 게임 배급사를 설립해 연 매출 2,000만 달러를 기록합니다. 이렇게 자금을 모아, 결국 2005년 TTC가 엘로그를 완전히 인수하며 행크와 알렉세이는 테트리스의 소유권을 온전히 확보하게 됩니다.

테트리스의 저작권 분쟁이 마무리될 즈음, 행크는 테니스를 치던 중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를 겪고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게 됩니다. 당시 구급차 운전자조차 그가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할 정도로 위중한 상태였죠. 당시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 행크는 “말도 안 돼. 저는 아직 번 돈도 다 쓰지 못 했다구요.”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하는데요.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행크는 남은 시간과 돈을 사회적 미션을 위해 쓰기로 결심합니다. 2008년, 그는 하와이에 블루 플래닛 재단(Blue Planet Foundation)을 설립하고, 탄소 기반 연료 사용을 줄이는 활동을 시작합니다. 또한 우주 기지 건설, 차세대 에너지 개발 등을 통해 기후 위기를 비롯한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인터뷰에서 “지금까지의 성과가 얼마나 운 덕분이고, 얼마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행크는 주저 없이 “전부 노력 덕분이다”라고 답합니다. 그는 자신의 여정을 서핑에 비유했습니다.

테트리스에 매료된 그 순간부터, 저작권을 확보하기 위해 무작정 모스크바로 떠나고, 마침내 전 세계에 이 게임을 출시하기까지. 행크의 끈질긴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테트리스를 즐길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 ”사람들은 제가 희망을 가지고 있냐고 묻지만, 저는 희망이 아니라 결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요.” - 행크 로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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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한석훈  김세현

글  김계령

편집  주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