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커피하면 어떤 브랜드가 떠오르시나요? 초록색 세이렌 로고의 스타벅스 커피가 대표적일 겁니다. 스타벅스는 전 세계 카페 문화를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스타벅스는 주 20시간 이상 근무하는 직원에게 보험과 대학교육을 무상 지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스타벅스는 원래 원두만 파는 가게였습니다. 작은 원두 가게를, 카페 문화를 선도하는 커피 체인점으로 바꾼 것은 다름 아닌 브루클린 빈민가 출신의 영업맨, 하워드 슐츠였습니다.
하워드 슐츠는 어떻게 145조의 커피제국을 세울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스타벅스 전 CEO, 하워드 슐츠의 Day 0, 1976년으로 돌아갑니다.
1. 수 많은 거절은 오히려 자존감의 재료가 된다.
하워드는 공부를 썩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운동과 승리에 대한 집념만큼은 대단했던 아이였습니다. 하루 종일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 놀며, 할 수 있는 모든 스포츠에 참여해 이기곤 했죠. 하워드는 이 시기를 돌아보며 운동장에서 경험한 강인함과 경쟁심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1976년, 하워드는 프린터로 유명한 제록스의 영업사원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인턴이나 다름 없었던 하워드는 6개월 간 매일 50곳 이상의 사무실과 가정집을 돌며 영업을 했습니다.
대부분 거절이었지만 하워드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두각을 나타냈죠. 이를 회사 사람들이 알아본 덕에 몇 년간 계속 일하게 됩니다.
하워드는 이 시기를 회상하면서 ‘수많은 거절에서 오는 실망감을 극복하면서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고 이야기합니다.
제록스는 IBM처럼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하는 회사였지만 하워드의 마음은 또 다른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반복적인 업무가 자신의 창의력을 죽이는 것 같았죠.
마침, 친구가 뉴욕에서 사무실을 열어 총괄매니저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워드는 제록스를 퇴사하고 친구 회사에 합류하게 됩니다.
총괄매니저로 일하던 하워드는 시애틀에 출장을 갔다가 ‘스타벅스’라는 가게에 잠시 들립니다. 당시 스타벅스는 커피 원두를 파는 작은 가게였어요. 하워드는 스타벅스를 경험하고는 생각합니다. “와, 이건 미쳤는데?”
스타벅스 원두로 내린 훌륭한 커피의 맛은 물론, 매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 보면서 이 사업을 확장하는데 합류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하워드답게 1년간 스타벅스 창업자들에게 같이 일하고 싶다고 설득했죠.
창업자들도 시애틀에서 포틀랜드로 확장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하워드를 받아들입니다. 하워드는 스타벅스에서 유통과 마케팅을 담당하게 되었는데요. 마침 출장 차 들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현지 커피문화를 접하게 됩니다.
밀라노에서는 2~30미터마다 에스프레소 바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는데, 하워드는 그 중 한 가게에 매일 같은 시간에 방문합니다. 그 곳에서 매일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하워드는 에스프레소 바가 밀라노 사람들에겐 ‘집과 직장사이의 제 3의 장소’라는걸 깨닫게 됩니다. 에스프레소 바가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이탈리아 현지 커피 문화에 푹 빠진 하워드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미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스타벅스 창업자들에게 원두뿐만 아니라 커피도 팔아야 한다고 말하죠.
이 역시 설득하는데 1년이 걸렸습니다. 결국 1985년 네 번째 매장을 새로 열 때, 이 매장의 3분의 1을 에스프레소바로 열도록 허락을 받습니다.
에스프레소 바를 열자, 순식간에 수 백 명의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시애틀에 ‘카페라떼’도 처음 소개했죠. 아주 성공적인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성공적이었던걸까요? 스타벅스의 창업자들은 에스프레소바를 계속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다른 매장과의 매출 차이가 너무 나고, 경영방식도 갈리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었죠.
하워드는 돈도 더 벌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매일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 곳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타벅스로부터 독립해서 에스프레소 바를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죠. 그리고 시애틀과 밴쿠버에 ‘일 조르날레’라는 이름으로 매장을 열게 됩니다.
투자금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4개의 매장을 열고 직원들의 의료보험까지 보장해주기 위해선 170만 달러를 모아야 했습니다.
스타벅스 창업자들도 2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다른 곳에서 60만달러를 모금해와야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 걸려있었죠.
이때, 하워드는 제록스 영업맨 시절을 떠올리게 돼요. 수없이 많았던 방문 판매 거절을 떠올리며 계속 투자자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1986년, 마침내 투자금을 모아 첫 매장을 오픈합니다.
1년 후, 스타벅스 창업자 중 한 명인 제리가 하워드를 찾아옵니다. 스타벅스를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는데, 그 적임자가 하워드라고요. 투자금 확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마침내 스타벅스를 인수하게 됩니다.
2. 카페 문화에 대한 확신으로 용기를 내다.
1987년, 스타벅스의 6개 매장을 인수한 하워드는 매장을 전국으로 확장하겠다는 비전을 가집니다.
그때 당시엔 고급 카페가 많지도 않았고, 친구들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었죠.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도 스타벅스가 생기기 전까지는 카페 문화랄 것이 없었죠)
하지만 하워드는 이탈리아에서 경험한 카페 문화를 미국에서도 재현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스타벅스가 단순히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라 집과 직장 사이의 또 다른 커뮤니티가 될 것이라고요.
전국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우선 인력과 프로세스, 인프라에 집중적으로 투자합니다. 그래서 초기엔 수익은 커녕 적자만 볼 수 밖에 없었죠.
또한 광고와 마케팅보다 브랜딩과 카페에서의 고객 경험에 집중해 한 번에 한 명씩 천천히 고객을 확보했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도 와 달라고 손짓하는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이를 잘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는데요. 1996년 도쿄에 진출할 때였습니다. 그 때 컨설턴트는 스타벅스에게 일본 진출은 재앙이라 말합니다. 일본에서는 카페에서 흡연이 가능한데 스타벅스엔 금연 규정이 있고, 또 도쿄의 살인적인 임대료 때문에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요.
하지만 하워드는 일본 진출이 스타벅스에 도움이 될 거라고 주장했죠. 근거는 없었습니다. 그저 스타벅스가 국가대표가 되고,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해외로 가야 한다.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내야 한다며 이사회를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8월 중순, 도쿄에 첫 매장을 열기로 합니다. 일본의 더위는 높은 습도와 기온으로 유명한데요. 뜨거운 커피만 팔던 스타벅스에게 성공을 기대하긴 어려웠습니다.
심지어 CNN에서 라이브로 오픈 현장을 취재하기로 했죠. 하워드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사람이 없을게 뻔하다 생각으니까요.
그러나 다음 날 아침 6시, 오픈 현장에는 수백명이 몰렸습니다. 하워드가 관계자에게 엑스트라를 고용했냐고 물을 정도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죠.
맨 처음 입장한 고객은 ‘더블 톨 라떼’를 주문했습니다. 이미 스타벅스의 메뉴를 알고 있었고, 스타벅스가 일본에 오길 기 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3. 브랜드를 구축하면 확산은 더 쉬워진다.
90년대에 들어서서 스타벅스는 아이스크림 제조 업체, 슈퍼마켓, 사탕 회사 등 여러 종류의 회사들과 브랜딩 파트너십을 맺기 시작합니다.
가장 유명한 건 병에 들어있는 스타벅스 프라푸치노 음료였죠. 프라푸치노 병커피는 펩시와 협업을 통해 수십억 달러 규모로 성장합니다.
너무 넓은 범위의 확장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희석되진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지만, 하워드는 ‘커피를 다른 방식으로 파는 것을 고객이 용인할 것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스타벅스가 매장에서만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 다른 형태의 제품으로 커피를 판매할 때도 고객들이 이를 받아들이고, 여전히 스타벅스의 브랜드 가치를 인정할지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죠.
실제로 코스트코 안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팔 것인가에 대해 스타벅스 내부에서 큰 논쟁이 벌어졌었는데요. ‘매장보다 저렴하게 파는 것이 맞는가’가 주요 쟁점이었죠.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스타벅스에 와본 적이 없는 수십만 명의 고객에게 스타벅스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하워드는 협업을 거치며 ‘매장에서 브랜드를 구축하고, 다른 식료품 섹터로 확장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죠.
4. 고객 경험 훼손을 막기 위해 1만 명의 매니저를 직접 만나다.
2000년, 하워드는 자신의 열정이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하고, CEO 자리에서 물러나 글로벌 최고 전략가로써 해외 확장에만 집중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2008년에 이르러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발하면서 고객들의 소비형태가 변하게 됩니다. 경기가 안 좋아지자 주말 매출이 급감했고, 유가 상승으로 드라이브 스루로 방문하던 고객들도 줄기 시작했죠. 맥도날드와 던킨도 커피를 팔기 시작하면서 경쟁사가 늘었습니다.
심지어 당시 스타벅스는 무리한 확장으로 위기에 빠져있었습니다. 주가에 온 신경이 쏠려 회사의 본질이었던 ‘카페 경험’이 훼손되고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성장에 집중한 나머지 서비스의 질적 하락을 놓치고 있었던 거죠. 이 시점에 스타벅스의 구원투수로 하워드가 일선에 다시 복귀하게 됩니다.
하워드는 먼저 미국 내에서만 600개가 넘는 매장을 폐점시킵니다. 600개의 매장 중 90%가 오픈 1년 미만의 매장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굉장히 단호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스타벅스의 ‘카페 경험’의 가치를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서 매장 매니저들과 직접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시 1만 명 정도의 매니저가 있었는데요, 경기장을 빌려서라도 모두 한 곳에 모아야 한다고 했죠.
그리고 실제로 전 세계의 매니저들을 모두 뉴올리언스에 모았습니다. 그리고 스타벅스가 중요시하는 가치와 회사의 성공을 위한 전략을 공유했습니다.
하워드는 리더일수록 취약성을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 대해 아는 것과 본인이 믿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죠. 그리고 매니저들에게 고객들과 일일이 상호작용하라고 요청했죠.
이 컨퍼런스를 위해서 항공, 숙박, 음식을 포함해 3000만 달러가 들었지만, 분명 투자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컨퍼런스를 마친 지 하루 만에 매출 궤도가 바뀌기 시작했고, 6개월 만에 완전한 상승세로 돌아섰거든요.
💬 “미친 듯이 일하던 것을 잠시 멈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하워드 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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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천민기 픽디 CEO 김세현 에디터
글 천수승 에디터
편집 김미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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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노트가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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