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BS에서 방영하는 <골 때리는 그녀들>이 인기다. 현재 <골 때리는 그녀들>의 시청률은 12월 22일 닐슨코리아 기준 9.5%까지 상승했다.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예년에 비해 낮아진 지상파의 현 상황에 골때녀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셈. 갈수록 기량이 발전하는 선수들과 팀 간 조직력이 날이 갈수록 올라가면서 시청자 입장에선 보는 재미가 더 늘어나면서 시청률도 크게 상승하고 있었다.
지난 22일 방영한 FC 구척장신 Vs FC 원더우먼과의 경기. 계속되는 가운데 김진경의 킥인이 박슬기의 손을 맞고 들어가 김진경 역시 멀티골을 기록했다. 이어 송소희가 코너킥을 성공시켜 해트트릭을 기록했지만, 차수민이 쐐기골을 터뜨렸고, 종료 직전 아이린의 골킥까지 골로 이어져 이날의 경기는 최종 6:3으로 구척장신이 승리했다. 해당 방영분은 커뮤니티에서 실시간으로 경기 장면이 움짤이 나오고 인기게시판으로 갈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그런데 방송 종료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골때녀의 편집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이 날 방송에서는 FC 구척장신과 FC 원더우먼 두 팀이 3:0에서 3:2, 4:2, 4:3으로 긴박하게 경기를 이어가다가 6:3으로 FC 구척장신이 경기를 승리한 것처럼 나왔다.
하지만 골대 옆 물병 갯수, 감독이 앉아 있는 위치, 상황에 맞지 않는 중계진 멘트, 득점을 표시하는 상황판에 4:0으로 표시된 장면이 비치는 등 여러 이유를 바탕으로 방송과는 다르게 FC 구척장신이 전반에 4-0으로 리드하며 쉽게 경기를 이기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경기 시작 후 점수 차가 벌어지면서 전반이 5:0으로 마무리됐고 후반까지 6:3으로 경기가 끝났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 마디로 구척장신이 전반에 5:0으로 압도하고 후반에 한 골을 더 추가해서 6:3으로 가볍게 이긴 경기를 골때녀 제작진이 편집을 통해 3:0→3:2→4:3→6:3으로 진행된 것처럼 조작했다는 것.
결국 SBS는 24일 "지금까지의 경기 결과 및 최종 스코어는 방송된 내용과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도, 일부 회차에서 편집 순서를 실제 시간 순서와 다르게 방송하였습니다. 저희 제작진의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였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예능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보다 스포츠의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땀흘리고 고군분투하며 경기에 임하는 선수 및 감독님들, 진행자들, 스태프들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편집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향후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고 의혹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번 편집 조작 사건은 프로그램과 출연팀 선수들, 그리고 프로그램을 시청한 시청자에게 아픔만 남겼다. 우선 프로그램은 간만에 흥행한 지상파 예능으로써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편집 조작으로 찬물을 끼얹게 됐고, 출연팀 선수들 자격으로 나온 출연진들은 승리를 위해, 프로그램을 위해 구슬땀 흘려 연습한 것이 제작진들의 편집 조작으로 물거품이 되게 생겼고, 시청자들은 자신이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조작됐다는 전부 배신감이 클 것이다.
MC 역할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출연진 및 각 팀 감독 또한 제작진과 함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스포츠 선수와 스포츠 캐스터 출신이면서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스코어 조작에 가담 또는 묵인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들도 공범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골때녀 제작진 측은 다시 한 번 사과문을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필자 또한 위 글에 동의한다. 이 사건이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이번 사건은 예능의 목적인 재미를 위해 골 순서를 뒤바꿔 편집한 '악마의 편집'으로 인해 생겼다. 져주기같은 스포츠 팬이 아는 '승부조작'으로 비난받는 것이 아니다.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서 ‘조작’이라는 말이 장난으로 꺼내도 정말 민감하다는 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의 조작을 '승부조작' 쪽으로 생각하기엔 지나치다. 출연진들에게 이 사건에 책임이 있으니 하차하라는 요구 역시 지나치다.
또한 앞서 FC 원더우먼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받으면서 인스타그램 악플 테러를 감내해야 했던 골키퍼 박슬기 씨가 이번 조작으로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팽팽한 접전이 아닌 전반전부터 일방적인 경기였던 것으로 밝혀져 오히려 박슬기 씨가 안타깝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방송 후 SNS에 악플을 받는 박슬기 씨에 대해 골때녀 출연진 송소희 씨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점점 성장한다는 댓글을 달며 박슬기 씨를 위로했다. 선수로 뛴 경험이 없음에도 못 한다는 이유만으로 개인 SNS에 가서 악플을 다는, 그야말로 시청자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아무리 악마의 편집이라도 개인 SNS 악플은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박슬기 씨는 믿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죄송하다며 사과했지만, 사과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박슬기 씨가 아닌 박슬기 씨의 개인 SNS에서 악플을 단 악플러들이다.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인간은 한번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이자 초대 회장의 명언이다. 이 말은 국내축구 팬에게도 한 번 쯤은 들었을 명언이다.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당시 인천 유나이티드 FC 서포터들이 전북을 상대로 할 때 걸개로 내걸기도 했기 때문. 정주영 회장의 명언대로, K리그는 승부조작 사건 이후 이미지와 신뢰를 모두 잃었으며 온갖 오명과 불명예를 안게 됐다. 잃어버린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을 생각하면, 한 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 수 있는 사례다.
제작진은 조작 논란을 시인하며 사과문을 올렸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시청자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신뢰를 깼기 때문이다. 한때 시청자에게 사랑받던 프로그램은 현재 조작 논란으로 시청자를 기만한 조작 방송이란 오명까지 쓰이며 프로그램 폐지와 제작진 문책을 주장하는 여론도 생길 만큼 이미지는 추락한 상황이다. 국내축구가 신뢰를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듯이, 골때녀도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 것이라 생각한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보면 대본대로 갔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문제는 <골 때리는 그녀들>는 축구 예능이다. 스포츠를 다루는 예능의 기본은 진정성이다. 재미는 오직 난타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끌려가다 추격하는 경기도 충분히 재미있다. 0-5로 지다 3-6까지 만든 경기는 패배한 팀에 최선을 다했다며 칭찬하고 충분히 박수를 보낼 수 있다.
골때녀 제작진은 스포츠 예능의 기본은 진정성이고 단순히 골을 주고받는 난타전만이 재밌는 게 아니며 치열한 승부, 성장해가는 출연진에 열광하며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했던 시청자들이 이번 사건으로 실망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엔 각본이 없는 만큼, 다양한 스토리와 경기 결과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재미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알아둬야 할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예능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보다 스포츠의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 진심으로 한 말이길, 그리고 골때녀가 신뢰로 거듭나 다시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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