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본다. 그 구름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햇빛을 본다. 넓디 넓은 하늘 아래 자신의 온몸을 작은 발로 비비며 씻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본다. 감히 누군가의 생애를 엿보는 느낌이다.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된다. 일상이라는 단어에는 무거움이 없는데, ‘인생’이라는 단어는 괜스레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거대한 이유가 있어야만 할 것 같고. 삶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모두가 우연 속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운명을 믿고 싶어한다. 자신의 존재만큼은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래야만 소중해 지는 것 같아서. 이런저런 이유들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의 이유를 찾으면 찾을수록 자꾸만 넘어지게 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거창함 속에서 삶의 이유를 찾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돌다리 하나를 밟으며 탁-하고 퍼지는 둔탁한 소리를 듣는다. 이 돌다리는 누군가의 밟을 지탱하기 위해 존재한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들을 본다. 저들은 푸른 하늘에서 자유로이 날기 위해 존재한다. 높이 솟아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바라본다. 넓은 세상을 누비는 새와 달리 한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 이 나무는 자신이 서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나는, 너는 왜 존재하는가? 왜 살아가는가?
지금까지의 나는 삶의 이유를 거창한 곳에서 찾았다. 때론 사랑에서, 때론 꿈에서, 때론 평화에서. 그리고 그것들을 얻지 못할 때마다 좌절하곤 했다. 거창한 것들은 쉽게 나의 것이 되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물들을 보며 나는 깨닫는다. 그들의 삶의 이유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을 낳기 위해, 누군가는 날기 위해, 누군가는 밟히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거창하지 않은 삶의 이유들 모두 고귀하다는 것을.
나는 왜 살아가는가. 이 질문 앞에 다시 선다. 그리고 답한다. 살며시 웃기 위해, 누군가의 등을 잠잠히 안아주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노래하기 위해, 몰래 무언가를 좋아하기 위해… 그런 단순한 것들이 삶의 이유라는 자리에 서서히 맺힌다.
그리고 결국이 이 삶은 점점 더 가볍게, 점점 더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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