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여덟 번째

세점사이의 여덟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2.10.24 | 조회 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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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여덟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벌써 10월도 마지막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가을은 겨울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구요. 그래도 자켓을 입고 고집을 부릴 수 있는 날이 길어지는 기분이라 그건 그것대로 좋습니다.

좋아하는 일들이 가져오는 것들은 모두 좋아해야 할까요? 요즘은 그 지점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부정적인 사람인 걸까, 하는 생각도 해요. 그 좋던 사진도 노이로제가 (벌써...!)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며칠 전에는 굉장히 오랜만에 필름사진을 찍었어요. 중형 필름카메라로 찍은 인물사진인데, 빛의 질감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아직 보정이 끝나지 않아서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얼른 인스타그램이든 어딘가든 공개를 하고 싶네요.) 그런 행복이 훅 오면서, 좋아하는 일들이 가져오는 것들을 모두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좀 참아볼 수는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사진이 많지는 않지만...비싼 사진들을 보여드릴게요. 아까 말씀드린 사진을 찍고 났더니 필름이 사진을 세 장 찍을 만큼 남았더라구요. 언제 다음 촬영을 할지 요원해서 그 큰 카메라를 그대로 들고 낙산공원으로 뛰어올라갔다왔답니다. 그리고 사진을 세 장 찍었어요. 컷당 3000원 정도가 드니까 9000원어치 사진이네요 호호...

해가 멋지게 지고 있었어요.
해가 멋지게 지고 있었어요.
낙산공원에 올라서서 노을을 찍었습니다.
낙산공원에 올라서서 노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동대문을 지나치는 사람들.
그리고 동대문을 지나치는 사람들.

 

여덟 번째 글을 보내드립니다. 지금은 마시즘의 화신 같은 사람이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종일 힘들어하는 몸을 가지고 있었어요. 거기서 시작된 생각을 조금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커피향과 스톡홀름 신드롬

나에게 커피 마시기는 일종의 자해였다. 카페인에 지극히 민감한 내 몸은 오후 네 시에 커피를 마시면 그 날 밤 새벽 한 시까지 나를 재우지 않았다. 약속에 나가 야심차게 드립커피를 마신 내가 끙끙 앓고있는 걸 보고서 앞에 앉은 친구가 걱정할 정도였으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커피와는 사이가 나빴다고밖엔 말할 수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가까워진 친구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를 잘 못할 텐데, 왜냐면 지금 나는 나름대로 커피 애호가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는 세 종류의 커피머신이 있고 드립커피를 내리기 위해 좋아하는 원두를 골라 갈기도 하기 때문이다. 생일이면 친구들은 커피를 담아 마시라고 잔을 선물해준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기꺼이 받는다.

내가 커피와 급하게 가까워진 건 2019년 정도였다. 독일 교환학생을 준비했던 나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르바이트로 꽉 채워진 일상을 보냈고 체력이 남아나질 않았다. 당시 매일 아침마다 학교 안에 위치한 연구소로 출근을 했는데 많은 친구들이 걷기를 포기하고 버스를 탈 만큼 가파르고 먼 길이었어서 나는 이미 출근만 해도 온몸이 커피 찌꺼기처럼 허물어져 버렸다. 의정부에서 성북구로, 성북구에 와선 오르막으로. 연구실 퇴근 후에는 양주에 있는 학원으로. 그런 와중에 머릿속이 총명할 리가 없었다. 이러다간 카페인 내성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나는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겨울이었으므로 뜨거운 물에 카누 두 개를 탔다. 그걸 홀짝거리면서 마시다 보니 아침의 일도 그냥저냥 견딜 만했다. 종일 배가 아프고 십 분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긴 했지만. 관둘 때까지 계속해서 아침에는 커피를 마셨다.

이제는 커피를 마셔도 잘 졸 수 있다. 휴일이면 커피를 한 잔 내려마시고 늘어진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 즐겁게 커피 향을 느끼다 보면 원래는 커피 마시기가 나에게는 일상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자해였다는 사실이 가끔 떠올라 기분이 이상해진다. 종종 그런 게 있다. 원래는 공포 혹은 압박이었던 것이 편안해지면서 일상 혹은 즐거움으로 편입되는 것. 그건 거시적으로 좋은 일일까? 그런 궁금증을 가졌다.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면서 나는 현실주의자인 척을 했다.

당장 여러분은 시를 읽는 게 고통스러울 거예요. 무슨 말인지도 하나도 알 수가 없잖아요. 쓸데없는 말을 괜히 감성으로 포장해 늘어놓는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여러분은 수능을 보기 위해 공부해야 하니까요. 이해하는 걸 포기하고, 얼추 비슷한 말을 찾아 찍는 방식이 여러분께 정답을 담보할 수는 없어요. 아니, 절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저는 여러분하고 시를 공부할 겁니다. 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전통적인 시들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떻게 하면 시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지.

결국 말이잖아요. 어떤 논리구조로 이야기를 전달하는지. 벌써 무섭기도 할 거예요. 왠지 어려워 보이고. 하지만, 시를 배우는 건 단순히 수능을 넘어서, 여러분 삶에 이득이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시를 읽으면 어지럽고 졸리기만 하겠죠. 하지만 시를 읽을 수 있게 된다면요? 시를 좋아할 수 있게 된다면요? 여러분이 어떤 괴로움을 만났을 때, 시가 그걸 도와줄 수도 있게 되겠죠.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더 열렬히 좋아할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러니까, 시를 좋아하게 되는 건 살면서 이득이 되는 일입니다. 좋아할 것이 늘어난다는 건, 좋은 거예요.

학생들은 얼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시는 어려웠겠지만. 그들에게 성적을 어떻게든 따내기 위한 자해였던 시 읽기를 정말로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커피 마시기를 내 삶에 편입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어쩌면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이 아닌가?

 

최근 이옥섭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가 유행을 탄 적이 있다. 저는 너무 미운 게 있으면 사랑해 버려요, 그런 말이었던 것 같은데. 참 따뜻한 말이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보기 싫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사랑할 수 없으면 미워할거야, 라든가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겠어 하는 말이 더 익숙한 나지만 어쨌든 커피를 사랑하게 된 건 맞는 것 같다. 그것이 사랑인지, 스톡홀름 신드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그러고 있다. 내 친구는 나와 마찬가지로 커피를 마시지 못했지만 지금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만나서는 레몬에이드나 핫 초코같은 걸 마시겠지. 사랑이 용인은 아니지마는.

소주가 당기는 류의 음식들을 볼 때가 있다. 뭔가 맵싸한 류의 것들. 나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 못 되고 특히나 소주는 거의 입에 대기도 힘들어 하는 편이라서 그 음식들을 보면서 소주를 찾아본 적은 없다. (물론 타인들이 먹인 적은 종종 있지만.) 그런 음식들을 소주와 함께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삶의 한 부분을 손해보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소주랑 먹는 게 최고의 궁합이라는데, 나는 사람이 흥청망청이 되게 한다는 그런 맛을 평생 모르겠구나, 하고.

며칠 전에는 출퇴근길에 ‘아무튼, 술집’이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분이 글을 굉장히 맛깔나게 쓰셔서 나도 괜히 술이 마시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술집의 좋은 부분들은 정확히 내가 싫어하는 술집의 싫은 부분들을 묘사하고 있었다. 왁자하고, 모두가 취해 있고, 뭔가 우당탕, 저기서 콰당탕. 소리를 질러야만 반대편에 말을 전할 수 있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실수를 하고. 밤은 깊어가고. 나는 술집의 그런 느낌이 싫은 걸 넘어서 두렵기까지 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비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외향적인 성격의 친구들 손에 손목을 잡혀 갔다가 어색한 사람들 사이에 방치되었던 기억들도 떠오르고. 저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좋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내가 잘못된 건 아닐까?

어제 친구랑 카페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며 놀다가(둘 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이 이야기를 했는데, 친구는 그냥 다른 말 없이 ‘나는 다 조용한 칵테일바가 좋은데.’ 하고 말을 했다. 모두가 소근소근하는 곳. 하긴, 나도 그런 데는 좋아. 담에 가자.

 

너무 미우면 사랑해버리라는 말을 보면서 정작 내가 제일 미워하는 나는 사랑하지를 못했다. 미워하는 것도 사랑하면서.

 

솔직히 커피를 잘 마시게 되어 행복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걸 마시면서 오래오래 이야기할 수 있어서. 똑같은 걸 마시고 싶다는 마음으로 컨디션이 울그락불그락하는 걸 참을 필요가 없어져서.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카페라는 공간을 좋아하니까. 아무튼, 카페를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그렇다. 예전의 카페에 대한 사랑이 복잡한 사랑이었다면,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된 지금은 단순명료한 사랑이다. 내가 구태여 의심을 보태기는 했지만. 자해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사랑에 익숙해지는 게 컸던 걸지도 모른다. (어차피 사랑은 자해인걸.) 어쩌면 그런 회의는 성장통이었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많이 고민했지만, 어쨌든 그건 행복한 일이었다. 그 마음을 담아 학생들에게 시와 소설을 사랑해보는 건 어떠냐고 말하곤 했다. 왜냐면 나는 그렇거든. 어쩌면 참아낼 수 있는 게 늘어가는지도 모르고. 어쨌든 포용할 수 있는 세계가 점점 늘어난다. 한때는 내가 편견만이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할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경계하는 일이지만, 어쨌든 나는 좋아하게 된 것들도 전보다 더 많다.

사랑할 것들이 늘면 언젠가 모두를 사랑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미워할 게 남지 않을지도 모르지. 사랑을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언젠가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친구들이 선물한 커피잔들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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