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32. 쉬운 기우제

세점사이의 서른두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4.09.23 | 조회 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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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서른두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일주일이 참 빠르네요. 매 시즌마다 비축분을 만들어 두겠다고 다짐을 해두지만 그런 다짐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저는 좀 더 멀끔한 사람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며칠 전에 했던 생각들을 조금 다듬어서 써봤어요. 어쩐지 여름의 끄트머리에 하려니 머쓱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글 보내드릴게요.


쉬운 기우제

먹먹한 7월 하늘에는 명암조차 없다. 구름 사이에 아주 살짝의 물기가 더해져 차라리 쏟아져 내리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여전히 구름에는 넘칠 기미가 없다. 그렇게 고열과 불쾌 속에서 나는 내 땀에밖에 젖지 못한다. 냄새가 날까? 외국의 숏폼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그런 내기를 많이 하던데. 줄을 서 번갈아 가며 컵 안에 물을 조금씩 붓는. 다들 처음에는 장난을 치며 쏟아붓다가 이내 컵이 어느 정도 이상 차오르면 소심하게 컵을 기울인다. 컵은 금방 가득 차오르고, 물은 표면장력이 만든 몽글한 모양을 이룬다. 컵을 넘치게 하는 건 생각보다는 어려운 일이다. 저 표면장력을 깨뜨리는 것이 나 아니라 누군가이길 바라며 다들 컵에 한두 방울씩 더한다. 물은 영영 넘치지 않을 것만 같고 나는 넘치는 걸 기다리다가 지루해져서 영상을 넘겨버린다.

 

사실 그 날의 날씨는 제법 나쁘지 않았다. 덥고 습하기는 했지만 요새 그렇지 않은 날이 얼마나 있다고. 하늘은 파랬고 구름은 두껍고 예뻤다. 딱 그 점이 마음이 들었지. 다른 점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의 촬영에 쓰려고 미리 주문한 물건이 며칠 내리 발송되지 않았고, 물건을 받아보는 걸 포기하고 출근했더니 지하철은 시간표보다 십 분을 넘게 늦었다. 한참 늦은 지하철에 타고 보니 취객이 칸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지하철이 늦은 건 이 사람때문이었을까? 소란한 분위기 속에서 왠지 붕 뜬 기분이 들었다. 몇 정거장이 지나 지하철 보안요원 분들이 들어오면서 차는 한번 더 연착되었고, 그들이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잡상인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나는 그 아사리판 속에서 클라이언트와 업무 관련 연락을 하고 있었는데, 대화 내용이 그다지 흡족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화가 나는 쪽이었지. 몇 주째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있는 참이었고, 상황 탓인지 내 아량의 문제인지 주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도 엉망이었다. 급한 일정을 다그쳐 겨우 치워둔 일 하나는 자잘한 문제가 생겨 다시 되돌아왔다. 그런 문제들을 가지고 올라타 있는 일호선은 화를 키우기 좋은 공간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린 뒤 사무실로 가서 쏟아지는 일들을 처리하니 시간은 벌써 저녁 여덟 시 가까이 되어 있었다. 이런 정신없는 날에는 식사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성가셔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으려고 했지. 그런데 식당이 두 군데 연달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찬 거야. 정신머리에 곰팡이가 피어나는 기분이었다. 다 귀찮은데, 산뜻하게 디카페인 커피 한 잔이랑 가볍게 샌드위치를 먹을까? 샌드위치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가게에 들어서자 때마침 가게에 앉아있던 어느 손님이 커피를 쏟았다. 그가 쏟은 커피의 일부가 내 바지와 신발에 조금 튀었다. 그 사람은 허둥지둥하며 자리를 닦을 걸 찾았는데 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검정 신발과 검정 바지를 입고 있기는 했으니까. 정작 그걸 먹어야지, 하고 생각한 샌드위치는 품절되어 있었다. 

어떤 비는 가끔 반갑기도 하다.
어떤 비는 가끔 반갑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디카페인 커피 한 잔과 생각했던 것하고 다른 샌드위치를 들고 천천히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화를 내고 싶어하면서. 자잘하게 불쾌한 것들이 계속되고 있는 참이었지만 결정적으로 뭔가를 쏟아낼 대상은 마땅치가 않았다. 여름은 늘 그랬고 일호선도 늘 그랬다. 일이라는 것도 늘 그렇고 관광지 동네의 식당이란 것도 늘 그렇다. 

그러던 차에 눈에 들어온 건 사무실 건물 앞에서 뛰어놀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 아이들이었다. 아마 중국 사람들 같았다. 나는 그 때 무슨 상상을 했냐면, 저 애들이 저렇게 주변도 보지 않고 뛰다가 나에게 부딪치고, 나는 마셔보지도 못한 커피를 온 몸에 온통 쏟고, 그들의 부모는 뻔뻔하게 구는 장면같은 거. 상상 속에서 나는 화를 참지도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욕을 정말 많이 했다. 상상 속의 그 사람들은 내가 딱 화내기 좋을 만큼 나쁘게 굴었다. 평소에는 욕을 거의 하지 않는데도 하루에 하는 모든 말보다 그 잠깐의 상상 속에서 내뱉은 욕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아무도 나에게 부딪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뻔뻔하게 굴지 않았다. 사실 그냥 여행을 온 사람들을 상대로 (얼굴조차 모르면서) 나쁜 상상을 들이대며 뻔뻔하게 군 쪽은 내 쪽이었을 것이다. 갈피를 잃은 화는 어이없을 만큼 평화로운 방법으로 풀렸다. 멀리서 유모차를 몰고 엘리베이터에 들어오는 남자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잠시 잡아 두고,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허기를 채우고, 해야 할 일들을 천천히 처리하고, 퇴근을 하는 방법으로. 그거면 충분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중국인 아이들과 그 부모에게 욕설을 하는 상상같은 건 동원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을 미리 미워하는 것은 그 때의 나에게 너무 간편하고, 유혹적인 방법이었다. 이 예습이 실제로 나의 분노를 해소했는가 하고 물으면 대답할 자신은 없었다. 다만, 그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사람일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나의 성급한 결론을 은연중에 강화하거나, 그들이 그러한 상황의 말단이라도 보였을 때 그럴 줄 알았다며 기쁘게 싫어할 준비를 하거나. 쌓인 습기의 쉬운 해결책을 찾는 데에 그것이 얼마나 진실과 닿아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뻔뻔함과 조심성 없음. 정작 나에게 저러한 일말의 모습도 없을까?

 

얌전히 일을 마치고, 샌드위치를 먹는 것, 혹은 시혜적인 친절을 베푸는 것으로 분노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일종의 회피일지도 모른다. 끓어오르는 분노로 문제와 직면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그 날의 내가 맞서야 할 대상은 나에게 일을 주는 여러 클라이언트들, 하다못해 나에게 물리적으로 해코지를 할지도 모르는 취객, 혹은 제대로 업무를 처리하지 못한 며칠 전의 나였을 것이다. 그들과 싸우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한편 외국인을 미워하는 일은 너무 쉬웠다. 그러니까, 습도의 표면장력을 깨뜨리고 물을 퍼붓는 존재가 그들이길 상상 속에서나마 바랬겠지. 빗속에서 흠뻑 젖기를 바라면서.

정말 화를 내야만 할 때, 맞서 싸워야만 할 때 내 앞에 서있는 상대가 나보다 강한, 혹은 나에게 명확한 해를 입힐 수 있는 존재, 혹은 나인 것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맘껏 웃으면서 인디언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물을 너무 많이 붓기를 꿈꿨다. 그런 생각들을 되돌아보자면 차라리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 더 용감하고 덜 비겁하고 더 어려운 일로 보인다.

나는 유혹에 약한 사람이다. 유혹에 강했다면 이렇게 미움 많고 안 건실한 삶을 살 리는 없겠죠 아무래도. 그러니까 내가 살아오면서 찾아온 해결책들은 정확한 판단보다는 쉬운 판단에 의존해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판단은 이런 식의 질문들을 수반했을 것이다. 나는 정말로 그들 개개인을 그렇게 순수하게 미워했는가? 분수대 앞에서 뛰어다니던 그 중국인 아이들을? 그냥 언제든 화내도 좋은 상대로 지정해 둔 것은 아닌가?

간명함은 아름답다. 그러니까, 칼로 자른 논리, 혹은 어떤 말을 할지 준비된 마음 같은 것들. 어떤 사람에게는 어떠한 특성이 있고, 그러한 특성을 공유하는 이들에게는 저러한 경향성이 있다. 그러므로 저러한 경향성을 가진 사람들은 그러한 특성이 있다. 어떤 말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해답을 정해주는 것 같다. 나는 편견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파악할 뿐이라는 핑계까지 함께 제공해준다. 좋은 렌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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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간명한 논리들이 지칭하는 특성들과 연관관계가 정말로 엄밀한지, 그리고 배타적이고 독립적인지 따져보기 시작하면 그런 연결성들은 금방 헐거워진다. 사실 간명한 논리들을 나, 혹은 내가 가까이 지내는 상대들에게 적용하면 그들의 헐거움은 금방 드러난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 혹은 나 주변의 사람들에게만 특출난 예외나 특별한 사연이 있었던 것은 아닐 텐데도. 멋진 논리들이 나의 삶이 가진 반례를 설명하지 못하듯 타인들 역시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어떤 것들은 맞고 어떤 것들은 얼추 괜찮은 경향성을 형성하겠지만. 그럼에도 이는 정확과는 거리가 멀다. 명료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기준 외의 디테일들을 의도적으로 가지치기했다는 거니까. 사진을 찍어보면 안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워야 하는지. 그 아름다운 논리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배제되는지. 

그래서, 간명한 논리는 반례를 내밀어도 무시당하고 마는, 작은 목소리를 가진 이들에게 많이 남아 있다. 그들이 가진 수많은 다양성과 반례는 단단한 논리가 형성하는 내적 완결성을 뚫지 못하고야 만다. 다른 사람들에게 진작에 선해된 것들을, 어떤 사람들은 벗지 못하는 칼처럼 이고 살아간다. 그리고 반박하지 못함을 다시 조롱당하고, 그들은 편안한 분노의 대상으로 끌려나온다. 그러니까, 물을 넘치게 하는 순서는 언제나 그들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베스킨 라빈스 게임에서 31이라는 숫자를 부르는 사람은 정해져 있듯이. 조롱은 웃기기 때문에 아무도 화내지 않으면 농담이 된다. 정해진 완결, 농담일 뿐인 이야기에 분위기를 깨지 않는 꽉 닫힌 세계. 이건 실로 미학적인 기우제라고 할 수 있다. 물을 넘치게 하는 이가 나타날 때까지 결론짓고 호명하면 누군가는 나에게 부딪칠 것이다. 그들에게는 다양성의 자격이 없고 나는 폭우를 내릴 것이다. 폭우 속에서 화에 겨워 춤을 출 것이다.

 

완결. 단일. 하나. 순수. 청결. 완벽한 논리를 위해 준비된 멋진 연설장.

 

나의 커피를 쏟게 하는 것은 그들이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는 준비된 말들을 할 수 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들이 속한 집단은 안다. 어떤 명사를 호명하자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기쁘게도 나는 그들에 대해서 정의할 수 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는 쏟지 않고 끝까지 마시는 게 낫다. 쉬운 말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프롬프트를 무시하고 맛있는 샌드위치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말하다가 무안을 당하자. 밥을 먹고 힘을 차려 좀 어려운 결론을 생각하자. 배가 부르니까 농담은 좀 덜 받아주자. 그러다 보면 가을도 오고 겨울도 오고 봄도 오고 또 여름도 올 거야. 엊그제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사진을 찍었다. 날씨 운이 영 안 좋은 건 누굴 탓해야 하지?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 일이나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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