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강남규 | 인간으로서의 아이돌을 다루는 작품이 ‘고구마’인 이유

💬DJ 강남규 FB | 변화와 변혁의 시대에 공동체는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강남규 DJ는 느낌표도 마침표도 아닌 말줄임표로 전하는 이야기, 혹은 말줄임표로 읽을 때에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이자 네이버프리미엄콘텐츠 [토론의 즐거움]을 운영하는 강남규 DJ가 함께 읽고 싶은 웹툰을 소개합니다.

케이팝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꺼려진 지 오래 됐다. 언제부터였더라. 설리와 구하라가 세상을 떠난 직후였던가. 종현이 떠났을 때도 조금씩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잔혹한 산업을 바꾸기 위해, 이 죽음들을 멈추기 위해, 아티스트와 팬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우리는 뭘 할 수 있나.

우리가 아이돌을 사랑하면 할수록 더 많은 아이들이 아이돌이 되기를 희망할 것이고, 더 많은 아이들이 이 경쟁판에 뛰어들수록 우리는 더 많은 죽음과 낙오를 목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성공해도 문제고 실패해도 문제다.

성공한 아이돌은 대중의 막대한 관심과 이유 없는 비난 앞에 맨몸으로 던져진다. 실패한 아이돌은 갈 곳이 없다. 보통의 아이들이 공부를 하던 시기에 연습에 모든 시간을 쏟은 아이들은 이미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한참 뒤처진 출발선에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고, 좋은 삶을 살기보다 나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큰 삶. 이걸 그대로 두어도 되는 걸까. 그래, 설리와 구하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김현아 작가의 웹툰 [역주행!] 최근화를 보면서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다. 성공하지 못한 아이돌의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데뷔까지 했지만 5년 동안 무명 생활을 하면서 멤버들 모두 알바로 먹고 살던 아이돌 그룹 ‘위업’이 결혼식 축가 직캠으로 화제가 되어 역주행에 성공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즌1에는 위업이 다시 아이돌 그룹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 그리고 위업의 리더인 ‘지성준’이 무명 시기 버스킹 공연을 보고 기꺼이 팬이 되어 준 ‘한아윤’과 애틋한 마음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담겼다. 여기까지는 행복 편.

시즌2에서는 다시 주류 시장에 복귀한 위업이 유명 기획사의 대표인 표정선과 새로 계약을 체결하고 활동을 이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위업의 코어팬이 된 아윤이 팬덤 활동을 시작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성준은 멤버 전원이 함께 가야 한다고 요구했고, 표정선은 그러려면 연애 같은 리스크를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결국 아윤과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희로애락 편.

반면 아직 연재 중인 시즌3은 완전히 비극 편이다. 시즌3에서 표정선 대표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빌런 그 자체. 그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총아, ‘아이돌 그룹’의 낭만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멤버 개개인을 분리해 바라보면서 ‘성공할 상품’에만 투자하고 ‘실패할 상품’은 과감하게 내버리는 인간이다. 또 누군가의 인생을 쥐고 흔드는 데서 오는 지배감에서만 쾌락을 느끼는 변태적인 성향도 가졌다.

시즌3에서는 그런 표정선이 위업의 ‘성공할 상품’인 지성준과 배재욱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을 무너뜨리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시즌3 첫 화부터 위업 멤버 중 한 사람이 자살했다는 미래 시점의 뉴스 속보로 시작된다. 누가, 왜 자살했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주된 줄거리다.

무료분 기준 40주 가까이 이야기가 진척된 지금에야 누가 죽었는지가 드러났는데, 사실 지난 40주 동안 그려진 건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모든 멤버들이 각자의 이유로 일상을 잃어버리고 절망에 빠진다. 어떤 멤버들은 표정선의 계략에 빠져서, 어떤 멤버는 다른 멤버들을 배신해서, 어떤 멤버는 그룹을 탈퇴해서, 또 성준은 자신의 고집으로 다른 멤버들을 고통에 빠뜨렸다고 믿어서.

[역주행!]의 이야기는 끝도 없는 절망으로 향해가고 있다. 표정선이라는 비정상적인 빌런 때문일까. 그의 존재가 중요한 요인은 될 거다. 하지만 그런 빌런이 없는 실제 현실에서도 크고 작은 절망들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실제로 [역주행!] 속 여러 사건사고들은 현실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이돌이 받을 수밖에 없는 대중적 관심,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주어지는 높은 도덕적 기준, 무한한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굴레라는 조건들은 웹툰 속 저곳이나 현실 속 이곳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얘기이지만, 오늘날 이런 이야기는 안 팔린다. 끝없는 절망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돈 주고 사서 볼 소비자는 이제 거의 없다. 이미 [역주행!] 댓글란에는 너무 지친다며 ‘쿠키 하차’를 선언하는 댓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사실을 콘텐츠 생산자들도 다 안다. 그럼에도 김현아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다. ‘역주행 성공 스토리’로만 100화를 끄는 선택도 가능했을 거다. 그랬으면 이 작품은 더 많은 인기를 얻었을 테고, 작가는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스토리를 고집하는 이유를 작가가 직접 얘기한 적은 없지만, ‘쿠키 하차’ 아래에 달린 댓글이 힌트가 된다. "너무 리얼해서 내 최애를 다른 시각으로 다시 보게 되는 웹툰입니다." 그렇다. 웹툰에서 사이다를 갈망하듯, 우리는 아이돌에게서 ‘판타지’를 갈망하지만, 그런 갈망이 인간으로서 아이돌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인간으로서 아이돌을 다루는 작품이라면, 사이다 만을 그려낼 수는 없다는 것. 김현아 작가가 이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다시 현실 속 아이돌들을 본다. 세상을 등져야 했던 아이돌들과, 너무 빠른 성공으로 더 큰 쾌락을 좇다가 몰락해버린 아이돌들과, 인기를 얻지 못하고 업계 밖으로 사라져버린 아이돌들을 본다. 우리는 정말로 그들의 죽음과 몰락과 실패에 대해 어떤 책임도 없는 걸까. 우리는 그저 소비자일 뿐인가. 그렇게 얘기하고 죄책감을 던져버릴 수 없는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리가 사랑을 줬기 때문에 산업이 돌아가고, 우리가 사랑을 거뒀기 때문에 아이돌이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아이돌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과 위로가 그 무엇보다 크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고민으로부터 도망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아이돌들이 건강하게 오래 일할 수 있을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편이 맞겠다. [역주행!]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궁금하다. 긴 절망의 터널을 지나면 드넓은 희망의 들판이 펼쳐질 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를. 💬 DJ 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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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이 - 한숨

11월에 끝냈어야 할 글을 못 끝내 12월까지 끌고 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종현의 6주기가 다가옵니다. 종현이 만들고 가사를 붙여 이하이가 부른 노래 ‘한숨’을 <역주행!>과 함께 듣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쓰인 여러 글과 노래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숨’을 가장 윗줄에 놓고 싶습니다. 딱 한 소절 때문에요. “그 무거운 숨을 /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 당신의 한숨 /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이라는 소절요.

위로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이건 소중하고 따뜻한 것이지만, ‘더 나은 위로’라는 걸 얘기할 수 있다면 저 소절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너의 힘듦의 이유와 무게를 타자인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알지 못함을 인정하지만 가만히 옆에 앉아 기어이 위로를 전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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