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당시 음악웹진 [weiv]의 편집장을 맡고 있던 저는 빅히트에서 아이돌을 데뷔시킨다는 얘기를 듣고 관계자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방시혁 대표, 피독 프로듀서, 손성득 퍼포먼스 디렉터, 김성현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팀장,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멤버들을 만났어요. 그때 인터뷰는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는(그리고 의미심장한) 부분이 많습니다. 데뷔 10주년이 되는 해에 공유해봅니다.
자기 취향을 가지는 아이돌 디렉팅 | 김성현 빅히트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팀장
차우진: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 출연하셨죠?
김성현: 시즌4였어요, 작년에.
차우진: 서울엔 언제 올라온 거예요?
김성현: 경주가 고향인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올라왔어요. 패션이 아니라 음악 때문에. 그때는 좀, 음… 기타 치고 싶어서… 신촌 쪽에 있었죠. 제가 원래 여자 옷을 했거든요. 디자인을 하다가 개인브랜드를 하다가 이제 이쪽에 오다 보니까, 시혁 형을 만나서 여기서 일하게 됐는데요, 음, 아직도 브랜드가 있긴 해요. 제가 23살 때부터 하던 거라서. 그땐 진짜 뭘 해야 될지 몰랐거든요. 어릴 때라서. 그냥 막 멋 부리는 거 좋아하고 옷 사는 거 좋아하고, 그래서 디자인과에 입학했는데 대학교에 가니까 저랑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자퇴하고 브랜드를 해야겠다... 그래서 전역하자마자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차우진: 뭐랄까, 깡이 세네요?! (웃음) 그 나이에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이 일반적인 건 아니잖아요?
김성현: 제가 한 20살 때엔 디자인실에서 일했거든요, 학교 다니면서. 그런데 하는 일이 좀, 부자재 정리하고 원단시장 가고... 그게 싫긴 했죠. 그래도 꽤 오래했어요. 디자인실에서도 일하고 프린트 업체에서도 일하고. 그런데 잘 안 맞더라고요.
차우진: 어렸을 때부터 업계, 현장 경험 같은 게 많았나 봐요.
김성현: 현장 경험도 있었고 주변에 형들이, 사실 저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형들이랑 얘기를 많이 하고 또 많이 듣다 보니까. 디자이너 형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안 해서 못 하는 거더라고요. 뭐 되게 식상한 얘기인데, 그때는 어, 하면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차우진: 그러면 브랜드 창업을 하고 방송에 나갔다가 빅히트와 연결된 건가요?
김성현: 그때, 별로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선배 디자이너 누나가, 머리가 노란, 요니 누나라고, 스티브 J & 요니 P로 활동하는 누나가 전화로 방시혁 대표님을 소개해 줬어요. 미팅을 해보니까, 한번쯤 해도 괜찮겠다 했지만 사실은 반신반의했죠. 워낙 이쪽이 부침이 심해서. 그러다가 아예 회사로 들어왔어요.
차우진: 보통 자기 일을 하면서, 규모와 상관없이 개인사업자로 일하다 회사로 들어오라고 하면 되게 고민스럽지 않나요? 오히려 내 커리어에 집중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낫지 않나 뭐 이런.
김성현: 네 맞아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게다가 저는 사실은, 열심히 일하는 게 싫거든요. 잘 하는 건 좋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음, 진짜 개인적인 생각인데, 한량처럼 살고 싶어요.
차우진: 열심히 안 하고요?
김성현: 잘하면 되니까. (웃음) 그런 생각으로 일하다가 여기에 왔는데,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어쨌든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잖아요. 근데 저도 그거에 대해 약간, 뭐랄까, 상상해왔어요. 뮤직비디오라든가 무대나 앨범 재킷에 어떤 비주얼이 나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데 저는 국내 아이돌을 거의 몰랐거든요. 대신 외국 힙합 아티스트들이나, 제가 록 음악을 되게 좋아해요, 앨범 모으는 게 취미라서 그 앨범들 뒤져보고 사진도 보는데, 외국 앨범엔 사진이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그런 비주얼을 좀 해 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아이돌 콘텐츠가 제가 꿈꾸던 거랑 살짝 다르긴 해요. 그래도 콘텐츠니까.
차우진: 패션 디자이너가 콘텐츠 비주얼 디렉팅을 한다는 건 또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이를테면 패션은 자기의 비전이나 세계관이 옷으로 구현되는데, 그 결과물엔 버릴 게 없는 거잖아요. 일종의 작품처럼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 아이돌 콘텐츠는, 아트 디렉팅이 물론 중요하지만, 우선 순위에서 최우선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김성현: 그렇죠. 서포트하는 개념이 강해요. 사실 디자인 할 때의 느낌은 되게 직접적인데요, 왜냐면 내가 그 결과물을, 딱 한 벌의 옷으로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걸 권유하는 방식인데요. 제가 약간 놀란 건, 아이돌 콘텐츠가 상당히 디테일한 계획으로 만들어지는 거였어요. 우리가 제안하는 입장이면서도 소비자의 감성, 대중성이라는 걸 고려해야 하고. 제가 얘기하는 건 그 중간을 찾는 건 음악작업을 하는 프로듀서, 퍼포먼스를 짜는 사람, 비주얼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아이들의 재량, 이 모든 게 겹쳐져서 만들어지는 거죠. 그게 진짜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힘들고.
차우진: 빅히트에서 처음 맡은 건 글램이었나요?
김성현: 1집은 아니고요, “I Like That”과 “거울 앞에서” 했어요.
차우진: 그때와 방탄소년단의 차이나 과정에 대해 얘기주세요.
김성현: 글램은 제가 나중에 결합한 경우인데, 방탄은 처음부터 준비해서 데뷔하는 걸 함께 봤던, 그런 차이가 있어요. 이게 큰 것 같아요. 글램은 회사에서 정해진 방향에 맞춰야 하는 게 좀 힘들었달까… 방탄은 아무래도 음악적인 방향도 있지만 비주얼의 방향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서 좀 달라요. 남자애들이라 더 편한 것도 있고요. 예를 들면 데뷔 전에, 평소에 입고 다닐 옷을 같이 가서 쇼핑해요. 의상이라는 게 사람을 바꿀 순 없지만 그 사람의 태도는 바꿀 수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 친구들에게 자신감도 심어주고, 나름 세련되게 입고 다니게끔 하고 그랬어요. 저는 제 옷도 많이 주거든요. 물론 안 입는 거 위주지만. (웃음)
차우진: 구하기 힘들거나 직접 만든 옷들인가요?
김성현: 직접 제작한 것도 있고요, 예전에 정말 비싸게 구입한 옷들도 있고요.
차우진: 방탄소년단 경우는 처음 콘셉트 잡았던 게 어떤 쪽이었어요?
김성현: 일단은 힙합이라는 게 대전제였고, 세부적으로는 데뷔를 했을 때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이냐, 그러니까 어떻게 각인될까 많은 생각을 했어요. 피팅을 정말 자주했어요. 정말 많이. 가이드라인도 잡고, 잡고, 또 잡으면서 계속 작업을 맞췄죠. 일단 멋이 있어야 하니까요. 멋 냈다는 느낌 말고요. 그건 다르거든요. 멋이 막 나는 거랑 멋을 내는 거랑 차이가 많아요.
차우진: 예를 들면 어떤 차이에요?
김성현: 일단 몸에 뱄다는 느낌?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비주얼에서는 ‘소년단’이란 점에 집중했어요. 7명인데 각자 따로 자기들 마음대로 입는 건 아닌 것처럼 통일성도 유지하되 개개인의 신체적 단점도 보완하고요. 그러면서 배리에이션도 주고. 아무튼 대전제는 힙합인 거죠.
차우진: 초기 콘셉트를 잡으면서 아 요 정도면 됐다, 라고 했을 때까지 얼마나 걸렸어요?
김성현: 그건 되게 오래됐어요. 제가 회사 오기 전부터 논쟁이었던 게, 정말 이렇게 입히자, 저렇게 입히자, 그런 얘기가 정말 많았던 걸로 알아요. 그 뒤에 제가 방탄을 맡으면서는, 회의를 정말 많이 했어요. 매주 PPT를 업데이트하면서 되게 사소한 것까지 만들었어요. 룸 인테리어와 악세사리, 뭐 눈에 보이는 건 다 했죠.
차우진: 그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 더 설명해주세요.
김성현: 방탄 룸이라고, 연습생 때부터 멤버들이 작업하는 공간이 있었어요. 그걸 다 힙합적으로 꾸며야 해서 그런 거 하나하나 액세서리부터 인테리어까지 신경을 썼는데, 물건도 직접 사고 소파는 따로 제작하고 그랬어요. 제가 예전에 이태원에서 인테리어를 한 적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태원 사장님들 만나서 가격도 깎고. 흐흐. 이게 어려웠던 건, 이 친구들이 힙합을 하지만 겉으로, 어떻게 힙합적인 걸 보여줘야 할 지 모르는 친구들도 있잖아요. 그래서 의상이나 작업실 공간을 하나하나 꾸미면서 느낌이 나도록 코치한 걸 수도 있어요. 저 말고도 신인개발팀도 붙었어요. 애들이 주로 밤에 곡 작업을 하는데, 그때 작업실에 가서 애들한테 옷을 쭉 보여주고, 입고 싶은 거 입고 나오라고 해요. 그래서 갈아입으면 막 뭐라고 하고요. 이게 말이 되냐… 그러면서 바꾸고, 바꾸고, 바꾸고. 그런 걸 굉장히 많이 했어요. 시간 날 때 애들을 따로 만나서, 뭘 좋아하는지, 뭘 갖고 싶은 지 얘기하고 또 듣고.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우리가 콘셉트를 잡고 애들을 이끌어 나가는 게 맞지만 이 친구들의 재량이랄까, 취향이랄까 그걸 더 섞고 녹여주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고 봤어요.
차우진: 어쨌든 100% 기획이 아니라 본인들 고유의 취향이나 경험이 스며든 거죠?
김성현: 저는 그게 필요하다고 봐요. 특히 방탄은 아이돌보다는 아티스트를 지향하는 팀이고, 그래서 본인들 의사를 많이 존중하려고 하거든요. 물론 제 의사가 제일 우선이긴 하죠.
차우진: 어쩌면 트레이너의 역할이기도 하네요.
김성현: 그보다는 동네 형…
차우진: 보통 남자애들이 패션에 눈 뜨고 집중하는 게 10대 시절인데, 그때 또래들끼리 유니클로 다니면서 옷 사다가 점점 다른 브랜드로 넘어가고, 다음 걸로 넘어가다가 스무 살을 넘기면 잡지도 보고 지인들에게 정보도 얻고, 스타일도 배우면서 이베이 구매까지 하잖아요. 그 시간이 보통 5~6년 걸린다고 할 때, 방탄소년단의 경우는 그걸 압축했다고 봐도 될까요?
김성현: 맞아요. 이 친구들은 거의 항상 연습실에, 녹음실에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사이트도 봐라, 이 사람 입은 거 봐라, 등등을 막 메일로 폭탄처럼 보내고. 그랬더니 나중엔 반지를 하나 사도 사진을 찍어 보내요. 괜찮은 거냐고. 그럼 제가 좋다, 별로다. 그런 피드백을 많이 했어요. 지금이 제일 멋 부릴 나이라서 패션에 관심도 많아요. 저는 그게 참 좋더라고요.
차우진: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의 시즌1 우승자, 이우경 씨가 JYP에서 일했잖아요. 패션 디자이너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하는 경우가 이우경 씨나 팀장님 외에 또 있나요? 사실 패션 디자이너가 이런 산업 구조 안에 있으면 복잡한 마음이 들 것도 같은데요.
김성현: 있죠. 제 주변에도 있었어요. 그런데 글쎄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적극적으로 추천하진 않을 것 같아요. 디자이너들은 보통 자존심이 되게 세잖아요. 사실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양보도 해야 하고, 또 이것저것 공부도 좀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긴 해요. 시안 넘겼는데 ‘별로니까 다른 걸로!’란 의견이 모아지면, 뭐 웃으면서 네, 하죠. 컴퓨터 보면서, 네! 네넵! 이러는 거죠. 흐흐.
이승희: 질문이 있는데 디자이너로서 멤버들에게 비싸고 예쁜 옷을 입히고 싶은 욕심도 있을 거 같은데요. 그런데 엔터테인먼트 쪽은 워낙 무대도 많으니까 어려울 것 같아요. 혹시 그런 건 어떻게 조율을 하세요.
김성현: 예산을 일단 많이 확보해야 하고요, 그게 어려울 때는 방법을 찾아요. 주변의 도움도 얻고. 제가 있어도, 일단 데뷔를 하면 아티스트 별로 실무를 맡는 스타일 팀이 배정되거든요. 저는 그 팀의 관리와 소통을 맡는데,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비싼 옷을 입힐 수는 있어요. 근데 프로세스 상 옷을 폐기하는 경우가 되게 많거든요. 그럼 그때는 제가 그걸 최소화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스타일 팀과 계속 얘기해요. 피팅 보고 환불할 옷을 다 빼놓는 역할. 그래서 방탄 옷을 구입하는 건 그 자체가 굉장히 깐깐한 일이 돼요. 집에 있으면 폰 메신저로 사진이 막 몇 십 개가 와요. 전 그거 보면서 구입할 것, 만들 것들을 고르죠.
차우진: 스타일 팀은 어떻게 구성되나요?
김성현: 방탄에서요? 일단 저희는 비주얼 팀이 의상과 앨범의 아트워크, 사진 콘텐츠의 모든 퀄리티와 영상 콘텐츠의 퀄리티까지 담당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건 다 하는 거고요. 무대부터 이런 저런 것들까지 스타일 팀에게 디렉션을 주고 함께 피팅을 보는 것부터 온갖 잡다한 일들을 막 하는 거죠.
차우진: 비주얼 팀과 스타일 팀이 나뉘는 거죠?
김성현: 네. 스타일 팀은 외주로 작업해요.
차우진: 비주얼 팀은 몇 명인가요? 팀원들 경력은 어떻게 되는지요?
김성현: 보통 3, 4명 정도인데, 팀원들은 절대 패션 경력자로 뽑진 않습니다. 각자의 역할이 분담되어야 하기 때문에요. 제가 시각 디자인이나 영상 쪽엔 아직 부족한 게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제 팀은 웬만하면 시각을 했거나 영상을 했던 사람을 찾아서 함께 의견을 주고받는 쪽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차우진: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뽑아서 균형을 맞추는 쪽으로 운영을 하는군요. 실제로 돌아가는 방식을 들으니 재밌네요.
김성현: 그런데 정말 의상만 하면 답이 안 나와요. 영상 담당자도 필요하고, 편집 디자이너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앨범 재킷을 꼼꼼히 검토할 수도 있어야 해요. 그걸 우리 팀에서 다 맡고 있죠.
차우진: 그러면,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요, 아까도 잠깐 말씀하셨지만, 다른 꿈이나 비전이 있나요? 원래 디자이너인데 라이프스타일 얘기를 많이 했잖아요? 열심히 안하고 잘 하고 싶다는 것 같은. 개인적인 질문이에요. 여기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만드는 경험들이 쌓이면, 정말 길게 봤을 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보세요?
김성현: 음, 저는 정말 록커가 되고 싶어요.
차우진: 네?
김성현: 록이요. 진심이에요. 직업적으로는 아니고요, 록커처럼 살고 싶어요. 너바나를 진짜 좋아하거든요. 스펙트럼은 넓어요. 레드 핫 칠리 페퍼스부터 엘리엇 스미스까지. 그동안 내한공연, 페스티벌은 전부 다 봤어요, 그 중에 제가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아티스트나 밴드는 맨 앞, 가운데서 봤더라고요. 사실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좀 놀면서 살고 싶어요. 잘 놀면서 사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사업할 때는 꽤 힘들었던 것 같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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