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당시 음악웹진 [weiv]의 편집장을 맡고 있던 저는 빅히트에서 아이돌을 데뷔시킨다는 얘기를 듣고 관계자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방시혁 대표, 피독 프로듀서, 손성득 퍼포먼스 디렉터, 김성현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팀장,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멤버들을 만났어요. 그때 인터뷰는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는(그리고 의미심장한) 부분이 많습니다. 데뷔 10주년이 되는 해에 공유해봅니다.
산업적으로 ‘의미’ 있는 회사를, 아이돌과는 ‘다른’ 아이돌을 | 방시혁 빅히트 대표
차우진: 책상에 [사장의 길]이란 책이 있네요? 방탄소년단을 기점으로 프로듀싱에서 손을 떼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보니 저 책이 다르게 보입니다. 이제까지 빅히트란 회사의 메인은 방시혁 프로듀서였는데 방탄소년단 준비하면서 피독에게 전권을 맡기고 뒤로 빠지기로 한 계기가 궁금하네요.
방시혁: 일단 저 책은, 다 읽지는 못했고요. 사장은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궁금해서 사놓긴 했어요. (웃음) 사실 제가 원래 전면에 나서는 걸 즐기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TV에 출연하면서 빅히트란 브랜드를 알릴 때도 임직원들에게 항상 얘기했는데, 언제든 내가 감이 떨어지는 날이 올 텐데 만약 방시혁 하나만 믿고 간다면 그때 우리 회사가 도대체 이룬 게 뭐냐, 방시혁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 밖에 없는 게 아니냐, 란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시스템화 하고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음악으로 회사를 굴리는 연습을 되게 많이 했는데… 결론만 얘기하면 아직은 과도기인 거 같아요. 시스템을 만들면서 실패한 것도 많은데, 가장 큰 원인은 저죠 뭐.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노래 모니터를 한 결과 제 곡이 제일 좋아서 쓴다고 해도 어쨌든 그 곡이 타이틀이 되는 순간 빅히트 소속 작곡가들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게 되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되게 살가운 사람도 아니라서 결과물에 대해 냉정하고 세게 평가하면 작곡가들이 상처받고. 이런 상황이 반복됐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란 건 꼭 구축해야 하는 거라서 길게는 3년, 짧게는 한 1년 반 정도를 연습하는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아마 방탄소년단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회사는 연습 기간이었을 확률이 높아요.
차우진: '연습'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말해주시면요?
방시혁: 경영 연습도 있고, 음악 연습도 있죠. 음악적으로는 2AM 앨범에서도 서서히 저의 지분을 줄여갔고, 글램도 핵심에서는 많이 비껴났어요. 경영적으로는, 방탄소년단이 아직 결과는 안 나왔지만, 기본적으로 제가 이루고자 하는 건 달성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선 직원들이 팀에게 애착이 많이 있어요. 본인들이 직접 다 키웠다, 란 거죠. 그리고 너무 오랜만에 진행해 보는 남자 아이돌이란 거. 이 두 가지가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해서 자가발전을 하게 만들었어요. 사실 오너들은 애사심, 애사심 말하지만 애사심은 억지로 못 키워주거든요. 결과물이 직원들 마음에 들고,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마음에 드니까 애사심이 생기는 거죠.
시스템 쪽으로도 만족하는 게 있어요. 저는 요새 ‘컨펌’도 거의 안 해요. 담당자들이 알아서 잘 하니까. 저는 아이돌 팬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보다 직원들이 팬의 마음에 대해 더 잘 알죠. 음악적으로도 피독이라는 친구가 힙합에 일가견이 있고요. 빅히트에서 온갖 궂은 일도 하고 저랑 싸우면서도 방탄소년단을 자기가 만들겠다는, 크게 보면 야망, 작게 보면 소원이나 소망 같은 게 있었거든요. 멤버들을 픽업해서 트레이닝 하는 모든 과정에 참여했으니까요.
신인개발에 있어서도 전 한국에 ‘신인개발’이라는 게 처음 생길 때 참여했던 사람 중 하나고, JYP시절부터도 노하우를 많이 접했어요. 그럼에도 그 방법론과 방시혁이 원하는 인재를 개발하는 건 또 다른 문제거든요. 그걸 정리하는데도 몇 년이 걸린 것 같아요. 사실 방탄에는 제 철학과 세계관이 녹아있다고 말할 수 있죠. 우리 신인개발팀은 음악과 무대를 사랑하는 아티스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가 있어요. 일단 음악을 싫어하면 무조건 탈락이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지 못하는 친구는 아무리 잘났어도 탈락이고. 방탄은 진짜 독하게 음악 하는 애들이에요.
참고로 회사에선 애들을 통제 안 해요. 전화기를 뺐거나 통금을 만들지 않아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대신 발전이 없으면 나가라. 레슨도 강압적으로 안 해요. 숙제를 해오면 그거에 대해서만 지적해요. 이 친구들이 안무를 짜오면 그것에 대해 좋다 나쁘다는 얘기만 해주거든요. 자발적으로 하려는 의지가 없는 친구를 안무실에 가둬 놓다시피 열 두 시간씩 가르치거나 하는 거, 저는 그런 게 싫어요.
차우진: 이 친구들을 어른 취급하시는 것 같은데요.
방시혁: 예. 제가 그래요. 근본적으로 애를 애 취급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초등학교 한 3학년 때까지만? 그 뒤엔 사리분별을 못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충동적인 성향이 강하니 사고를 칠 수는 있겠지만, 사리분별을 못한다?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원래 어릴 때는 더더욱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저도 초등학교 4학년부터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중학교 들어가서는 왜 나한테 자꾸 인생을 설교하려고 그래? 막 이랬죠. 그런 친구들에게 뭘 해라, 마라 이럴 필요가 있냐는 생각을 해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라는 거죠. 방탄은 거기에 하나 더. 힙합이 싫으면 함께할 수 없었어요. 우리가 힙합을 사랑하는 방법까지 가르칠 순 없잖아요.
차우진: 무서운 회사잖아요?!
방시혁: 저는 오히려 아니라고 봐요. 연습생들의 자발성을 인정하는 회사가 생각보다 없으니까. 무서운 게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를 받는 거 뿐이에요.
차우진: 회사 얘기를 더 해보죠. 빅히트의 조직 구조는 어떻게 되나요?
방시혁: 일단 사업운영팀이 있고 매니지먼트와 신인개발, A&R, 그리고 비주얼 크리에이티브와 전략 TF팀이 있죠. 여기에 부사장님과 일본 사무소장님이 이끌고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 팀이 있고요.
차우진: 여기서 제가 중요하게 보는 건 신인개발과 매니지먼트, A&R 쪽인데 그 중 신인개발팀의 비중이 꽤 크지 않나요?
방시혁: 신인개발팀의 역할은, 앨범 재킷을 촬영할 때 매니지먼트 팀에 인수인계하는 순간 끝나요. 본격적인 데뷔 카운트다운이 들어가면 멤버들은 완전히 매니지먼트 담당이 돼요. 매니저가 숙소에 들어가서 신인개발 팀으로부터 인수인계 받는 거죠.
신인개발팀은 철저하게 신인을 발굴해서 가르치는 역할인데, 데뷔 전에는 사업운영 팀의 PR, 팬 매니지먼트가 붙어서 언론 교육, 커뮤니케이션 교육, 팬 대응을 교육하게 됩니다. 매니지먼트에 넘어갈 때부터 정말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방법들에 대해서 교육을 받아요.
차우진: A&R과 신인개발팀이 정확하게 구분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방시혁: 완전히 다르다고 봐야죠. A&R은 말 그대로 ‘Artist and Repertory’라서 사소하게는 녹음실 관리부터 녹음 및 음반 관련 일정 정리를 맡고요. 매니지먼트 팀도 함께 일정을 짜죠. 그 외에 핵심적인 업무는 곡 받아 오는 거예요. 우리 회사를 예로 들면 2AM, 임정희, 이현이 같은 가수들의 음악적인 색깔과 작곡가들을 제안하는 게 A&R이고.
신인개발은 딱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요. 무대에 오를 실력과 자격이 있는 친구들을 만들어 내는 곳? 그러니까 격하게 춤추면서 라이브로 노래할 수 있게 만드는 곳이죠. 이게 제일 중요하고, 그리고 아티스트가 됐을 때 자발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성의 베이스를 만드는 곳이기도 해요.
그래서 데뷔하고 나면 신인개발팀이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데뷔한 다음엔 욕만 먹으니까. 사실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잘했단 말은 듣기 어려워요. 데뷔를 앞둔 친구들이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할 순 없으니. 그리고 신인이 무대에서 잘해도 외부 사람들이 하는 좋은 소리는 다 저한테 오니까 신인개발팀은 이런 좋은 피드백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죠.
차우진: 뒤에서 되게 열심히 하는 팀인거죠? (방시혁: 예, 그렇죠.) 제가 알기로는 랩 몬스터는 피독이 소개를 받고 대표님께 제안했다고 들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랩 몬스터는 신인개발팀으로 곧장 가는 건가요?
방시혁: 예, 바로 넘겼어요. 사실 그때는 시스템이라고 할 만 게 없었는데. 요즘은 처음 들어온 친구가 음악을 좋아하는 지, 연습생으로서의 자질이 있나를 보는 기간이 한 3개월 정도. 3개월 동안 연습시간, 레슨시간 정해서 알아서 나오라고 해요. 회사는 아무 것도 터치하지 않고. 그 뒤에 간이평가, 기초평가를 해요. 아이가 음악도 좋아하고, 태도도 좋고 자질도 되고 성격도 좋은 거 같으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맞춤 레슨이 시작 되요. 그때부터 저도 결과를 보면서 뭘 가르쳐라, 어떻게 해라, 디렉션을 하고. 그러면서 정말 무기한으로 연습하며 기다리는 거죠.
정식 런칭 1년을 앞두면 TF(Task Force)가 결성돼요. 방탄TF를 예로 들면, 각 부서에서 프로젝트의 핵심인원들이 옵니다. 매주 후보들의 연습 영상을 찍고 회의를 거친 뒤에 멤버를 재구성하죠. 교체할 친구는 교체하고 키울 건 키우면서 마지막까지 고민을 해요. 그 과정에서 자기 색깔을 만들게 되고. 데뷔 3개월을 앞두면 퍼포먼스 디렉터가 직접 붙어서 지도를 시작해요. 3개월 앞에선 매일 영상을 찍어서 저한테 보내고, 그렇게 매일 혼나게 되는 거죠. 고치고, 바꾸고의 연속이에요. 방탄 데뷔 전 3개월은 진짜 빡세게, 과제를 계속 내고 매일 체크하고 그랬어요.
차우진: 기초평가의 내용을 알 수 있을까요?
방시혁: 보통 곡도 본인이 정하고 안무도 본인이 정해요. 선생님은 그냥 옳고 그른 것만 가르쳐 주고요. 기초 평가는 매달 실시합니다.
차우진: 거의 내부 오디션인 거죠?
방시혁: 그렇죠. 그런데 랩몬이 왔을 때는 기초평가가 없었어요. (차우진: 그게 3년 전?) 네, 3년 전에 방탄 프로젝트 시작하자마자 제가 랩은 누구한테 배우게 하고, 누구를 섭외하고… 이런 걸 다 정해줬는데 하다 보니 연습생들이 힘들어했어요. 그리고 저희는 자율성을 존중하는데 통제를 해야 말을 듣는 애들도 있었고요. 중간에 심리상담 전문가를 팀장으로 부른 적도 있어요. 그 분이 인성적인 측면에서 프로그램을 설계하고요, 그걸 바탕으로 구조화하면서 모든 걸 총괄할 수 있는 기초 평가 시스템을 잡은 거죠. 저는 신인개발팀에 기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랑은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요구했고요.
차우진: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데 가수가 되겠다는 건…
방시혁: 저는 막연히 연예인이 되고 싶은 친구랑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건 너무 좋아요. 끼가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연예인이 목적인데 노래를 수단으로 삼겠다는 친구와는 일하기 싫은 거죠. 순서의 문제예요. 노래가 좋아서 노래하다가 연예인이 되는 건 다른 거잖아요. 그런데 또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연예인은 음악을 계속 하기 위한 수단이야’라는 것도 싫어요. 그럼 무대 아래서만 음악을 하면 되죠. 저는 무대도, 음악도 모두 사랑해야 한다고 봐요.
차우진: 최근에 자주 쓰이는 ‘엔터테이너’란 거죠? 과거엔 없던 개념이기도 한데요.
방시혁: 없었죠. 저는 음악도 사랑하고 자발성도 있고 끼도 있는, 일종의 다면체 같은 인간을 원해요. 마침 방탄이 나올 때 저의 니즈와 시장의 니즈가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지금은 아이돌한테 실력 외에도 아티스트로서의 어떤 아우라 같은 것도 요구하잖아요. 표현하는 법을 가르칠 필요 없이, 안에 있는 걸 꺼내면 되는 친구들. 회사는 그걸 더 키워주는 가이드 역할 정도라고 봐요.
차우진: 보통 밖에서는 신인 아이돌 그룹에 대해 ‘회사가 이번엔 어떤 콘셉트를 잡았나’ 하는 식으로 보는데,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팀원들이 모두 방탄의 멤버들을 중심에 두고 있단 생각을 하게 되요.
방시혁: 애초에 저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 지 확실히 아는 친구들을 원했고, 결과적으로 그런 친구들을 만나서 행복하죠. 하지만 멤버들에게 100% 의지할 순 없어요. 멤버들이 기본을 잡고 부족한 부분은 회사가 채워주고. 방탄은 좀 특별한 게 본인이 직접 매니지먼트 팀이랑 협의해서 자기 스케줄을 조정해요. 그냥 짜여진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죠. 멤버들이 직접 음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스케줄도 관리할 줄 알아야 해요. 그걸 못하면 다음 음반은 못 나오는 거예요. 의상도 입고 싶은 게 뚜렷하고. 방탄의 콘셉트에는 멤버들의 철학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봐요.
차우진: 그러면 방탄소년단을 기점으로 빅히트가 어떤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되려고 하는가, 일종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게 되는데요.
방시혁: 그렇게 보시는 건 정확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방탄을 내면서 제 정체성,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로서 가야 할 길에 대해 정했거든요. 막연하게 내가 저기로 가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계기가 된 거 같아요. 앞으로 이런 저런 친구들을, 이렇게 저렇게 제작하겠다, 또한 글로벌은 이렇게 저렇게 적용하겠다… 이런 부분에서 되게 명확해졌어요.
차우진: 사실 빅히트에서 글램이 나왔을 때 반응이 ‘빅히트에서 아이돌을?’ 뭐 이랬는데요, 비유하자면 생수 전문회사가 콜라사업에 뛰어든 느낌이랄까요? 내부의 경험치가 모자란 입장에서 왜 아이돌을 시작하겠다고 판단 했습니까?
방시혁: 그건 회사의 색깔보다는 음악 산업의 동향을 파악해야 할 문제예요. 더 이상 아이돌이 아닌 그냥 가수로는 산업적으로 의미 있는 회사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아이돌이 아니라면 매니저와 지분을 나누는 게 제일 좋죠. 곡을 잘 써서 프로듀스하면 매니저가 홍보하고... 그렇게 수익은 5:5로 나누고. 하지만 이런 시스템 보다는 산업적으로 의미 있는 회사를 만들고, 그 안에 어떤 롤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지금의 SM 엔터테인먼트가 하듯이. SM은 음악 산업의 부침 속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모델을 만든 회사라고 생각해요. 그런 롤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돌 제작을 시작했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우선 곡이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아이돌 시장은 제 개인적인 역량이나 단순히 좋은 곡 하나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타깃 층을 어떻게 공략하느냐에 달렸죠. 그래서 신인개발도 아이돌에 포커스를 맞추고 공부를 엄청 했어요. 회사 인원이 전부 모여서 토론하고. 그런데 노하우가 공부로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단순히 제작자의 감으로만 되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배우면서 제가 뒤로 많이 빠졌어요.
차우진: 빅히트의 방향, 비전을 구조적이거나 산업적인 맥락에서 고민을 하시는 건데, 그럼에도 어쨌든 시장성이나 상업성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이 있지 않나요? 특히 글램과 보컬로이드 시유가 함께 등장한다거나, 힙합 아이돌이라는 방탄소년단을 데뷔시킨다거나.
방시혁: 저는 그게 아티스틱한 CEO 뿐 아니라 모든 CEO의 덕목이라 생각을 하는데요. 단순히 시장을 분석하기만 한다고 나오는 판단은 아니라고 봐요. 그런 판단은 첫째, 내가 좋아할 것. 아마 삼성이나 애플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호불호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둘째가 감이에요. 큰 결정들은 전적으로 저의 호불호와 감에 의존하고, 제가 책임도 지죠. 그 점에 대해선 최소한 임원급에서는 이견이 없는 걸로 알아요. 그게 저 사람의 역할이다, 라는 거. 참고로, 옛날에는 그런 태도가 곡에도 반영이 됐지만, 지금은 아니고요.
하지만 팬을 위한 콘텐츠에 대해선 잘 모르겠어요. A랑 B 중에 뭐가 더 좋은지 저는 모르는데, 팬 매니지먼트 팀은 딱 알아요. A-B 중에서 어떤 거? 물으면 "A입니다."라고 단번에 나와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몰라요 그냥 A가 좋아요." 이래요. 그래서 믿고 출시해보면 다들 A를 좋아하고요!
차우진: 팬 매니지먼트 팀의 사람을 잘 뽑은 걸 수도 있고요.
방시혁: 그렇게들 얘기해요. 하하. 본론으로 돌아가면, 특이한 걸 하고 싶은 게 제 성향이고 그래서 빅히트가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다수결로 얼굴 예쁜 친구를 뽑아서 다수결로 제일 좋다는 노래로, 다수결로 제일 좋다는 안무로 가면 되는데, 그렇게 안 하는 게 프로듀서가 오너인 회사의 강점일 수 있다고 봐요. 나쁘고 좋은 게 아니라, 오너의 특성에 따라 회사마다 성향이라는 게 생기니까.
차우진: 프로듀서로서 아이돌과 일반 가수의 차이가 뭐라고 보세요?
방시혁: 아이돌은 서비스업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명확한 타깃 층이 있고, 타깃이 원하는 취향도 있고요. 그래서 아이돌은 타깃 층이 원하는 덕목을 갖춰야 해요. 그것이 충족될 때 소비가 발생하죠. 어느 가수나 팬 서비스라는 걸 기본으로 하지만, 아이돌에겐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거죠.
저는 일반 가수들과 아이돌을 동일선상에 놓고 얘기하는 행태에 불만이 많아요. 무엇이 더 가치 있고 우월하냐는 얘기도 아니고요. 그냥 다른 서비스에요. 저스틴 비버에게 원하는 것과 릴 웨인에게 원하는 게 같을 이유가 없는 거죠. 저는 크게 보면 아이돌은 일반 가수들과 아예 출발이 다르고, 그래서 같은 선상에 놓고 얘기할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봐요. 노래하고 무대에 오른다는 것만 비슷한 거죠.
차우진: 어쨌든 양쪽 모두 노래가 핵심이긴 하잖아요? 곡이 좋아야 성공한다는 관점에서 특히 아이돌 음악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경향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개인적으론 조권의 솔로 앨범의 수록곡을 그냥 사오는 게 아니라 협업하는 방식이라서 좋았어요.
방시혁: 아이돌의 경우 노래와 무대 퍼포먼스가 더해져 하나의 ‘곡’이 되는 거라고 봐요. 기본적으로 댄스 음악의 트렌드는 미국에서 시작되는데, 한국적 정서가 강한 곡을 가지고는 완성도 뛰어난 무대를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비트 자체가 그렇게 구성 될 수가 없거든요.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해외 작곡가들의 음악은 한국 작곡가들의 음악보다 무대 구성이 쉬워요. 하지만 외국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당장 메이저 규모로 성장할 거 같진 않아요. 음악 사업을 더 국제적으로 산업화시키려는 의지를 가진 소수 그룹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보고 있어요.
최민우: 그럼 그 관점에서 최근 SM이나 YG의 음악이 되게 복잡해지는 경향은 무대 퍼포먼스에 대한 해법이라 볼 수 있을까요?
방시혁: 그럼요. 랩을 쓸 때도 춤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요. 요즘엔 비트 뿐 아니라 랩에도 안무를 짜요. 랩에 사람을 흥분시키는 요소가 있어야 춤도 출 수 있는 거에요. 방탄 멤버들에 비해 제가 이런 지점을 잘 알기 때문에 랩 작업에 조언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말씀하신 대로, 음악이 복잡해지는 건 백퍼센트, 무대 때문이에요. 분명히 곡에 뮤지컬의 구성을 담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거라고 봐요.
차우진: 사실 무대 퍼포먼스는 K-POP 고유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게 경쟁력, 그걸 기반으로 음악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고 보시는 거죠?
방시혁: 그렇죠. 하지만 모든 가요 산업이 이러한 형태로 바뀌긴 힘들 거라 생각해요. 한국 음악계만 보더라도 복잡한 구성의 곡이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하진 않아요. 그럼에도 그런 곡들이 해외에서 K-POP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죠. 그건 산업적 관점으로 음악을 하는 회사들이 만들어낸 결과일 겁니다.
차우진: 외국의 뮤직마켓 같은 데를 가본 적은 있으세요?
방시혁: 저는 없고, 직원들을 보내긴 했어요. 그런데 왜 가야 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콜라보를 위해서도 아니고, 거기서 트렌드를 읽는다는 건 더군다나 말이 안 되는 거고요. 저는 회의적이에요.
차우진: 아까 얘기했던 음원시장의 괴리 같은 게 있는 상황에서 방탄소년단이 실제로 겨누고 있는 시장이나 수익성은 뭐라고 보세요?
방시혁: 음원시장은 더 이상 수익모델일 수 없어요. 음원을 포기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가 된 거 같아요. 음원은 음반을 대체하지 못한다. 콘서트와 굿즈(goods)와 인도스먼트(endorsement)로 수익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아직 한국에서는 가수는 음악을 팔아야 하며, 그것이 진정한 가치라고 여기고 있어요. 사실 옛날엔, 한 18/19세기엔 누가 음악을 팔았어요. 20세기 초까지도 음악이 아닌 악보와 공연을 팔았잖아요.
방탄소년단이 아이돌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음원 수익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냥 빅뱅이랑 원더걸스같이 음원도 잘 된 아이돌도 있으니까 우리도 어쩌면? 이 정도지 음원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콘서트를 가장 중요하게 봐요. 공연 시장을 노리려면 결국 중국으로 가야 해요. 일본은 이제 기본인 거죠. 옛날엔 국내가 디폴트, 일본이 진출, 중국이 옵션이었는데 지금은 국내와 일본이 디폴트, 중국이 진출. 이런 구도여야 한다고 보는 거죠.
두 번째로는 인도스먼트에요. YG가 되게 잘 보여주고 있어요. 공연이 잘 되면 인도스먼트가 가능해지거든요. 계속 협찬을 붙이죠, 모든 광고가 공연과 함께 움직여요. 그리고 마지막이 굿즈인데, 이게 결국 수익 모델이 되어야 해요. 기반은 팬덤이지만 거기서 점차 넓어져야죠.
차우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방금 언급한 부분은 이미 미국의 메이저 음반사들도 지향하고 있는 쪽이니까요.
방시혁: 그럼요, 라이브네이션이 음반업계 전면에 등장한 것도 음반 사업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결과라고 봐요. 자신이 음악 산업의 핵심이라는 생각, 그래서 제이-지와도 계약하고 한국에서도 계약하는 거죠. 직배사들도 공연으로 다 돌고 있는 건 음반을 팔아도 답이 안 나오니까.
차우진: 그렇다면 적어도 빅히트의 경우는 시장을 더 크게 상정하고 있다고 보이는데요, 중국 진출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주시죠.
방시혁: 중국이 되게 중요한 이유는 현재 가능한 시장이 거기 뿐이라서에요. 브라질은 제가 볼 때는 비행기 값도 안 나올 거 같고. 오히려 일본은 줄었어요. 그래서 저는 SM을 보면서 ‘역시 SM이다!’ 막 박수치고 있어요. 엑소(EXO)가 지금처럼 쭉 가주면 그 다음, 동방신기와 보아가 했던 것처럼 시장을 만들 수 있을 거에요. 제가 볼 땐 중국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메인 시장이었던 적이 거의 없어요. 연예인 한둘이 드라마 찍고, CF 찍는 건 시장이라고 할 수 없죠.
차우진: 그러면 방탄소년단에 대한 확신이랄까, 어쨌든 밀어붙일 수 있는 근거라는 건.
방시혁: 크게 두 가지인데요, 프로듀서로서 방탄소년단을 소신껏 밀어붙일 수 있는 이유 하나는 멤버 전원이 빅히트에서 처음 연습생을 시작한, 이른바 빅히트 순혈들이란 이유에요. 사실 이런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에요. 대게 멤버 중에 한 둘은 다른 데서 연습생 하다가 늦게 합류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무튼 이런 이유로 방탄은 프로듀서/제작자의 의도를 선입견 없이 잘 이해해줬어요.
그리고 이들은 정말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어요. 멤버들이 대부분 10대 초반부터 음악과 춤을 시작했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다른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빅히트와 인연을 맺게 된 거죠. 이 열정이, 정말로 있어요. 그게 제가 이들을 믿고 가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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