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당시 음악웹진 [weiv]의 편집장을 맡고 있던 저는 빅히트에서 아이돌을 데뷔시킨다는 얘기를 듣고 관계자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방시혁 대표, 피독 프로듀서, 손성득 퍼포먼스 디렉터, 김성현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팀장,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멤버들을 만났어요. 그때 인터뷰는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는(그리고 의미심장한) 부분이 많습니다. 데뷔 10주년이 되는 해에 공유해봅니다.
무대를 고려한 음악을 만들기 | 프로듀서 피독
차우진: 음악은 언제 처음 시작하신 거예요?
피독: 2007년인데요, 제가 에이트 1집에 참여하면서 데뷔했어요. 그 뒤에 임정희 3집을 하면서 방시혁 대표를 알게 되었는데... 인터넷으로 연락했어요.
차우진: 인터넷이요?
피독: 시혁이 형이 운영하던 온라인 작곡 카페가 있었거든요. 솔직히 당시에 저는 형에 대해선 정보가 거의 없었고요. 힙합 사이트를 돌아다니던 중에 힙합 카페가 있는데 그곳 운영자가 예전에 외국 힙합 아티스트들한테 곡도 준 적이 있다더라. 뭐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죠. 솔직히 그땐 가요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가입하고 카페에 몇 곡을 올렸는데 그걸 형이 좋게 봐주셨던지 서울에서 음악해볼 생각 없냐, 메시지가 왔죠. 그래서 올라왔어요. 제 고향이 부산 옆에, 경남이거든요. 뭐 우연하게 연이 닿았죠. 그 다음엔 에이트 곡도 써봐라, 임정희 곡도 써봐라 그랬는데 운 좋게 서울에서 쭉 지내고 있어요. 네, 뭐,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차우진: 그게 2007년이면 빅히트가 설립된 직후인 거죠?
피독: 그렇죠, 막 회사가 생기고 들어온 거죠.
차우진: 부산에서 다른 활동은 안 하셨어요?
피독: 그냥, 동네친구들끼리 모인 크루 같은 게 있었고요. 제가 지-펑크(G-Funk)나 웨스트 코스트 쪽을 좋아해서, 서울에 있는 형님이랑 그쪽 음반을 준비하고 있기는 했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었죠. 아무튼 부산에서 딱히 활동은 없었고, 부산의 언더 뮤지션들이랑 교류하는 정도?
차우진: 다른 장르도 그렇지만, 힙합 커뮤니티도 거의 홍대 앞에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지역 씬이나 커뮤니티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으니까요.
피독: 제 친구들이랑 부산의 클럽에 놀러가면 쌈디가 거기서 늘 공연하고 있었고, 부산 지역을 근거로 한 지기 펠라즈라는 크루에 있던 형이랑 저는 함께 음악 하던 상태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터처블의 슬리피나 뭐 그런 친구들과 스무 살 때부터 계속 알고 지냈고요.
차우진: 그게 대략 몇 살 정도였던 거예요?
피독: 제가 스물 다섯 살 때죠. 2007년 여름에 시혁 형이 서울에서 음악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그냥 올라왔어요. 그런 면을 또 좋게 봐주셨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그, 음악 교육과를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뒀거든요. 제가 성악을 했는데 예중, 예고 나오면서 되게 오랫동안 성악을 전공했어요. 그러니까 부모님은 어쨌든 클래식 음악가나 선생님이 되길 바라셨죠. 안정적이니까. 하지만 뭐 어쨌든 저한테 좋은 기회가 생겨서 부모님의 기대와 싸워 이긴 셈이죠. 솔직히 선생님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든 간에.
차우진: 설득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피독: 일단은 제 곡이 나오긴 하니까 얘가 재능은 있나 보다, 하신 거죠. 얘기했던 대로, 저는 방시혁이라는 프로듀서가 정확히 누군지 모르는 상태여서 나중에 찾아봤어요. 찾아보니까 흑인음악 분야에서 계속 교류도 하고 지속적으로 그런 음악을 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서 망설이진 않았고요. 저는 일단 교육학과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그런데 처음 서울에 와서는 좀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왜냐면 저는 힙합이나 알앤비 쪽을 하고 싶은데 시혁이 형은 한창 발라드로 피크치고... 저는 힙합도 지-펑크, 웨스트 코스트, LA 기반의 음악 빼고는 열심히 듣지도 않았거든요. 나스(Nas)나 제이-지(Jay-Z), 우탱 클랜(Wu-Tang Clan) 같은 동부 아티스트들도 열심히 들었지만, 그래도 혼자 ‘내 뿌리는 LA야’ 막 이랬던 터라, 갑자기 일렉트로니카도 해야 되고 다른 것도 해야 하는 게 혼란스러웠어요. 근데 또 시장 자체가 그쪽으로 가기도 했으니까요…
차우진: 피독이라는 이름은 그 즈음에 쓴 건가요?
피독: 아뇨, 고등학교 때부터 썼어요. 그때 친한 애들끼리 막 크루 같은 거 만들고 놀았는데, 소울컴퍼니도, 빅딜도 그때 생겼어요. 밀림이란 사이트에서요. 그때 저도 친구들과 그런 크루를 만들었는데, 뭐 잘 안 된 거죠.
차우진: 저는 피독이란 이름을 조권의 솔로 1집에서 인상적으로 봤어요. 찾아보니 기사도 좀 나오더라고요. 저는 그 앨범이, 아비치(Avicii) 외에 다른 외국 곡들을 그냥 사 오기만 한 게 아니라, 국내 작곡가들과 협업하는 방식이어서 재밌었어요.
피독: 맞아요. 그때 되게 재밌었어요. 그쪽에서 서울로 와서 같이 작업하고 녹음도 하면서 한 일주일 정도 있었거든요. 그동안 뭐 송 캠프처럼, 계속 의견 교환하면서 작업할 수 있었어요. 저는 언어가 안 되지만 시혁이 형은 영어를 잘하니까. 그 일주일 동안 앨범 전곡이 거의 다 정리되고 그랬죠. 되게 재밌었어요. 믹스도 곡에 맞는 엔지니어를 찾아 LA에도 갔다가 뉴욕에도 갔다가 막 돌아다니면서 다 같이 움직였어요.
차우진: 조권의 솔로를 준비하면서 겪은 경험은 그 전과는 많이 달랐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피독: 그때 빌보드 차트 같은 걸 보면, 음악 시장 자체가 일렉트로닉 쪽으로 쏠린다고 봤어요. 비트포트(www.beatport.com)에 나올 법한 아티스트들이 팝 아티스트들이랑 콜라보해서 대박을 치고 있으니까. 그래서 저희도 거의 1년 정도를 그쪽만, UK차트나 비트포트를 계속 뒤지면서 연구하고 공부했는데, 그러면서 시퀀서도 큐베이스에서 FL 스튜디오로 바꾸고. 정말 미친듯이 공부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솔직히 시혁이 형한테 찾아가 이거 안 할래요, 얘기하려고도 했는데요. 정말 이 얘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적도 있어요.
차우진: 그런 경험과 방탄 프로젝트는 어떻게 연결되는 거예요?
피독: 2010년 쯤에 슬리피랑 술 마시는데, 저희가 좀 친해요. 슬리피가 17살인가… 고1인데 노래를 기똥차게 잘하는 애가 있다며 들어볼래? 하더라고요. 그래서 들어봤더니 오, 쩔어. 그래서 시혁이 형한테 이런 애가 있다고 하니까... 뭔가 딱 왔던 거겠죠?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예요. 그 친구가 랩 몬스터였어요. 그때는 방탄소년단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냥 힙합을 기반으로 한 팀을 만들자, 정도만. 그래서 랩 몬스터를 제일 먼저 만났고 그 중간에는 빈지노도 만나고 베이식도 만나고 그랬어요. 그 외에도 언더에서 잘하는 친구들을 쭉 만났는데 여러 사정들이 있어서 안 됐죠. 2010년과 11년 사이에는 전국으로 오디션을 돌면서 슈가가 들어오고 그러면서 방탄 프로젝트가 다듬어졌어요. 처음에는 아이돌이 아닌 힙합 그룹을 만들 생각이었어요.
차우진: 그런 기획이 나온 이유가 뭐였어요? 본인이 힙합을 하고 싶어서?
피독: 아니요. 그보다는 이렇게 잘하는 애들을 묻어둘 순 없다, 뭐 이런 마음이었죠. 랩 몬스터 주변의 친구들 출생 연도가 94, 95년 생들이었어요. 되게 어린데 되게 잘하더라고요. 이렇게 잘하는 애들이 있구나, 하고 보니까 또 블락비의 지코와도 친구 사이고. 그렇더라고요. 이런 애들이 꽤 많은 걸 보고 시혁이 형한테 얘기한 거죠. 처음엔 방탄 크루라고 했어요. 그러다가 점차 아이돌로 방향이 바뀌면서 정리가 되고, 춤도 퍼포먼스가 들어가면서 힘들어하는 애들은 또 정리가 되고... 그런 과정을 거친 거죠.
차우진: 저는 새로운 팀이 나올 때 어떤 시장을 노리는지 궁금해요. 방탄소년단의 경우는 주변 사람들이 ‘한국 메이저에서 힙합의 시장성이란 게 있나?’ 그런 얘기를 나눴던 것 같고요.
피독: 글쎄요, 시혁이 형은 어떨지 모르지만, 제 생각만 얘기하자면, 우선은 어린 친구들이 재능이 많으니까 빅히트가 여기에 음악적인 시너지를 더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고요. 또 2010년부터 얼마 전까지 미국에서 일렉트로니카가 강세였는데, 작년 후반부터는 갑자기 힙합 베이스의 음악이 뜬 까닭도 있는 것 같아요. 에이셉 라키(ASAP Rocky)나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로직(Logic) 같은 신인들이 나오는 걸 보면서 아, 이제 힙합이 돌아온다, 특히 90년대 음악이 온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2006년 즈음에 더 게임(The Game)을 들었을 때도 비슷했거든요. 딱 듣고 ‘와 내가 원하던 갱스터 스타일이야’ 막 이랬는데. 특히 켄드릭 라마는 랩도 잘하고 음악도 90년대부터 2000년 초반의 향수를 현대적으로 너무 잘 풀었더라고요. 와 미쳤다. 지금은 힙합을 원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거죠.
차우진: 그 점에서 글램에 대한 얘기를 해보면 좋을 거 같은데요. 어쩌면 시험판 같은 느낌도 있어요.
피독: 음, 일단 음악은 조권과 비슷한 시기에 함께 준비했어요. 그러니까 외국의 작곡가들, 아티스트들하고 거의 똑같이 진행했는데, 달랐던 거는 글램에 더 고민이 많았어요. 조권은 유럽에서 유행하는 사운드를 하려고 했다면 글램은 다른 걸 그룹들이, 2NE1이나 포미닛 같은 팀이 이미 그런 음악을 하고 있어서 짝퉁 같은 느낌을 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 2년 전에 덥스텝도 해보고, 다양하게 시도하다가 결국엔 힙합 베이스의 전자음악으로 가자고 정한 거죠. 그래서 “Party”란 곡도 만들고 하면서 점점 더 흑인음악 성향을 반영하자... “I Like That” 같은 곡에서도 여러 실험을 많이 했죠. 그런데 글램은, 아무래도 빅히트에선 아이돌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음악보다는 다른 데서 시행착오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차우진: 포지셔닝이나 마케팅 같은 부분이요?
피독: 안무나 방송에 대한 부분이죠. 안무도 외국에서 다 받아와서 그 자체는 엄청 좋은데, 너무 격하게 춤을 추면 카메라가 따라 잡을 수 없거든요. 그때는 그런 점을 많이 고려하지 못했어요. 카메라에 잡히는 부분에 대한 저희만의 노하우가 좀 부족했던 거죠. 예전에는 풀샷도 잡고 고정 카메라도 많았는데 요즘에는 카메라가 막 움직이거든요. 슥슥슥슥.
차우진: 카메라들도 진화하는 거죠. SBS [인기가요]를 보면 생각이 많아져요.
피독: 예, 그렇죠. 정희 누나나 에이트나 그냥 서서 노래하다 보니 우리한테 다른 스타일에 대한 노하우가 없더라고요. 공은 정말 많이 들였죠. 곡도 엄청 많이 썼고, 작업 기간도 엄청났고, 녹음도 진짜 많이 했는데.
차우진: 그러다가 방탄소년단에서 메인 프로듀싱을 맡은 건데, 느낌이 많이 다른가요?
피독: 저는 그냥 시혁이 형한테 애들을 소개했을 뿐인데, 형은 저한테 그 이상의 뭔가를 맡긴 거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그 시기에 제가 음악적으로 좀 힘든 시기였어요. 내가 이 회사에서 뭘 할 수 있나, 이런 고민으로 좀 방황하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시혁이 형이 방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저한테 길을 열어 준 거죠.
차우진: 그러면, 프로듀서로서 아이돌 그룹을 준비할 때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가, 디테일한 얘기들도 궁금해지네요.
피독: 일단 연습생들은 한 30명 정도 거쳐 간 것 같아요. 또 공개는 안 됐지만, 이 친구들이 저랑 작업한 곡도 많아요. 작곡도 하고 녹음도 하면서 서로 화학작용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그런 기간이 한 3년 정도였고, 그러는 동안 남은 게 슈가, 랩몬, 제이 홉이거든요. 이 셋과 작업한 건 지금 제 컴퓨터에 다 있어요. 얘들은 기본적으로 매주 최소 한 곡 씩 작업했고, 과제를 내주고 받은 것도 있고. 사람이 좀 많을 때는 팀을 나눠서 외국 팝에도 붙여보고 가요에도 붙여보고. 힙합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으로요. 그러다가 이 인원이 굉장히 좋다, 이럴 때 멤버도 정리가 되고 그랬죠. 또 퍼포먼스가 가능한 친구들과 불가능한 친구들이 나뉘고... 그런 과정으로 1년여 전부터 본격적으로 방향을 잡아가는데, 저도 계속 생각을 많이 했죠. 회의도 엄청나게 했고요. 패션부터 랩과 노래의 수준을 계속 체크하다가 본격적인 작업은 작년 12월이나 11월부터였어요. 그때부터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블로그도 직접 운영하면서 거기에 올릴 곡들과 커버 곡을 추리면서 멤버들의 방향을 잡았는데, 저도 되게 힘들었던 게 아무래도 대중적인 음악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어요. 한국 메이저에서 힙합은 아무래도 사랑 얘기를 랩으로 풀어야 하니까요. 아니면 YG 스타일의 스웩을 하든가. 그런데 그러려면 결국은 자기가 진짜 잘나고 돈도 많아야 되고 뭐라도 뽐낼 게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뭐가 없는 거죠. 솔직히 그런다고 해서 사람들이 쉽게 인정해줄 것도 아니고요.
차우진: 필드에 나가면 확 비교도 되니까요.
피독: 네, 그런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어요. 일단은 데뷔 싱글에 일곱 명 목소리가 다 들어가려면, 래퍼 한 명당 열 여섯 마디를 채워야 하는데, 저희는 여덟 마디 정도 밖에는 나눠 가질 수 없으니까. 그 안에 또 사람들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마디도 만들어야 하니까, 힘들어지죠. 그래서 처음에는 대중적인, 말랑한 것도 시도하고, YG에서 할 법한 음악들도 만들어봤는데 아, 이랬다간 차별성이 없겠다... 싶었어요. 그러면서 뭐 이 산, 저 산 굉장히 올라갔죠.
차우진: 1년 전 쯤의 일일까요?
피독: 이 산, 저 산 본격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한 건 한 6개월 정도 전이에요.
차우진: 그런 상황에서 조권이나 글램이 했던 것처럼 외국 곡을 받을 생각은 안했나요? 힙합이라서 더 어려웠을 것 같긴 하지만요.
피독: 그런 생각도 있었는데 어중간해질 것 같았던 게 가장 커요. 왜냐면 외국에서 곡을 받으면 그, 오리지널리티가 거의 완전하거든요. 그걸 아이돌 곡처럼 바꾸는 게 더 힘들겠다 싶었어요. 폼 자체가 완전히 다르니까요. 저희도 처음엔 그런 식으로 많이 작업해봤는데, 답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이러면 아이돌도 놓치고 힙합도 놓칠 것 같고. 그런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한편으론 시혁이 형이 기본적으로 힙합은 자기 이야기니까 가사나 곡 작업에는 가급적 모든 멤버들이 참여해야지, 받아온 곡으로 하는 건 아니다... 라는 그런 기준도 있었어요. 그래서 멤버들이랑 회의도 뭐 엄청 많이 했죠. 가사의 주제는 뭘로 할까 등등. 그때 주고받은 메일을 보면 제목에 ‘뭐뭐뭐-50번째’ 이렇게 와요. 수정을 워낙 많이 해서. 애들이 힘들었죠, 뭐.
차우진: 확실히 기존 아이돌 그룹과는 다른 느낌이네요.
피독: 그러니까 음악 작업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니들이 하고 싶은 음악은 뭐야?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은 이런 거야. 서로 이런 얘기를 주고받고 회의도 같이 했던 거죠. 슈가란 친구가 비트 메이킹을 직접 해요. 방탄의 주축이라고 할 만한 친구들이 다른 멤버들과 많은 시간을 교류하다 보니 처음엔 힙합을 잘 모르거나 그냥 알앤비만 좋아하던 애들도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저한테 찾아와서, 제가 잘 모를 것 같은 아티스트 음악을 들고 오고 그래요. 이거 좀 들어봐요, 하는 거 있잖아요? 저한테 그러는 걸 제가 되게 좋아해요, 이뻐 보이고, 그러다가 아 요것 봐라, 이러고요. 멤버들하고 음악 얘기를 굉장히 많이 했고, 지금도 많이 나눠요. 지금의 미국 힙합이 90년대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걸 보면, 그때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 그렇게 재해석하는 거잖아요, 어 그러면 우리도 그런 방식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차우진: 사실 외국 곡을 받는 건 저작권 문제와도 밀접할 텐데요, 국내에서는 특히 저작권이나 표절 등을 염두에 두게 되는데, 필터링 과정이나 작업들은 어느 정도로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비슷한 게 나오면 어떻게 정리하는지, 이를테면 폐기하는지 아니면 거듭해서 계속 고치는지. 타이가(Tyga)의 “Dope” 얘기도 나오고 그러잖아요.
피독: 제 경우엔 막 뒤지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 전에, 일단 만들고 싶은 분위기가 있잖아요. 타이틀만 놓고 보자면, LA 기반의 음악을 하고 싶었으니까 우리가 만드는 힙합에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랩이 좀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죠. 옛날 음악을 재해석한 음악들을 찾아 듣다가 타이가를 들었는데 이게 딱 너무 익숙한 샘플이더라고요. 닥터 드레의 “Deep Cover”죠. 그 베이스라인을 따서 되게 잘 적용했더라고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학교 3학년 때 지누션의 “가솔린”에 완전히 꽃혔던 게 생각나면서 우리도 그때 한창 유행했던, “컴백홈”이나 “전사의 후예” 같은, 베이스가 막 무겁게 울리는 걸 트랩으로 풀면 재밌겠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Dope” 같은 경우엔 소스를 신시사이저로 다시 작업한 것 같더라고요.
근데 저희는 아예 샘플을 쓸까..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90년대에 쓰던 샘플을, 콘트라베이스 샘플을 다 뒤졌어요. 회사에 다 있더라고요. 거기서 찾은 걸 여러 개 섞어서 만들었어요. 아예 90년대 느낌을 더 넣으려고요. “가솔린”도 “컴백홈”도 당시 유행하던 콘트라베이스 샘플을 썼거든요. 그걸 찾아보는 것도 재밌었죠. 그런데 곡에 퍼포먼스가 들어가니까, 이제 트랩으로 작업한 걸 템포도 높이고 폼도 아이돌 음악처럼 바꿀 수밖에 없더라고요. 보컬하고 랩을 빼면 막 아이돌 같지는 않아요.
한편으론 베이스의 그 질감 때문에 H.O.T.나 서태지와 아이들을 연상하는 분들이 있을 거 같은데, 저는 그보다는 90년대 갱스터 힙합을 좀 더 현대화시켜보자는 의도가 있었어요. 처음엔 내부 모니터링 시간에 “전사의 후예” 같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래서 베이스를 덥스텝 소스나 일렉으로 살짝 바꿔봤는데, 오히려 이상해지더라고요. 아, 이건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아예 90년대 샘플러를 찾고 섞어서 우리가 직접 만들기로 한 거죠. 더 90년대 분위기가 나도록.
차우진: 그러니까 키워드는 ‘90년대’였던 거네요?
피독: 네. 90년대의 황금기. 그걸 2013년의 감성에 맞춰보자. 음반 수록곡을 다 들어보면 요즘 유행하는 트랩도 있고, 어반도 있지만, 다른 곡들은 보컬을 보여줄 수 있는 곡들이 아니에요. 작법 자체를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 힙합에 뿌리를 두려고 했어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곡들도 마찬가지고요.
차우진: 그럼에도 ‘힙합을 하는 아이돌’이란 건 좀 애매한 포지션이라서 프로듀서의 고민이 컸을 것 같아요.
피독: 완전 많이 했죠. 저는 개인적으로 힙합 사이트에서만 놀았는데 그렇다 보니 고민이 되죠. 당장 방탄소년단이 힙합 커뮤니티에서 인정받을 순 없을 거예요. YG가 여기까지 오는데 거의 10년 가까이 걸렸잖아요. 당연히 시간이 걸리는데, 그 와중에 성공을 거두면 인지도나 음악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 같고요. 그런 면에서 본인들도 롤 모델을 빅뱅으로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자기 음악을 하는 팀이니까. 우리도 이 친구들이 점점 더 자기 음악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하고요. 그러려면 지금 당장은 대중들과 어느 정도 타협점을 맞출 수밖에 없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지금 당장 힙합 커뮤니티나 힙합 팬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는 거죠. 물론 다른 수록곡이나 앞으로 나올 곡들을 들어보면 또 조금은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봐요.
차우진: 하나의 앨범을 완성시키는 프로듀서의 역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피독: 첫 번째는 비트를 잘 만들어야죠. 그러니까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비트를 말이죠. 퍼포먼스가 빠질 순 없으니까요. 일단 무대에서 여러 가지를 잘 구현해낼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역할이 우선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가사는 시혁이 형이 주로 많이 체크를 했고, 저는 기술적인 부분을,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에 하던 랩 방식으로 잡아주고 그랬어요. 또 녹음과 믹싱, 마스터링, 여기에 뮤직비디오나 의상도 계속 체크했는데, 뮤직비디오는 형이랑 계속 의견을 나눴고 뮤직비디오에도 90년대 뮤직비디오의 요소들을 많이 넣었어요. 제가 댄스나 의상은 잘은 모르니까 담당자들과 얘기를 많이 주고받았죠. 요즘은 듣는 음악이 아니라 보는 음악이니까요.
차우진: 보면, 여기서는 ‘아티스트’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하게 쓰이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를 지향한다’는 건 누구나 다 원하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이긴 한데, 정작 아이돌이 아티스트가 되는 게 시장성이 있을까... 란 고민은 없으세요? 꼭 그래야만 할까?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여러 가지 자원도 필요하니까요. 그때 회사는 어떤 근거로 그런 판단을 하는지 궁금한데요.
피독: 결국은 그, 진정성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기 얘기를 하는 게 중요하고, 그걸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딱히 아이돌로 키운다, 아티스트로 키운다는 개념은 아닌 것 같아요. 본인들이 음악을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될 때도 있을 거고요. 이 친구들이 장기적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음악,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을 찾아갈 때 우리는 동반자 같은 개념이 되겠죠. 그리고 또 이제, 아이돌이 워낙 많으니까 그런 점이 차별화의 포인트인 것도 같아요. 덕분에 다른 영역에서 이 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고요.
차우진: 팬덤은, 어떻게 설정하고 있어요? 10대 소녀, 아니면 20대 남자, 뭐 그런 부분이요.
피독: 일단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 정도까지인 것 같아요. 차차 나이가 들면서 함께 성장하는 팬덤이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멤버들이 연습생 생활을 하느라 보통의 10대들의 삶을 잘 몰라요. 그래서 이어지는 스토리가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로 흐르게 되요. 연애 얘기도 애절하고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 또래의 유치하고 어린 느낌의 곡이거든요. 물론 나중에 이런저런 경험도 많아지고 그러면 가사의 내용도 바뀌고,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팬덤의 범위도 더 넓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이에요.
차우진: 피독이 추구하는 혹은 지향하는 음악은 결국 힙합이겠죠?
피독: 네. 힙합과 떨어질 수 없는 입장이라, 앞으로도 저는 힙합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음악 작곡가로 잘 해보고 싶죠. 그리고 그 중심에 방탄이 있으면 좋겠어요.
차우진: 추가로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아이돌 그룹이 오히려 진정성을 추구하려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10년, 20년 동안 이런저런 비난을 피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을, 소위 ‘아티스트’에 가깝게 만드는 게 아닌가. 록 밴드들은 오히려 진정성이 촌스럽다 말하잖아요.
피독: 힙합도 그런 것 같아요. 언더그라운드의 아티스트들은 메이저에서 좀 달달한, 가요에 가까운 음악을 발표하는데 지드래곤 같은 아티스트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힙합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진짜 리얼은, 지디다. 뭐 그러는 것 같기도 하네요.
차우진: 아무튼 재밌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게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그런데 빅뱅은, 오히려 록 같지 않나요?
피독: 오. 되게 록이죠. 저는 빅뱅 데뷔하기 전에, 그 리얼 다큐도 진짜 열심히 봤고 정말 좋아했어요. 최근에는 아티스트처럼 되면서 더 좋아지고 있는데 아무튼, 진화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차우진: 그러니까요, 다음 스텝이 궁금한 팀이에요. 아무튼 인터뷰 재밌었습니다. 마무리를 빅뱅으로 끝내게 되네요?
피독: 그러게요? 하하. 덕분에 저도 너무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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