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강남규 | 노동, 돌봄, 위로, 그리고 동그랑땡

💬DJ 강남규 FB | 변화와 변혁의 시대에 공동체는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강남규 DJ는 느낌표도 마침표도 아닌 말줄임표로 전하는 이야기, 혹은 말줄임표로 읽을 때에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이자 네이버프리미엄콘텐츠 [토론의 즐거움]을 운영하는 강남규 DJ가 함께 읽고 싶은 웹툰을 소개합니다.

“나는 여기서 동그랑땡을 제일 잘 굽는 사람이라구…!”

도무지가 이렇게 말했을 때, 이번 달 이 지면에서 다루려던 몇 편의 웹툰을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저렇게 말한 도무지가 용기 내서 전 남친에게 인사를 하고, 동료 광식에게 “제 안의 뭔가를 이겨낸 날이었다”고 얘기했을 때, 이번 달에는 꼭 [도무지 그애는]을 다루기로 결심했다.

[도무지 그애는]의 주인공은 스물아홉 여성인 도무지다. 이대로 포기하기엔 아직 젊지만 다시 도전하기엔 약간 늦은 나이. 작곡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의 재능은 애매했다. 성실히 작곡 공부에 매진하기엔 집안 사정이 좋지 않다. 끊임없이 하락하는 자존감과 어김없이 뒤따라오는 우울. 냄비받침으로 전락한 작곡 교재와 제때 치우지 않은 쓰레기로 가득한 집에서 몸을 일으켜 알바라도 구하러 나가 보지만, 갈매기 눈썹에 통통한 몸집을 한 무지는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진다.

숱한 알바 자리를 알아보던 무지를 받아준 곳은 마트였다. 시식용 음식을 만들고 손님들에게 영업하는 시식 도우미 알바. 시식 도우미란 어떤 자린가. 마트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은 알 테지만, 그곳은 중년 여성들이 도맡는 자리다. 무지가 취직한 오해피마트도 예외는 없어서, 무지 주변의 다른 시식 도우미 ‘여사님들’은 모두 중년 여성들이다. 어쩌다 이 일을 하는 젊은이들은 방학 동안 잠시 용돈을 벌러 온 단기 알바들이 대부분. 하지만 무지에겐 이곳이 생활전선이다.

사회성 없고 내성적이며 심지어 요리의 기본도 모르면서 시식 도우미를 덜컥 하게 된 무지는 악의 없이 기습해 오는 편견 섞인 시선들에 금세 쪼그라들지만, 한편으론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가 지나칠 정도로 없어 쉽게 넘겨버리곤 한다. 그게 마냥 좋은 일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타의로 무던한 무지는 마트에서 꿋꿋이 버텨낸다. 

[도무지 그애는]은 무지가 시식 일에 차근차근 익숙해지면서 자존감을 천천히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마트에 가득한 여사님들이 무지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들이다. 우리 사회의 ‘밑바닥 노동’이라 할 만한 자리지만, 여사님들은 저마다의 책임감과 열정으로 일을 대한다. 마트에서 오래 일해온 숙련자들만이 몸소 체득할 수 있는 노하우들을 무지에게 나누는 데 거리낌없다. 

그 세대 어른들이 으레 지닌 정 때문일까, 아니면 한참 어린 무지가 딸 같아서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무지는 여사님들의 돌봄 속에 훌륭한 시식 도우미로 조금씩 성장한다. 마트의 유일한 동년배 동료인 광식과도 천천히 가까워지면서 둘은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준다. 일에 익숙해지고 마트 사람들과 친해질수록 무지는 자존감을 회복해 간다. “나는 여기서 동그랑땡을 제일 잘 굽는 사람이라구…!” 이 글을 쓰게 만든 이 말도, 평소 무심하게 챙겨주던 여사님이 무지가 구운 동그랑땡을 먹어보고는 “여기서 동그랑땡은 네가 제일 잘 굽는다”라고 칭찬해준 뒤에 나온 말이다.

삶에 지쳐가던 무지에게 필요했던 건 안정적인 일자리, 부대끼는 동료들, 그리고 따뜻한 칭찬 한마디였던 거다. 동그랑땡을 잘 굽는 것, 동그랑땡 굽는 나를 지켜봐주는 것, 동그랑땡을 잘 굽는다고 칭찬받는 것, 그런 사소한 것으로도 사람은 일어선다. 그렇게 종종 흔들리고 때때로 일어서던 무지는 점차 때때로 흔들리고 종종 일어서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태생이 과몰입과는 거리가 먼 편이라, 콘텐츠를 감상하면서 어떤 캐릭터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경우가 잘 없었다. 그런데 매주 금요일 [도무지 그애는]의 새 에피소드를 감상할 때면 언제나 무지의 성장을 응원하는 마음이 되고 만다.

무지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화에서는 자주 가던 바에 들렀다가 우연한 계기로 노래를 부른다. 작곡가를 꿈꿔 왔던 무지가 마트에서 되찾은 자존감으로 다시 꿈에 도전하는 이야기가 될지 어떨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이야기로 나아가든, 무지는 노동과 돌봄과 위로의 가치를 영원히 잊지 않고 살아갈 거다. 시식을 준비하든 작곡을 하든 혹은 그 둘이 아닌 그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든 무지는 최선을 다해 살아갈 거다. 무지는 동그랑땡을 제일 잘 굽는 사람이고, 그걸 알아줄 사람들이 이제 곁에 많으니까. | 💬 DJ 강남규

※ 본문과는 상관없는 첨언: [도무지 그애는]을 보지 않더라도, 시즌1 후기편은 꼭 봤으면 좋겠다. 휴재소식을 전하는 에피소드인데, 일에 집착하면서 일상을 뒤로 하던 작가가 어떻게 정신적으로 무너지게 되었고 어떻게 회복되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이 한 편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후기라서 꼭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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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은 - 비밀의 화원

무지는 작곡가를 꿈꿨습니다. 직접 노래도 부르죠. 무지가 부르는 노래는 어떤 느낌일까, 작중 묘사되는 장면을 거듭 읽으면서 상상해봤는데요. 제가 이해하는 무지라면 이런 노래를 부를 것 같아요. 이상은이 부른 "비밀의 화원" 같은 노래요. 노래 자체가 기교 없이 담백하고, 특히 이 영상에서는 관객들과 박수 치면서 즐겁게 부르잖아요.

꿈 없이 초라한 마음으로 살아가던 화자가 ‘그대’를 만나고부터 다시 태어난 기분이 됐다고 이야기하는 이 노래의 가사는 작중 무지의 삶의 궤적과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무지도 꿈을 꾸다가 꺾였고, 그 이후 초라하게 살아가다가, 일과 사람을 만나고부터 다시 태어난 것처럼 자존감을 되찾아가고 있죠. 그래서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을 들으면 무지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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