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말줄임표 | 빙의와 타임루프로 만든 사회운동 이야기

TMI.FM의 DJ 강남규 | 변화와 변혁의 시대에 공동체는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강남규 DJ는 느낌표도 마침표도 아닌 말줄임표로 전하는 이야기, 혹은 말줄임표로 읽을 때에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주로 웹툰을 소개하는 [강남규의 말줄임표]입니다. 

웹콘텐츠계에서는 ‘빙의물’이 여전히 유행이다. ‘타임루프물’도 언제나 인기가 많다. ‘좀비물’도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스테디셀러다. 이 셋을 죄다 섞어버린 웹툰이 있다. 얼마 전 시즌2 연재를 시작한 <살아남은 로맨스>다. 메이크업 대회를 소재로 탈코르셋과 여성혐오 문제를 예민하게 그려낸 <화장 지워주는 남자>의 작가 이연의 네이버 웹툰 후속작으로, 이 작품 역시 만만찮은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은 빙의물의 전형을 따른다.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여주인공이 고난을 이겨내고 남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가진 어떤 로맨스 웹소설의 여주인공(은채린)에 빙의된 주인공이 소설 속 해피엔딩을 향해가는 이야기.

주인공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자신의 행복이다. 그리고 남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것만이 주인공이 생각하는 ‘행복’이다. 그의 행복에 방해가 되는, 혹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소설 속 인물들은 ‘검은 그림자’로만 묘사된다. 실루엣이 있고 목소리는 들리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클라이맥스에서 갑자기 내용이 바뀐다. 다름 아닌 좀비물로. 원작대로면 남주인공의 고백을 받아야 할 타이밍에 그 남주인공이 좀비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물린 주인공은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물론 그 날 아침이다. 타임루프.

몇 차례의 죽음을 겪고 나서야 주인공은 깨닫는다. ‘어떻게든 원래대로 이야기를 전개시켜야 한다.’ 루프 속에서 남주인공은 좀비가 되는 운명을 도통 피해갈 수 없다. <살아남은 로맨스>는 빙의물, 좀비물, 타임루프물이라는 상이한 세 장르가 이렇게 깔끔하게 섞인 작품이다.

단순히 섞기만 한 게 아니다. 이미 상당히 클리셰화된 이 소재들을 한데 섞어 그 자체로 특정한 주제의식을 표현해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컨대 이 작품은 빙의물이라는 클리셰 가운데 특히 ‘엑스트라’에 주목한다. 앞서 언급했듯 주인공이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아 온 같은 반 여학생들(남녀분반이다)은 처음에 엑스트라로서 ‘검은 그림자’로 등장하는데, 주인공이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해 이들을 설득하고 규합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들과 관계 맺으며 점차 한 명씩 얼굴과 이름이 드러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호신뢰’다. 서로를 신뢰하게 되어야만 주인공이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남자밖에 모른다’고 따돌림 당하던 주인공이 ‘여자들’과 조금씩 신뢰하는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적인 줄거리다.

타임루프물이라는 소재도 흥미롭게 쓰이고 있다. 대부분에서 타임루프는 주인공에게만 일어난다. 주인공이 죽으면 루프가 일어나고, 모든 것이 리셋된다. 일어날 상황을 다 알고 있는 예언자로서 ‘믿음’을 얻어낸 반 친구들도 다시 그림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한 루프에서 상당히 오래 고난을 함께 겪어내면서 이들의 관계는 ‘동료로서의 믿음’으로 확장되어 가고, 그러자 게임의 룰이 바뀐다. 동료이자 친구로서 완벽하게 신뢰관계를 형성한 이들은 더 이상 그림자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이들도 이전 루프의 기억을 모두 가진 채로 처음부터 동료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시즌1은 이런 놀라운 반전으로 끝났고, 얼마 전 재개된 시즌2는 주인공이 이들과 함께 보다 나은 변수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살아남은 로맨스>는 빙의물 클리셰를 활용하는 측면에서 ‘여성 연대’에 관한 이야기이고, 타임루프물 클리셰를 활용하는 측면에서 ‘사회운동’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사회운동에 관한 이야기로서 <살아남은 로맨스>를 읽는 경험이 꽤 즐겁다. 신뢰하는 동료를 하나둘씩 만들어가면서, 이따금씩 실패하지만, 실패한 그 자리에서 동료들과 다시 일어나 시작하는 것. 별 게 사회운동인가, 이게 사회운동이지. 💬 DJ 강남규 | https://www.facebook.com/budnamuu 

📻 소녀시대 - 다시 만난 세계

아무리 생각해도 이 웹툰을 읽으며 함께 곁들일 노래는 단 한 곡밖에 없다. "다시 만난 세계" 말이다. 작가가 이 노래를 듣다가 머릿속에 불꽃이 뛰면서 작품 구상을 시작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응? 진짜잖아?! [살아남은 로맨스]의 시즌2는 주인공과 친구들이 '다시 만난 세계'의 이야기가 될 테다. "이 순간의 느낌 함께 하는거야, 다시 만난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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