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경의 핫아메리카노 | 익스트림 시각 효과와 이머시브 시네마의 길

TMI.FM의 DJ 홍수경(Janis Hong) | 영화 잡지 기자로 일하며 한국 영화계의 대소사를 기록하다가 미국 뉴욕으로 이주, 그곳에서도 각종 영화 및 팝컬쳐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영어권 음악만 듣던 팝 덕후가 뒤늦게 미국에서 케이팝 팬으로 거듭났고, 최근에는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 등의 작품 덕에 한국과 미국의 접점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북미주재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아바타:물의 길]과 함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귀환했습니다. 최소 3억 5천만 달러 제작비가 투입되었다는 [아바타: 물의 길]은 첫 주말 북미에서 1억 3400만 달러를 벌었고, 북미 밖에서는 3억 1천만 달러를 벌었어요. 미국 입소문 수치로 ‘시네마스코어(Cinemascore)’라는 게 있는데 현재 평점은 A입니다.

입소문 수치를 측정하는 ‘시네마스코어(Cinemascore)’의 메인 페이지

미국에서는 재개봉한 [탑 건: 매버릭]을 제외하고 2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개봉까지 경쟁할 만한 큰 영화가 없는 상황이죠. [라라랜드] 데이미언 새젤 감독의 오스카 기대작 [바빌론]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아바타: 물의 길] 급의 블록버스터는 아닙니다.

모두의 관심은 이 속편이 역대 흥행작 1위 기록을 가진 [아바타] 1편의 기록을 깰 것인가에 맞춰진 듯 합니다. 캐머런 감독의 작품 중에서는 최고의 오프닝 성적을 기록했고 티켓 판매의 3분의 2가 일반 가격보다 비싼 3D 상영이기 때문에 관계자들의 흥행 기대 또한 높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 비상 사태를 겪고 있는 중국 성적이 예상에 못 미치자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잠깐, 캐머런 감독은 태연해 보이네요?

이머시브(immersive) 3D 경험을 의도한 작품인 [아바타: 물의 길]을 제대로 즐기려면 반드시 아이맥스 3D로 감상해야 하는데, 이 비싼 영화는 아이들 방학 기간인 연말 연초 내내 상영될 예정이거든요.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 작품들이 OTT 플랫폼에서 각축전을 벌일 동안 비어 버린 극장은 [아바타: 물의 길]이 차지했습니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렇습니다.

영화계에서 제임스 캐머론 감독은 흥행의 제왕일 뿐만 아니라 게임 체인저이기도 합니다. 다작을 하는 편이 아닌 그가 영화를 들고 귀환할 때마다 지각 변동이 일어납니다. [에일리언 2]와 [터미네이터 2]는 ‘1편만한 속편 없다’라는 당시 할리우드 공식을 깨고 걸작으로 여전히 회자되죠. [타이타닉]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재난 영화 장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기에 심지어 90년대 말을 돌아보는 한국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도 투자 아이템으로 등장하죠. [아바타] 성공 때문에 몇년간 블록버스터는 모두 3D 버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아바타: 물의 길]은 또 무엇을 바꿔 놓을까요?

13년 만에 돌아온 '게임 체인저'

[아바타] 때 태어난 아기가 자라서 [아바타 : 물의 길] 관람이 가능한 12세 이상의 어린이로 성장할 동안 시각효과 기술도 발전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캐머런 감독의 제작 방식은 위험도가 높아 보이기에 수많은 의심을 품게 만듭니다. 드디어 13년 만에 속편이 공개되었고, 극장에서 이 속편을 ‘목격’한 관객들은 제작진이 보여주고자 노력했던 바다 풍경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경탄을 표합니다. 단순하게 선과 악이 나눠진 이야기와 가족 멜로드라마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시각효과의 경이로움에 대해선 인정할 수밖에 없죠.

누군가 SNS에서 언급한 ‘3시간 수족관 체험’은 정확한 평이라고 생각해요. 물에 대해 진심인 감독은 와이어를 단 배우들이 물 속에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드라이 포 웻(dry for wet)’ 방식 대신 실제로 물 속을 유영하며 연기하는 ‘웻 포 웻(wet for wet)’ 방식을 채택했어요. 한 마디로 오랫동안 호흡을 참는 훈련을 한 후 모두 물 속에서 연기하고 촬영을 했다는 말입니다.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뉴질랜드의 웨타 스튜디오는 판도라 행성과 나비족의 시각 효과를 담당했고 57종의 해양 생명체를 창조했어요. 

저는 [아바타: 물의 길]을 보는 동안 캐머런 감독의 바다에 대한 열정의 근원이 궁금해졌어요. [어비스]와 [타이타닉]에서도 바다는 주요 배경이자 캐릭터로 작용하죠. 캐머런 감독은 [어비스] 해양 장면의 40퍼센트를 실사 촬영했어요. 길이 70미터에 높이 18미터인 거대한 수조 세트에서 배우들은 6개월 동안 일주일에 6일간 고된 촬영을 해야만 했죠. 

[어비스]의 액체 외계 생물의 시각 효과는 [터미네이터 2]의 악당 T-1000 기술로 발전합니다. [타이타닉] 때 다시 바다 연구에 들어간 그는 완전히 바다에 매료되어 심해 다이빙에 도전합니다. [아바타] 성공 후에 그가 시도한 것은 직접 디자인한 잠수 기구를 타고 지구 바다의 최심층 탐사에 나선 것입니다.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촬영을 하고 68종의 새로운 해양 종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후 캐머런 감독은 공식적으로 속편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갔고 네 편으로 이뤄진 ‘아바타’ 속편 월드를 증축했죠. 시나리오팀은 스토리텔링만 구상한 게 아니라 미술과 시각 효과 컨셉트를 동시에 적용했어요. 2016년 코믹콘에서 속편 계획을 발표했고 2017년에 디즈니는 [아바타]의 IP를 소유한 20세기 폭스를 인수하고 곧바로 디즈니랜드에 ‘아바타’ 어트랙션을 만들었어요.

[아바타 3]는 2024년, [아바타 4]는 2026년, [아바타 5]는 2028년 개봉 예정입니다. 이미 3편 촬영을 끝냈고 4편은 촬영 중이죠. 캐머런 감독의 해저 탐사 과정은 ‘내셔널 지오그래피’의 특집 기사로도 등장했고, 다큐멘터리 [딥씨 챌린지]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아바타]가 13년 전에 3D로 개봉했을 때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작은 논란이 있었어요. 고전 영화의 개념과 달랐기 때문에 기존 평론 틀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았죠. 혹자는 이건 영화가 아니라 ‘체험’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이런 영화를 위한 영역이 생겼어요. 바로 ‘이머시브’죠.

[아바타] 보고 나서 우울해지는 사람들

[아바타]는 스토리텔링보다 눈에 보이는 것 그 자체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컷과 프레임의 연쇄로 기억되는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기억에 남아요. 세 시간동안 정말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다녀온 듯 합니다. 후반부 서스펜스는 [터미네이터 2]나 [에일리언 2] 등의 기존 영화 문법을 답습하긴 하지만요. 테크 뉴스 전문 미디어 CNET의 'VR헤드셋을 쓰고 보고 싶다'는 리뷰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더 흥미로운 반응도 등장했죠. 현재 ‘포스트-아바타 디프레션 신드롬(Post-Avatar Depression Syndrome)’이라 불리는 [아바타] 관람 후 우울 증상입니다. 첫 [아바타] 상영 때부터 나타났던 반응인데요. 나비족이 사는 완벽한 행성 판도라를 경험한 후 불만족스러운 현실로 돌아와 우울감을 느끼는 현상이에요. 2009년 당시 아바타 팬사이트인 ‘아바타 포럼’에서 비슷한 감정을 토로하는 글이 천 개 이상 올라왔습니다. 2010년에 미디어는 이 증상을 ‘포스트 아바타 디프레션 신드롬’이라고 명명했고, 줄여서 PADS라고 불립니다.

일단 이름이 생기니 2편 개봉 후에는 더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죠. 사실 저도 비슷한 증상을 겪었어요. 팬데믹 전후로 벌어진 인간사의 우울한 일들과 당면한 환경 문제를 생각해보면 판도라 행성의 유토피아는 실현불가능한 신기루처럼 다가오기도 하죠. 불안한 현실을 뒤로 하고 눈과 마음이 정화되는 판도라로 가려면 극장에서 3D 안경만 착용하면 됩니다. 이정도면 ‘이머시브’ 예술에 있어 궁극의 경지 아닐까요? 

‘Vulture’의 평론가 바일즈 에바이리는 캐머런 감독의 장기가 테크로 무장한 마초와 진부한 진지함을 섞는 능력이라고 말했어요. 하이-테크 전사 혹은 지략에 능한 순정 마초가 등장하지만 모두 가슴에 삼천원, 아니 꿈과 사랑을 품고 있고, 다른 영화 속 영웅은 현실과 화해하는데 반해 [아바타]는 현실을 뒤로 하는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고 분석하죠. 한국의 X세대로 성장했던 저로서는 미국의 히피 세대에게 [아바타]가 과연 무슨 의미일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환경을 중시하는 지금의 어린 세대에게 유토피아의 이상을 심어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슬프게도, 그 사이에 산전수전 다 겪으며 중년에 도달한 '우리'는 현실과 영화 사이에서 PADS를 겪게 되는 거겠죠. 

그렇다면 [아바타]는 환경 문제에 대한 영화일까요? 일본 기자회견의 돌고래 쇼 때문에 환경 단체의 질책을 받았습니다만, 마케팅 오류를 떠나 작품 자체로만 봤을 때 환경을 위협하는 인류에 대해 이렇게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다루는 작품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올해 봄에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의 ‘이머시브’ 전시를 방문했다가 가장 놀랐던 점은 대다수 작품이 환경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해양 플라스틱 오염 문제와 기온 상승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 문제를 VR과 홀로그램으로 마주해야만 했죠. 미국 히피 세대의 자연 사랑이 현재의 환경 문제와 만나고 있는 지점 또한 흥미롭습니다. 이를테면 다른 세대가 [돈 룩 업]처럼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한다면, 이 세대는 희망을 고수하는 몽상가적 비전을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극장 영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아바타:물의 길]은 [탑건: 매버릭]이 그랬던 것처럼 관객이 기대하는 극장 영화의 기준을 또 바꿔 놓을 것입니다. 2022년 극장가는 차세대 극장 영화를 정의하는 영화들의 한마당같았습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타르]같은 올해 인기 독립영화가 복잡한 개인 내면으로 파고 들어 내머릿속 스펙터클을 오밀조밀하게 펼쳐 놓았다면, [탑건: 매버릭]와 [아바타: 물의 길]은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아이맥스로 봐야 하는 압도적인 시각적 스펙터클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 [스마일] [X] [바바리안] [펄] [테러파이어 2] 등 깨알같이 박스오피스를 장악했던 호러 영화 틈새 시장이 있었죠.  

2022년 미국 극장가는 큰 영화 부족 사태를 겪었어요. 극장 업계는 [아바타: 물의 길] 뿐만 아니라 상영 전에 공개되는 2023년 영화 예고편이 관객의 마음에 사로잡아 지속적인 영화 관람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2023년의 영화 관람 풍경은 또 어떻게 바뀔까요? 내년에도 흥미로운 미국 팝 컬처 이슈를 알차게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DJ 홍수경 | janis.hong@gmail.com

PS. 이 자리를 빌어 2022년 저의 말을 읽어 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2023년 새해에도 늘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The Weekend – Nothing is Lost (You give me strength)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더 위켄드, 음악 감독 사이먼 프랜글렌이 함께 만든 곡. 성스러운 분위기의 코러스로 시작해 더 위켄트의 떨리는 목소리와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의 신스 사운드와 북소리같은 비트, 현악이 아름답게 어우러집니다. 전투를 앞둔 전사의 각오를 담은 듯한 곡으로 영화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잘 담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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