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말줄임표 | “생각나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만”, 웹툰 [캐셔로]

TMI.FM의 DJ 강남규 | 변화와 변혁의 시대에 공동체는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강남규 DJ는 느낌표도 마침표도 아닌 말줄임표로 전하는 이야기, 혹은 말줄임표로 읽을 때에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주로 웹툰을 소개하는 [강남규의 말줄임표]입니다. 

참사 이후 7일째에 이 연재를 쓴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살던 대로 하루를 살다가도 문득 아침 눈 뜨자마자 본 연합뉴스 속보 한 줄이 떠오르고, 이태원 그 거리 사진이 눈앞에 떠오른다. 그래도 연재는 막아야겠지. 내 일상을 기어이 살아내야겠지.

그런 마음으로 일주일 내내 어떤 작품을 고를까 이것저것 생각했는데, 딱 한 작품이 계속 아른거렸다. [캐셔로]다. 2인조 작품그룹 ‘Team befar’가 2015년 3월부터 2016년 7월까지 2부에 걸쳐 연재했고, 3부 예고를 했으나 아직까지 연재가 재개되지는 않은 웹툰이다.

캐셔로, 'Cash+Hero'라는 의미인데, 쉽게 말해 돈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초능력이 생기는 영웅의 이야기다. 그런데 마블 히어로들과 같이 지구를 구하고 우주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는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동네를 지키는 히어로도 아니고, 정확히는 스스로 영웅이라는 자각도 딱히 없는 히어로다.

그도 그럴 것이 [캐셔로]는 우리처럼 매일의 일상을 버텨내며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어쩌다 능력을 갖게 되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돈이 많을수록 힘이 생기는데, 부모 없이 고등학생 여동생과 둘이 사는 가난한 20대 초반 청년이 능력을 받아버렸고, 또 어떤 능력은 술에 취할수록 힘이 생기는데, 합법적으로 술을 사 마실 수도 없는데다 요즘 말로 ‘알쓰(알코올 쓰레기)’인 한편 알콜 중독자 아빠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이 능력을 받아버렸고… 그런 식이니 직업 영웅은 고사하고 당장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노가다’ 하는 데 능력을 쓰는 젊은이들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본적으로 남의 어려움 앞에 차마 고개를 돌리거나 뒷걸음질 치지 못하는 성정의 소유자들이기도 하다. 하긴, 바로 그 때문에 능력을 갖게 된 이들이다. [캐셔로]의 능력은 흥미롭게도 앞서 능력을 가진 이가 능력을 물려줄 이를 직접 선택해 물려준다는 설정이 있다. 2부에서 선대 능력자가 능력을 물려줄 사람을 찾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기준이란 것이 이런 것들이다.

버스에서 빈 노약자석에 앉지 않고 우두커니 선 청년, 횡단보도를 건너는 걸음 느린 노인의 뒤에 무심하게 붙어 걸으며 보호하는 청년… 특별히 대단한 정의감에 불타는 게 아니라, 그저 사소한 일상에서 돌봄과 배려심을 드러내는 평범한 이들. 선대 능력자도 그런 선함을 지닌 인물이었다. 수십 미터 위 전광판에서 고공농성하는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놀라운 점프력으로 몰래 올라가 따뜻한 도시락 하나 살짝 놓고 오는, 그런 선함.

[캐셔로]는 이런 이야기다. 1부 후기에서 작가는 이렇게 썼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하면서 “생각나는 만큼만,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작중 주인공의 대사)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 이런다고 세상이 널 좋아해주는 게 아니지 않냐는 공격적인 질문에 씨익 웃으면서 “그럼 짝사랑이네” 하고 받아 넘기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태원 참사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10.29 참사를 겪고나서 이 나라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다시 땅바닥에 처박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엇으로 살아내야 할지, 그 답을 찾기가 어렵다. 그런 좌절감에 신음하는 일주일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무엇’으로 살아내야 할지, 그 답을 알려주는 단서들을 우리는 끊임없이 발견해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사회’다. 서로 돌보고, 서로 위로하며,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로서 사회.

사고 직후 현장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CPR에 나선 사람들, 질서유지를 포기한 국가 대신 직접 나서서 질서를 만들어내려 애쓴 사람들, 하루 벌어 사는 처지에 가게 영업을 중단하고 구조자들을 위한 쉼터를 꾸린 사람들, 책임 있는 자들은 자기 책임 아니라며 강변하는 와중에 정작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달려가 헌신했음에도 자기가 더 잘하지 못했음에 자책하는 사람들, 국가가 어떤 고민과 반성도 없이 제멋대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곳곳에 관제 분향소를 차렸지만 그곳이 아닌 이태원으로, 우리가 직시해야 할 그 현장으로 달려가 매일 국화꽃을 보태고 있는 사람들.

6년째 [캐셔로] 3부를 기다리고 있는 애독자이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캐셔로]를 덜 그리워할 수 있게 됐다. [캐셔로]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우리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까. 그냥 지나가기 뭣해서 기어이 이태원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마음을 모아 이 시간을 이겨내자.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를 살리면서. 다시는 누구도 이런 식으로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 DJ 강남규 | facebook / slothlove21@gmail.com

📻 윤미진 - 노래여 날아가라 

마음이 헛헛할 때면 이 노래를 듣는다. 지치고 괴로운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 힘듦을 어찌 해줄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게 될 때마다 이 노래를 듣는다. 그 작고 약한 꿈들에게, 그 선한 많은 사람들에게, 타다 남은 잃어버린 도시에 전하는 위로의 노래다. 그들의 앞에서 부르지 않고, 멀리 어디선가 나지막히 부른다. 바람을 타고 흘러흘러 우연히 그들의 귀에 이 마음이 내려앉기를 바라면서, 유가족들과 생존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 노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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