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review | 유키카 "오늘 밤 뭐해"

2021년 한국의 시티팝이란? / 랜디 서

프로듀서 노르웨이 숲이 4년 전 이츠의 목소리로 발매했던 '오늘 밤 뭐해?'를 유키카의 목소리로 다시 냈다. 캐주얼한 가사가 도시의 연애를 쓸쓸하게 그려낸다. "꼴보기 싫어" 같은 완연한 구어체 문장이 유키카의 보컬과 만나, 그저 뱉어놓는 말이 아닌 팬시한 음악적 순간이 된다. 곡 설명은 이 곡을 시티팝으로 정의하고 있다. 잘 듣다보니 이런 의문이 든다. 그래서, 2021년 한국 시티팝은 대체 무엇인가?

오리지널 시티팝은 일본의 '7080' '웰메이드' 가요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듣기 편하면서 세련된 느낌의 락이나 소울, 재즈 보컬곡들을 묶어 부르는 일명 AOR 음악이 팝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일본에서도 그런 음악을 수입해 현지화를 진행했고, 이것이 시티팝이 되었다. 시티팝은 당대 일본 가요의 대안이자 세련된 외국 문화에 진심인 음악가들의 연구의 산물이었다. 특히 버블 시대 경제 호황은 각종 악기와 세션 인력, 녹음 장비에 대대적인 투자를 가능케 했고, 그렇게 갖춰놓은 음악계의 인프라는 버블이 꺼지고 나서도 지속되었다. 시티팝 사운드가 유독 호사스러운 이유다.

요즘 한국에 불고 있는 시티팝 붐은 이 부유한 감성을 다 재연하고 있지는 않다. 유행의 단초는 유튜브 알고리즘이었다. 타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가 유튜브로 음악 듣는 사람들의 연관 영상에 등장하며 화제가 되었고, 시티팝을 주재료로한 장난 같은 베이퍼웨이브 곡들도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인가, 2010년대 말 한국에서 시티팝임을 주장하며 발표된 노래들은 대부분 'Plastic Love'의 30년 늦은 닮은꼴 아니면 시티팝을 리믹스한 2000년대 베이퍼웨이브풍의 전자음악 둘 중 하나였다. 유키카의 솔로 데뷔곡 'Neon'도 그런 노래였다.

우리가 지금 한국 시티팝이라 부르는 노래들은 20세기말 부유했던 옆나라 문화의 패스티쉬다. 시티팝이 음악적으로 선명한 변별점이 있는 장르가 아니었기에 (실은 장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애매하기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시티팝은 그 부유하면서 멜로우했던 '아우라'를 재연하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단 음악적 실험을 위해 자원을 아낌없이 부을 수 있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거의 대부분 컴퓨터 안에서 시작 되고 완성 되는 소규모 음악들이다. 그래서 좀처럼 호사스러운 느낌이 나지 않는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제작 환경이 달라졌고 소비층이 달라졌으니 이 편이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종종 그 작아진 느낌에서 30년 이후의 우리가 그 때보다 저성장시대를 살고 있다는 걸 체감하기도 한다.

20세기의 시티팝은 사람 사이가 점차 멀어지는 도시의 쓸쓸한 심상을 담으려던 의도였겠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날 때부터 끈끈함과는 거리가 먼 세상에서 쭉 살아온 터라 그게 기본값이다. 직접 본 적 없는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에는 지금 여기 말고 어딘가에 이상향이 있는 것만 같은 부유감이 있다. 그래서 노래가 의도하는 것보다도 더 헛헛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 랜디 서 / Music Writer (랜디 서의 불렛푸르프 뉴스레터 보기)

국지적이고 지엽적인 / 차우진

유키카는 복합적인 위치를 가진 아티스트다. 한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도쿄에서 서울로 이주하고, 걸그룹 활동이 무산되자 시티팝을 키워드로 솔로로 데뷔했지만 <왜냐맨>과 <와썹맨>으로 유튜브 예능에서 '똘끼'를 선보이며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발매한 싱글들: "네온", "서울여자" 등이 다시 주목을 받으며 마침내 '시티팝'이란 키워드를 선점하는데 성공한다. 

이런 맥락에서 유키카는 일종의 아이콘으로 성장한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선 '아이콘'의 (재)정의가 필요할 것이다. 내 생각에 아이콘은 대중적인 인지도만으로도, 아티스트적인 면모만으로도, 혹은 엔터테이너의 퍼포먼스만으로도 얻기 어려운 지위다. 이것은 각 영역의 경계를 동시에 돌파하는 개념에 가깝다.

과거에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아이코닉한 지위가 만들어졌다. 소위 '국민 00'이라는 수식이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국지적이고 지엽적인 영향력 만으로도 아이코닉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건 키워드의 선점이다. '2021년의 시티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예를 들면 '시티팝의 오리지널리티를 얼마나 잘 재현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와 무관하게 유키카는 여러 활동으로 '시티팝'이라는 키워드를 자기 것으로 가져가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 노래는 사실 유키카의 현재를 잘 반영한 결과는 아니다. 오히려 여러 활동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음악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끼워넣은 전략적 선택에 가까워 보인다. 스튜디오 레코딩 촬영으로 대체된 뮤직비디오는 예능이나 스토리의 캐릭터가 아닌 음악을 더 강조하고, 유튜브에서 유키카를 검색한 사람들에게 다층적인 효과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 노래가 발표된 얼마 뒤 유키카는 프로듀서 팻 록(Pat Lok)과 "그라데이션(The Moment)"을 발표하고, 최근에는 <서울여좌 유키카>라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팬들을 직접 만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어떤 판단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흐름을 보면 '시티팝'을 기반으로 '레트로'를 지향하는 방향성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덕분에 유키카는 계속해서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궁금해지는 아티스트'라는 위치에 놓인다. 언젠가 때가 되면 유키카에게 시티팝이라는 키워드는 자연스레 떨어져나갈 지도 모른다. "오늘 밤 뭐해"는 "그라데이션"과 함께 이 전환점의 브릿지 같은 역할을 맡는 곡인 동시에, 유키카를 예능 캐릭터가 아닌 '음악하는 사람'이란 정체성으로 인지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그가 국지적이고 지엽적인 위치에서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새삼 가지게 된다. 키워드를 선점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을 통해 작은 그룹에 대한 압도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때 마침내 아이코닉한 지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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