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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레터#50 | 일본의 인디 뮤지션은 어떻게 생활할까? / 하헌진

적당히 생계를 유지하며 주말에는 공연하는 삶

2021.05.12 | 조회 3.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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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의 TMI.FM

Tomorrow of Music Industry

얼마 전 <인디펜던트 워커>라는 책을 냈습니다. 여러 명의 인터뷰를 묶은 책인데요, 분야는 다르지만 각각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독립적인 생활. 저는 여기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체성, 동료, 제도와 지역공동체가 모두 포함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헌진님에게 부탁한 글을 소개합니다. 얼마 전 그에게 일본에서 만난 동료 인디 뮤지션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었던 게 생각나서요. 그가 겪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로 밤레터 시즌4가 끝납니다. 늘 그랬듯, 다음 주부터 2주 간 쉬어요. 그 뒤에는 시즌5가 시작됩니다. 다음 시즌에서는 구독자님의 목소리를 좀 더 들어볼 생각입니다. 중간에 한 번 공유할테니 꼭 읽어주세요.

오늘의 첫 곡은 하헌진의 음악입니다. 9년 전,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하헌진, 21세기 서울의 블루스>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음악이기도 합니다. 

하헌진 - 난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다네 (온스테이지 ver.) | 2012

일본에서 만난 독립 아티스트들 / 하헌진

2011년 1월 말 즈음 처음 일본에 갔다. 당시 농성투쟁이던 '두리반' 현장에 드나들던 나는 앨범 한 장 없이 대충 만든 노래 몇 곡으로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뮤지션과 함께하는 두리반의 비폭력 농성투쟁 현장에 관심을 보인 마츠모토 하지메(<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 덕분에 친분이 있던 밴드 ‘밤섬해적단’과 함께 나의 첫 일본 투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일본어 1:1 수업까지 받았으나, 정작 일본에서는 아이폰 3gs로 구글 번역기만 바라보던 게 생각난다. 그렇게 매년 1~2회 일본에 들러 현지 기획자나 뮤지션의 초대와 도움을 받으며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조금씩 접할 수 있었다. 

2020년 2월 28일, 교토의 UrBANGUILD에서 <한글, 한국과 일본의 현대 아트, 70년대와 현재>라는 거창한 타이틀의 공연에 참여했다. 나로서는 마지막 일본 공연이었는데, 평소 클럽 공연 혹은 카페 공연 위주로 공연하던 나로서는 서울도 아닌 교토에서 이런 거창한 타이틀의 공연에 과연 있어도 되는걸까, 싶었다.

공연이 끝나고, 밴드 ‘魚雷魚’의 멤버였던 친구 둘과 이자카야로 자리를 옮겨 몇 년 만의 근황토크를 나눴다. 내 또래인 두 사람은 모두 결혼도 했고 직장도 있었지만, 음악도 계속 하고 있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이자카야의 사장님도 자영업자이자 뮤지션이었다. 나는 내가 '무직'이라고 말했다. 놀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좋은 말로 ‘풀타임 뮤지션’이라고 하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일본에 갈 때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 침낭을 들고 다니며 그때그때 현지에서 숙소를 구했다. 함께 공연한 JAP KASAI가 자기 회사 사무실(그 공연을 기획한 곳)에서 재워줄 수 있다고 해서 무작정 따라 갔다. 사무실은 짱구가족이 살 것 같은 전형적인 단독주택이었다.

짱구네집 (알고보면 부자...)
짱구네집 (알고보면 부자...)

공연을 기획하지만 공연기획사는 아니라고 하길래, 대체 무슨 일을 하는 회사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교토 시내의 쓰레기 수거를 담당하는 NGO 성격의 단체라는 것이다. 1950~60년대에 뮤지션으로 활동했던 대표가 만든 사회적 기업으로 자신과 같은 뮤지션, 사진가, 화가, 문인 등 젊은 아티스트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만들었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간 일본에서 만난 뮤지션은 모두 직업이 있었다. 공연장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회복지사도 있었고 식당, 편의점, 리사이클숍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위 후리타(フリーター :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나 자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은 대체로 주 3~4일 정도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음악을 한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직장인 밴드’랄까.

그래서인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한국이든 일본이든 패닉에 빠졌을 때, 일본의 뮤지션들에게서는 공연과 생계가 조금은 분리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프리랜서보다는 자영업자나 파트타이머를 위한 재난지원금 대상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반면 레슨과 행사가 소득의 큰 비율을 차지하는 한국 뮤지션들에게 2020년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비대면 공연이나 문화지원사업의 대상자가 되었다면 모르지만, 나처럼 개인사업자도 없는 종합소득세맨은 어쩌다보니 프리랜서 재난지원금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올해 5월 말까지 기다리라며...)

물론 현재 일본의 경제 상황은 매우 암담하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나와 함께 20대를 보낸 일본의 동료 뮤지션들은 그래도 결혼도 하고, 적당한 직장에서 적당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주말에 공연하는 생활을 했다. 불안한 마음에 카드론을 빌린 나로서는 조금 부러운 부분이었다.

이 부러움은, 다른 게 아니라, 지역 내에서 아티스트와 함께 생계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분야의 작가들이 서로 교류하고, 협업하는 것도 부러웠고, 때로 재미있는 해프닝도 많이 있었던 것도 신기했다. 숙취로 출근을 못할 지경이었는데, 마침 밤에만 일하는 야행성 화가 동료가 대타로 나서서 다행이었다던가. 정규직, 풀타임... 그런 게 아니라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직업을 선택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이 부러웠다. 

귀국 전에는 오사카에 잠시 들렀다. 동행인과 오래된 시장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가 저 앞의 한 구두방을 가리켰다. 하얀 간판에 노부부가 운영하는 평범한 가게였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구둣방 벽에는 CD가 한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구두를 닦고 수선해서 번 돈으로 본인들이 좋아하는 재즈 앨범을 리이슈하는 매장이라고 했다. 구두방 레이블이라니...

코로나19로 중단된 공연과 행사로 한국의 인디 뮤지션들의 생계는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지원금은 중요한 대안이 되겠지만 과연 그게 근본적인 해결법이 될까?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의 친구들처럼 한국에서도 비슷한 처지의 예술가들이 서로를 서포트하는 환경을 만들려면 뭐가 필요할까. 코로나는 분명 약화될 거고, 공연도 다시 재개될 거고, 우리는 계속 버티겠지만, 그보다 좀 더 본질적인 해결법을 찾을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나로서는 어서 빨리 백신을 맞고, 어디서든 마음 놓고 공연을 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리 온라인 공연이 대세가 될 거라고 해도, 그 어떤 카메라와 후보정 믹싱도 PA의 큰 볼륨을 이길 수 없을 거니까. | 하헌진 (독립 음악가)

호림,하헌진 - Barment Blues (4:39) | 2021

오늘 배운 것: 더 많은 선택권과 연대 

하헌진님의 글에서 제가 꽂힌 문장은 '적당한 직장에서 적당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주말에는 공연을 하는 생활'인데요, 이게 어쩌면 나이브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요. 한국은 오히려 너무 열정적인 게 문제 아닐까, 싶은 입장에서는 이 '적당히'가 매우 대안적인 말처럼 들렸습니다.  

전업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겠죠. 후리타로 활동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한국에도 직장을 다니면서 정규 앨범을 여러 장 내는 9와숫자들의 송재경 같은 음악가들이 있으니까요. 한편 아도이의 오주환은 언젠가 인터뷰에서 '멤버들을 모두 퇴사시키는 게 꿈'이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둘 중에 어떤 게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권리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사회니까요.

'우리에게는 더 많은 선택권이 필요하다.'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아티스트가 서로를 '서포트'하면서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이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도 떠올랐습니다. 관점을 바꾸면 뭔가 다른 게 보일까요? 일단은, 저 질문에서 함께 고민해보기로 합니다.

비비(BIBI) - Life is a Bi…(인생은 나쁜X) | 2021

오늘의 선곡은 비비의 신곡입니다. 이번 곡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비디오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남들이 뛰니까 영문도 모른 채 무작정 따라 뛰는 도입부와 그와 달라지는 엔딩을 비교하면 의미심장한 메시지로도 보입니다. 

오늘의 이야기와 음악이 구독자님의 고민에 약간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밤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 5월의 밤, 말많고 고독한 디제이였습니다. 

2주 뒤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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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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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most 3 year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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