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말줄임표 | 찬란하지만 시린, 청색의 봄(靑春)

TMI.FM의 DJ 강남규 | 변화와 변혁의 시대에 공동체는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강남규 DJ는 느낌표도 마침표도 아닌 말줄임표로 전하는 이야기, 혹은 말줄임표로 읽을 때에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이자 네이버프리미엄콘텐츠 [토론의 즐거움]을 운영하는 강남규 DJ가 함께 읽고 싶은 웹툰을 소개합니다.

청춘이란 우리 인생에 더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한 그림자와 함께 살아가는 시기다. 아직 어리고 미숙한 그때의 우리는, 지금이라면 가볍게 툭툭 털고 치워버릴 만한 일에도 끝없이 아파하며 고통스러워 했을 테다. 그러나 그때를 지나와 성장한 우리는, 아픔을 이겨내고 인내하면 어느새 황홀한 벚꽃을 활짝 피워내는 시기라는 사실을 안다. 이 복잡한 시기를 찬란한 색이면서도 시린 색인 ‘청’과 혹독한 겨울 뒤의 화사한 계절인 ‘춘’으로 표현한 것은 정말이지 정확한 일이다. 

홍덕, NEMONE 작가의 [청춘 블라썸]은 청춘의 이런 복잡성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려내는 수작이다. 청춘의 시린 풍경을 찬란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두 작가는 신인이라는데, 기획이 비범(?)하다. 산뜻하고 설레는 봄, 뜨겁고 찬란하지만 습해서 숨막히는 여름, 애틋하지만 어딘가 회한이 가득한 가을, 차디차지만 곧 올 봄을 향해 견디는 겨울을 닮은 이야기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간다.

각 계절의 에피소드마다 계절명을 딴 보미, 하민(여름의 한자어인 ‘하’), 가을, 동채(겨울의 한자어인 ‘동’)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서로 공통지인으로 얽혀 있다. 첫 에피소드에서 보미를 좋아하는 재민의 형이 하민이고, 하민과 애틋한 사랑을 쌓았던 소망의 베프가 가을이며, 재민과 얽히는 은채의 오빠가 동채인 식이다. (워낙 많은 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도 모두 풍성한 이야기와 개성을 갖추고 있는 너무나도 훌륭한 작품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리뷰를 피해왔다. ^^;)

극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는 장점

[청춘 블라썸]은 이들 주인공을 중심으로 아픈 청춘을 살아내고 있는 아이들의 시린 이야기를 그려낸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이들(봄), 부모의 가정폭력에 가까운 기대에 짓눌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여름), 학창시절 따돌림의 상처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모종의 계기로 살아남기 위해 자퇴를 선택한 아이(가을), 끔찍한 학폭에 시달리며 생을 내려놓을 위기에 처한 아이(겨울), 그리고 그 아이들의 곁에서 각자의 감정을 품은 채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해가는 아이들.

이 무거운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위해 작위적이고 극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다. 다만 연민과 공감의 시선으로 차분하게 풀어내며, 독자는 어느새 작품 속 청소년들의 곁에서 함께 울고 웃고 있게 된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괜찮은 이야기들이지만, 이제 거의 끝을 향해가는 겨울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방식이 정말 훌륭하다. 이 작품을 고른 이유이기도 하다. 겨울 에피소드의 주인공 동채는 소위 일진들의 타깃이 되어버린 조용한 아이다. 마치 [더 글로리]의 동은처럼. 동채는 일진들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공개된 화에서 동은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유서를 남기고 옥상 위에 오른다. 그러나 동채의 동생 은채와 알고 지내게 된 재민(여름 에피소드에서 형인 하민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 트라우마로 남은 인물이다), 동채가 자주 들르는 편의점에서 일하던 수빈(가을 에피소드에서 가을이 따돌림 당할 때 방관했던 사실을 후회하는 인물이다)이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이들은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동채를 구한다. 각자의 후회를 바탕으로, 다시 그런 후회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를 구하는 것은 정말로 우리 자신이다

앞으로 공개될 이야기에서는 지난 에피소드에 등장한 모든 주인공들이 동채의 삶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면에서 반복적으로 떠들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구하는 것은 정말로 우리 자신이다. 아파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청춘이 시린 까닭은 나 아닌 남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름 에피소드 ‘하민의 꽃’의 대사 하나를 남기고 싶다. 이 에피소드에서 재민은 세상을 떠난 형 하민의 마지막 이야기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소망을 만나 형의 이야기를 듣는데, 이르게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 재민은 형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고 고백하며 괴로워한다.

그런 재민에게 이제는 대학생이 된 소망이 해주는 말이 인상깊다. “맞아, 너 때문이야. 그리고 나 때문이야.” 이어 소망은 하민을 힘들게 만든 모든 것들을 나열하면서, 하민의 죽음은 그 모든 것들의 탓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 

그 말에 이르러서야 재민은 마침내 형을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게 되고, 소망도 마찬가지다. 

후회를 품고 성장한 소망이 후회를 품고 방황하는 재민을 보듬으며 함께 치유되는 이야기. [청춘 블라썸]은 그런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을 방법을 나는 모른다. 💬 DJ 강남규 | FB / alookso

📻 볼빨간사춘기 - 나의 사춘기에게

안지영이 직접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인 이 노래는 자신의 아팠던 사춘기를 회상하며 그때의 안지영에게 말을 겁니다. 네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얼마나 아파했는지, 괜찮아지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안다고.

이 노래를 라이브로 부르는 수많은 영상들 중에, 안지영이 울지 않고 노래를 끝마치는 영상은 별로 없습니다. 이 노래만 부르면 결국 울어요. 그럴 만도 하죠. 아팠던 때의 나를 떠올리는 일은 언제까지고 아픈 일이니까요. 아팠던 나는 지나가버린 나이고, 다시는 위로해줄 수 없으니까요.

2018년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해 ‘나의 사춘기에게’를 부르는 이 영상에서 안지영은 드물게 끝까지 울음을 참아냅니다. 영상을 잘 보면 맨 앞줄에 앉은 남자 관객 한 명이 너무나 서럽게 울어요. 안지영도 노래를 부르던 중에 이 관객의 존재를 인지하죠.

적어도 이 순간, 안지영은 다시 위로해줄 수 없는 과거의 자신만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관객을 위로하기 위해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또 그래서 울지 않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DJ 강남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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