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서의 사적 리뷰 | ‘뉴진스의 새로움’은 어디서 왔을까?

TMI.FM의 DJ 랜디 서 | 대중음악은 언제나 세상의 단면을 반영합니다. 특히 이 분야의 여성들은 아티스트로서, 제작자로서 혹은 팬으로서 다층적인 생각의 지점을 건드리곤 합니다. [랜디 서의 사적 리뷰]는 국내외 여성 아티스트의 음악을 소개하고, 거기서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순간을 짚어봅니다. 

요즘 뉴진스를 잘 듣고 있는 이유는 편안해서다. 이 매력이 ‘요즘 케이팝’을 잘 듣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포섭하고 있는 것 같다. 음원 사이트나 유튜브 댓글에서 원래는 케이팝을 잘 안 들었지만 뉴진스는 잘 듣고 있다는 흔적들을 많이 만난다. 잘 만든 여유로움, 칠(chill)함은 뉴진스가 작년 여름에 내놓은 "Attention"과 "Hype Boy" 등부터 쭉 지켜온 주제다. 12월에 공개한 "Ditto"는 잰걸음 같은 브레이크 비트가 들어 있을지언정 그위에는 푹신한 이불을 덮은 것처럼 부드러운 패드와 자연스러운 호흡의 보컬이 얹혔다. 가사에도 별 파격이 없다. 느긋하고 부드러우며 안달하지 않는다. "OMG"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뉴진스 음악의 칠(chill)함이 ‘요즘 케이팝’과는 다르다고 여기는 듯 하다.

그렇다고 이제까지 걸그룹 케이팝에 칠(chill)한 무드의 곡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1세대 아이돌 핑클의 경우 아예 슬로우 알앤비 곡 "Blue Rain"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대중 반응은 귀엽고 활기찬 댄스곡 "내 남자친구에게"부터 터져나왔다. 핑클의 사례만이 아니다. 대체로 아이돌 걸그룹의 활동곡은 귀엽거나, 혹은 섹시하거나, 여하튼 일정 정도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곡들이 더 큰 인기를 얻어왔다. 1세대 걸그룹들은 어느 정도 연차가 올라가면 "영원" (핑클) 같은 미디움 템포의 곡들을 내놓았는데, 이러다보니 칠(chill)한 알앤비나 발라드는 걸그룹의 성숙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르라는 인식이 생겼다. 이 말은, 반대로 어리고 활기 있는 이미지를 유지하려면 칠(chill)하기 보다는 에너제틱한 무드의 음악을 고수하는 편이 유리했다는 소리도 된다.

원더걸스나 소녀시대 같은 2세대부터는 앨범이나 EP의 타이틀곡이라면 어느 정도 에너제틱하고 현란해야 함이 당연해졌다. 아이돌 시장이 치열해지면서 이런 경향성은 더욱 커졌다. 칠(chill)한 곡들은 대부분 앨범의 수록곡에 머물렀고, 프로모션에 전면에 나서는 일이 드물었다. 어쩌다 무대에 올린다 해도 정식 타이틀곡이 아니라 아이돌의 보컬 실력이나 이면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한 부속적인 위치였다. 케이팝을 만드는 사람들도, 향유하는 팬들도, 이를 약속된 문법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러다보니 지난 10여년 간 케이팝의 대표 이미지란 강하거나, 애교스럽거나, 짜릿하거나, 번쩍이거나, 감성의 코어가 무엇이 됐든 상당히 고양된 과잉의 모습이었다.

최근 아이돌로지 편집위원인 스큅과 대화하다 문득 칠(chill)한 걸그룹 케이팝 이야기가 나왔다. 1월 말에 막 레드벨벳의 "Bad Boy" 발매 5주년이 지나간 참이었다. 그는 "Bad Boy"는 “악곡도 퍼포먼스도 ‘케이팝’ 하면 생각하는 화려한(flashy) 면이 적은데 오로지 곡이 (미국 팝과 위화감 없게) 잘 빠”진 것이 눈에 띄었고, 요즘 뉴진스의 곡들도 “정서나 포지셔닝” 면에서 "Bad Boy" 등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 얘기를 들으며 요즘 사람들이 무심코 말하는 ‘뉴진스의 새로움’에도 어쩌면 취향의 계보를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드벨벳의 ‘벨벳’이 있었다

레드벨벳은 뉴진스를 내놓은 민희진 현 어도어 대표가 아직 (당시)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에 몸담고 있던 시기 등장한 팀이다. 데뷔 때부터 이들은 소녀시대(정)와 f(x)(반)의 합과 같은, 상반된 매력을 한 팀으로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레드벨벳의 콘셉트는 크게 ‘레드’와 ‘벨벳’으로 나뉘었다. ‘레드’ 콘셉트로는 상쾌하고 신나는 음악을, ‘벨벳’으로는 고혹적이면서 칠(chill)한 음악을 선보였다.

사실 상반된 두 가지 이미지를 번갈아가면서 내놓는 투트랙 전략은 1세대 아이돌 시절부터 즐겨쓰인 고전적인 방식이었다. 앨범의 첫 타이틀곡으로 어둡고 강렬한 댄스곡을 내놓은 다음 후속곡으로는 귀여운 느낌이 주가 되는 팝 넘버를 내는 식이다. 풀렝스 앨범 발매가 줄어들고 싱글이나 미니앨범이 주가 된 2세대 때도 이런 방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특히 신인 아이돌이나 쉴새없이 활동하는 중소기획사 아이돌은 투트랙으로 계속 해서 곡을 발표하고 음악 방송을 돌았다. 2010년대 초반에 활동한 시크릿이 화려한 브라스 위주의 파워풀하고 섹시한 댄스곡 두 곡을 내놓으면 그 다음에는 70년대 복고 의상에 귀엽고 신나는 노래 두 곡을 내놓는 식으로 운영 되었던 것이 그 예다.

레드벨벳식 투트랙의 특별함은 칠(chill)하고 고혹적인 ‘벨벳’ 콘셉트를 공식적인 노선으로 채택했다는 점에 있었다. SM으로서는 S.E.S의 후기 커리어에서 보여준 "Be Natural"이나 "S.II.S (Soul to Soul)"의 명맥을 잇는 시도였을 것이다. 케이팝식 알앤비에 쿨재즈나 소울의 요소를 좀 더 첨가한, 보다 녹진하고 복잡한 곡들이 ‘벨벳’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첫 ‘벨벳’ 활동곡 "Be Natural"은 S.E.S가 햇수로 4년차 되던 때에 낸 센슈얼한 재즈 스타일 팝을 리바이벌 하며 신인으로도 이만큼 묵직한 곡을 준수하게 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Ice Cream Cake"과 함께 더블 타이틀로 활동한 "Automatic"은 2세대 이후 신인 걸그룹의 활동곡으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스모키하고 음울한 매력이 있는 느린 마이너 알앤비 곡이었다. "7월 7일"은 아예 스트링이 주가 되는 슬프고 섬세한 발라드다.

레드벨벳은 이런 곡을 소화하기 위해 그룹의 커리어가 원숙해지기를 굳이 기다리지 않았다. 여타 아이돌보다 비교적 나이가 찬 후 데뷔한 맏언니 아이린의 존재가 팀 이미지의 구심점이 되어주었기 때문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는 멤버들의 탁월한 보컬 능력과 콘셉트 소화력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팝은 젊은 재능이 성숙한 작품을 소화할 때의 나이 대비 능력적 월등함을 좋아하는, 늘 영재(prodigy)를 찾아 헤매는 산업이다. 레드벨벳의 ‘벨벳’ 콘셉트는 이를 증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성적은 ‘레드’ 활동곡들이 더 높았지만, ‘벨벳’은 레드벨벳의 아이덴티티를 견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

2010년대 후반의 Chill Kpop Girl Group Songs

2010년대 후반에는 레드벨벳의 ‘벨벳’ 라인과 비슷한 뿌리를 가졌을 만한, 칠(chill)하면서 우아한 분위기의 걸그룹 곡들이 종종 나왔다. (음악의 장르가 전부 같았던 것은 아니다. 오로지 당시의 주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는 슬로우 템포라는 점에서의 거친 분류임을 이해 바란다) 주류라 보기는 어려웠지만, 케이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들을 주의 깊게 들었다.

레이디스 코드는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두 명의 멤버가 떠난 뒤 2016년, 3인조로 컴백하며 정적이면서도 세련된 긴장감을 끌어안은 마이너 알앤비곡 "Galaxy"를 발매했다. 높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훌륭한 케이팝 프로덕션 중 하나로 꼽고 싶은 곡이다.

2017년에는 CLC가 "어디야?"라는 드리미(dreamy)한 80년대풍 신스가 돋보이는 발라드를 내놓았다. CLC는 앞서 귀여운 전자 댄스 음악과 직속 선배 포미닛의 레거시를 이어받은 파괴적인 음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고, 이후 노선이 후자로 정해지며 "어디야?"는 탐구 중에 우연히 등장한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존재로만 남았다. (유사-시티팝 유행의 조류를 이루기 시작한 유빈의 "숙녀"가 2018년이었으니 꽤 이른 셈이었다)

2017년은 이달의소녀가 완전체 데뷔에 앞서 멤버들이 한 명씩, 혹은 유닛으로 프리데뷔 싱글들을 발매하던 해이기도 했다. 김립의 "Eclipse"나 그가 소속된 유닛 오드 아이 써클(Odd Eye Circle)의 ‘Sweet Crazy Love’ 등은 조도가 낮은 컨템포러리 알앤비 넘버로 해외 케이팝 팬들이 더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벨벳’의 완성

레드벨벳의 투트랙은 시간이 갈수록 융합되며 이들 음악의 입체성을 더해갔다.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이나 "Rookie"가 신나는 ‘레드’와 낯선 ‘벨벳’이 각각 7 대 3 정도 섞인 인상이었다면, 정규 2집 [Perfect Velvet]의 타이틀곡 "피카부 (Peek-A-Boo)"는 1 대 9 정도였다. 분명 성숙하고 세련된 느낌의 알앤비이면서도 곡의 장난끼나 B급 호러 레퍼런스가 ‘레드’를 어른거리게 하는 이 곡이 성공을 거두며, 다음에 올 "Bad Boy"의 발판을 다졌다.

리패키지 앨범 [The Perfect Red Velvet]의 타이틀 곡 "Bad Boy"는 "피카부"보다도 더한 ‘벨벳’이었다. 90년대 알앤비를 베이스로 해, 때로는 신스 라인으로 신비하게, 때로는 트랩 비트가 강조 되며 난폭하게 전개 되는 이 곡은 ‘도도한 나(화자)’와 ‘Bad Boy’ 사이의 로맨틱한 긴장 관계를 그렸다. 가성으로 극히 섬세하게 캐리하는 웬디와 슬기의 프리코러스가 특히 좋았고, 이 아름다운 보컬 기교는 다음 ‘벨벳’곡 "Psycho"에서 정점을 맞았다. "Bad Boy"로 한창 활동하던 시기가 평창 동계 올림픽과 겹칠 때라 음악 방송들이 다수 결방하긴 했지만, 이 곡은 케이블과 공중파 음악 프로에서 다섯 번의 1위를 했고, 가온 디지털 통합 차트에서는 2위에까지 올랐다.

이만치 진득하고 칠(chill)한 세기말 바이브 알앤비가 한국 최고 인기 걸그룹의 전면에 당당하게 걸리는 광경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같은 해 7월에는 팝음악을 다루는 미국의 디지털 매체 지니어스가 유튜브에 "Bad Boy"의 공동 프로듀서 The Stereotypes의 인터뷰를 올렸다.

팀 멤버 레이 로물루스와 제레미 리브스는 현재의 (2018년 당시) 미국 시장에선 본인이 자랄 때 듣던 90년대 알앤비 요소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케이팝에선 이런 음악을 만들어도 된다는 점이 좋다고 언급했다. "Bad Boy" 같은 곡의 성공이 전세계의 작곡가들의 케이팝 신에 대한 인식을 ‘보다 음악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장소’라 견인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진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2019년 겨울 발표한 "Psycho"는 "Bad Boy"의 도시적인(urban) 분위기를 영화 속에 나오는 유럽의 고전 예술의 그것과 절묘하게 바꿔치기 했다. 딥레드 립스틱과 가죽 재킷, 피쉬넷 스타킹으로 꾸몄던 패션은 발레 [백조의 호수] 혹은 영화 [블랙 스완]에 나올 듯한 백조 티아라, 새틴 리본, 그리고 블랙 레이스로 만든 시스루 파티 글러브가 됐다. (발레코어(Ballet-core)를 활용한 비주얼 콘셉트는 최근까지도 "Feel My Rhythm"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깃털처럼 가벼우면서 정확하고 깨끗한 예의 가성 보컬 기교는 신스 플럭 대신 현악기의 피치카토(플럭)와 짝을 이뤘다. ‘벨벳’의 완성에서 한 단계를 더 나아간, 완성의 진보 같은 곡이었다. 이 곡으로 길게 활동해서 많은 무대를 남겨줬으면 좋았으련만, 연말에 있었던 SBS 가요대전 리허설에서 메인보컬 웬디가 안전사고를 당해 큰 부상을 입는 일이 벌어졌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다행히 회복했다 하지만, 당시 SBS가 내놓은 당사자에게 사과 없는 사과문은 아직도 케이팝 역사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도 아깝고 안타까운 명곡이다.

뉴진스 전과 후의 Chill Kpop Girl Group Songs

2020년부터 2021년은 아무래도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케이팝 신 전체가 많이 위축된 시기였지만, 뉴진스가 2022년 여름에 데뷔하기 전에도 전조처럼 등장한 곡은 있었다. 2020년 데뷔한 걸그룹 시그니처는 처음에는 "눈누난나 (Nun Nu Nan Na)" 같은, 하이퍼팝 혹은 일본식 큐트 테크노팝의 영향을 받았을, 꽉 차다 못해 뚜껑이 날아갈 듯한 강렬한 케이팝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팀이 새로 개편 되고 이들이 2021년 컴백하며 내놓은 곡은 에너지를 뚝 떨어뜨린 서늘한 인상의 미디움 템포 알앤비 "Boyfriend"였다. 유독한 관계를 인지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비극을 주제로 했지만, 구질구질한 인상 하나없이 세련되다. 레드벨벳의 "Psycho"가 그린 로맨스와 비슷한 아우라가 있다.

같은 해 이달의소녀도 희진, 김립, 진솔, 이브의 유닛으로 "Not Friends"라는 곡을 발매했다. 작곡가 라이언 전이 진행한 프로젝트에 이들이 컬래버한 형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낮은 알토 음역대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한번은 고음으로 터뜨리는 흔한 케이팝식 진행을 비껴나갔다. 이는 뉴진스 음악에서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뉴진스가 데뷔한 시점 이후, 2022년 10월에는 트리플에스(tripleS)의 유닛 AAA(Acid Angel from Asia)가 "Generation"으로 데뷔했다. (트리플에스는 위에 언급했던 레이디스코드와 이달의소녀를 프로듀싱한 정병기가 새롭게 런칭한 걸그룹이다) 전체적으로 낮은 음역대의 칠(chill)한 마이너 곡이면서도 종종 브라스가 박차를 가해온다. 유유한 코러스의 ‘랄라라’ 구간에 무표정과 진득한 움직임의 안무를 매칭해서 액센트를 준 점이 특히 좋다. 칠(chill)함에 세기말적인 쿨함을 성공적으로 녹여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피프티피프티의 "Higher"은 불과 3개월 전인 2022년 11월에 나온 이들의 데뷔곡이다. 찰랑거리는 예쁜 디스코 기타 때문에 도자캣의 "Say So"의 영향권 아래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디스코의 베이스 드럼은 없다. 그래서 듣는 마음은 플로어에서 춤추기보다는 헬륨 풍선 위에 앉은 것처럼 가볍게 떠오른다. 멤버들 모두 듣기 좋은 가성 톤을 갖고 있다.

그래도 레드벨벳과 뉴진스의 칠(chill)함이 다른 점은

칠(chill)한 걸그룹 케이팝 계보를 짚으며 레드벨벳 이야기를 한참 했지만, 실은 레드벨벳과 뉴진스는 음악적으로는 다른 뿌리에서 해당 무드를 이끌어낸다. 대화 중에 스큅은 “레드벨벳은 소울-알앤비, 뉴진스는 댄스 뮤직에 각각 더 뿌리를 두고 있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짚었다. 동감한다. 나아가 그런 음악적 차이 때문에 이들 음악에서 느껴지는 표정이 다르다고 느낀다. 데뷔 초 레드벨벳의 ‘벨벳’은 탁월한 재능의 소녀가 선보이는 진득하고 어른스러운 음악에 포커스가 맞춰져있었다면, 뉴진스는 미니멀하고 세련된 음악이지만 뉴진스 당사자들이 구김살 없는 예쁜 소녀이기에 생기를 얻는다. 문장으로 써보면 주어와 목적어가 반대로 배치된다.

공통점은 케이팝의 형태를 통해 계속 해서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한다는 것 아닐까. 케이팝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어쩔 수 없이 문법이나 도식 같은 것이 태어나고 마는 것을 본다. 세계관이나 포토 카드 같은 것 말고 음악에도 그렇다. 고음역대의 귀여운 보컬,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는 ‘성녀파트’라는 별명까지 생겨버린 갑작스러운 브릿지, 한 번은 벨팅으로 질러줘야 하는 구성 등. 뻔해서 더 좋은 음악도 물론 있지만, 그래도 이것 말고 다른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에게 조금 다른 좋은 음악을 소개해주는 아티스트들이 좋다.

케이팝은 음악 말고도 예쁜 비주얼, 멋진 안무, 화려한 패션 등 여러 가지 매력적인 것들을 함께 진열해놓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지금 나의 취향 팔레트는 멋진 것들로 날 유인해 낯설지만 좋은 음악을 듣게 만든 과거의 웰메이드 케이팝에 적지 않게 빚지고 있다. 음악을 집요하게 듣지 않는 대중에게도 늘 듣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침투시킬 수 있는 것은 케이팝의 큰 힘이다. 🎧 DJ 랜디 서 |  rndy.s.mu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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