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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세일링 해양레저신문 인터뷰

2024.06.02 | 조회 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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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퍼 매뉴얼

바다, 항해, 세일링 요트 이야기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얼마전에 해양레저신문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훌륭한 인터뷰는 질문을 잘 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고 하죠. 기자님의 탁월한 질문 덕에 제가 즐기는 세일링에 대해, 그리고 스키퍼 매뉴얼 뉴스레터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최근의 북미-멕시코 항해 뿐 아니라 지중해 세일링, 심지어 인턴 시절 에피소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네요. 그 중 구독자님에게 유익하고 재미있을 수 있을만한 이야기들이 있어 뉴스레터에 일부를 소개합니다. 

▶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2009년부터 주로 이탈리아를 베이스로 세일링 요트와 파워요트를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커리어 초기에는 밀라노와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그 이후에는 프리랜서로 100피트 전후 세일링 요트의 익스테리어 디자인과 인테리어 레이아웃을 주로 맡아 디자인합니다. 비교적 최근 진수한 프로젝트로 핀란드 발틱 요트Baltic Yachts 142피트 카노바Canova, 독일 와이 요트YYachts 70피트 플래그쉽 벨라Bella와 이탈리아 비 요트B-Yachts 34피트 데이세일러가 있습니다. 소위 럭셔리 요트의 세계에서 일을 하지만, 업계 사람들과 달리 세일러로서 부족한 점이 많아 공부를 하다 보니 요트 관련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진 : (좌)YYachts70 Bella / (우.상)Baltic Yachts 142 Canova / (우.하) B-Yachts 34
사진 : (좌)YYachts70 Bella / (우.상)Baltic Yachts 142 Canova / (우.하) B-Yachts 34

 

▶ 필명 ‘이지세일링’ 의미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지세일링Easysailing'은 세일링 요트의 기동을 단순화하고 자동화시킨 데크 시스템을 가리키는 기술 용어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전동윈치나 셀프 태킹(*) 시스템도 이지세일링 시스템의 예죠. 1990년대부터 일부 수퍼요트에 도입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프로덕션(*) 요트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복잡한 요트 조작을 단순화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세일링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좋아 필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편안한 세일링’으로 읽히는 점도 마음에 들구요. 

  • 셀프 태킹self-tacking: 태킹 시 집시트를 조정할 필요 없이 집세일이 스스로 반대 방향으로 넘어가도록 하는 시스템.
  • 프로덕션 요트: 보편적인 디자인으로 대량생산되는 요트로, 커스텀 요트와 반대의 개념.

 

▶ 처음 요트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있다면? 

산업디자인과 재학 중에 밀라노의 요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요트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는데도 운 좋게 당대 가장 유명한 수퍼요트 디자인 스튜디오 중 한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졸업 후 정식으로 역할과 책임을 맡으며 스튜디오 외부 사람들과 교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당시 요트 지식에 대한 저의 부족함을 느낀 사장이 육지에서 100해리 떨어진 무인도로 2주간 딩기요트 합숙 훈련을 보내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배를 탄 사람이 아니면 첫 요트 경험 직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이렇게 명확히 둘로 나뉜다고 하던데 다행히 저는 전자였어요.

사진 : 스튜디오 브렌타(Brenta)에서 근무 시설 : (좌) 모형은 월리요트의 시작인 월리게이터 1, 2
사진 : 스튜디오 브렌타(Brenta)에서 근무 시설 : (좌) 모형은 월리요트의 시작인 월리게이터 1, 2

 

▶ 요트 항해에서 느끼는 매력이 있다면?

어디에서 어떤 요트를 타느냐에 따라 참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여름철 지중해에서 크루즈를 하면 육상교통이 닿지 않는 아름다운 바다를 최대한 즐기며 천혜의 자연을 만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큰 파도가 잦지 않기 때문에 바람과 세일 트림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세일링 할 수 있는 환경도 좋구요. 태평양 동쪽(미 대륙 연안) 바다는 해양생물들과 만날 기회가 정말 많았습니다. 고래떼와 함께 항해 하고, 낚시줄에 어린애 만한 상어가 올라오고, 마리나에는 물개들과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습니다. 한국에 머물 땐 주로 남해에서 배를 타는데, 여객선 스케줄이나 숙소 예약에 구애받지 않고 주위 섬에 다녀온다거나 인파로 미어터지는 해변 앞에 닻 내리고 여유롭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좋더군요. 이 셋을 종합하면 '자유롭게 자연에 스며들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진 : 항해와 마리나에서 만나는 해양 생물
사진 : 항해와 마리나에서 만나는 해양 생물

 

▶ 발행 중인 ‘스키퍼 매뉴얼’에 대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코로나로 밀라노가 봉쇄되어 집에 혼자 세 달 가까이 갇혀 지내던 시기, 세일링 요트의 리깅에 대한 블로그를 운영했습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 책 한 권을 선택해서 마치 요트를 전혀 모르는 친구에게 설명해 주듯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기본부터 설명할 논리를 찾으며 글을 쓰다 보니, 몇 번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던 부분들을 쉽게 기억할 수 있게 되더군요. 더불어 같은 관심사를 가진 독자들도 하나둘 생겨났습니다. 

2022년 여름, 저는 처음으로 2주간의 크루즈에서 스키퍼 역할을 맡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스키퍼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역량 있는 스키퍼가 알아야 할 내용'을 주제로, 리깅 블로그의 성공 경험을 살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블로그를 발견해도 즐겨찾기 추가만 하고 잊어버리던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며, 이번엔 뉴스레터 형식을 시도했어요. 

초반에는 탑-티어 오프쇼어 세일러 장카를로 페도테(Giancarlo Pedote)가 지금처럼 유명한 스키퍼가 되기 전에 쓴 동명의 책 'Il manuale dello skipper(스키퍼 매뉴얼)'을 중심으로 구성했어요. 평소 배에 놔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던 콘사이스 형식의 책이었죠. 검증된 스키퍼의 항해에 대한 A부터 Z까지의 통찰, 고민, 그리고 노하우를 담고 있어서 내가 스키퍼로서 알아야 할 주제를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데 딱 좋았거든요. 언젠가 완독하겠다고 마음만 먹고는 금세 잊곤 했지만, 뉴스레터라는 정기 발행 형식을 통해서라면 독자들과 함께 꾸준히 읽어나가며 결국 완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사진 : 이지세일링 (님) 항해 일상 모습
사진 : 이지세일링 (님) 항해 일상 모습

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저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출항해 난생처음 태평양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자친구가 미 서부 해안과 바하 캘리포니아를 따라 내려가 멕시코에 가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혼자라도 가겠다는 게 아무래도 불안해서 항해 초반부는 함께 항해해 주기로 했습니다. 자신에 차서 내가 도와주겠다며 등판은 했는데, 처음 타 보는 선종, 처음 항해해 보는 바다, 처음 겪는 미국 시스템으로 인해 고난의 에피소드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생이 컸던 만큼 재미있는 일도 많이 벌어졌어요. 독자들과 함께 낄낄거리고픈 개그 욕구가 샘솟더군요. 남이 쓴 책 본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단조로운 뉴스레터 글쓰기가 지루해질 때쯤, 그래서 제 항해 이야기를 함께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친 북미 태평양의 겨울 바다나 멕시코 허리케인 시즌을 피해 쉬는 동안에는 항해 중에 부족하다고 느꼈던 주제들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서 뉴스레터로 발행했죠. 그리고 캐나다-멕시코 항해를 완전히 마친 지금은 지난 항해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내용을 담아 발송하고 있습니다. 뉴스레터를 시작한지 2년 넘게 지나 이제야 저의 진정한 '스키퍼 매뉴얼'을 쓰고 있는 느낌이예요. 그래도 내용이 너무 전문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조심하고 있습니다. 리깅 블로그처럼, 전혀 요트 경험이 없는 가상의 친구가 이해할 만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독자분들과는 소통을 자주 하시는 편인가요? 

대부분 기자님처럼 읽기만 하십니다. 그래서 지난 가을, 항해를 위해 다시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에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봤어요. 대나무숲에 홀로 외치는 느낌으로 남해에서 북토크와 파티를 연다고 뉴스레터에 공지했는데, 차, 캠핑카, 요트 등을 타고 이 먼 남해까지 많은 분이 와 주셨어요. 이렇게 저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셨다는 사실에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해외에서 구매한 요트를 홀로 한국에 옮겨오는 먼바다 항해에 제 뉴스레터를 인쇄해 가져가 참고하셨다는 분도 계셨고, SNS나 다른 온라인 서비스 디톡스 중이지만 제 뉴스레터만은 매주 기다린다는 분도 만났어요. 뉴스레터 덕에 이렇게 멋진 사람들과의 인연이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한국에 자리를 잡고 정착할 예정이니, 재미있는 읽을거리 뿐 아니라 함께 즐길거리도 만들어 더 자주 만나고 싶어요. 

 

▶ 앞으로 ‘뉴스레터’를 통해 요트 분야 다뤄 보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운전하는 사람이 자동차의 구성이나 동작 원리를 꼭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요트는 좀 달라요. 배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훨씬 더 안전하고 편하게 항해할 수 있습니다. 바다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 돌발 상황이 생기면 당황하지 않고 적절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배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스키퍼가 알아두면 좋은 요트의 기술적인 내용들을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게 풀어내 보려고 합니다. 스키퍼 매뉴얼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요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이고 항해 하면서 몸소 부딪히다 보면 점점 더 좋은 스키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 책을 출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개 부탁 드립니다.

뉴스레터에 연재했던 어리버리 항해기 중 앞부분을 다듬어 Bumbling On Horizons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습니다. 항해 초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주로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생각에 성급하게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 아스토리아 구간까지의 항해 이야기만을 묶어 책을 냈습니다. 그러나 어리버리 세일러들의 좌충우돌 혼비백산은 시간이 지나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어요. 항해를 진행하면서 상황이 점점 익숙해지며 편안해질 것이라는 기대와 반대로 멕시코까지 전 구간을 항해하는 내내 고난의 스토리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스토리아 이후의 항해 이야기까지 모두 담아 책을 새롭게 출간할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세일링 이야기를 읽을 만한 독자층이 더 많을 거라는 단편적인 생각에서 ‘Bumbling On Horizons’는 영문으로 출간했는데, 이번에는 원문인 한글 책 먼저 완성하려고 합니다.

사진 (좌) 출간된 ‘Bumbling On Horizons’ / (우) 프랑스 코르시카 섬에 닻을 내리고
사진 (좌) 출간된 ‘Bumbling On Horizons’ / (우) 프랑스 코르시카 섬에 닻을 내리고

 

▶ 지금까지 ‘이지세일링’님이 경험한 항해 코스는 어떤 곳이 있을까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와 유럽의 호수들에서 세일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남해안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를 항해했고, 최근 2년간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멕시코 중부 사이 태평양 연안을 항해했어요. 

 

▶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저는 지중해에서 처음 세일링 요트에 발을 들였고, 점차 경험이 쌓이고 항해에 자신감이 붙어 배와 다른 크루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스키퍼 역할을 맡게 될 때까지 모든 세일링 경험이 지중해라는 환경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사진 : 이지세일링-이탈리아 리구리아 해안
사진 : 이지세일링-이탈리아 리구리아 해안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난생처음 태평양이라는, 전혀 다른 바다를 항해하게 되면서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이 초기화되는 듯한 패닉에 빠졌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공포에 질리는 일이 반복되자, 과연 내가 항해를 즐기는 사람인지조차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중도에 포기할 수도 없고,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는 현실을 깨닫자, 그간 저를 괴롭히던 항해 공포증이 투정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잘 모르는 선종, 잘 모르는 바다, 어리버리 두 명으로 이루어진 크루 구성 등 그동안 저를 감싸고 있던 두려움에 마음의 문을 열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일러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멕시코 북부의 엔세나다에서 종착지 산블라스까지 구간은 바다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뜨고 지는 해와 달을 연속해 보며 느끼던 성취감으로 평생 잊지 못할 바다로 남을 것 같습니다. 

 

▶ 개인적으로 항해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 번은 독일 사람들 세일링에 합류한 적이 있습니다. 새 주인을 만난 배를 클라이언트의 여름 휴가지 사르데냐로 옮기는 200해리 정도의 여정이었죠. 새벽에 출항해서 아침 점심도 쫄쫄 굶으며 종일 항해 했습니다. 우리가 옮기는 배는 근해 세일링용이라 거친 바다에 적합하지 않은데, 오후부터 바람이 너무 심하고 파도가 높아졌습니다. 선장은 안전을 위해 코르시카 섬 쪽으로 근접 항해를 결정했습니다.섬에 가까이 붙자 파도와 바람이 많이 잦아들었습니다. 다들 한숨을 돌리며 해안을 따라 남하하던 중,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고무보트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사람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장은 고무보트에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 생각하고 가까이 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야- 이런 게 바로 씨맨십이로구나!' 다들 배고프고 피곤한 상태였는데 고민 없이 바로 뱃머리를 돌리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무보트 바닥에는 전라의 남녀가 겹쳐 누워 있었습니다. 남자는 우리를 보고 화를 내며 뭐라 했던 것 같아요. 황급히 뱃머리를 돌린 독일인 선장은 기가 막혀 하며 "프랑스 놈들.."하고 투덜거렸습니다. 독일 크루들의 씨맨십이 엉뚱하게도 프랑스 사람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결과로 돌아오고 말았던 거죠. 같은 유럽이라도 문화 차이가 큰데, 여러 나라 사람이 지중해에서 세일링을 즐기다 보니 일어난 해프닝이었습니다. 프랑스 선장이었다면 바로 앞까지 가기 전에 상황을 짐작하고 돌아갔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세일러가 갖추어야 할 자질 하나를 꼽는다면? 

뉴스레터에서 여러번 '쿨헤드(cool head)'라고 표현한,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이 세일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이 혼비백산하면 아는 것도 기억이 나지 않고 엉뚱한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이니까요. 바다 위 상황은 예측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고, 배에서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이때 평정을 유지해야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한 번은 베테랑 선장이 배 옮기는 항해에 합류했습니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200여 마일 항해하는 거리라 좀 느긋한 여정이었고, 선장은 친구들을 초대했습니다. 저녁으로 선장 특기인 리조또를 만드느라 갤리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엔진이 멈춰 버렸습니다. 이 깜깜한 밤에 바다 한가운데에서 엔진 고장이라니, 순간 침묵과 긴장이 흘렀습니다. 선장은 일단 가스 불을 끄더니, "그럼 세일 먼저 올려놓고 생각해 보자"라며 데크로 올라갔습니다. 세일로 일단 배가 앞으로 가게 해 놓은 뒤 엔진룸을 열어 엔진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남이 어떻게 정비했는지 모를 배를 옮길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입니다. 엔진이 멈추자, 저는 이 배의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더군요. 리깅은 과연 제대로 되어 있을지, 물 들어오는 곳은 없는 게 맞는지, 이 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니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잠시도 당황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더군요. 엔진은 항해가 끝날 때까지 고치지 못했고, 우리는 다음 날 새벽 세 시, 어둠 속에 세일로 입항해야 했지만, 선장의 덤덤한 태도 덕에 겁먹지 않고 배를 무사히 정박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냉정을 잃지 않는 ‘쿨헤드’야말로 세일러가 갖춰야 할 최고의 자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항해라는 꿈을 꾸고는 있지만 용기가 없거나 기회를 만들지 못해 아직 시작하지 못한 분이 많습니다. 첫 항해 시작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로망과는 별개로, 실제로 배를 타 봐야 본인이 정말 배 타는 것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막상 해 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를 수도 있어요. 반대로 세일링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요. 먼바다 모험을 하는 항해와 가까운 바다를 즐기는 항해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는 것도 중요해요. 세일링 요트에 '모험'의 이미지가 많이 덧씌워져 있지만 저처럼 ‘이지 세일링’을 선호하는 사람도 배 타는 걸 즐기고 취미로 삼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기보다는, 가볍게 배 탈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처음부터 요트 면허 코스에 부담스런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 보다는 짧은 크루즈나 데이 세일링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요트 문화를 확산시키려 하면, 어떤 것이 선행되어야 할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보통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요트 수요가 생긴다고 하는데요, 그렇지 못한 케이스가 일본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부자들조차 일을 열심히 하는 문화 때문에 여가 시간 부족으로 요트 문화가 크게 확산되지 못했다고 해요. 한국도 휴가를 자유롭고 넉넉하게 쓸 수 있다면 요트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어업 종사자들과 바다 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세일링 요트가 닻 내리기 좋을만한 만에는 빠짐없이 '빠지'라고 부르는 무허가 수상 시설물이 떠있고, 해안에서 떨어진 곳에 대형 어망이 설치되었는데 전자해도에 표시되지 않은 경우도 수차례 목격했습니다. 이런 위험한 시설물에 적절한 표시등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 세일링 요트의 안전을 위협합니다. 

어업으로 인한 해양 오염 문제도 심각해서 바다에 떠다니던 로프 등이 프로펠러에 엉키면서 요트가 동력을 잃거나 닻이 해저의 폐그물에 걸려 수거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합니다. 스티로폼 부이 때문에 육지에서 먼 바다 섬에 가도 흰색 찌꺼기들이 바위에 빼곡히 끼어 있는 모습 역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쾌적하고 안전한 바다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요트 문화 확산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사진 :한국 남해 항해 중 만난 해변의 쓰레기 (상)나쁜예, (하)좋은예 
사진 :한국 남해 항해 중 만난 해변의 쓰레기 (상)나쁜예, (하)좋은예 

 

▶ 바다 건너 요트를 구매하고자 하는 초보 스키퍼에게 조언 부탁 드립니다.

검색해 보니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2014년에 치키 라피키(Cheeki Rafiki)라는 이름의 베네토 퍼스트 40.7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베테랑 스키퍼를 포함한 네 명이 영국에서 카리브해로 배를 옮기던 중이었는데, 선체에 물이 들어온다는 조난신고를 마지막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결국 킬이 빠진 상태로 뒤집힌 선체가 발견되었고, 구명정은 선체에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킬볼트(*)가 파손되어 킬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 배가 빠르게 뒤집히기 때문에 선원들이 대피할 시간이 없었을 거예요.

  • 킬볼트Keel bolt: 세일링 요트의 선체 하부에 킬을 단단히 고정해주는 긴 볼트

이 배의 실종 직후부터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음 소식을 기다리다가, 킬 없이 뒤집혀 있는 배의 사진을 보고 충격이 컸어요. 세월호가 가라앉는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들에게 남은 트라우마와 비슷한 게 생긴 것 같아요.

배는 수명이 매우 길기 때문에 때로는 100년이 넘은 요트도 건재를 과시하곤 합니다. 하지만 세월을 견딜 만큼 관리가 잘 되어 왔을 때만 가능한 일이에요. 선령이 오래되지 않았더라도 주인이 자주 바뀐 배는 잘못된 수리나 개조 이력을 파악하지 못할 위험이 커집니다. 차터를 돌리는 배는 전문가가 정기 점검을 해 주니 안전하다고 믿기 쉽지만, 치키 라피키 역시 차터로 운영되던 배였습니다. 그런 위험이 내재 되어 있는 중고 배를 구매하자마자 먼 바다로 끌고 나가는 일은 너무 위험한 일인 것 같아요. 대서양이나 태평양은 한국 바다와 다를 뿐더러, 바다에서는 언제나 예상 밖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험할 때는 정말 배를 믿고 버텨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내 배를 잘 모르는 상태라면 일단 멘탈 유지하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이 어떤 루트를 항해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사실 역시 내가 같은 루트에서 안전할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선원들도 돌발 상황에 대응할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상황의 항해 경험을 함께 한 '내가 잘 아는 배'로 먼 바다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운전 실력을 높이려면 일단 차를 사는 게 맞지만, 요트를 배우기 위해 꼭 배 먼저 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배에 타며 실력을 쌓다가, 배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게 되고 본인에게 맞는 항해, 그리고 배에 대한 생각도 뚜렷해졌을 때 구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터뷰 기사는 2회에 걸쳐 연재되었습니다. 전문을 읽으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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