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늘 뉴스레터는 화보 넘기듯 편하게 남의 배 안을 둘러보는 형식으로 꾸며 보겠습니다. 총 네 척의 배를 선정해 보았는데요, 각각 특징 있는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는 배들입니다.
Hugo Boss
익스트림한 레이스 요트 IMOCA 60부터 시작해 봅시다. 주로 프로페셔널 세일러 홀로 대양을 횡단하는 방데 글로브Vendée Globe와 같은 레이스에 쓰이는 고성능 요트입니다. 극한의 해양 조건에서도 높은 속도와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전문가만 탑승하므로 인테리어 환경도 좀 전문가 전용입니다.
가벼운 무게를 위해 별도의 마감이나 내장재 없이 노출시킨 까만 카본 파이버 선체와 데크, 첨 보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각종 라인과 스크린으로 가득입니다. '인테리어'라는 말이 좀 의아할 만큼 세일링 장비 이외엔 아무것도 없어 보이긴 하는데요,
인테리어 요소가 없다기보다는 중점을 둔 포인트가 명확하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능. 불편한 환경과 맛없는 식량을 감내하고 배 위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데에 노련한 선수가 탈 배이니만큼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 익스트림한 집중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예가 위 시연자가 앉아 있는 의자인데요, 차트 테이블 대신 저 의자에 앉아 항해를 모니터링하나 봅니다.
줄을 늘여 등받이를 뒤로 뉘이면 바로 침대가 되고, 쪽잠을 자다 뭔가 일이 생기면 얼른 줄을 잡아당겨 다시 의자 자세로 돌아오는 반동을 이용해 바로 그 앞의 문을 통해 앞으로 튀어나가
바로 이렇게 세일 조정을 할 수 있도록 동선이 구성되었다네요.
RAN II
좀 더 보편적인 레이스 요트는 여러 사람이 실외 공간에서 각각 나누어 맡은 부분의 조종을 하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주 활동 무대가 콕핏이죠.
여러 사람이 때로 급히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콕핏에 장애물이 없고 매우 넓습니다. 데크 역시 갑작스러운 장애물 없이 대체로 평평한 형태이고 배가 가벼운만큼 물에 잠기는 부피가 작아 선체 바가지의 높이 자체가 낮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배들은 실내의 층고가 매우 낮아 몸을 숙이고 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게를 최소로 줄여야 하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를 위해 실내를 나누는 벽이나 문이 없고 가벼운 파이프에 천을 댄 들것 스타일의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레이스 요트인만큼 탑승자 편의는 희생하고 성능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한계 안에서 가능한 디자인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극한의 해양 환경에서도 레이스를 하기 때문에 선체 구조 역시 거대한데요, 구조를 그대로 노출시킨채 그 사이사이 최소한의 인테리어 요소들을 배치합니다.
LATIFA
분위기를 바꾸어 옛날 나무배 안을 살펴봅시다. 1936년 진수된 욜yawl(케치와 비슷하나 뒷 마스트가 러더 뒤에 있음)입니다. 배 전체가 티크목과 철 프레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나무는 요즈음의 최첨단 소재보다 강도가 약하므로 넓적하고 미니멀한 표면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촘촘히 나무 구조가 배치되어 있고 인테리어 공간도 작은 공간들로 나누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사진은 데크하우스 안인데요, 콕핏에서 실내로 들어가는 중간에 있는 공간입니다. 창을 통해 밖을 볼 수 있으니 야간 항해에서 당번 설 때 머물기 좋아 보이네요.
배가 기울어도 문제 없이 몸을 기대며 내려갈 수 있는 너비의 계단과 복도를 지나
멋진 살룬이 나왔습니다. 이 배는 전장 78피트(약 24미터)의 큰 배인데요, 살룬의 크기는 요즈음의 40피트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보입니다. 책장의 책이 횡방향으로 꽂혀야 하는 이유는 배가 옆으로 기울기 때문입니다. 다 쏟아지면 골치 아프겠죠?
선체 부분에 창이 없고 천장(데크)의 해치에서만 자연광을 받아 전체적으로 좀 어둡습니다.
해치는 밖에서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틈새로 들어온 물이 밖으로 흘러나가 내부가 젖을 염려가 없는 구조이고, 나사로 단단히 고정해 닫을 수 있기도 합니다. 나비 모양으로 열리는 이 해치는 옛날 나무배의 상징 같은 아이템입니다.
동급의 상징적인 아이템 나무 휠과 나침반 기둥. 어디서(?) 많이 본 녀석들입니다.
침실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세일링 요트의 침대들은 종방향으로만 놓여 있습니다. 책이 횡방향으로 꽂힐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배가 옆으로 기울기 때문이죠. 배가 기울면 아예 선체에 몸을 기대고 자라고 편안한 쿠션이 붙어 있기도 합니다. 반대 방향으로 기울면 매트리스 아래에 붙어 있는 천을 꺼내올려 아기 침대처럼 사방이 막히게 하기도 합니다.
좁은 뱃머리 부분은 세일을 저장하는 공간으로 사용합니다. 바가지의 앞부분이 곡선으로 들려 올라가는만큼, 바닥 역시 뱃머리로 갈수록 층층이 올라가 공간을 최적화합니다.
작은 화장실도 곡면의 선체 형태를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세일링 요트 인테리어의 또하나 재미있는 부분이 부엌(갤리)입니다. 배가 기울어도 뜨거운 냄비나 후라이판이 쏟아지지 않도록, 오븐과 가스레인지는 종방향으로 설치되어 있되 그네처럼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배가 기울어도 수평을 유지하기 때문에 요리 당번이 끓는 물을 뒤집어쓸 염려가 없죠.
Wally B
이번엔 약간 정,반,합의 합 같은 요트인데요, 건조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시간을 뛰어넘는 아방가르드한 인테리어로 유명한 배입니다.
크르주용으로 사용하는 큰 배의 인테리어들이 럭셔리 맥시멀리즘을 향해 달려가던 시기, 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빼 카본 파이버 선체와 그 구조물을 그대로 노출시켰습니다.
요즈음엔 프로덕션 세일링 요트에서도 선체에 난 창문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원래 세일링요트의 바가지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거기에 구멍을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렇게 큰 직사각형 창을요.
뱃머리 선실 역시 선체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옷장은 스테인레스 스틸 프레임 안에 고정된 가죽 가방 같은 수납장이 대체합니다.
대부분의 세일링 요트 인테리어가 선체에 '붙어서' 배의 일부처럼 보이게 하는 반면 이 배는 선체를 건드리지 않고 그 위에 동동 띄워 놓았습니다. 어찌 보면 세일링 요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바가지를 가리는 대신 최대한 노출시켜 그 중요성을 강조하되, 레이스 요트에는 없는 편안한 인테리어 역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레이스요트 vs 크루즈요트로 나뉘던 세일링 요트계에 '크루저-레이서cruiser-racer'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며 등장한 월리Wally 요트의 초창기 배인 만큼 인테리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디자인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재미있으셨나요?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다음 레터에서는 어리버리 항해를 함께 한 타야나Tayana 37피트 호라이즌스 호의 인테리어와 그 위에서의 실제 요트 생활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으리으리한 요트를 구경하다 갑자기 구명보트로 옮겨타는 듯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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