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늘은 지난 스키퍼 ABC '큰 그림'에 이어, 세일링 요트의 심장, 세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포트 와인 좋아하시나요? 달달해서 디저트 와인으로 딱이죠. 포트라는 이름은 포르투갈의 포르투Porto에서 왔습니다.
포르투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와이너리 투어를 꼭 하는데요, 와인 창고들은 주로 도우루 강 남쪽, 동루이스 다리 건너편에 모여 있습니다.
강변을 거닐다 보면 아래와 같이 생긴 배들이 정박해 있는 걸 보실 거예요. 한때 도우루 강 상류에서 와인을 실어 오던 하벨루Rabelo라는 배입니다.
사각형의 세일 하나와 긴 노가 눈에 띕니다.
배를 타는 사람이라면 궁금해지죠. 저 사각형 세일로 뒷바람은 탈 수 있겠지만 뱃머리 돌려 집에 돌아올 땐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한 번 출항하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것인가. 차선 못 바꿔 부산 가는 초보처럼 자칫 계획에 없던 대양 횡단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 동네에는 지속적으로 서풍이 분다고 합니다. 하벨루는 서풍을 타고 도우루 강을 거슬러 올라가 와인 산지에서 선적을 한 뒤엔 강물의 흐름을 타고 노를 저어 내려왔다고 합니다. 여의치 않을 땐 소나 말이 강가를 따라 끌게 했다고도 하는군요. 일정한 바람, 짧은 항해 거리 등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사각형 세일 하나로 운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각형 세일은 바이킹선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요, 바이킹들은 순풍을 타고 빠른 속도로 항해한 뒤, 귀항할 때는 세일을 얌전히 접고 열심히 노를 저었다고 합니다. 바이킹 체력이라면 가능했을 것도 같네요.
같은 와인 운반선인데, 이탈리아의 레우도Leudo는 좀 다르게 생겼습니다. 레우도는 지중해 연안에서 항해했는데, 하벨루보다 장거리를 소화해야 했고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지중해의 바람을 그때그때 맞추어 이용해야 했습니다.
레우도의 가장 큰 특징은 긴 대가 달린 삼각형의 세일인데요, 이렇게 생긴 세일을 라틴 세일lateen sail이라고 합니다.
라틴 세일은 지중해에서 고대 이집트인, 아랍인, 그리스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각 세일이 뒷바람만 이용할 수 있는 데에 반해, 삼각형의 라틴 세일은 뒷바람, 옆바람 뿐 아니라 바람을 비스듬히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비결은 세일의 앞쪽 가장자리에 달린 대를 이용하여 세일 모양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를 통해 바람의 방향에 맞게 세일이 바람을 받는 각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비행기 날개가 바람을 맞는 각도를 조절하여 위로 떠오르는 힘을 조종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할 수 있어요.
바람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던 덕분에 레우도는 소나 말 없이도, 바이킹 체력 없이도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항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제노바 사람인데 스페인 왕국의 깃발을 달고 인도를 향해 출항했다가 잘못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 탐험가 콜럼버스의 배를 살펴봅시다.
뒷바람에 빠른 사각 세일과 다양한 방향의 바람을 활용할 수 있는 삼각형 세일의 하이브리드 동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일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강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고, 다양한 풍속에도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약한 바람이 불 때는 모든 세일을 올려서 최대한의 추진력을 얻고, 강한 바람이 불 때는 세일을 일부만 올려서 배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식이었죠. 이는 오늘날 세일 크기를 줄이는 축범reefing과 같은 개념입니다.
또한 밧줄과 도르래 등의 리깅 기술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이전엔 주로 단순하게 세일을 배에 고정해 두는 방식이었지만 이젠 다양한 세일을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맞추어 실시간으로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각형 세일을 주로 사용했기에 여전히 바람의 방향에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계절풍의 방향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콜럼버스도 무역풍을 뒤로 받으며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의 카리브해까지 항해했죠.
이러한 사각형 세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후에는 삼각형 세일을 주로 사용하는 범장이 개발되었습니다.
슬룹sloop은 배 중앙에 있는 한 개의 마스트에 삼각형 모양의 세일을 앞 뒤로 달았습니다. 요즈음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세일링 요트가 이 형태죠.
선체는 날씬하게 만들어서 물의 저항을 최소화했고, 세일이 커진 만큼 킬을 깊게 만들어 균형을 이루게 했습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슬룹은 빠르고 기동성이 좋아, 상선과 군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되었습니다.
메인 세일이 좀 다르게 생긴 슬룹도 있어요. 사각형 세일 윗변에 나무 지지대가 붙어 있는 형태죠.
옛날엔 진짜 나무로 마스트를 만들었기 때문에 높이에 한계가 있었고, 낮은 마스트에서 최대한 높고 넓은 메인 세일을 확보하기 위해 나온 형태입니다. 이런 걸 가프 리그Gaff Rig라고 합니다. 옛날 나무배에서나 볼 수 있는 범장인 줄 알았는데, 이번 어리버리 항해에서 만난 캐나다 친구 막심의 배가 무려 이 가프 리그를 가지고 있더군요.
슬룹보다 헤드세일이 하나 이상 더 있으면 커터cutter입니다. 어리버리 항해의 호라이즌스 호(타야나 37피트)도 커터입니다. 큰 헤드세일인 제노아genoa 뒤쪽에 작은 헤드세일 스테이 세일stay sail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무래도 세일이 한 개 더 있어 슬룹보다 조작이 복잡하지만, 강한 바람이 불 때나 장거리 항해에서 빛이 납니다. 바람이 거셀 땐 거대한 헤드세일 제노아를 안전하게 말아 버리고 스테이 세일 하나만 펴면 배가 안정을 되찾습니다. 바람이 약할 땐 제노아와 스테이 세일 모두 펴서 추진력을 더할 수도 있구요. 깜깜한 밤, 빛 없이 항해해야 할 때에도 만만한 스테이 세일 하나 올려 놓으면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케치ketch는 뒤쪽에 작은 마스트가 하나 더 달린 세일링 요트입니다. 두 개의 마스트에 각각 삼각형 모양의 돛이 달려 있지만 뒤쪽의 세일이 확연히 작습니다.
이렇게 마스트를 두 개로 나누면 세일의 면적을 분산시켜 큰 배에서도 세일 조종에 드는 힘을 줄일 수 있습니다. 앞쪽의 큰 마스트와 세일은 주로 넓은 면적에 바람을 받으며 배가 추진력을 얻게 하고, 뒤쪽 작은 마스트의 세일은 배의 앞뒤 균형을 유지하게 해 줘 항해의 안정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바람으로 가는 배의 속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세일의 크기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사각형 세일이 삼각형보다 추진력이 높은 이유 역시 면적 때문이죠. 배의 무게 대비 세일의 면적이 특히 높은 범장으로 스쿠너schooner가 있습니다.
케치와 마찬가지로 스쿠너도 두 개의 마스트를 가지고 있지만, 그 배치와 크기가 다릅니다. 스쿠너의 앞 마스트는 뒷 마스트보다 작거나 비슷한 크기로, 두 마스트에 엄청난 면적의 세일을 달 수 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 특성 덕분에 스쿠너는 유명한 요트 경주에서 여럿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아래처럼 현대적인 레이스 요트가 스쿠너 범장을 한 경우도 있었지만,
유명한 클래식 요트 중에 특히 스쿠너가 많습니다. 주로 이런 배들이죠:
요트 경기의 월드컵 '아메리카스 컵America's Cup'을 탄생시킨 '아메리카America'호나 1905년 대서양 횡단 기록을 세운 후 무려 100년간 가장 빠른 배로 남았던 '애틀랜틱Atlantic' 역시 스쿠너였습니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 초반 사이 유럽과 미주 모두에서 흥했던 범장이라 현역 클래식 요트들 중에서 심심찮게 보입니다. 아래는 코르시카를 향해 하던 중 지중해 한 가운데에서 마주친 배. 실제로 보면 정말 멋지답니다. 진정 '세일'이 주인공으로 보이는 배라고나 할까요.
이제 날씨가 꽤 더워졌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물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날씨였는데, 이제 여름이 되었나 봅니다. 언제나 멋있지만, 바다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시기입니다.
장마가 지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남해 집 테라스에서 독자님 몇 분을 모시고 아침 식사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계획 같아 보이시나요?
그럼, 편안한 일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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