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he Weihnachten! 메리 크리스마스!
지금껏 살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날 중 하나가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레는 일들이 있을 것 같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휴일이자,
다가오는 해를 준비할 수 있고, 뭔가 기분 좋은 시기에 있는 아름다운 날로 여겨졌고, 지금까지 그렇게 보내왔다.
2024년 12월 3일. 전혀 메리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독일 뉴스에, 심지어 속보에 Das Kriegsrecht (계엄령)라는 단어가 떡하니 나왔다.
당시에 화장실 청소 중인 나에게 아내가 급하게 와서 전쟁이 난 것 같다면 소식을 전했는데 그날의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약 20일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한국의 처리 상황은 수준 높은 시민들의 모습을 제외하면 답답하기 그지 없다.
북한과 전쟁이 시작된 것이냐며 걱정하는 독일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에게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는 내 자신에게 현타가 온다.
독일은 한국에서의 상황과 달리 여전히 크리스마스에 진심이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에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소식은 독일에도 있었다.
12월 20일, Magdeburg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 사건이 발생했고, 5명이 사망하고, 200여명 이상이 부상 당하는 최악의 묻지마 테러가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행복과 웃음이 끊이질 않아야 할 크리스마스 마켓에 불안과 슬픔이 대신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 한국과 독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밤이다. by 남사장
겨울날, 갈 곳도 없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던 네로와 파트라슈는 결국 루벤스의 대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치 성모님의 은총이 내린 듯,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특별히 그림을 가리던 커튼이 걷혀 있었다. 루벤스의 대작 <십자가에서 내리심>을 바라보며 네로는 더는 여한이 없음을 주님께 고백하고, 굶주린 개 파트라슈와 함께 차디찬 겨울 속에서 눈을 감는다.
1970~1980년대 여러 차례 방영된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런데, 도대체 그 그림이 무엇이기에 네로는 그렇게 보고 싶어 했을까?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리심>은 바로크 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웅장한 구도로 담아냈다. 강렬한 명암 대비와 역동적인 구도, 정교한 인체 표현은 이 작품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배가시키며 관람객을 압도한다. 하지만 네로에게 이 그림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었다.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꿈이었고, 네로가 붙잡고 있던 마지막 희망이었다.
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감동을 느낄 것이다. 그림의 테크닉과 화려한 색채에 감탄할 수도 있고, 네로와 파트라슈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작품의 가치를 새롭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종교를 가진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공감하며 감정적으로 더 깊이 다가설 것이고, 종교가 없는 이들 역시 그림이 전달하는 강렬한 서사를 통해 스토리의 본질을 궁금해할 것이다.
예술은 이처럼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한 개인이 느끼는 감동과 그 의미는 결코 다른 이와 동일하지 않다. 또한 예술은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만큼이나 민감한 종교라는 주제를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힘을 가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술을 감상할 필요가 있다. 세상을 언어로만 이해하려 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과거의 실수와 계엄령과 같은 역사의 오류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면, 우리는 전쟁 없이도 무언가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역사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그리고 반복이 역사의 본질이라면. 나는 예술을 통해 반복되는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크리스마스, 사랑과 평화를 다시 떠올리기에 참 좋은 날이다.
by 여사장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