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플랜트 조선 컨퍼런스 2026에 다녀온 이야기 중 그 세 번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발표 내용중 제가 하던 실무에 느꼈던 어려움에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이었어요.
석유화학 공장 하나에 도면이 '3,000장'이에요. 그런데 이 3,000장이 서로 연결이 안 돼 있어요. A 도면에서 시작된 배관이 B 도면으로 넘어가는데, 그걸 추적하려면 사람이 일일이 도면을 넘겨가며 찾아야 하거든요. 현장에서 일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인포시즈의 탁경수 대표가 바로 이 문제에 대해 발표했어요. '도면을 읽고, 이해하고, 연결하는 AI'. 단순히 이미지를 인식하는 수준이 아니라, 도면 속 장비, 배관, 밸브가 어떤 관계로 이어져 있는 지를 파악하는 거예요. 사람이 도면을 보는 것 처럼요.

현장과 도면이 다르다
탁 대표가 고객사를 만나면서 가장 자주 목격한 게 있다고 해요. '현장하고 도면이 안 맞는 거예요'. 도면에는 분명 이렇게 돼 있는데, 실제 현장에 가보면 완전히 다른 환경이 펼쳐져 있는 거죠.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지식이라는 건 늘 움직이거든요.
설계서 버전이 3번이었다가 5번이었다가, 누구는 3번을 가지고 얘기하고 누구는 2번을 가지고 작업해요. 이걸 '지식 사일로'라고 부르는데, 특정 부서나 개인에게만 정보가 갇혀 있는 현상이에요.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표준화도 안 돼 있거든요. 같은 장비를 부르는 이름이 부서마다 달라요. 어떤 곳에서는 '콘크리트'라 하고, 다른 곳에서는 '공구리'라고 해요. 같은 건데 서로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는 거죠. 도면이 안 맞고, 용어도 안 맞으니 정확한 작업이 이뤄지기 어려운 건 당연해요.
안전사고의 뿌리도 여기에 있어요
그런데 이런 지식의 단절이 단순히 불편함에서 끝나지 않아요. '안전사고로 이어지거든요'. 내가 하는 작업이 전체 공정에서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작업이 진행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밸브 하나를 변경하면 그 영향이 어디까지 가는지, 어떤 장비에 연결돼 있는지를 미리 확인해야 해요. 근데 현재 시스템으로는 그게 쉽지 않아요. 일주일에 한두번씩 일어나는 변경 작업들의 영향도를 사전에 시뮬레이션하는 것, 이게 사고를 예방하는 핵심이에요.

향후 10년, 선배의 50%가 사라져요
도면 불일치, 용어 혼란, 안전 위험.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한데, 탁 대표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었어요. 인구 감소예요. "향후 10년 내에 내 주위에 있는 선배들의 50%가 사라진다."선배들이 도면에 본인만의 방식으로 마킹했던 것들, 작업하면서 한두 마디 남겨줬던 메모들, 팀 룸에 올려놨던 기록들. 사람이 떠나면 이런 것들도 함께 사라져요. 이걸 '암묵지 소실'이라고 해요.새로운 신입이 들어와도 사정은 마찬가지예요. 멘토가 될 선배들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고, 회사 시스템 내에 이런 지식이 남아 있지 않으니 업무를 이어받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거죠.
해법의 출발점은 '도면 읽기'였어요.
그래서 인포시즈가 찾은 해결책의 출발점은 바로 도면이었어요. 도면이라는 게 단순한 그림이 아니거든요. 그 안에 수많은 엔지니어링 지식이 녹아 있어요. 장비와 배관의 연결 관계, 유체의 흐름 방향, 각종 설계 기준까지요. 이걸 풀기 위해 만든 게 '델타 플로우(Delta Flow)'라는 솔루션이에요. 비전 AI와 VLM(Vision Language Model), 그리고 MLOps를 결합해서 도면을 읽어요. 근데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읽는 순간 '그래프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해요. 심볼, 라인, 방향 같은 요소들을 장비와 장비 간의 연결 관계로 구성하는 거예요. 도면을 읽자마자 관계 자체가 데이터로 남는 구조죠.
* VLM (Vision Language Model):비전 언어 모델(VLM)은 컴퓨팅 비전과 자연어 처리(NLP) 기능을 결합한 인공 지능(AI) 모델. VLM은 텍스트 데이터와 이미지 또는 동영상과 같은 시각적 데이터 간의 관계를 매핑하는 방법을 학습하여, 시각적 입력에서 텍스트를 생성하거나 시각적 정보의 맥락에서 자연어 프롬프트를 이해할 수 있음.(출처: IBM.COM)
* MLOps(Machine Learning Operations):머신 러닝 모델을 구축하고 실행하기 위해 어셈블리 라인을 만들도록 설계된 일련의 과정. 이를 통해 기업은 작업을 자동화하고 모델을 신속하게 배포하여 관련된 모든 사람(데이터 과학자, 엔지니어, IT 팀)이 원활하게 협력하고 모델을 모니터링 및 개선하여 정확도와 성능을 높일 수 있음. (출처: IBM.COM)

핵심 기술 두 가지 — 지식 그래프와 온톨로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이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지식 그래프(Knowledge Graph)'예요. 지식 그래프는 그래프 데이터베이스로 만든 데이터 스키마를 말해요. 장비, 배관, 밸브 같은 것들이 동떨어진 객체가 아니라 '하나의 연결 관계'를 가진 데이터 그룹이 되는 거예요. 앞서 말한 것처럼 전체 유체의 흐름이나, 특정 작업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거죠.
2024년 봄, '기술 트렌드 리포트, 가트너(Gartner)'가 300페이지짜리 리포트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비즈니스 맥락을 이해한 상태에서 AI를 적용하려면 지식 그래프로 해야 한다." 이미 2년 전에 나온 얘기예요. 두 번째 핵심은 '온톨로지(Ontology)'예요. 유튜브에서 온톨로지를 검색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게 '팔란티어(Palantir)'예요. 온톨로지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 이고, AI를 기업에 적용하기 위한 핵심 방법이에요. 쉽게 말하면, 우리 회사만의 용어와 개념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표준 기준으로 통일'하는 거예요. 부서마다 다르게 부르던 것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정리하는 사전이라고 보면 돼요. 인포시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기업들과 이 온톨로지 자동화 엔진을 구축하고 있어요.
3,000장 도면을 타고 넘어가는 시뮬레이션
지식 그래프와 온톨로지로 도면을 연결하면 뭘 할 수 있을까요? 인포시즈가 가장 자랑하는 기능은 'From-To 추적'이에요. 유체 흐름의 전체 경로를 수천 장의 도면을 넘나들며 추적하는 거예요. P&ID 도면에는 방향이 있잖아요. 그래서 도면이 몇 장이 되든 간에 도면을 타고 타고 넘어가면서 해당 흐름의 전체 경로를 볼 수 있어요. 시작점과 도착점의 장치를 찍고 시뮬레이션 버튼을 누르면, 도면과 도면을 넘어가며 전체 흐름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주죠. 태그 넘버나 라인 넘버만으로 장치가 어디 있는지 찾는 것도 가능해요. 기존의 대형 솔루션에서도 이게 거의 불가능했거든요. 도면을 전체 연결해놓으니까 '자연적으로 검색이 되는 거예요'. 그것도 단순 검색이 아니라, 설계 패턴까지 이해한 검색이에요.
플랫폼으로의 확장 — EPC 전체를 잇다
도면을 읽고, 연결하고, 시뮬레이션까지 하는 것. 여기서 멈추지 않아요. 인포시즈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하나의 에코시스템'이에요. 설계부터 운영까지 전체가 하나의 플랫폼에서 연결되는 거예요. 기존 오토캐드나 스마트 플랜트 P&ID에서 작업한 캐드가 이 플랫폼으로 넘어오고, 역방향으로 다시 캐드 작업도 가능해요. EPC 프로젝트에서 1차 벤더, 2차 벤더와의 도면 기반 협업도 이 안에서 이뤄져요. 이메일로 주고받던 작업 지시를 하나의 도면 기반 협업 툴에서 처리하는 거죠. 3D 디지털 트윈과의 연결도 포함돼요. 데이터브릭스(Databricks)나 스노우플레이크(Snowflake) 같은 빅데이터 플랫폼과도 호환되고, 아비바(AVEVA), 헥사곤(Hexagon), 요코가와(Yokogawa) 같은 기존 솔루션과의 연동도 가능해요.

그래프 RAG로 설계 패턴까지 질의해요
에코시스템 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게 있어요. '그래프 RAG(Graph RAG)'와 하이브리드 RAG를 도면에 결합하는 거예요. 이걸 적용하면 이런 질문이 가능해져요. "아람코에서 했던 설계 패턴하고 휴스턴에서 했던 거하고 뭐가 다른지?" 같은 '설계 패턴에 대한 질의'가 되는 거예요. 운영 매뉴얼과 지침을 시스템에 넣으면, 우리 회사 기준으로 이 장비가 뭘 뜻하는지, 왜 이렇게 설계됐는지도 물어볼 수 있어요. ERP 데이터와 연결하면 구매 계획까지 짤 수 있어요. 특정 장비가 몇 개 쓰이고 있는지, 다음 구매 계획은 어떤지를 파악해서 '바잉 파워'를 확보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기회까지 만들 수 있는 거예요.
탁경수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배운 점을 정리해 보았어요.
첫째, 도면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지식 그 자체예요. '수천 장의 도면 안에는 엔지니어링 지식, 선배들의 경험, 운영 노하우가 모두 담겨 있어요. 이걸 연결하면 살아있는 지식이 되고, 단절되면 사라지는 거예요.
둘째, 지식 그래프와 온톨로지가 제조업 AI의 기반이에요.'가트너도 2024년에 이미 말했어요. 비즈니스 맥락을 이해하는 AI는 지식 그래프 위에서 동작해야 한다고요. 온톨로지로 용어를 통일하고, 지식 그래프로 관계를 연결하는 게 출발점이에요.
셋째, 10년 안에 현장 경험의 절반이 사라져요. '인구 감소는 단순한 인력 부족이 아니에요. 수십 년간 쌓인 암묵지가 함께 사라지는 거예요. 지금 시스템적으로 지식을 자산화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되돌릴 수 없어요.
넷째, 안전사고 예방도 데이터 연결에서 시작돼요.'밸브 하나의 변경이 전체 공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전에 시뮬레이션하는 것. 이게 가능하려면 도면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있어야 해요.
탁경수 대표는 이렇게 말했어요. "설계부터 운영까지 전체가 하나에 있는 살아있는 지식으로 운영하고 연결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10년간 공정관리를 하면서 반복적으로 겪어왔던 답답함이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느낌이었어요.
플랜트 현장에서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각자의 정보를 들고 움직입니다. 문제는 그 정보들이 제때 연결되지 않을 때 발생해요.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EPC 측의 모호한 코멘트를 제작사가 별도 확인 없이 넘겨버렸고, 밸브 구매까지 진행된 후에야 도면 재승인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됐어요. 결국 밸브 재구매와 공기 지연으로 이어졌죠.
단 한 번의 커뮤니케이션 단절이 일정과 비용 전체를 흔든 거예요. 그리고 이런 일은 예외가 아닙니다. 공정관리 현장에서는 미스커뮤니케이션과 휴먼 에러가 크고 작게 반복됩니다. 최종 판단과 승인은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하지만, 반복 작업은 AI가 처리하고 모호한 정보는 사람이 다시 확인하는 구조가 있다면, 그 비용과 지연은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결국 탁 대표가 말한 "살아있는 지식"이란 단순히 데이터를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변화가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관계자 모두에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상태를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10년간 현장에서 그 단절의 비용을 직접 목격해온 사람으로서, 저는 그 연결고리를 만드는 데 AI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어요.
여러분은 현장에서 이런 단절을 어떻게 경험하셨나요? 혹은 이미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해보신 방법이 있다면 함께 나눠주세요.
(본 콘텐츠는 플랜트 조선 컨퍼런스 2026에서 다루어진 핵심 내용을 바탕으로, 저의 개인적인 실무 경험과 주관적인 인사이트를 더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유익한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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