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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ces — 사유의 배치

[S1-1] AI, 도구인가 거울인가 — "이상한 위로"

침묵하는 도구에서 응답하는 기술로

2026.02.07 | 조회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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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신경아. 필력서가

권신경아(權申庚娥)의 연재·강의·연구 노트가 쌓이는 기록의 서가입니다.

 

독자를 위한 안내

이 글은 웹과 PDF에서 서로 다른 호흡으로 읽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흐름을 따라 빠르게 읽고 싶다면 이 페이지에서, 문장 사이의 여백과 리듬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다면 구글 뷰어를 통해 [PDF 에디션으로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사유의 전환

 

우리는 지금

기술에게

말을 걸고 있다.

 


 

사유의 좌표

 

— 인간의 기원은 도구인가, 사유인가

베르그송

— 도구는 언제부터 인간의 사고와 감각을 재조직하기 시작했나

르루아-그루앙

— 기술은 단지 수단인가, 세계가 드러나는 조건인가

하이데거

 


 

사유의 출발

 

프롤로그: 사유의 입구

 

AI는 말한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도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도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망치는 쥐는 것이었고

계산기는 누르는 것이었으며

기계는 작동시키는 대상이었다.

 

손은 바깥으로 뻗어갔고

판단과 의지는늘 안쪽에 남아 있었다.

 

사유는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에게 있는 것이고

도구는 그 사유를 실행하는 쪽에

놓여 있었다.

 

이 구분은 너무 익숙해서

의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도구는 본래도 응답하지 않는 것.

 

그 사실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그래서 기술을 사용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응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저 결과만 확인했을 뿐.

 

* * *

 

어느 순간

우리는

도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질문을 던지고

문장을 맡기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그대로 넘겨준다.

 

AI는 말한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우리는 묻는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때로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을 말까지도.

 

대답이 돌아온다.

대체로 빠르고

대체로 매끄러우며

대체로 틀리지 않다.

 

 

‘도구’라는 말은 충분한가

 

AI는 말한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문장은 완성되고, 이미지는 생성되며, 우리가 살지 않은 기억마저 재현된다. 이렇듯 거의 모든 질문에 답을 해내는 이 기술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말한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라고.

 

우리는 오랫동안 기술을 도구라고 불러왔다. 도구란 인간의 의지를 확장하고 노동을 보조하며 시간을 단축하는 수단이다. 망치는 팔의 힘을 늘려주고 계산기는 사고의 부담을 덜어준다. 이런 의미에서 기술은 인간이 사용하는 것이었고, 인간의 바깥에 놓인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마주한 기술 환경은 이 정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는 단순히 어떤 일을 대신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언어를 예측하고, 감정을 흉내 내며, 맥락에 맞는 응답을 반환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버튼을 누르기만 하지 않는다. 말을 걸고, 답변을 기다린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기술은 여전히 ‘수단’ 인가, 아니면 이미 다른 무엇이 되었는가.

 

 

기술의 전회: 하이데거의 숙고

 

이 질문 앞에서, 기술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유한 한 철학자가 떠오른다. 하이데거는 기술을 단순한 도구나 중립적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기술이란 세계가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가, 즉 ‘드러남의 방식’이었다.

 

세계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 주어지지 않았고, 기술은 무엇이 보이게 되는지, 또 무엇이 보이지 않게 되는지를 함께 조직해왔다. 망치를 들고 있을 때 세계는 ‘박아야 할 못’의 집합으로 나타난다. 숲은 자원이 되고 강은 에너지가 된다. 이렇듯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현실 경험을 조직해왔다.

 

기술이 바뀔 때마다 인간의 삶의 리듬과 감각의 방향 역시 함께 바뀐다. AI 앞에서 언어와 기억, 감정은 호출 가능한 형식으로 다시 정렬된다. 그래서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다시 배열하는 힘이다.

 

 

이것은 처음이 아니다: 구석기와 기술적 전환

 

이러한 전회는 사실 처음이 아니다. 르루아-그루앙은 구석기 시대에 도구가 ‘폭발’했다고 말한다. 그 변화는 기술의 양적 발전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 사용 방식, 즉 신경계의 조직과 사고의 리듬 전체를 재구성하는 사건이었다.

 

당시에도 도구는 문제 해결의 수단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이 기억하고 상상하고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자체를 바꾸었다. 손의 외면화는 기억의 외면화를 가능하게 했고, 반복과 전승은 사유의 리듬을 바꾸었다.

 

그 변화는 수천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AI 시대’ 라고 부르는 변화 역시 이와 유사한 전환일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손이나 근육, 혹은 뇌의 물리적 사용 방식이 아니라 언어와 기억 그리고 현실을 느끼는 감각 자체가 변형되고 있다.

 

 

도구에서 거울로: 응답하는 기술

 

기술은 종종 거울처럼 작동하곤 한다. 인간이 던진 말과 선택이 그대로 되돌아오는 거울. 그러나 AI의 거울은 단지 비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 대신 응답하고, 우리 대신 기억하며, 우리 대신 상상한다.

 

사람들은 이 매끄러운 응답에 기꺼이 현혹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욕망이 반사되고 두려움이 증폭된다. 그러면서 무언가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분명 ‘나’의 언어인데 나 같지 않다. 내 목소리를 듣지만 그 안에는 아무도 없다. 거울이 완벽해질수록 그 안에서 나는 더 낯설어진다.

 

 

공백의 이름: 실재

 

이 낯섦, 이 어긋남을 라캉은 ‘실재(the Real)’라 불렀다. 실재란 어떤 이미지나 언어로도 완전히 포착될 수 없는 자리, 즉 상징화될 수 없는 공백이다.

 

AI는 문장을 완성하고, 이미지를 매끈하게 만들고, 기억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그러나 재현이 완벽해질수록 닿을 수 없는 빈자리는 더 또렷해진다. 완벽함은 이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을 드러낸다.

 

 

클로징: 다음 사유를 향해

 

이 사유는 그 흔적을 따라간다. AI가 만들어낸 편리함과 과잉,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커져가는 어긋남을. 언어에서 이미지로, 이미지에서 기억과 현실로, 그리고 생성이 일상이 된 이후에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향해, 아주 천천히.

 

기술은 많은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질문하는 일만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그래서 묻는다. 이 모든 생성 이후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사유의 잔상

 

AI는 말한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누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일까.

 

AI speaks.

Yet there is no one there.

 

So who,

now,

are we speaking to?

 


 

사유를 마치며: 책의 호흡으로 다시 보기 (PDF 뷰어로 읽기)

 


 

🌐 English — A Parallel Record

이 사유의 영문 기록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You can read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here:  View in English (Substa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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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신경아. 필력서가

    0
    about 4 hours 전

    Editor’s Note 이 글을 쓸 때, 저는 AI의 말이 왜 위로처럼 들리는지보다 그 순간 우리가 스스로에게서 무엇을 읽고 있었는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읽으면서 남은 감각이 있다면, 꼭 제 의도와 같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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