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Note
이 문답은 강의 현장에서 오간 질문과 답변을 바탕으로, 강의 이후 이해를 돕기 위해 사유의 맥락을 보충·정리한 기록입니다.
Q. 수강생 질문
강의실에는 대학 교양교육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분은 제 강의를 수강하게 된 계기를 공유하며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강사님, 지금 교육 현장은 난리입니다. AI 활용법이나 기술 교육 이야기는 넘쳐 나는데,
정작 그 기술 너머에서 우리가 가르쳐야 할 '인간에 대한 철학'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줘야 할까요?"
질문을 듣는 순간, 저는 이것이 단순한 커리큘럼 논의가 아니라, AI가 ‘지능의 역할’을 빠르게 대체해 가는 시대에 인간 교사와 인간 교육이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라고 느꼈습니다.
A."지성과 감성의 조화, 그 사이를 항해하는 '조율(Modulation)'의 힘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베르그송을 다시 소환했습니다. 베르그송은 인간의 기원을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만드는 존재(Homo faber)’로 보자고 제안한 사상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기술을 더 잘 다루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도구의 힘이 강력해질수록 교육이 붙들어야 할 것은, 도구 사용법 그 자체가 아니라 도구가 개입할 때마다 인간의 지성과 감성이 어떻게 흔들리고, 또 어디로 쏠리는지를 스스로 점검하고 되돌리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다움을 지능이나 효율로는 환원되지 않는 어떤 것이라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지능과 효율이라는 영역의 상당 부분은 기계의 몫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지능이 외주화될수록, 인간은 사유를 포기한 채 감성에만 자신을 맡기거나 반대로 기계적 계산 논리에 자신을 과도하게 맞추는 양극단으로 흔들리기 쉽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가 강의에서 강조했던 인간의 과제는 ‘무엇을 더 잘할 것인가’가 아니라 지성과 감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즉 '조율의 감각(the sense of modulation)'이었습니다.
너무 이성적이고 지능에만 치우치면 우리는 판단은 빠르지만 세계를 대상화하는 기계적인 존재가 됩니다. 반대로 너무 감정에만 휩싸이면 사유가 작동하기 전에 반응부터 앞서는 '동물적 상태'에 머물게 되겠죠. 어쩌면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지점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조율(modulation)할 수 있을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학부에서 미술과 퍼포먼스 아트, 연극, 독립영화를 오가며 인간의 감각과 재현의 한계를 탐구했습니다. 이후 공학 석박 과정을 거치며 이성의 정교함을 배우기도 했죠. 제가 스스로를 '융합 연구자'로 정의하고 지향해 온 이유는, 어느 한쪽의 극으로만 치닫는 시스템 속에서는 결코 인간의 온전한 얼굴을 마주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교육이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조율의 묘(the art of modulation)'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산은 기계에게 맡기더라도, 그 계산이 나의 감각을 잠식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법, 슬픔을 느끼더라도 그 슬픔이 나의 사유 전체를 마비시키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법 말입니다.
강의실에서 제가 제안한 교육 방향은 명확합니다. 이제 우리는 '지식을 소유한 인간'이 아니라, 자신 안의 기계성과 동물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사유의 좌표를 수정하며 항해하는 '조율자'를 길러내야 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바로 그 '조율의 감각'을 어디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를 차근히 풀어가기 위한 여정이 될 것입니다.
권신경아(權申庚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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