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종이다

흠 잡을 곳이 없는 작품이라는 말

<플루토>는 지루했다

2023.11.13 | 조회 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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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에 관한 짧은 이야기

아주 사적이고 디테일한 에세이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플루토>는 딱히 흠 잡을 구석이 딱히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흠을 잡을 수 없다는 게 좋은 작품이라는 말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퀄리티가 높다는 것과 매력적이라는 것은 겹치는 영역이 있을지 몰라도, 꿀과 석탄재만큼이나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큰 틀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면서도 부분적으로 옴니버스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파인애플 아미>나 <마스터 키튼>은 애초에 옴니버스 작품인데, <플루토>를 비롯해 <몬스터>, <20세기 소년>, <빌리 배트> 등 이후의 장편 대표작

대부분에 이 같은 특징이 반영돼 있다. 그리고 옴니버스의 에피소드는 사실상 전체의 플롯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보편적인 감동을 비틀어 넣는 일종의 장치로 기능한다. 그런 감동의 요소는 조금만 들여다 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다. 그 점에서 그는 좋은 작가라기보다는 영리한 엔터테이너에 가깝다. 판을 거창하게 깔아놓고 수습이 안 되는 특유의 약점도 여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도 든다.


<플루토>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지면으로 보는 게 훨씬 좋다는 누군가의 말에 동의한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컷의 크기와 배치, 의성어 등 종이 만화에서만 할 수 있는 연출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작가다. 그런데 그런 연출의 방식은 일반적으로 만화적이라기보다 영화의 그것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애니메이션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쇼트의 전환, 포커스의 이동 등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영화에서 흔히 보는 기법이 이렇게 많이 쓰인 애니메이션이 또 있었나 싶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세련됐지만 진부한 이야기와 철학이 이런 영화적 연출과 만나면서, 뒤로 갈수록 참기 힘들 만큼 지루해진다. 원작을 봐서 결말을 아는 이야기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에 인상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다. “완벽한 인공지능이란 50억의 인격을 전부 시뮬레이션한 것” 같은 대사는 AI 이슈에서 아주 요긴하고 흥미로운 힌트를 던져준다.(시간의 흐름을 반영해서인지 애니에서는 99억이라고 나온다) 그렇지만 거기까지다. 화두를 던져놓고도 그 이상의 성찰에 도달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물론 다시 말하면 그는 탁월한 엔터테이너다. 지점에서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당연하게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도 자주 보니 지겨워진다는 말이다. 피라미드 구조에 비유하면 가장 밑단에는 스타일, 중간에는 감정, 윗단에는 통찰이 있다. 윗단이 모자라면 뻔해지고, 아랫단이 흔들리면 작품으로서 미완이다. <플루토> 전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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