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김근주읽기 1년 모임을 가졌습니다. '읽고 쓰고 함께 노는 평신도들 : 우리들의 신앙 이야기'를 주제로 발표하고 토론한 내용을 세 차례 나누어 싣습니다. 순서는 1. 이범진(고락임), 2. 진상협(황상수, 김대연), 3. 이은주(정진아) (이하 존칭생략) 입니다.
"기독인의 참된 놀기"
이은주 ❘ 동안교회 집사, 복음과상황 이사
안녕하세요? 저는 이은주 집사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기독인의 참된 놀기'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제 직업은 약사입니다. 평생 약국에서만 일하다 이렇게 여러분께 전문분야도 아닌 이야기를 꺼내 들자니 적잖이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하는 내용은 ‘기독인의 참된 놀이’와 관련된 소소한 저의 경험과 생각들입니다. 그냥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의 시간'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교회는 높은 도덕성과 바른 성품을 배울 수 있었던 곳"
기억의 교회, 안전하고 행복한 공동체
먼저 놀이하면 떠오르는 것은 자발성, 친구들, 노는 과정에서 누릴 수 있는 의도되지 않았던 즐거움과 기쁨,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함, 창의적 시도, 조화로움 등입니다. 저희 세대는 놀이라고 할 만한 것이 부족했기에, 교회의 주일학교와 중·고등부는 그야말로 하나의 놀이공동체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제게 교회는 너무 재미있는 곳,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되는 곳, 그래서 우리가 가진 재능을 마음껏 개발하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그 안에서 높은 도덕성과 성품을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어른들의 무한사랑을 받으며 그렇게 성장해갔습니다. 어린 시절 교회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과 그리스도의 무한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중· 고등부 때는 토요일 오후에 진행되는 예배와 2부 친교 시간을 학생들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받으실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재정관리나 지체님들을 섬기고 어울리도록 이끄는 것에 교회 어른들의 어려움도 많았겠지만, 저희는 더불어 놀며 예배하는 것이 유익했기에 친구들을 계속 초청하고 싶은 열심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문학의 밤, 조기 운동 시간 등을 통해 우리들은 끼와 재능을 발휘하며 주어진 달란트가 무엇일까도 고민했습니다.
그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3형제 연합예배인데, 당시 제가 다니던 춘천제일감리교회, 광장교회, 순복음교회 이렇게 교파가 다른 세 교회가 형제교회로 연합하여 학생회를 함께했고, 장년들은 체육대회나 부흥회 등등의 행사들을 함께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놀며 예배하며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말씀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험했으며, 결국 교회는 하나임을 배워갈 수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교회가 하나인 것 같아 너무 감사했고, 언젠가는 하나 된 교회가 죄 많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아이다운 생각으로 참 좋으신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교회, 장소와 시간도 같이 공유하려는 상상력 필요"
공동체의 연합, 지원, 공유, 공존
여기에서 제가 평소에 품고 있었던 의견 하나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현재 교회 청소년수련회는 여러 교회들이 함께 공동개최하는 지역들이 많이 있고, 이미 그런 체계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수련회뿐만 아니라 주일학교, 중등부, 고등부를 지역교회들이 연합하여, 미자립교회를 학생부 공동체로 특화하고, 지역 대형교회에서 교역자 임금 정도를 후원하는 방법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차피 작은 교회들은 학생회 구성이 어렵고 아예 없어진 교회도 많이 있으며, 부유하는 청소년들은 교회를 가지 않거나 큰 교회로 흡수되는 것 같습니다. 내 교회, 네 교회가 아니라 ‘우리들의 교회’ 개념으로 함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공간을 나눠 쓰고 또 멘토 역할도 하면서 함께 공존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교회는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하는 곳이므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아멘
두 번째, 예배의 처소를 대여하기 힘든 미자립교회나 일요일 예배를 고수하기 힘든 지체님들을 위해 중대형 교회들이 매일 장소를 공유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매일 드리는 미사에 성체성사(성찬식)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예전을 발전시켜 교회에 매일 성찬식과 예배와 친교가 있다면, 그리고 준비와 참여가 온 마을 공동체에 흩어져 있는 교회가 된다면 텅 빈 유럽의 교회처럼 걱정하지 않아도, 또 미자립교회들이 재정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나아가 목사님들이나 전도사님들이 목회와 더불어 파트 타임 직업도 가질 수 있고, 사회와 연결된 사역들을 감당하시기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현실과 거리를 둔 선교단체 사회참여의 문제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렇게 우리는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인 교회에서 여러 놀이를 통해 우정, 자비, 인내, 용기, 정의로움, 기쁨, 겸손, 절제, 너그러움과 같은 성품들을 배우며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들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의 청소년기에는 성품 좋고 믿음의 본이 되는 선생님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왔지만, 교회에서 놀이를 통해 잘 단련된 마음이라 큰 사고 없이 87년도에 대학에 무사히 입학했습니다. IVFer로, 약대생으로 그리고 교회에서는 성가대원과 주일학교 교사로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한국의 87년은 격변의 시대였고, 모두 비슷했겠지만 젊은 기독교인으로서 저는 충격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엄혹한 시대 상황과 역사적 질곡을 경험하고, 부당한 정치 현실과 부조리한 삶을 인식하면서 더는 현실과 상관없는 교회의 놀이가 즐겁지 않았습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불편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리스도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화평케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교회와 선교단체의 행동은 이기적이다 못해 무지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Q.T와 성경해석방법 등을 지도해주시는 선교단체를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그렇게 즐겁지 않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2학년 2학기 때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는 정당하며 필수적이다라는 호기로운 판단하에 총학생회 선거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순종하지 않는 저를 선교단체에서는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길을 잃은 것 같았지만 기도하면서 옳은 길을 찾으려고 애썼던 시간이었습니다. 함께하는 친구가 없으니 외로웠고, 포기하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게 한국교회는 역사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만한 선생이 계시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 되지 않았던 때라 기독인의 사회참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통로는 제한적이었으며, 특히 지방대학 자매에겐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청년들에게 교회는 하나님과 그 나라와 사회현상과 신앙에 대하여 충분하게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고 어느 정도 지식과 지혜와 의식을 겸비한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은 흘러갔고 저는 여전히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미국의 한인교회는 한국교회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저는 교회 안에서 영육의 양식을 먹고 지체님들과 안전하게 나누고 놀며 아이들을 키우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 제가 가진 재능으로 교회를 섬기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 외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교회에 관한 충격적이고도 믿을 수 없는 묵직묵직한 사건과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더는 외면할 수도 묵인할 수도 없는 지경. 또다시 길을 잃어버린 듯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오늘의 교회, 청년들 모여 토론하는 장을 마련해야"
읽기, 상황을 이해하기
너무 늦었다 생각했지만,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알아야 했기에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볼로 독서클럽>과 30년 동안 동일한 마음과 변함없는 어조로 하나님나라와 복음을 이야기하는 <복음과 상황> 만났습니다. 그리고 수준과 격조 있는 <김근주 읽기> 공동체와도 함께 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재미있게 함께 노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합니다. 더 이상 외롭지 않으니까요. 문제를 직면할 용기가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아볼로 독서클럽’
여기서 잠깐 제가 속한 놀이공동체를 소개해보겠습니다. 먼저 이강일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복음주의연구소 산하 <아볼로 독서클럽>입니다. 나이 제한 없이 누구나 가능합니다. 일단 2주일에 한 번씩 책을 읽고 모두 모여 발제하고 끝까지 읽은 다음엔 서평을 써서 공유합니다. 서로의 서평을 평가도 하고 공감도 하고 작가를 비판하기도 하는 살벌한 시간이죠. 그래서 발제와 서평 시간을 동의하고 감당할 수 있다는 다짐 하에 클럽회원이 됩니다. 면접도 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고 사고의 깊이도 깊어집니다.
신학, 사회학, 과학, 인문학 서적을 골고루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 젊은 지체님들의 신선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참여는 누구나 가능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과정이 쉽지 않아 모임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죠. 고정 멤버 몇 분이 계시고 저처럼 중간에 포기하시는 분들도 있구요. 저는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손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클럽입니다. 조심스럽지만 제가 느낀 점은 아직은 계속 읽기만 한다는 것. 지체 한분 한분을 보면 존경스럽고 훌륭합니다. 그리고 분명 자신들이 속해있는 직장이나 사회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공동체 인원이 많지 않고 읽기와 쓰기의 수준이 높아 폭넓은 놀이공동체로 확장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활동가 중심이기보다는 소수정예 전략가들이랄까요?
'복음과상황’
다음으론 제가 진심으로 애정하는 <복음과 상황> 입니다. 이렇게 30년 동안 동일한 어조로 흔들림 없이 변혁의 복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니니요. 기독 문서 운동의 작은거인! 얇은 책 한 권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때때마다 듣고 싶은 이야기들을 속 시원하게 실어 주시는지. 복음과 상황은 지역별 모임이 있습니다.
복상지기님과 그 지역에 거주하시는 구독자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읽고 느낀 점이나 또 덧붙여 이야기할 부분들을 서로 나누는 모임입니다. 저는 2019년부터 계속 참여하고 있습니다. 복상에는 현재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기독 활동가분들을 소개하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복상을 통해 현 사회와 교회 생태계의 문제점들을 인식할 수 있으며, 현재 발 딛고 있는 이 땅에서 이루어나갈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깨달음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활동가분들과 연대하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만 읽기에도 벅차지만 현시대를 돌아볼 수 있는 신학과 사회과학 서적들을 포함한 많은 책을 소개하는 코너도 있습니다. 가히 한국교회의 씽크탱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복상에서 이번에 서평 웹진을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독서 공동체의 생존을 넘어 실천의 연대로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비판만으로 끝나버리는 진보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터져 나오는 교회와 사회적 문제들 앞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대책 방안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기민하고도 신뢰할만한 개혁 운동 단체들의 컨트롤타워 역할 또한 감당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필요로 하는 곳에 자신을 소비하려는 마음, 그것이 헌신"
‘김근주읽기’
다음은 지금 함께하고 있는 <김근주읽기> 공동체입니다. 우리에게 올바르게 인식하고 사고 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시는 훌륭한 스승님이 계십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의 읽기 공동체가 발전적 놀기 공동체로 기능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읽기를 하는 동안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좋은 아이디어들은 각 지체님들마다 연결된 통신망으로 공유될 수도 있고, 그것이 실천으로 발전된다면 더없이 좋은 공동체의 열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합니다. 제가 책 읽기 나눔에서 올렸던 글처럼 농촌이나 어촌으로의 역이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미 국가에서는 청년창업농육성 대책을 수립하여 자금을 지원하거나 기술교육, 컨설팅 등을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농촌으로의 이주를 망설이는 이유는 불안정한 수입과 의료, 교육, 문화 시설 부족, 그리고 소통할 친구나 지인들이 부족한 점 등입니다. 그렇다면 혹시나 교회가 이러한 틈새를 채워줄 수 있는 역할들은 없을까요?
밀알 자매님의 고백처럼 우리가 좀 만만해지면 안 될까요. 우리를 소비할 수 있도록 헌신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봅니다. 해외의료선교팀의 국내 봉사 차원에서 각 지역에 돌담 병원 크기의 병원 정도는 감당할 수도 있겠다. 우리들의 교회에는 보육시설 정도를 운영할 수 있는 준비된 지체들이 있지 않나? 분립개척의 일환으로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헌신 된 성도 가정을 중심으로 지방으로 모두 함께 옮기는 것은 어떨까? 함께 할 친구들이 있다면 두렵거나 문제 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고민이라면, 함께 친환경 생필품 개발, 판매, 유통이라든지 치매 노인 돌보기 사업(의료보험 혜택 있음), 흔한 제빵과 카페, 음식점 사업 등등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공공으로 일하고 수익은 함께 나누고 남는 것은 공동체에 다시 투자하거나 NPO 등에 기부할 수도 있구요. 이렇게 책읽기 공동체가 시대의 부르심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공적으로 이루어가는 모습이 어떠할지 상상하며 그려보곤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참된 놀기
기독인의 참된 놀이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기회라 생각합니다. 놀이과정에서 성품이 다듬어지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시간이 쌓여서 어느새 우리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부르심 앞에 바로 서서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지체들과 함께 노는 과정에서 우리 시대에 말씀하시고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기독인의 참된 놀이엔 문제의식과 그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진정한 자기 인식을 제공할 수 있는 행위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놀이는 자기중심적, 인위적 결과를 위함이 아닌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우며 또한 함께 즐기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우연한 기쁨 또한 맛볼 수 있으며, 인생의 어려움과 문제들 속에서 하나님과 하나로 매개되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자"
함께 노는 친구들의 소중함
놀이를 잃어버린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닮을 기회도, 지체들과 연대할 사역이나 기회도 부족하고 시대의 부르심에 방관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인 문제일수록, 저항이 필요한 일일수록 개인이 아니라 뜻을 공유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어떤 행동을 헤쳐나갈 힘은 함께 모였을 때 생기기 때문입니다.
함께 노는 친구들이 중요하고 소중한 이유입니다. 모쪼록 김근주 읽기가 자발적이고 재미있고 배움이 있는 잘 노는 공동체이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회와 민족과 교회들의 문제를 잘 진단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의지와 실천을 보이는 건강하고 강단 있는 공동체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론 : '기독인의 참된 놀기'를 읽고
정진아 / 글로리채플교회 집사
"차별과 편견 없는 놀이공동체 상상해요"
비슷한 세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교회가 하나의 놀이공동체였고, 그 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지난 날이 생각났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저의 모교회도 규모가 큰 교회는 아니었지만, 십시일반 미자립교회를 돕고, 서로 연합하고,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집사님의 발표를 통해 이 역시 다시 추억하게 됐습니다. 그 점에서 집사님의 아이디어인 지역교회들의 연합과, 대형교회의 예배 처소 공유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1) 내 교회, 네 교회가 아니라 우리들의 교회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꿈 같은 이야기이지만 학생회뿐 아니라 교회와 교계가 함께 ‘우리들의 교회’로 함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결혼 후 첫 4년을 빼고 17년을 안양에서 살았습니다. 지역 공동체와 아이를 함께 키웠고 대형 교회에서 적당히 봉사활동을 하고 프로그램을 누리면서 지내온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 전 세종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등록 교회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새신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록을 강요는 커녕, 권유도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교회가 “우리는 공동체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랑처럼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관계 지향적이고 1인 가구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저는 읽기든 놀이든 공동체가 필요했고, 여러 교회를 다니던 중 목장 모임이 활발한 글로리 채플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이은주 집사님의 발표를 들으면서 그렇게 오래된 크리스천 놀이공동체가 있었다니 놀랐습니다.
질문 2) 저는 김근주 읽기가 익명에 가까운 온라인 모임이라 참 좋았습니다. 그동안 제자훈련, 구역모임, 여전도회 등 교회 안의 모임에 참석하면서 크고 작은 갈등과 상처를 겪은 경험이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집사님은 오랜 기간 다양한 공동체와 함께 하시면서 나름의 기준이나 노하우가 있으신지, 있다면 어떤 것인지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독인의 참된 놀이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을 수 있는 기회이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장이며, 하나님과 매개하는 통로가 된다는 말씀에 적극 공감합니다.
질문 3) 김근주 읽기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은 김근주 읽기의 일원이지만 나아가 기독인의 새로운 놀이를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달란트로 쓰임 받을 날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비기독인과의 연합 모임에 대해서는 혹 갖고 계신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성경을 좀 더 알고 싶다,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김근주 읽기가 저에게는 신앙을 넘어 지역에, 사회에, 사람에 대한 생각과 마음도 성장하게 해 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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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경
이은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안전하고 행복한 교회공동체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셨을 이은주님을 상상해 봅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높은 도덕성과 성품을 배우는 장소, '교회'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멋진 장소와 그리고 사람^^ 하나님 마음 닮도록 공동체가 연합하고 문을 열어주라 하신 말씀이 인상깊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놀이'에 대해 고민하시는 은주님이 참 사랑스러우십니다. 복음과 상황을 사랑하시는 모습도 멋지시구요^^ 그 기쁨에 함께 나아가길 소망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정진아님🌸너무 감사드립니다! 주신 질문을 보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금 배웁니다. 진아님과 같이 지역과 사회에 사람을 향해 성장해 가는 사람이 되길 바래봅니다. '우리들의 교회'가 되기 위해 복된 놀이들이 넘쳐 나길 기도합니다. 멋진 질문 감사드립니다. 함께라서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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