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제의 묵상과 기도

김근주읽기 뉴스레터 8호(후편)_이희제

2023.08.25 | 조회 1.0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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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주읽기

'김근주읽기'는 신학자 김근주 목사의 저서를 함께 읽는 독서클럽으로, 책 이야기, 모임 안내, 참여자들의 인터뷰를 뉴스레터로 전합니다.

 

"주여, 좁은 길을 걸어가게 해 주십시오.

믿음의 동역자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는 사람 (사진 Mimi Moromisto)_pexels.com 
기도하는 사람 (사진 Mimi Moromisto)_pexels.com 

저는 말씀을 묵상하고 그 묵상을 기도문으로 적곤 합니다 


 

 이희제의 묵상과 기도 1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싶다고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했을 때,

당신의 빛나는 영광을 만날 것을 기대했던 제 생각과 다르게,

하나님은 거절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그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을 발견하면서,

하나님이 스스로 고통당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원하신다는 것을 배우면서,

제 기도가 결국 응답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에 감사드리며,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길도 보여주세요.


 

이희제의 묵상과 기도 2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힘과 능력과 보기에 아름다운 것을 숭상하는 이 세상을 보십시오.

그 사상이 너무도 현실적이고 너무도 매력적이고 너무도 안전해 보여 어느새 그 길을 따라가고 싶어집니다.

주여!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가치를 마음에 두고

좁은 길을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좁은 길 가기가 만만치 않으니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게 해주시고

여러 징표들로 여전히 바른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십시오.

제 믿음이 적은 것을 아시오니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김근주읽기 길벗들에게

어느 날 노숙자들이 생활하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의 노숙자 사역은 야외집회 장소를 찾아온 노숙자분들을 만나 함께 예배하고 포장된 음식을 전해드리고 마무리했는데, 그날은 집회를 마치고 노숙자분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곳을 직접 찾았습니다. 그곳은 도심 한가운데 고가도로 아래의 시끄럽고 어둡고 지저분한 텐트촌이었습니다. 저는 날 것 그대로 그들이 사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저분한 차림의 사람들이 멍하니 텐트 앞에 앉아 있거나, 텐트 안에 누워 있거나, 아니면 옆 사람과 소리지르며 아귀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준비한 음식을 나누고 봉사를 마친 후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말이지, 도대체, 어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저는 하나님과 어떻게 얘기할지 막막했습니다. 그저 뱃속 깊은 곳에서 올려진 세 문장만이 맴돌았습니다.

"하나님,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겁니다."

"사람이 이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내 주변부 사람들과 그분들의 상황을 품어낼 수 있는 기도의 언어가 없다는 것을요. 그동안 제가 드렸던 기도가 너무 형식적이고, 메말랐으며, 심지어 위선적이었다는 것을요. 매일 지옥의 현장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들이 죄를 회개하게 해 달라고, 저들에게 구원을 달라고기도하는 게 도대체 뭐냔 말입니까! 하나님은 이미 여기에 계시지만, 저는 그분과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습니다. 입을 벌려 아뢸 말을 잃었습니다. 이들을 품어 낼 기도의 언어가 제게는 없었습니다.

누구도 기도의 언어를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기도의 언어는 살갗의 경험과 눈물의 이해를 통해 배울 수 있음을. 기도의 언어는 결국 그 상황에 대한 이해와 경험, 그러한 상황을 기록한 성경을 묵상함으로 배워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듯, 그렇게 기도의 언어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제가 늘 생각하는 신앙의 영역의 하나가 기도입니다. 한국인의 영성은 끈질긴 기도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합니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행하는 기도의 방식과 내용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기독교는, 교회에서는 어떤 기도를 가르치고 있나요. 자기 자신, 나의 식구들, 우리 교회가 잘 되기만을 바라는 욕망의 기도인가요. 자신의 성공과 성취만을 큰소리로 토해내는 통성의 기도인가요.

우리의 기도가 달라지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그저 따라만 해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모방의 기도가 아니면 좋겠습니다. 개인의 욕심만을 채우는 기도가 아니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제 다시 말씀에서 건져올려지길 원합니다.

자신의 언어로, 정직한 목소리로, 낮은자가 드리는 기도이길 원합니다.

떨리는 입술을 열어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말을 배우길 원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나라를 품는 기도이길 간구합니다.

이희제 Heeje Lee  올림


예배당 전경 (사진 Nikko Tan)_pexels.com 
예배당 전경 (사진 Nikko Tan)_pexels.com 

"제 신앙고백이오니, 주여 받아주시옵소서"

이희제의 묵상과 기도 3

 

하나님,

제가 일터에서 정직하고 바르게 일하겠습니다.

입을 벌려 고백하지 않아도 그것이 제 신앙고백이니 받아주십시오.

 


 이희제의 묵상과 기도 4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기에 기대도 하지 않게 됐습니다.

우리는 그저 여기가 좋다고 주저앉아 버리고 맙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세상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셔서,

우리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나라로 인도해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세워 나가게 해주십시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마음껏 꿈꾸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마음껏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공평과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그 땅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이희제의 묵상과 기도 5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마태복음 11장 3-5절)

 

여기 예수님의 대답이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대답하신 구원자 메시야의 자격은

빛나는 외모와 그동안 쌓아 올린 경력에 있지 않았습니다.

끌어모은 군중의 수와 탁월한 지도력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셨나 알려주심으로

스스로 메시야임을 증명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눈 먼사람이었고, 다리 저는 사람이었고, 나병 환자였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죽은 사람이었고,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교회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향해

'당신들이 우리가 기다려온 소망입니까',

'당신들이 우리를 살게해 줄 생명입니까',

 '우리가 다른 누구를 기다려야 합니까' 물어올 때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약하고 고달픈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 교회는

절망한 사람들, 무너진 사람들, 분노한 사람들, 포기한 사람들,

두려운 사람들, 살았지만 죽은 사람들을 만나고 돌보는

교회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질병이 떠나가고, 문제가 해결되고, 관계가 회복되고,

생명이 찾아오고, 평화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가 우리를 기억하셨다. 

그가 우리를 살리셨다.

증언하는

교회가 되게 해주십시오.

 

"생명이 찾아오고, 평화가 이루어지지는 곳"


기도하는 손(이미지 힘산 광역시)_pixbay.com
기도하는 손(이미지 힘산 광역시)_pixbay.com

이희제의 묵상과 기도 6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때 종교의 이름으로 찾아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찾아오셨고

공의와 정의로 찾아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만연한,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을 진리라고 인정할 수 없는,

강한 자 중심의 질서가 아닌

약한 자를 돌보고 소외된 사람들을 일부러 찾으시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그런 하나님의 모습과 일치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길을 따라 나섭니다. 우리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희제의 묵상과 기도 7

 

하나님

제가 율법의 정신을 잘 이해하고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겉으로 드러나는 것 뿐 아니라

속마음까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눈 앞에 홍해가 길을 가로막든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광야가 펼쳐지든, 

주님을 믿고 길을 떠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제가 이 길을 따라 나섭니다. 

우리를 인도해 주십시오.

아멘.


오래된 교회의 십가가 앞에서 (이미지 다이엘 한나)_pixabay.com
오래된 교회의 십가가 앞에서 (이미지 다이엘 한나)_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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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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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미경

    3
    about 1 year 전

    아멘! 이희제님, 기도문을 보내주셔서 크게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겉과 속을 온전히 드리며 살아가길 간구하시는 그 가슴시린 간절함에 저는 사랑의 마음을 전달 받았습니다. 희제님의 입술과 마음의 기도가 나의 기도, 우리의 기도가 되길 원해봅니다. 하나님 나라를 품는 기도의 언어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기쁘고 따뜻하게 해주네요. 기도문을 가까이 두고 자주 보게 될 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요.💕🙏🙏

    ㄴ 답글 (1)
  • 황상수

    3
    about 1 year 전

    교회에서 기도의 시간보다 회의를 하는 시간이 더 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슨 기도를 할까. 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교회 내에서만 기도제목을 나누고, 내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지길, 상황이,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길 기도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에 눈감고 있는 나.. 하지만 늘 내 손을 그리로 이끄시는 하나님.. 이제는 눈을 뜨고, 그들을 바라보면서, 아이가 말을 배우듯이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할 거 같습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복음이 복음일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ㄴ 답글 (1)
  • 수수

    2
    about 1 year 전

    1. 하나님, 제가 일터에서 정직하고 바르게 일하겠습니다. 입을 벌려 고백하지 않아도 그것이 제 신앙고백이니 받아주십시오. (온 마음을 다해) 아멘. 2. 누군가가 길에서 노숙하시는 분에게 다가가 가까운 곳에 노숙자쉼터가 있으니 필요하시면 이용하시라고 했습니다. 그 노숙자 분은 거절하셨습니다. 이유를 묻자 그곳은 환경은 더 좋을지는 모르지만 자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장면들을 한 발짝 멀리서 보고 있던 저는 우리의 선의가 좋은 환경과 좋은 재활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그 분들의 자유를 존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나 자신도 나만의 공간에서 그 무엇으로부터 누리는 나만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그 분이 길에서 라면 상자를 깔고 먼지와 더위와 추위로부터 지키는, 다른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부터 지키는 자유는 존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반성하고 후회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노숙자 분에게 시설 이용을 권했던 분은 흔쾌히 그 분의 의견을 존중해 주며 실례했다고 휴식을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제게 곱사등의 등을 펴는 것만이 복지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빈곤과 불평등의 극복, 경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거시적인 방향도 있지만 어떤 노숙인의 자유도 놓쳐서는 오늘 우리의 거울이라고 생각됩니다. 좋은 글과 삶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 뵈뵈

    2
    about 1 year 전

    계속해서 여러번 읽게되는 묵상 기도문입니다. 좁은길 가기가 만만치 않으니….확인시켜주십시오. 너무나 솔직하고 정직한 진심을 담은 기도. 멀리서나마 마음으로 댓글로 응원드립니다. 샬롬

    ㄴ 답글 (1)
  • 구아빠

    2
    about 1 year 전

    이희제님의 묵상과 기도에 큰 감동 받았습니다. 평소 제 머리 속에서 맴돌던 생각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필자의 허락받지 않고(^^;) 제 메모장에 기록해두고, 같은 기도를 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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