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의 영혼을 위해 사랑과 눈물로 기도한 나의 선생님"
ː 이희제 Heeje Lee의 신앙 이야기
저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거주하는 이희제입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교육 받아서 치과의사가 되었습니다. 대략 20년 전 미국에 전문의 과정을 공부하러 건너왔는데, 공부를 마치면 돌아가겠다는 계획에 변경이 생기면서 오늘까지 이곳에서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내와 두 아이가 있으며, 아이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해서 집을 떠나 자기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2021년 『신데카메론: 아직 오지 않은 교회와 세계에 관한 열 가지 이야기』(복있는사람)의 공저자로 <다섯째 날: 공중보건ㆍ질병은 어떻게 찾아오는가>를 썼습니다.
ː 한 아이를 위한 선생님의 기도
1980년,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동네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학창시절의 교회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교회엔 친구들이 있고 참 좋으신 어른들이 계셨습니다. 함께하는 성경공부, 모임, 놀이, 연극, 성가대 발표까지 풍성한 문화를 저는 교회에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마음 깊이 영접하는 순간을 가졌습니다. 제 곁에는 항상 한 아이의 영혼을 위해 사랑과 눈물로 기도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의 노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는 어른이 되면서 차츰 깨달았습니다.
ː 한국교회의 밀물과 썰물
2004년 한국을 떠나기까지 저는 모범적인 교회 학생이고 청년이었습니다. 미국에 와서도 한인교회를 다니면서, 40세가 되기까지 한국교회의 영성과 문화를 몸으로 흡수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한국교회의 급성장과 정체, 그리고 썰물처럼 밀려나가는 쇠퇴를 지켜보았습니다.
1990년대 한국 교회는 무섭게 성장했습니다. 해외여행 자유화로 단기선교의 길이 열렸고, 저를 포함해 수많은 교인들이 해외 선교지를 방문해 봉사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 분야에서 경력을 쌓던 제게 당시 팽창하던 교회의 문화를 잘 대변하는 고지론(高地論: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대한 성공하여 높은 곳으로부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은 거부감없이 납득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식으로 이루어져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 사회의 주류세력이 된 기독교는 이곳저곳에서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교회 안의 다툼과 불법이 뉴스에 오르내렸고,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종종 접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속에는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인가?'
어느 날 새벽기도에서 예수님이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ː 한 날의 탄식, 그날의 회심
저는 유학시절부터 40대에 접어들기까지 나름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다 경력에 큰 좌절을 겪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더 노력해도 안되고, 아무리 부르짖고 기도해도 응답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둠이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에서 예수님이 저에게 물어오셨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제서야 성공에 목말라 마음이 병든, 그래서 신앙도 오로지 내가 잘 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려 했던 적나라한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 내게 예수님은 그리스도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었습니다. 아니,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 나는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 탄식했습니다.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한없이 울면서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ː 그러나, 각자도생...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하는 저에게 '낮은 곳으로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만나라'는 마음의 음성이 찾아왔습니다. 비로소 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고, 한국교회 세습 문제가 대두됐습니다. 타성에 젖은 한국교회의 세월호 사건 해석 방식과 유가족에 대한 모독에 가까운 태도를 보면서,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교회 세습을 제안하고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는 모습은 끔찍했습니다. 결국 한국교회가 자꾸 좋지 않은 소식에 관련되는 것은 개인의 일탈 때문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신학 자체가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며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류 교회의 방식을 쫓다보면 저 또한 끔찍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졌습니다. 차마 입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당시 서로가 침묵으로 동의했던 말. '각자도생'. 다른 길이 없겠다는 가련한 마음으로 저도 외로운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가슴 시원하게 그 나라를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게 너무 당연하고, 능력대로 줄서기 하면서 살아가는게 당연하고, 가난하면 무시 당하고 사는게 당연하고, 모자란 인간들은 쓰레기 취급하며 살아도 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래서 오늘 잘못한 거짓말이나 욕심 부린 것 정도만 적당히 회개하며 살아가나 봅니다. _(<복음의 공공성> 함께 읽기 10일차 이희제 님의 소감 중에서)
ː 영상으로 만난 김근주
신앙의 갈피를 잡지는 못했지만, 교회를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봉사하면서 한편으론 새로운 길을 모색했습니다. 어느 날 유튜브를 검색하다 우연히 김근주 교수님의 구약 공부 영상을 접했습니다. 분명히 같은 성경을 놓고 강의를 하는데,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깊이 공감되면서 마음까지 시원해졌습니다. '도대체 이 분은 누구신가?' 그날부터 김목사님의 설교와 강의 영상을 계속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말하더군요. '자신의 신앙은 김근주 교수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갈린다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김근주읽기는 한 친구의 소개로 추천받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동참했습니다.
"김근주, 도대체 이 분은 누구신가?"
ː 성실한 신학자, 탁월한 설교자
제가 김근주 교수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성실한 학자이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의 강의는 탁월합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성경 본문을 교수님은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도록 하고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잘 파악하도록 돕습니다. 간혹 주변에서 좋은 설교라 추천하는 영상을 보곤 하지만, 화려한 언변과 감성을 자극하는 말잔치로 채워진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김근주 교수님의 강의와 설교는 '성경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듣게 하고, 성경이 전달하는 바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감동하도록 이끕니다. 이런 강의와 설교는 성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는 결코 만들어낼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교수님은 설교 첫마디에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제 생각이고, 제 공부와 묵상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들어보시고 다시 생각해보시고 잘 판단하십시오" 강단에서 쏟아내는 말은 무엇이든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한국교회 문화에서 이런 겸손하고 정직한 자세는 또 얼마나 신선한가요!
ː 보이지 않는 얼굴, 들리지 않는 목소리 unseen faces, unheard voices
중년의 나이에 사회적 회심을 경험한 후 저는 일관되게 우리 사회에서 잘 보이지않는 사람들(unseen faces, unheard voices)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껏 세상에서 험한 꼴 당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살아온 저에게 이 사회는 늘 관대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저의 평온한 삶은 신앙을 잘 지킨 것으로 얻은 복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눈을 돌려 세상을 둘러보니 사회에는 엄연히 계층이 존재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에 따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복잡하고 모순된 삶의 층위 어딘가에 위치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세계에서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습니다.
주변부의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삶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떤 분이신지 깨닫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신학', 장애로 차별 받는 사람들의 '장애신학', 가부장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여성신학',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투쟁하는 성소수자들의 '퀴어신학', 미국 근현대사에서 착취의 대상이었던 흑인들의 '흑인신학'을 들여다보고 공부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알아갈 것입니다.
"해방신학, 장애신학, 여성신학, 퀴어신학, 흑인신학,
저는 알아야만 했습니다."
ː 낯선 곳에 계신 하나님
소위 보수 교회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알고자 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위험하다며 가까이 하지 말라합니다. 하지만 저는 경험했습니다. 꺼려지고 접근하기 싫은 곳에 있는 사람들, 그들 곁으로 가야합니다. 놀랍게도 낯선 곳, 낯선 이들 곁에 하나님은 먼저 와 계셨습니다. 아!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제한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측량할 수 없습니다.
낯선 이들을 알고자 한다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낯선 존재를 일단 경계하고 피하려 반응하지만, 우리 안의 부정적 편견을 지우기 위해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아가 낯선 상대의 정체성은 다른 이가 아닌, 그들 스스로 표현하는 바에 따라 다시 정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같이 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상상해 본적 없는 놀라운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에 관한 인식의 폭이 한없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중 누가 음란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았다고 자신할까요"
ː 성소수자, 그리고 각성
성소수자들의 사회적 출현은 제게 성경을 새로 보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가르쳐 온대로 그들이 성경이 금하는 것을 거리낌없이 행하는 악한 사람들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서 이것은 정체성에 관한 문제일뿐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김근주 교수님께서는 종종 낯선 사람들, 낯선 상황이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게 한다고 하십니다. 많은 이들의 비난처럼 성소수자들을 음란한 사람이라 정죄한다면, 누구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은 음란의 죄에서 자유롭다 말할 수 있을까요. 쾌락의 요소를 내포한 성(性)을 그림자처럼 붙이고 다니는 우리 중 과연 누가 음란의 경계를 넘어선 적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이제 신앙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들을 배제하고 혐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 신앙 안에서 성소수자들을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을때 , 그래서 자기 실존의 문제와 성경 말씀이 충돌할 때, 남은 길은 한가지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고 받아들이는 것을 이제는 내려 놓아야 합니다.
ː 성경을 잘 안다는 착각, 그것이 걸림돌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는 성경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입니다. 예전에 했던 묵상, 들었던 설교는 성경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때로 방해합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저는 성경을 읽을 때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을 읽듯이 읽어갑니다.
문자주의적, 혹은 근본주의적 신앙에서 벗어나는 순간 놀랍게도 종이 위에 납작하게 붙어있던 성경 말씀이 살아 움직입니다. 도덕적 교훈 혹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방법의 안내 정도로만 보이던 성경이, 이제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그분께서 만드신 사람에 대한 통찰, 그리고 이 세상이 운행되는 이치를 담은 것이 보이고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문자의 나열이지 않습니다. 성경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건져내기 위해서 반드시 올바른 해석이 필요한 책입니다. 해석은 자유롭지만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단들도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보면 성경은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생명을 줄 수도, 멸망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전한 성경 해석을 위해 함께 생각과 질문을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모임 혹은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모임은 내 생각과 해석이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안전한 그물망이 되어줄 것입니다.
ː 다.양.성
김근주읽기는 장소나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아 좋습니다. 참가자들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접하면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합니다.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명확하게 깨닫게 되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매일 히브리어 단어를 하나씩 배우고, 뉴스레터를 읽고, 저자와 함께 하는 북토크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행사가 있어 신선합니다.
ː 김근주읽기 계속 참여하나요
계속 참여하고 싶습니다. 사실 신학적으로는 짙은 근본주의, 문화적으로는 가부장제의 성향을 가진 한국 기독교 환경에서 김근주 교수님처럼 생각하고 성경을 해석하는 성도들은 여전히 소수입니다. 그래서 소수인 우리가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성경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가운데 우리에게 쉼과 회복, 그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힘과 용기가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어가기를 목사님도 응원할 것입니다"
ː 더 많은 김근주를 만나기 위해
김근주읽기가 계속 진행되어갈 때 우리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성경 안에서 정확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발견하고 이를 우리 삶의 현장에서 살아내는 것임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김근주 교수님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하고 그 분의 가르침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렇다고 김근주 교수님의 해석만이 진리는 아닐 것입니다.
김근주 교수님을 통해 성경을 읽는 새로운 시각과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잘 배운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오늘도 성실하게 말씀을 연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가는 또 다른 많은 김근주를 만나 교류하며 배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김근주 읽기의 여정은 결국 '김근주를 넘어서는 성경읽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근주 교수님도 결국엔 우리가 그렇게 되어가기를 원하고 응원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 이희제 Heeje Lee 님의 인터뷰는 두 편입니다. 후편은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 to be continued
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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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경
이희제님 귀한 글 감사합니다! 써주신 글을 보며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보석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이희제님 같은 분을 두고 하는 말이었네요🩷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들으셨다니 부럽고 놀랍습니다. 평양 과기대에서 강의하는 모습이나 실습진행 사진이 참 멋집니다. 신데카메론 (공중보건)편은 꼭 살펴봐야지 싶습니다 ㅎ 톡방에서 섬세하고 따뜻한 글로 감동을 주시더니 뉴스레터로 더블 감동을 주시네요^^ 김근주를 넘어서는 성경읽기를 희제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2편도 기린목으로 기다릴께요. 항상 건강하게 지내세요. 한국 나오시면 꼭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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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읽는데 왜 눈물이 날까요!
김근주읽기 (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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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이랑
솔직하게 삶과 생각을 나눠 주셔서 감사해요. 읽으면서 많은 부분 동감했습니다.
김근주읽기 (280)
공감의 마음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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