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의 신앙 이야기
저는 모태신앙 기독교인입니다. 외가쪽으로는 삼촌 두 분이 모두 목사님이시고, 부모님은 장로와 권사님입니다. 둘째 오빠도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야말로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기독교의 문화 세례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삼촌이 시무하시는 교회에 출석했으니, 교회에서는 인싸 아닌 인싸로 별다른 갈등없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 권력라는 거대한 혹성에 부딪치고
이후 이사를 하면서 삼촌이 계신 교회가 아닌 집 근처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한 교회에서 15년간 매주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예배는 제게 호흡과도 같았으니까요.
그런데 15년째의 어느 날, 불현듯 제 인생에서 권력이라는 엄청난 혹성에 부딪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연히 당회에서 일부 장로님들이 담임 목사님께 ‘사임 압박’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누가 보아도 사적 권력을 앞세워 목회자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하는 잘못된 행위였습니다.
저는 즉시 교회 당회에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부당한 사임 압력에 대해 "이런 말과 행동은 무례한 일이다. 사임이란 적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임을 언급한 장로는 사퇴하라!" 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바르고 정직한 말이 상처로"
❘ '악한 영'이라는 참담한 괴소문
그런데 제가 사안을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던 것일까요? 저의 적극적인 호소가 해결에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오히려 공격의 화살은 저를 향했습니다. 순식간에 교회에서는 저를 지목해 "신천지다. 악한 영이다. 목사님과 밥 먹고 돌아다닌다. 목사님이 집에 자주 드나드는 사이다."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괴소문들이 나돌았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거짓이기에 황당했지만, 이내 스스로 대응하지 않으면 그것은 저에 대한 예의가 아닌것 같았습니다.
‘아~ 이게 한국 개신교의 수준이야? 난 중세에 태어났으면 화형을 당했겠구나’ 싶었습니다. 마녀사냥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야말로 저는 분노에 쩔어서 계속 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단 저를 위한 싸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땅의 여성 기독교인을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당회에 탄원서를 던지고, 노회를 찾아가 장로들을 고소하는 일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 난리를 겪는 중에, 저를 신천지라고 규정한 교인들이 교회에서 손을 들고, 소위 거룩(?)하게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와... 그로테스크란 이런걸 두고 말하는거구나. 다들 미쳤어. 단체로 이럴 수가 있나?' 당시 제 안에서 수없이 울려퍼진 말이었습니다. 정의롭고 싶었는데 슬프게도 제 마음에 미움과 혐오가 들끓었죠.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와 만남
그렇게 강렬히 혐오하며 싸우는 중에 ‘교회가 도대체 뭐야?’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교회가 뭐길래 나한테 이런 폭력을 가해? 도대체 성경은 뭐지?’ 그때부터 유튜브에서 교회사 강의를 정말 미친 듯이 찾아서 들었습니다. 특히 배덕만 교수님의 강의를 집중해서 보았습니다.
저의 괴로운 상황이 역설적이게도 성경을 제대로 읽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를 알게 되었고, 한국 개신교에 대한 분노와 성경을 제대로 알려는 의지가 뒤섞여, 2년 정도 느헤미아에서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무엇보다 공부를 하면서 김근주 교수님의 가르침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책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분노가 다시 생기더군요. "아! 성경이 이런거였구나! 왜 나는 지금까지 성경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 태어나서 꼬박꼬박 매주 교회에 갔었는데, 왜 희년을 지키라고, 정의를 행하라는 설교를 듣지 못했지? 지금까지 나는 정말 바보로 살았구나."
"같이 읽기는 축복입니다"
❘ <신앙과 책> 모임
저는 현재 배덕만 목사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이 시무하는 백향나무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등록한지 2년 정도 되었습니다. 백향나무교회에서 신앙 관련한 책에 관심 있는 교우들을 만나게 되었고, 같이 책을 읽어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현재 "신앙과 책"이라는 책읽기 모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참여자들이 20여 명 정도인데, 누구 한 사람이 주도하지 않고, 모인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을 순서대로 읽는 방식입니다. 모임의 대표는 없고(참가자들이 대표 시스템을 싫어하거든요^^), 사회도 돌아가면서 보고, 작은 일도 투표를 통해 결정합니다.
지금까지 <배제와 포용>(미로슬라브 볼프, IVP, 2021) <갈릴래아의 예수>(안병무, 한국신학연구소, 2020), <회심>(짐 윌리스, IVP, 2008), <신의 언어>(프랜시스 S. 콜린스, 김영사, 2009), <장애의 역사>(킴 닐슨, 김승섭, 동아시아, 2020)를 읽었고, 지금은 <경계선 위에서>(폴 틸리히, 동연, 2018)를 읽고 있습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발제를 하기도, 안하기도 하며,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눕니다. 혼자 책을 읽으면, 자기 생각 이상이 되기가 어렵죠. 사실 혼자의 세계에 갇히면 ‘자기 이하’로 떨어진다고 봅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읽고 생각을 나누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죠. 그게 ‘같이 읽기’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나만의 책읽기 습관 세 가지
사람마다 자신의 책 읽는 방식과 모양새는 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 특이할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오랜 독서습관이 있습니다.
첫째, 저는 읽은 책을 선정하면 읽는 기간동안 저자의 사진을 띄어놓고 읽습니다. 가령 디트리히 본회퍼의 책을 읽을때면, 본회퍼의 사진을 검색해서 띄어놓고, 본회퍼가 내게 말하는 것처럼 읽지요. 김근주 목사님의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김근주 목사님의 흔들리는 눈빛, 그럼에도 나아가는 손을 느끼며 읽으면 왠지 읽기가 풍성해지곤 합니다.
둘째,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읽곤 합니다. (이럴 땐 말풍선 포스트잇을 활용해요.) 책이란 궁극적으로 소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방적으로 듣는건 제게는 재미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 책 어딘가에서 나의 말에 김근주 목사님이 답해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셋째, 다른 책을 동시에 같이 읽습니다. 성경도 성경만 읽으면 오히려 잘 모르지 않을까요? 그래서 김근주 교수님의 책을 읽을 때는 <예언자들>(아브라함 J.헤셀, 삼인)을 같이 보았습니다. 김근주와 헤셀이 번갈아가며 나에게 말을 걸어주니, 이보다 더 큰 호사가 어디있을까 하면서 즐거운 독서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풍선처럼 부푸는 생각, 나의 독서법"
❘ 소명이란 what이 아니라 how
"독문학 전공자이며, 연극, 화술, 연극 연출, 북한학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학문의 영역을 넓혀오셨습니다. 광폭적 연구 활동을 하신 계기, 또 특별히 북한학에 관심을 가지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기독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연구활동이 관련성이 있을까요?"
뉴스레터 발행자인 강경희 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질문을 통해 제 공부의 방향과 의미를 다시 짚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 4학년 때 누구나 그렇듯이 앞길을 놓고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 생애 처음으로 40일 작정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13일차인가? 하나님이 저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난 너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어. 난 너가 무엇을 하든 너와 함께 할꺼야."
우리가 이 말을 하면 최소 3초는 걸리잖아여? 그런데 0.0001초? 순식간에 온 응답입니다. 땅의 시간을 깨고 다른 세계에서 ‘훅’ 와버린 응답이었습니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빈 속에 독한 소주를 마시면, 소주의 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에 확 퍼지잖아요? ㅋㅋ 응답과 함께 온몸에 말로 표현하지 못할 평화가 퍼졌어요. 그런 평화는 제 생애 처음이었습니다. 평화를 물리적으로 느끼겠더라구요. ‘내게 강 같은 평화’가 문학적이거나 시적인 말이 아니라, 실제였습니다. 처음 맛보는, 온 몸에 퍼지는 그 평화. 감동과 충격이었습니다. 전 이후로 외국문학, 연극학, 북한학 등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든 상관이 없다고 하셨으니까요.
소명이란 무엇을 하는가(what)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how)이구나 싶었습니다. 북한학을 한 것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문화예술이 전공인지라, 우연히 북한의 문화예술을 연구하라는 제의가 들어왔고, 북한의 문화예술이 궁금해지길래 북한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통일보다는 통합과 소통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제도의 통합보다 더 중요한건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통합과 소통이 중요해요"
❘ 김근주 목사님, 진리에 직면하는 사람
김근주 목사님에 관해서는 많은 분들이 뉴스레터를 통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목사님에 대해 제 개인의 생각을 굳이 첨언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러분들의 나눠주신 말씀에 공감을 합니다. 평소 제가 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김 목사님에 관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음, 저 양반은 상식적인데, 그래서 위험하지. 타협하지 않는 스타일이야. 진리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겠지.”
선배의 말을 듣고 속으로 많이 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김근주 목사님은 상식적이기에 오히려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 위험해져 버린 상식이 ‘비상식적인 개신교계’로 치닫는 오늘의 우리에게 진리에 직면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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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경
💕김정수 님! 💕감사합니다! 백향나무교회, 배덕만 목사님, 전수현 전도사님, 이름만 들어도 행복합니다.🍀 정수님이 쓰신 책을 보면서 그리고 책 읽기 노하우를 보면서 '참 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 여기 계시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저자의 사진을 보면서 읽어보기, 매우 창의적입니다^^ 저도 따라해 보고 싶네용♡ 소명에 대해 '강 같은 평화'를 경험하셨다니 신기하고 부럽습니다^^ 공부에 올인하는 멋진 사람, 한다면 해내는 사람, 그리고 관계맺기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귀한 레터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김근주읽기 (280)
항상 힘이 되는 사랑의 답글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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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하
끊임없이 질문하고 연구하시는 삶이 존경스럽습니다. 북한학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쓰신 교수님이셨네요. 감사합니다.
강미경
예^^ 목사님~정수님처럼 노력하시는 분들이 참 훌륭한 사람들이다 싶습니다. 한 분 한 분 참 대단한 분들이 많으시네요. 이광하목사님처럼 항상 공부하시는 분들이 늘 존경스럽습니다.
김근주읽기 (280)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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